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71)
재벌집 만렙 아들-171화(171/416)
< 이거로구나! >
청와대 경호실장이 청탁했을 때 잠시 고민했던 것처럼.
대통령은 중정부장의 청탁에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제철소 사업권? 진심인가?”
“물론입니다.”
분명 내키지 않는 청탁이었을 텐데.
대통령은 재고의 여지도 없이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일정한 속도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톡. 톡. 톡. 톡.
대통령 손끝에서 시작되는 소리는 끊기는 법 없이 리드미컬했다.
이 자리에 앉은 그 누구도 대통령의 생각을 방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숨소리조차 죽였다.
“철강산업은 흔히 산업의 쌀을 생산해내는 국가의 중추 기간 산업이라 한다지?”
철강산업은 국가 경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자동차, 조선, 기계, 건설, 방위산업을 비롯한 많은 산업들에 필수적인 강철 등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중공업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 질 좋은 철강을 확실하게 공급받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은 야심 차게 포항철강의 설립을 밀어붙였다.
“흐음, 태성에게 제철소를 맡긴다라······.”
“각하!”
불경스럽게도 대통령의 생각에 끼어드는 자가 있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포항철강이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4, 5년이나 됐을까요?”
다급해 보이는 기색이었다.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생각을 돌려놓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포항철강을 짓는 데에만 1,200억이 들었습니다. 여력이 없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의 의도는 뻔했다.
-중정부장의 청탁을 짓뭉개는 것.
-제 영향력이 그보다 위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태성의 미래는 청와대 경호실장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또 다른 제철소 건립은 아직 시기상조라 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지금 있는 포항철강이 정상궤도에 안착할 때까지 정부가 아낌없이 지원해야 할 때입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애가 달은 눈빛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인천에도 우광철강과 금조철강이란 굵직한 제철, 제강소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철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뿌리라고 하면 바로 인천을 꼽을 수 있다.
1938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져 광복 이후 국영기업으로 흡수되었다가 훗날 민영화된 것이 금조철강.
1964년 서독 차관으로 세운 인천제철이 경영난으로 4년 전 우광에 팔린 것이 우광철강이다.
“철강산업도 이 정도면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금조철강과 우광철강도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잖습니까.”
국영기업이던 시절의 금조철강은 대한중공업공사란 이름으로 상공부가 관리했었으나, 경영난으로 인해 정부 지분 중 52.5%가 민간에 팔려 민영화되었다.
인천제철이었던 우광철강 또한 기술 문제로 인한 경영난으로 산업은행의 관리하에 있다가 우광에 인수되었다.
“안 그래도 박 터지는 싸움판에 태성까지 끼어들면 개판 나는 겁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대통령의 미간에 골이 좀 더 깊게 패였을 때였다.
중정부장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왜 굳이 종합제철소를 만들고자 하셨습니까?”
종합제철소는 제선, 제강, 압연의 세 가지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를 말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총 3개의 종합제철소가 존재했다.
포항제철소, 광양제철소, 당진제철소였다.
‘지금 이 시절에 종합제철소는 오직 한 곳, 포항철강뿐이다.’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고 있을 때 기초 산업으로 철강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각하, 종합제철소의 건립은 시작부터 장애물이 많았습니다.”
대통령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방면으로 골치가 아팠지.”
“예, 당시 경제 사정으로 종합제철소 건립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제철소 건설을 위해 주식을 공모했지만 목표액 33억 원의 0.4%인 1,300만 원만 모였을 뿐이었다.
“다들 무모한 일이라고 비난했으며, 선진국과 국제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과시용 사업이라고 비아냥댔지요.”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으며, 국내외 많은 기관과 회사들은 제철소 건설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산업화 초입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철강의 자체 생산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고, 각하께서는 기어코 종합제철소를 건립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게 바로 포항철강이었다.
“각하, 결과가 증명해주고 있잖습니까. 포항철강이 탄생함으로써 이 나라는 중공업의 초석을 탄탄히 다지게 됐습니다. 말 그대로 성공, 그것도 대성공이라 할 수 있지요.”
포항철강은 용광로를 가동한 첫해 흑자를 기록한 세계 유일의 철강기업이었다.
“포항철강 하나만으로는 국내 철강 수요를 전부 커버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나라의 중공업 육성과 발전을 위해 태성에 두 번째 소임을 맡겨보심이 어떻습니까.”
중정부장은 무뚝뚝하게 마무리했다.
“중동 건설로 10억 달러나 당겨온다지 않습니까. 두 번째 종합제철소 건립도 꿈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눈에 탐욕과 야망이 번뜩 스쳤다.
그 욕망에 중정부장이 불을 질렀다.
“대한민국이 중진국으로 도약할 다시 없을 기회입니다. 그럼 잡으셔야죠.”
대통령의 고개가 중정부장 쪽으로 기울어졌다.
중정부장 쪽으로 마음의 저울의 추가 기울어졌다는 뜻이었다.
대통령과 중정부장의 입에 걸린 입꼬리만큼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내 입꼬리도 마찬가지였다.
‘제철소 사업권이라니!’
혹시나 하고 테이블 밑에서 동전 지갑을 열었다.
빈 종이를 꺼내 몽블랑 만년필로 끼적끼적 적어봤다.
<제철소 사업권>
달랑 이것만 적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황금빛이 번쩍거린다.
내친김에 몇 자 더 적어봤다.
<종합제철소>
황금빛이 눈부시게 진해졌다.
짚이는 바가 있었다.
<광양제철소>
화아아악!
황금빛이 폭탄처럼 터졌다.
‘이거구나! 광양제철소!’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다.
대지가 무려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630만 평!
‘마침 여천과도 가깝지.’
울산공업단지가 포항철강의 철강 공급으로 돌아간다면 여천공업단지는 광양제철소의 철강 공급에 기대어 성장한다.
‘탐난다!’
대통령이 틀어막아 절대로 내어주지 않았기에 다음 정권으로 넘어갔던 사업이었다.
포항철강과 금조철강이 치열하게 맞붙어 결국 포항철강의 승리가 되었던 세기의 철강 대결!
‘횡재다!’
세금 좀 줄여보려다가 제철소까지 한꺼번에 얻어걸리게 생겼다!
‘게다가 태성건설 입장에선 호재 중의 호재야!’
태성건설 주식은 몇 년 동안 똥값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무능한 사장은 손대는 족족 사업을 말아먹었고, 유능한 임원진은 태업에 가담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새로 태성건설 사장에 부임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내고, 후원금을 잔뜩 받아서 태성건설 주식이 크게 오르고 있는데, 여기서 제철소 사업권까지 따낸다면?’
태성건설의 주식이 하늘까지 치솟아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겠군.
지지 기반이 부실한 아버지에겐 크게 판을 뒤집고 급부상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할머니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제철소 공사 자금은 내가 대줄 수 있어!
자신만만하게 돈 봉투부터 꺼낼 것 같은 눈이었다.
나도 동전 지갑을 꽉 쥐었다.
‘종합제철소 사업권이라면 나도 주머니 전부 털어서 돕는다.’
예정에 없던 행운!
‘태성에는 철강이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광양제철소라면 두 팔 걷고 뛰어들어야지.’
종합제철소가 아닌 중소 제강소로는 금방 규모적, 생산적, 효율적 한계에 달하여 적자 보기 십상이었다.
철강은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산업이었으니까.
“각하!”
청와대 경호실장으로선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중정부장을 찍어 누르기 위해서였다.
“태성건설은 지금 지하철 2호선 공사를 하기에도 벅찬 상황입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숨을 내쉴 여유도 없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지하철 2호선은 역시 각하께서 가장 중요하게 결정하신 국책사업입니다. 각하께서 서울시장에게 최우선적으로 명한 사안이었습니다.”
열변이었다.
“이 나라의 젊은 인구가 전국각지에서 속속 서울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은 직장에 출퇴근하는 젊은이들의 발이요, 숨통이 될 겁니다.”
서울시 도로교통량은 포화에 달하고 있었다.
서울의 인구 집중 현상이 강해질수록 출퇴근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었다.
그렇게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구 시장이 앞장서서 지하철 2호선 공사를 추진했다.
“포항철강으로 일단 급한 불을 껐잖습니까. 각하, 대선이 코앞이에요.”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각하, 종합제철소는······!”
“각하, 지하철 2호선은······!”
“그만.”
대통령은 손을 들었다.
그 즉시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이미 자존심과 서열 싸움으로 번지고 만 후로군.’
이렇게 되면 말릴 방도가 없다.
상대의 기세를 꺾고 승리를 쟁취하는 수밖에.
“종합제철소와 지하철 2호선? 둘 다 중요한 국책사업이다. 우위를 논할 이유가 없으니 쓸데없이 언쟁할 필요도 없다.”
“그럼요. 둘 다 하면 그만이잖아요.”
나는 모른 척 입을 열었다.
어른들은 아연실색했다.
“저, 정혁아!”
다들 얼굴에 ‘감히 대통령의 말을 되받아치다니!’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통령님, 태성에게 주세요. 종합제철소 사업권.”
“정혁아! 죄송합니다, 각하!”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날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우리 애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 난 지금 여덟 살짜리 어린애다.
그러니 오늘 어린애의 특권을 마음껏 쓰련다.
“우리 아빠는 공사를 잘해요. 그래서 지하철이랑 제철소랑 둘 다 지을 수 있어요.”
“정혁아!”
“우리 아빠에게 맡기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웃했다.
“돈이 없다면 또 모를까. 돈이 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죠?”
횡재의 기회가 코앞까지 왔는데.
수수방관하다가 허망하게 날리는 꼴은 내가 또 못 보거든.
“아, 혹시 준비가 안 돼서 그래요? 그럼 지하철 공사하는 동안 같이 제철소 지을 준비를 하면 되잖아요.”
할아버지는 슬쩍 대통령의 눈치를 봤다.
행여 내가 치기 어린 소리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까 몹시 불안하단 표정으로.
“정혁아, 이게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은 간단해요. 생각이 복잡할 뿐.”
“종합제철소가 어디 창고 짓듯 뚝딱 지을 수 있는 것이더냐? 부지 선정부터 제철소 설계는 물론 기술적 한계와 판로 개척······.”
“죄다 잡스러운 문제뿐이네요?”
“······.”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에 돈과 시간과 기술과 인력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있던가요?”
있을 리가.
“우리 태성에겐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기술도 있고, 인력도 있는데, 뭐가 문제죠?”
문제없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말문이 막힌 듯 입술만 달싹거릴 수밖에.
단지 문제가 있다면 오직 하나뿐.
-대통령의 심중.
나는 문제의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태성을 믿고 맡겨주세요. 태성 또한 포항철강과 함께 애국하는 마음으로 이 나라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게요.”
대통령은 말없이 내 눈을 지그시 들여다본다.
차갑고 묵직하고 예리한 눈빛이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는 주의라.
“최선의 결과. 그것으로 증명할게요.”
대통령이 할아버지를 꾀어낼 때 던졌던 미끼.
대통령은 오직 최선의 결과만을 바란다고 단언한 바 있다.
“맹랑한 꼬맹이로군.”
“흔치 않은 기회인데, 겸손 떨다 날려버리면 억울해서요.”
대통령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나는 허튼소리는 딱 질색이다. 그건 어린애라도 예외는 없어.”
“전 허튼소리 한 적 없는데요.”
나 또한 같은 각도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세금도, 제철소 사업권도. 허투루 들으셨군요?”
대통령의 눈에 이채가 슬쩍 떠올랐다.
승부를 보기로 결심한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부가가치세를 신설했다죠?”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이 동시에 날 돌아보았다.
< 이거로구나!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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