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73)
재벌집 만렙 아들-173화(173/416)
< 뜯고 또 뜯고 >
나는 방긋 웃었다.
“정부 지원은 어디까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표정을 굳혔다.
“지원?”
어림도 없다는 듯 콧방귀가 섞여 있었다.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대통령의 허락에 한껏 격양되었던 할아버지는 뜨억한 얼굴이었다.
“저, 정혁아!”
기겁한 속마음은 목소리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제철소 사업권을 얻어낸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인데, 양심도 없이 여기서 뭘 어떻게 더 뜯어내겠냐는 표정이로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똥줄도 타고, 목도 타고, 애간장도 타는 모양이지만, 나한테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었다.
‘내가 대통령이랑 담판 짓는 게 어디 한두 번도 아니고.’
한 끗발 날리는 지하금융계의 거물과 정계 거물들 사이엔 원래 떼려야 뗄 수 없는 커넥션이 있는 법이거든.
내 별명이 왜 신림동 개미지옥이겠어.
나는 일부러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대통령님, 생각해 보세요. 종합제철소 건설이라고 하면 이 나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대규모 국책사업이잖아요.”
지금은 밀어붙여야 할 때다.
이렇게 맥없이 물러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뒤에서 관망만 하다 끝냈어!
‘대통령은 결심을 굳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자잘한 조건 몇 개 더 붙인다고 발언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못 먹어도 고를 지르는 이유였다.
뒷골목 밑바닥을 구르면서 느는 건 눈치뿐이다.
더 뜯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는 상대의 눈빛만 봐도 안다.
‘최고 통수권자의 체면과 자존심이란 건 그런 것이니까.’
대통령은 기업가나 정치가와 다르다.
또한 저기 앉은 대통령은 일반적인 대통령과도 또 다르다.
‘이 정권은 군사 쿠데타 위에 세워진 독재정권이지. 정당성이 부실한 만큼 대통령은 체면과 자존심에 목숨을 걸어왔다.’
입에서 나간 말을 1분도 안 되어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다?
그런 변덕스러운 자의 발언을 누가 귀 기울여 들을까.
대통령은 제 발언에 무게를 싣기 위해 애써왔다.
‘일단 대통령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으면 얘긴 끝났지.’
마음껏 뜯어내도 좋다는 청신호를 외면할 수야 없지!
‘단, 돈 뜯어내는 것만 빼고.’
돈 문제는 절대로 자잘한 문제가 될 수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이렇게 큼직한 먹이가 뚝 떨어졌는데, 하이에나들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보겠어요?”
우광이 그 본보기였다.
우광이 흔들리자, 정재계가 달려들어 우광의 계열사를 뜯어먹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포항철강을 세울 때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다들 알고 계시잖아요.”
포항철강은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박태종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직접 진두지휘한 사업이었다.
그런 박태종도 하이에나들의 등쌀에 질려 진저리를 쳤었다.
오죽하면 대통령께 장문의 읍소를 적어 올렸을까.
“안 그래도 빠듯한 예산이에요. 고작 1억 달러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요?”
대통령의 최측근도 뜯어먹겠다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다.
그럼 우리 태성은 어느 정도로 시달리겠는가.
불 보듯 뻔했다.
자연히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숨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태성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국할 거예요. 그러니 도와주세요.”
나는 대통령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량주를 홀짝이는 입꼬리는 딱딱했다.
“방금 부가가치세를 신설한 이유를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돈이 없어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돈 쓸 곳은 넘쳐나서.
그러니 돈은 못 주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제가 언제 돈 달라고 했어요?”
그럴 돈은 있고? 아니, 그럴 생각이나 있고?
어림도 없지.
조선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대통령은 어떻게 했던가?
금조그룹 회장을 불러와 땡전 한 푼 안 주면서 능력껏 외국 차관 빌려와서 조선소를 지어 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안 그러면 금조그룹 망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결국 금조그룹 회장은 선박왕의 보증을 얻어 런던은행에서 차관을 끌어와 조선소를 대령해야 했다.
제철소가 필요할 때 대통령은 어떻게 했던가?
국고가 부족하니 능력껏 외국 차관과 기술을 빌려와서 제철소를 지어 놓으라고 명령했다.
박태종은 일본 배상금을 끌어와 간신히 제철소를 지어 바쳤다.
태성이라고 다를까?
“포항철강 박태종 사장님께 해줬던 것과 비슷한 맥락의 지원이면 족해요. 그 정도는 바라도 되겠죠?”
“음?”
“이를테면 설비 공급사 선정에 대한 재량권과 공사 기간 조율권, 혹은 간섭 불가를 적시한 ‘종이 마패’ 같은 거?”
“허······!”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이 정도 선심은 써주실 수 있죠?”
“하하하!”
대통령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맹랑한 꼬마로군. 좋다!”
대통령의 표정이 풀리자,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의 눈도 풀렸다.
잔뜩 긴장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어깨에도 힘이 풀렸다.
“태성이 이 나라를 위해 애국한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대통령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때다 하고 동전 지갑에서 빈 종이를 꺼냈다.
몽블랑 만년필 뚜껑까지 열어서 내밀었다.
“적으세요.”
식당에 정적이 깔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래 말보다는 문서를 믿는 법이잖아요.”
“내 말은 못 믿겠다?”
“에이, 대통령님 말을 못 믿긴 왜 못 믿어요? 당연히 믿죠. 단지 하이에나 떼를 못 믿을 뿐이에요.”
나는 씩 웃으면서 빈 종이와 몽블랑 만년필을 대통령 앞으로 쭉 밀었다.
“그놈들 퇴치하는 데엔 빼도 박도 못하는 문서가 딱이잖아요?”
앗, 짧다!
고급 중식당의 원탁은 지나치게 크고 넓은 데 비해 내 팔은 슬프게도 짜리몽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각해 보세요. 이 나라에 포항철강 박 사장님이 대통령님의 명을 받아서 제철소 짓는 거 모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없었다.
“그런데도 하이에나 떼가 찾아와서 돈 봉투를 요구했다면서요? 아주 빈번하게, 뻔질나게, 지긋지긋하게.”
박태종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대통령의 숙원 사업을 하기 위해 군복을 벗어 던지고 삽자루를 직접 들어 제철소를 지었다.
그런 박태종에게도 콩고물을 요구했다는 소리였다.
“그럴 때마다 대통령님의 친필 문서를 들이밀어서 겨우 떼어낼 수 있었다잖아요.”
박태종에게 친필로 서명한 일명 ‘종이 마패’를 주었다.
정치권의 압력과 뇌물 요구를 배제하는 데 특효약이라던 거 말이다.
“태성도 그런 지원이 필요해요. 이해하시죠?”
대통령이 다시 한번 큰 웃음을 터뜨렸다.
“차 회장, 자네 손자는 정말 제법이란 말이지.”
“각하, 죄송합니다. 애가 아직 어려서······.”
“이렇게 어린데도 벌써 싹수가 대단해. 잘 키워야겠어.”
대통령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즉시 벌떡 일어나서 다다다 달려갔다.
대통령의 손바닥 위에 직접 빈 종이와 몽블랑 만년필을 올려놓기 위해서.
나는 확실한 일 처리를 좋아하는 편이거든.
“이왕 적는 김에 제철소 사업권에 관해서도 하나 적어주시지 않을래요?”
“허······?”
“귀찮게 태클 걸고넘어질 관공서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서예요. 탁상행정, 아시죠?”
관공서의 탁상행정으로 현장과의 마찰이 빈번했다.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선심은 써주실 수 있잖아요? 이게 다 이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 애국하는 건데요.”
“하하하!”
대통령은 시원시원하게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태성의 제철소 사업권을 인정한다는 건 절대로 빠뜨리면 안 돼요? 별표에 밑줄 쫙.”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미치겠다. 황금빛이 진짜 어마어마하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인제 보니 진짜 땡잡은 건 제철소 사업권이 아니라 이쪽이었잖아?’
대통령이 써준 종이 마패!
지금껏 본 적 없었던 휘황찬란한 황금빛!
나는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대박!’
대박도 그냥 대박이 아니다.
이건 초대박이었다.
* * *
대통령과 담판을 벌이던 여덟 살짜리 꼬맹이는 각서 두 장을 받아내자마자 미련 없이 물수건을 내던지고 식당을 떠났다.
이유는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
-데이트가 있어서요. 그럼 먼저 가 볼게요!
여덟 살짜리 꼬맹이 주제에 데이트라니!
게다가 영광스러운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에 초대받은 주제에 짜장면엔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이유 역시 당황 그 자체!
-짜장면을 사주기로 했거든요. 이 몸으로 두 그릇이 가당키나 해요?
그러니까 여자애랑 짜장면을 같이 먹기 위해 대통령과의 짜장면을 포기했다는 소리!
대통령이 물끄러미 차 회장을 보았다.
“자네 손자는 아직 어린데도 여러 가지 의미로 싹수가 대단하단 말이지.”
“죄송합니다. 애가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쪽 막내아들도 배짱 좋은 로맨티스트라지?”
차 회장은 차마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했다.
우광과의 약혼을 피하기 위해 자원입대했고, 제 여자를 찾는다고 전국방방곡곡을 뒤지다 급기야 중동 전역을 헤매고 다녔으며, 처자식을 택한답시고 태성화학까지 시원하게 내던졌다.
목석같이 무뚝뚝한 녀석이건만, 하는 짓만 보면 세기의 로맨티스트가 따로 없다.
“똑똑한 머리에, 매끄러운 말주변까지.”
대통령은 차 회장의 막내아들인 태성건설의 젊은 사장을 힐끔 바라봤다.
“아무래도 자네 손자는 제 아버지를 빼닮았지 싶군.”
“음, 그건 동의하기 어렵군요. 암만 봐도 정혁이는 성준이보다야 절 더 닮았거든요.”
차 회장은 가슴을 쫙 펴면서 말했다.
“훤칠한 얼굴 하며, 똑 부러지는 계산 하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잘 굴리는 걸 보면 절 닮은 것이 확실합니다.”
차 회장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장도 잘 굴리고, 사람도 잘 굴리고, 회사도 잘 굴리고, 돈도 잘 굴리고.
하지만 대통령은 피식 웃었다.
“내 면전에서 시원하게 쌍욕을 날리는 배짱. 암만 봐도 자네 아들 쪽을 닮은 같은데.”
“아니, 각하! 우리 정혁이가 언제 각하께 쌍욕을 날렸다고······.”
“부가가치세를 들먹이며 날 후드려 패는 거 못 봤나?”
“······.”
차 회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부동산 규제조치를 꺼내며 건설사발 주식시장 폭락에 관해 경고한 건?”
“······.”
“수출 부진과 물가상승률 폭등, 조세 저항으로 인한 책임까지 추궁하더군.”
“······.”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태성건설이 중동에서 벌어들이는 돈에 눈독 들이지 말라며 딱 잘라 선 긋는 것도 모자라 제철소 사업권에 종이 마패까지 날로 뜯어가던데.”
“······.”
“탁상행정을 들먹이며 고위 관료의 부정부패와 뇌물 압박을 꼬집으면서 말이지.”
“······.”
“그래, 이래도 자네를 닮은 것 같나?”
“······생각해 보니까 절 안 닮은 것 같습니다.”
차 회장은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눈치 보고 막말을 할 수 있는 건 여덟 살짜리 어린애의 특권이지, 그룹 총수에겐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대통령은 고량주를 한입에 털어 마셨다.
“받지.”
대통령의 턱짓에 청와대 경호실장이 고량주를 들고 일어섰다.
술을 하사받는 건 차 회장이 아니었다.
차성준이었다.
쪼로록.
차성준은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잘난 자네 아들 덕인 줄 알아.”
세운 공도 없이 술을 받는 것 말이다.
“자네 아들이 아까 나가면서 내 앞으로 빚 달아뒀잖나.”
“······제철소 사업권을 따냈다는 소식을 언론에 흘리는 시기 말입니까?”
건설주가 폭락하여 주식시장이 요동칠 때.
성난 민심이 분노의 화살이 대통령과 정부로 돌렸을 때.
그때 정부가 직접 공표해도 좋다고, 정혁이는 선심 쓰듯 말하고 떠났다.
“난 내 앞으로 빚 달아두는 걸 질색한다. 마셔.”
정혁이의 말대로 된다면 치하의 의미가 될 터이나, 아니라면 대통령이 베푸는 자비 혹은 관용으로 지나갈 테니까.
그래서 대통령은 선뜻 고량주를 하사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였다.
“자넨 만날 때마다 술을 참 쉽게도 얻어 마신단 말이지.”
차성준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수완이 제법이야.”
“과찬이십니다.”
차성준은 단번에 고량주를 털어 마셨다.
대통령은 시원시원하게 고량주를 마시고 반듯하게 자리에 앉는 차성준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과찬? 내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않고 제철소 사업권을 홀랑 가져갔는데, 그게 어디 보통 수완인가?”
대통령과 담판을 지은 사람은 여덟 살짜리 꼬맹이였지만.
결국 제철소 사업권을 가져오면서 이득을 본 건 태성건설이었다.
“겁도 없이 내 앞에 제 아들을 들이밀어 뜻을 관철시키다니, 그게 어디 보통 배짱인가?”
차성준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변명도, 생색도, 설득도 없었다.
아까부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묘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태성의 브레인이라······.’
대통령도 말없이 차성준을 바라보았다.
‘초대장을 주러 왔다가 제철소 사업권까지 생으로 뜯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 어려운 일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치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종이 마패는 물론 제철소 사업권에 대한 각서까지 쓴 후였다.
숫제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태성그룹 차기 총수는 더 볼 것도 없겠군.’
흡족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통령의 손짓에 청와대 경호실장이 품에서 넓적한 종이봉투를 꺼냈다.
“국산 전차 성능 시험 참관 초대장이다.”
< 뜯고 또 뜯고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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