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75)
재벌집 만렙 아들-175화(175/416)
< 내 그럴 줄 알았지! >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아껴뒀다!
박박박.
나는 새 물수건으로 예린이의 입가를 닦았다.
예린이는 바동거렸다.
“흐으응. 안 돼,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가만히 있어 봐.”
“싫어, 싫어······!”
“왜 싫은데?”
“부끄럽단 말이야······.”
왜 얼굴이 빨개졌나 했더니.
“부끄러울 것도 많다.”
나는 피식 웃으며 꼼꼼하게 닦아냈다.
“잘 먹으면 됐지, 좀 묻히면 어때. 여섯 살짜리 꼬맹이한텐 그게 당연한 거야.”
“내가 닦을래······.”
“거울도 없는데? 금방이면 돼.”
박박박.
“싫어어어······.”
“그럼 얼굴에 짜장 묻히고 다닐 거야?”
“아니야.”
“얼른 닦아내서 예쁜 예린이 하자. 착하지.”
“······좋아. 그럼 나도 오빠 닦아줄······ 헉!”
예린이는 억울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오빠는 왜 하나도 안 묻었는데?”
“그야 난······.”
그럼 내가 이 나이에 짜장면 묻혀가며 먹으리?
아무리 여덟 살이 되었대도, 진짜 어린애처럼 굴 수는 없잖아.
그건 내 자존심상 도저히 용납이 안 되어서 말이야.
이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고!
“······오빠니까? 꼬맹이랑은 다르지.”
“씨이······.”
씩씩대는 숨소리와 새빨개진 얼굴.
예린이는 볼을 부풀리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나도 꼬맹이 안 해!”
“너 꼬맹이 맞거든?”
“아니야!”
“젓가락질도 못하는 게.”
“아니야!”
예린이는 내 손에서 물수건을 홱 낚아챘다.
“나도 이제 젓가락질할 수 있어!”
응, 할 줄은 알더라.
서툴러서 그렇지.
왜 네 얼굴이 온통 짜장 범벅이 되었겠어.
“나도 잘 닦을 수 있단 말이야······.”
예린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물수건으로 손을 꼼꼼히 닦아냈다.
뭐가 그리도 분한지.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숫자도 열심히 익혔거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그래서 나 여섯 살이야.”
손가락을 꼽아가며 숫자를 세던 예린이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까 나 꼬맹이 아니야······.”
쬐끄만 주먹이었다.
달걀만 한 것도 주먹이라고 꼭 쥐고 바들대는데.
어린애 억지가 분명한데.
이게 뭐라고 가슴이 간질거리냐.
“여섯 살의 백예린. 우리 꼬맹이.”
나는 예린이 머리에 손을 턱 올렸다.
웃음 섞인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예린이 머리를 작게 헝클어뜨렸다.
“널 어쩌면 좋냐.”
“씨이, 오빠는 바보야. 내 맘도 몰라주고······.”
예린이가 발을 바동거렸다.
식당 의자가 높아서 허공에서 발을 동동대는 것뿐이었지만.
“그렇게 몸 흔들다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아니야.”
“아니긴.”
나는 예린이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여덟 살의 나보다 훨씬 작고 가녀렸다.
이런 꼬맹이가 자라서 그런 몸을 가진 여자가 된단 말이지.
“우리 꼬맹이, 얼른 컸으면 좋겠다.”
진심이었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네 얼굴.
나는 네가 얼마나 달콤하게 웃는지 안다.
얼마나 뜨겁고 부드러운 몸을 가지고 있는지도 안다.
너와 함께했던 반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죽는 그 순간에도 잊을 수 없었던,
내 인생의 유일한 단 한 사람.
내 첫사랑, 내 첫여자,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애틋했던 그리움.
“나도, 너도.”
나라고 여덟 살의 몸뚱이가 좋겠냐마는.
그래도 네 어린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다.
솔직히 많이 궁금했거든.
말도 잃고, 기억도 잃고, 어느 날 갑자기 내 품에 떨어지게 된 너.
네 가족은 누구인지, 네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네 이름은 뭐였는지 알고 싶었다.
그 흔한 사진 한 장이 없어서.
“얼른 훌쩍 자라서.”
이번에는 네 삶이 그리 고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이불 뒤집어쓰고 몰래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한테 시집와.”
우리는 반지하 셋방에서 살았지만, 이번 신혼집은 근사한 전원주택으로. 어때?
가끔 특식처럼 사주던 짜장면 대신 삼시세끼 호텔 요리를 대령할 수도 있어.
그땐 가진 돈 다 털어도 실반지밖에 못 끼워줬는데, 이번에는 최고급 다이아몬드 반지로 준비해 놓을게.
“이런 내 맘을 모르는 건 너도 마찬가지면서.”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는 건 오직 나 혼자뿐이란 거 알아.
그래도 상관없어.
이번엔 우리 둘이 함께, 더 행복한 인생을 꾸려보자.
너 혼자 키웠다던 우리 딸도 이번엔 같이 키워봤으면 해.
“예린아.”
나는 눈을 감고 예린이의 정수리에 코를 묻었다.
베이비파우더향의 아기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내가 알던 그녀의 살냄새는 훨씬 달고 매혹적이어서 아찔했지만.
뭐, 이것도 나쁘지 않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잘 놀고, 잘 웃어야 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네 곁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내 소망이자, 미련이었어.
“숫자 몰라도 좋고, 젓가락질 못해도 좋고, 얼굴에 짜장 묻히고 다녀도 좋으니까.”
나는 예린이의 몸을 조금 더 꽉 끌어안았다.
“아프지 말고. 알았어?”
예린이가 움찔했다.
억지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오늘만큼은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오늘은 아니야 금지랬어.”
“······응.”
“예뻐.”
넌 늘 예뻤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예뻤어, 넌.
과거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남자한테 가면 안 된다.”
지난 생에도, 이번 생에도.
네가 나만 봤으면 좋겠어.
욕심인 줄 알지만, 욕심나는 걸 어떡하냐.
“예린아, 대답은?”
“응.”
예린이가 내 품에서 작게 꼼지락거렸다.
빠져나가는 줄 알고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 줬다.
안 놔줄 생각이었다.
“오빠는 정말 바보야.”
예린이는 내 품에서 빠져나가는 대신 그 작은 팔로 날 꼭 끌어안았다.
“나한테 서방님은 딱 한 명뿐이라니까······.”
예린이가 예쁜 눈을 초승달처럼 접으며 배시시 웃었다.
“난 커서 오빠의 애첩이 될 거예요!”
······널 정말 어쩌면 좋냐.
예린아, 얼른 커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리고 야망을 크게 가져. 욕심 좀 부리라고.
이것도 진심이야.
* * *
예린이랑 손을 잡고 중식당 룸에서 나왔다.
식당 앞에서 할아버지가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날 발견하고 반색했다.
“정혁아, 잘 왔다. 안 그래도 너한테 할 말이······, 그 애는 누구냐?”
“예린이에요.”
할아버지는 우리가 꼭 잡은 손을 힐끔 내려다봤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못 보던 아이인데. 뉘 집 자식인가?”
어라?
그러고 보니 예린이 부모님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안녕하세요, 백예린이에요.”
예린이는 두 손을 모아서 배꼽 인사했다.
“인왕산 선녀보살이 제 할머니 되세요.”
“······무당집? 부모님은 뭐 하시고?”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
할아버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아냐고 차마 되묻지 못하고, 대신 지갑을 꺼냈다.
“난 정혁이 할애비 되는 사람이다.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어라.”
만 원짜리 지폐가 다섯 장!
이 시절엔 짜장면 한 그릇이 300원이었으니 용돈치고는 꽤 큰 돈이었다.
“감사합니다.”
예린이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돈을 받았다.
그러더니 방긋 웃었다.
“호의를 받았으니, 좋은 일을 알려드리는 것으로 보답할게요.”
“음?”
“오늘 난데없이 횡재를 건진 건 좋은데, 까닭 없이 맞게 된 횡액 때문에 시름이 많으시겠어요.”
예린이 어깨에 앉았던 병아리만 한 주작이 날개를 쫙 펴고 덩치를 점점 부풀렸다.
“하지만 마음 졸일 필요 없어요. 고민이 무색하게 잘 해결될 테니까요.”
삐약삐약 시끄럽게 꽥꽥댈수록 예린이의 미소가 진해졌다.
“든든한 뒷배가 있으시잖아요. 황룡 타고 돈 뿌리면서 나타난 복덩이만 믿으세요.”
“뭐?”
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예린이가 손을 꼽으며 궤를 짚었다.
“윗사람이 압박했군요. 빼도 박도 못할 죽을 자리라 생각하시나 본데, 아니에요. 거기서 큰 명예를 얻게 될 거예요.”
“명예?”
“이 나라를 넘어 다른 나라에도 눈도장을 찍을 만큼 대단한 명예!”
예린이가 방긋 웃었다.
“축하드려요. 절호의 기회예요. 잡으세요.”
예린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누군지 몰라도 그 뒷배란 분, 정말 대단한데요?”
뒷배란 소리에 할아버지가 흠칫했다.
“말아먹기로 예정된 집안을 일으켜 세울 만한 복덩이, 세상을 떨어울릴 만한 대단한 수완가.”
예린이의 눈이 반개했다.
“안 될 일도 성사시킬 재주가 차고 넘치는데, 무슨 걱정을 하겠어요? 어디 보자.”
예린이 어깨에 앉았던 주작이 빼애액 울었다.
“남쪽. 해결의 실마리는 남쪽에서 건지겠네요.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전폭적으로 귀인을 도와주셔야 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예린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얘 뭐 하는 애냐?”
“애기 무당인데요.”
나는 예린이가 들고 있는 돈을 가리켰다.
“복채 주면 신점도 봐주고, 액막이도 해주고 그래요.”
“허, 원래 무당집 손녀는 다 이러냐?”
“아닐걸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예린이는 특별해요. 장차 이 나라를 떨어울릴 대무녀가 될 애거든요.”
이 어린 나이에 사방신이라는 남산의 주작신을 얻었다.
또한 장차 대대로 모시는 인왕산 백호신을 내려받을 후계자였다.
“예린이 복채값은 엄청 비쌀 텐데, 할아버지 오늘 횡재하셨네요.”
“허튼소리!”
할아버지는 미신을 믿지 않으신다.
할머니와는 다르게.
그러니 못마땅한 기침 소리를 낼 수밖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아실 테고요.”
해결의 실마리는 남쪽에서 나온다라.
근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예린이 말 중에 내가 이해가 안 가는 말이 있어서.
난데없이 횡재를 건진 것까진 내가 알겠거든.
그런데 까닭 없이 맞게 된 횡액이란 걸 모르겠단 말이야?
문제가 뭔지 알아야 해결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냐.
“윗사람 압박으로 인한 횡액이란 건 또 뭐예요? 대통령 면전에서 사고라도 치셨어요?”
“내가 넌 줄 알아? 난 얌전히 술만 받아마시고 나왔어!”
할아버지가 넓적한 흰 봉투를 내밀었다.
“청와대에서 네게 이런 걸 보냈다.”
청와대 마크가 커다랗게 찍힌 봉투에는 내 이름자가 적혀 있었다.
<차정혁 군에게>
황금빛이 번쩍이는 초대장이었다.
감이 왔다.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혁아, 이게 말이다······.”
“혹시 국산 전차 성능 시험 참관이에요?”
“아니, 어떻게 알았지?”
“중정부장님에게 직접 들었는데요?”
할아버지가 펄쩍 뛰었다.
“뭐야? 언제!”
“얘네 집에 점 보러 갔을 때요.”
“뭣이?”
“중정부장님도 와서 점 보고 갔거든요. 정치인들 주렁주렁 달고서.”
“······.”
“할아버지가 미신을 안 믿는다고, 중정부장님도 안 믿으란 법은 없잖아요?”
“······.”
예린이 할머니가 대한민국에서 아주 유명한 점쟁이거든요.
중정부장까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고 하면 말 다 했죠.
나는 봉투를 열어 초대장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설마 대통령님 목에 꽃목걸이나 걸라고 절 초대하진 않았을 테고······.”
“······.”
잠깐. 웨이러 미닛.
이 찜찜한 반응은 대체 뭔데?
“설마···, 진짜 꽃목걸이 때문에?”
“겸사겸사다. 각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광연구소를 거저 가져갔으니 성과로 보답해야지.”
아하, 감 잡았다.
나는 초대장을 탁 덮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태성이 방산 사업에 뛰어들었고, 대통령이 우광의 계열사를 쓸어담아 줬으니, 당연히 바라는 바가 따로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
“······.”
이 찜찜한 반응은 또 뭐냐?
왜 또 이런 표정이야?
“크흠, 크험! 정혁아, 이것 참 난감하게 되었구나.”
할아버지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각하께서야 몇 년 전부터 국산 전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지만, 우리 태성은 아니었다.”
“그야 태성자동차와 중장비는 군용차량이 아니라 민간용 운수 차량을 생산해왔으니까요.”
“전차와 자동차는 전혀 달라.”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엔진 달고 바퀴로 굴러가는 게 똑같다고 그 나물에 그 밥인 줄 아는 모양인데, 애초에 개발 목적부터 쓰임새까지 죄다 다르지 않느냐.”
전차는 전쟁무기로, 자동차는 운송 수단으로.
“아무리 태성자동차와 태성중장비가 기술 개발에 힘썼다고 하나, 어떻게 지금 당장 각하의 눈에 들 만큼 뛰어난 전차 기술을 뽑아낼 수 있겠느냐. 아니, 그게 애초에 가당키나 한 소리냐?”
착잡한 목소리였다.
“전차 성능 시험 참관이 당장 두 달 뒤야.”
골치가 아픈지, 할아버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처럼 굵직한 국방부 행사에 태성이 초대받게 될 거란 건 상상조차 못 한 일이라서······.”
아, 그건 나도 몰랐다.
애초에 민간 기업이 참관할 수 있는 행사가 아니거든.
그래서 중정부장이 미리 귀띔해줄 때 놀랐었다.
“받은 게 있으면 응당 뱉어내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으냐.”
“어쩌긴 뭘 어째요?”
나는 씩 웃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니까요.”
아무렴 내가 빈손으로 거길 갈 것 같아요?
‘오늘 대통령과 제철소 사업권은 운 좋게 얻어걸린 거지만, 전차 성능 시험 참관은 또 다르지.’
그때를 위해 준비했다.
‘이번엔 육군보안사령관이다!’
안 그래도 꼭 받아내야 할 게 있었거든.
태성과 JH의 안락한 5년을 위하여!
< 내 그럴 줄 알았지! > 끝
ⓒ 오소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