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67)
재벌집 만렙 아들-167화(167/416)
< 고작 입학식인데 (2) >
아까 어머니가 뭐라고 했더라.
-이게 말로만 듣던 우광학교 입학식 대행진인가 봐요.
무슨 대행진씩이나 되냐며 코웃음 쳤던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저승사자가 낮게 감탄했다.
[와, 이건 진짜 장관인데? 반짝반짝하구나.]정문에서 운동장까지.
족히 1km는 넘는 길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가로수마다 입학 축하 플래카드와 가랜드가 걸렸다.
색색의 레터링 풍선이 줄에 매달려 동동 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거리는 금박, 은박지가 길게 늘어서 팔랑거리며 바람에 흩날렸다.
[저건 또 뭐지? 희한하게 생긴 꽃 뭉치가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네?]진입로 양쪽을 꽉 채워 늘어선 화환.
나는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고작 입학식인데, 이렇게 화환까지 보낼 일인가?’
장례식도 아니고, 결혼식도 아니고, 개업식도 아닌데?
살다 살다 입학식에 화환을 보낸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게 여기 있었네?
심지어 많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화환을 빼곡하게도 보내놨다.
‘한국대 입학식도 이 정도로 요란하게 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우리 강우 학교 행사는 눈에 불을 켜고 챙겼었다.
입학식은 물론 체육대회, 운동회, 소풍, 졸업식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소란스러운 입학식은 또 처음이었다.
[분홍 띠에 글자도 적혀 있다. 신기해.]금박 테두리가 붙은 분홍색 리본에 검은색 붓글씨가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같은 곳에서 찍어낸 것처럼 비슷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저승사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평소보다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 네 것도 있구나!]저승사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온갖 꽃으로 요란하게 장식한 화환 더미가 있었다.
유치부부터 고등부로 나눠진 구역 중에 국민학교부 구역이었다.
<금쪽같은 내 손자 차정혁의 우광국민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태성그룹>
<정혁아, 우리 입학식 끝나면 같이 짜장면이나 먹으러 가자! -태성자동차>
<조카님, 입학 축하 선물이랑 질문 하나 깔까? -태성유통>
<어머, 내 조카가 수석 입학이라고? 봄옷은 고모가 맞춰줄게~ -태성백화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짜로 저 화환 중에 우리 가족이 보낸 것을 발견할 줄은 몰랐거든.
그중에서도 눈에 콕 밟히는 게 있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적. 정혁아, 사랑한다. -태성건설>
이게 뭐라고.
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멍하니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입속으로 글자를 굴려 읽을 때마다 마치 사탕을 물고 있는 것처럼 달달해졌다.
“아빠 엄마도 내겐 세상에서 제일 큰 기적이에요.”
무려 45년의 사무치는 그리움 끝에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평생 막연하게 상상할 수밖에 없던 아버지가 내 앞에 있다.
“입학 축하해, 정혁아.”
“우리 정혁이도 이제 국민학생 형아가 됐네.”
부모님의 축하를 받으며 나는 활짝 웃었다.
그토록 요란한 입학 축하가 마치 나만을 위해 준비된 것 같은 몽롱한 기분이랄까.
온 세상의 축복이 내게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뭔가 좋은 냄새가 나는 걸 잔뜩 팔고 있는데?]학교 매점을 통째로 밖으로 옮겨온 건가.
맛있는 냄새를 맡은 아이들이 잔뜩 몰렸고, 학부모는 지갑을 활짝 열었다.
어느새 아버지도 지갑을 꺼내며 웃었다.
“정혁아, 우리도 내려서 잠깐 걸을까?”
“좋아요.”
어차피 주차장까지 꽉꽉 막힌 차들의 행진에서 빠져나왔다.
한 손으로는 아버지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우리 세 식구가 같은 속도로 발 맞추어 걸었다.
“정혁이는 솜사탕 좋아하니?”
딱히, 하고 고개를 저을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발이 우뚝 멈춰 섰다.
‘솜사탕은 우리 강우가 환장하게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는 아이의 얼굴이 그리웠다.
아버지는 즉시 지갑을 열어 솜사탕을 구매하셨다.
“먹어 볼래? 구름같이 폭신하고 달다.”
강우가 딱 이 이유로 좋아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몰래 속으로 혀를 차곤 했었다.
-고작 설탕 몇 스푼을 넣고 저렇게 크게 부풀려 비싸게 처받아 먹다니.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뺏으려고, 쯧.
그래도 강우가 좋아하니까 솜사탕이 보일 때마다 지갑을 열어 사주었지만.
놀이공원이나, 운동회가 열리거나, 소풍날이 돌아오거나.
그럴 때면 난 어김없이 강우의 손에는 솜사탕 막대를 들려주었다.
내 작고 소중한 추억 중 하나였다.
“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내 손에 솜사탕 막대를 들려주었다.
조금 떨떠름했다.
‘싸구려 설탕 냄새에, 나무젓가락까지 끈적이는군.’
나는 동그랗게 부풀어 있는 솜사탕을 잠시 노려봤다.
‘영양가도 없는 주제에 건들면 바로 거품처럼 사그라드는 것이 꼭 허풍선이 사기꾼처럼 달콤하기만 한 쓰레기라니까.’
솜사탕은 비싸기만 하지 먹어 봤자 배도 안 찬다.
“참, 정혁이는 사탕도 썩 안 좋아하지? 그럼 솜사탕도 별로이려나?”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살핀다.
아버지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색하게나마 웃어 보였다.
“기뻐요.”
“흠, 기뻐하는 얼굴이 아닌데?”
“솜사탕은 처음 먹어보거든요.”
진짜 그랬다.
사실 어렸을 땐 정말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배가 곯다 지쳐 쓰레기통이나 뒤져 먹던 시절에 솜사탕은 무슨.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다.
“혹시 정혁이는 솜사탕 처음 보니?”
“형이나 누나들이 하굣길에 사먹는 거 봤어요.”
나한테 운동회나 소풍날이란 건 한몫 확 땡기는 장사철이었다.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안 되던 앵벌이 시절.
나는 운동장 한구석에서 껌을 팔면서 애들이 사먹는 것만 멀리서 구경해야 했었다.
그때 내겐 솜사탕보다 라면이 더 절실했었다.
“아, 등굣길이 아니라 하굣길이었구나.”
아버지가 솜사탕을 조금 떼어내 입에 넣어주었다.
마치 솜사탕을 먹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것처럼.
상냥한 손길이었다.
“아빠가 눈치 없이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 그치?”
문득 나도 강우의 입에 이렇게 솜사탕을 떼어 넣어줬던 게 떠올랐다.
그럴 때면 강우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방긋방긋 웃곤 했다.
고작 설탕 몇 스푼, 녹으면 뱃속에서 다 똑같아질 뿐인데.
“······달아요.”
솜사탕은 혀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아버지가 내게 하늘의 구름을 따다가 입에 넣어준 것 같았다.
“어때?”
“맛있어요.”
난 단 건 딱 질색인데.
입만 잠깐 즐거울 뿐, 쓸데없이 비싸고, 이는 썩고, 혈당은 치솟고, 뱃살만 찌고······.
“마음에 들어요.”
내 인생에서 처음인 입학식.
아버지가 처음 사준 간식이라서?
아니면 내가 지금 어린애 몸뚱이를 하고 있어서?
눈물이 날 것처럼 달아서······ 행복해졌다.
“그래? 그럼 이따 우리 집에 갈 때 하나 더 사먹을까?”
“네, 좋아요!”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아빠도 아!”
“아.”
나는 강우에게 내어주던 것처럼 솜사탕을 크게 떼어서 아버지 입에 쏙 넣어주었다.
“엄마도 아!”
“아.”
물론 방긋 웃는 어머니의 입에도.
“헤헤헤.”
빌어먹을, 어린애 몸뚱이란!
나는 솜사탕 막대를 든 채 활짝 웃고 말았다.
“읏차.”
아버지가 날 달랑 들어서 목말을 태웠다.
아버지에게서 훅 풍겨오는 묵직하고 세련된 남자 향수 향기보다.
오늘만큼은 달콤한 솜사탕 향기가 훨씬 진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달해졌다.
혀끝에서 맴도는 달콤함에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고작 입학식이 이렇게 요란할 일인가 싶은데······.’
나는 솜사탕을 든 채 훌쩍 높아진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끔은······.’
애들은 저마다 먹을 것을 든 채 신나서 뛰어다녔다.
부모는 연신 손수건으로 애들의 입가를 닦아주기 바빴다.
예쁜 옷 입었는데 음식 흘리면 안 된다는 잔소리도 들려왔다.
넘어져서 울면 사진 이상하게 나온다며 사진기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햇살은 눈 부셨고, 바람은 부드러웠고, 맞잡은 손은 따뜻했고, 솜사탕은 달았다.
그럼 됐지.
* * *
입학식은 대운동장에서 열렸다.
야구장 규격의 관중석엔 입학식을 참관하기 위해 온 학부모 귀빈들로 꽉 찼다.
운동장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입학생부터 재학생까지.
우광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아니, 우광학교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바글바글 몰렸다.
올해 총선을 치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정치인들과 수행원들까지 한가득이다.
‘허······.’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 취소.
‘무슨 입학식에 온갖 언론사 카메라맨이 총출동했어?’
언론사 카메라맨이 총출동한 이유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자, 찍습니다!”
“이쪽 봐주세요!”
동네 사진관의 실력이 못 미덥다는 이유였다.
정재계 유명인사들은 실력 좋은 사진사 혹은 카메라맨이 필요했다.
단지 기념용 사진과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
일당 수십만 원, 혹은 사진당 금액을 지불하면서.
“······.”
나는 그저 입학생 대표로 선서를 낭독하기 위해 단상에 섰을 뿐인데.
찰칵! 찰칵찰칵! 찰칵!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카메라 플래시가 팡팡 터졌다.
방송국에서나 쓸법한 마이크도 근처에서 들이밀어졌다.
학부모용 귀빈석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몹시 만족스럽다는 듯이 박수를 쳐댔다.
누가 이 요란한 카메라맨들을 고용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입학생 대표, 국기에 대하여 경례.”
나는 확성기에 입을 대어 외쳤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바로.”
어린 시절 외우고 다녔던 구절이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나조차도 몰랐는데.
“이어서 우광 합창단의 애국가 합창이 있겠습니다.”
무슨 입학식 애국가 합창 스케일이 이러냐.
우광학교에 재학 중인 관현악단이 애국가 연주를 하고, 성악부의 합창단이 애국가를 화음을 넣어 부른다.
그것도 1절부터 4절까지.
구령대 위에 오른 젊은 남자가 날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야. 시위할 때도 노조 대표로 선언문을 낭독하더니, 여기서도 입학생 대표로 선언문을 낭독하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저도 우광그룹 회장님께서 입학식을 진행할 줄은 몰랐는데요. 많이 한가하신가 봅니다?”
“어쩔 수 있나. 오늘 입학식이라고 대통령 각하께서 친히 걸음을 해주신다는데.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야지.”
기가 찼다.
‘고작해야 사립학교 입학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할 일이야?’
아, 대선이 코앞이로군.
대선은 7월이었다.
‘확실히 이보다 더 좋은 선거판도 흔치 않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길 원했다.
성적이 곧 민심이라 우길 수 있으니까.
우광의 김대식 회장은 관중석에 꽉 들어찬 사람들을 힐끔 보았다.
“영광으로 알아라. 유치부 2년 포함 총 14년의 우광 교육과정 중에서 오직 한 명에게 단 한 번만 누릴 수 있는 자리거든.”
“그러니까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게 다 회장님 때문이라는 건가요?”
“내가 아니라 대통령 각하의 지시 사항. 이러면 가문의 영광이겠지?”
대통령이?
고작 사립학교 입학식에 지시 사항까지 전달했다고?
그 양반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닐 텐데?
아니, 왜? 무엇 때문에?
“대통령께서 친히 포상하시겠다는데, 달려나오지 않을 수가 있나. 우리 한배 탄 사이끼리 나란히 각하께 눈도장 찍어 보자.”
관중석이 부쩍 소란스러워졌다 싶을 때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양복 입은 경호원들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면서.
선글라스를 쓴 대통령이 옷매무새를 고치며 걸어왔다.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이 그 뒤를 따랐다.
< 고작 입학식인데 (2) > 끝
ⓒ 오소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