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76)
재벌집 만렙 아들-176화(176/416)
< 심 사장의 야망 >
명동에 위치한 JH투자회사.
위이이잉.
사무실에선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타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다닥.
타자기 소리마저 끊기는 법이 없었다.
자료 뒤적이는 소리도, 따각따각 스테이플러 집는 소리도, 장부 넘기는 소리도 함께였다.
하지만 그 사이 틈틈이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왠지 오늘도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을 듯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이까짓 잡무쯤이야. 아자아자!”
“JH 화이팅!”
“화이팅!”
우광의 엘리트 실무진들이었다.
“오늘은 서류 세 상자만 분류해 정리하면 끝. 그럼 난 자유라네.”
“세 상자밖에 안 남았어? 오늘 조기 퇴근하겠는데? 끝나고 나 좀 도와주면 안 되냐? 딱 한 박스만 같이하자.”
“대신 다음번엔 나도 도와주기다. 서로 야근하지 않는 선까지만. 콜?”
“콜! 그럼 오늘 저녁은 내가 산다.”
“삼겹살에 소주.”
“껍데기 추가. 됐지?”
예전엔 저 커다란 서류 상자를 볼 때면 막막해서 눈앞이 캄캄했었는데.
이제는 손수레에 잔뜩 실린 서류 상자를 보면서도 휘파람을 불어댔다.
같이 손발을 맞추면 시간이 더 줄어든다는 것도 이 회사에서 깨닫게 되었다.
우광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땐 능력껏 제 업무를 남에게 떠넘기고 사내 정치 라인 잘 타면 유능하단 소리를 듣곤 했었다.
“인제 보니 우광은 참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는 회사였다 싶어.”
“여기 이 보고서만 봐도 알지. 이 새끼들, 일을 발로 했나.”
“죄다 쓰레기 같은 서류들. 이런 것도 일했답시고 월급 받아먹고 살았으니, 이거야 원.”
“그렇지? 여기서 일해 보니까 그동안 내가 왜 이렇게 멍청하게 살았나 자괴감 들어서 괴롭다.”
그동안 데굴데굴 구르면서 단내가 나도록 일을 했다.
덕분에 일머리가 크게 트였다.
일머리가 트이자, 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보는 시야가 달라지자, 업무 효율도 달라졌다.
업무 효율이 달라지자, 많은 일도 어렵지 않게 뚝딱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엘리트 실무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회사 일이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깨달았다.
구를 때는 힘들었지만, 뒤돌아보니 참 보람찬 시간이었다 싶다.
얻는 게 많았다.
“일하는 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 줄은 몰랐는데.”
“성취감이 끝내줘. 집에 돌아가서 맥주 한 병 따면 내 자신이 새삼 자랑스럽더라니까?”
“심지어 통장에 돈이 자꾸 쌓여. 많이 쌓여. 계속 쌓여.”
우광의 엘리트 실무진들이 콧노래를 부르는 이유였다.
“할 만하네.”
“썩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난 완전 좋은데?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정혁이 과외 선생으로 왔다 JH투자회사에 처박혔던 선임들도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요즘은 싱글벙글거리며 일했다.
“요즘 희한하게 다들 손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역시 그렇지? 순식간에 끝내면 가끔 어리둥절한다니까.”
“이번에도 한꺼번에 달려들어 일 확 다 끝내고 한우정에서 회식하면 안 되려나?”
“한우정, 맛있었지······.”
“보너스에 유급휴가, 달달했지······.”
다들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싱글벙글 엄청난 속도로 서류를 처리했다.
“참, 졸업생은 그렇다 치고. 대학교 개강하지 않았나?”
“난 일단 휴학계 제출했어. 지금 한창 일 배우는 데 맛 들여서.”
“휴학계? 대학으로 돌아갈 생각이란 게 있긴 한 모양이네? 난 자퇴서 썼거든.”
“복학하려고? 굳이? 졸업해봤자 여기보다 좋은 회사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나?”
정혁이 과외 선생으로 왔건만, 복학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럴 때면 다들 서랍에서 통장을 꺼내 봤다.
습관적으로, 자주, 매일, 몇 번씩, 틈만 나면.
이게 정신 건강에 아주 좋았다.
“역시 금융치료가 최고야. 월급보다 보너스가 진짜배기라니까?”
“임원 승진도 꿈은 아닌 것 같지? 난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거야.”
“우리 회사는 주식 상장 안 하나? 나오는 족족 사서 부자 돼야지.”
젊은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야근을 마다하지 않으며 일을 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 스스로 느끼는 성취, 실적으로 확인받는 실력, 두둑한 보너스까지!
근로 의욕이 팍팍 샘솟았다.
어쩌다 술자리에 나가면 대학 동기 혹은 선배에게 부러움 받기 일쑤였다.
-우와, 이거 명품 양복 아냐? 시계도 장난 아니다! 갑자기 얘가 왜 이렇게 근사해졌대?
-뭐? 회사에서 보너스로 새 차를 뽑아줬다고? 나도 그 회사에 소개 좀 시켜주라.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샀어? 너 일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연봉이 얼만데?
-너 언제부터 우리 엄마 친구 아들이 된 거냐? 너랑 친하게 지내라고 성화다, 성화!
-무용과 여신이 네 연락처 묻더라. 미대 백설공주도 너한테 여친 있냐고 떠보던데?
아침 밥상도 달라졌다.
아침마다 어머니가 12첩 반상을 차려주신다.
지난번에 받은 보너스로 명품 백을 하나 사드렸더니 대우가 달라졌다.
-우리 과장님, 얼른 이거 먹고 출근하셔야지. 엄마는 오늘 이거 매고 동창회 간다?
아버지도 요즘 어깨가 한껏 솟으셨다.
-내가 요즘 네 자랑하는 맛에 산다. 아들이 새 차 뽑아줬다니까 다들 부러워서 죽으려고 해. 허허허!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주말마다 전화를 하신다.
-태성 직계의 직속 수하로 들어갔어? 아이고, 우리 손주, 인생 폈구나!
-내가 우리 손주 벌써 과장 달았다고 마을 입구에 플래카드 걸어뒀다!
-무슨 용돈을 이렇게 많이 보냈어? 송아지 한 마리 사겠네!
-제사? 뭐 하러 부산까지 내려와? 큰일 하는 애가 힘들게. 오지 말고 푹 쉬어라~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도 요즘 얼굴이 확 폈다.
입꼬리에 웃음을 달고 산다.
“조 상무, 이번에 우광병원, 아니, JH병원 이사로 들어간다며? 축하해.”
“김 전무님, 저야말로 축하드립니다. JH조선으로 낙점되셨다면서요?”
“하하하, 덕분에. 박 상무는 JH자동차 전무로 승진했다지? 역시 영업을 잘한다니까.”
“백 이사님은 JH중장비라죠? 굴착기 하면 우리 백 이사님이시죠!”
오가는 덕담에 웃음꽃이 피었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태성건설에서 잘리면서 이젠 끝이구나 싶었는데.
전보다 더 좋은 곳에 한 자리씩 꿰차게 되었다.
물론 개 발에 땀 나듯이 영업 뛰고, 대차게 깨지면서 구르고 또 구른 후에야 가능하게 된 일이었지만.
벌떡!
“자자, 다들 보약 한 팩씩 마시면서 일하자고.”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이 사무실 냉장고에서 보약을 꺼내 들었다.
한두 번 하는 솜씨가 아닌 듯 전원 일사불란했다.
“아무리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몸 상하면 다 꽝이야.”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체질별로, 컨디션별로 하나씩 골라 봐.”
한때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우광 계열사의 공장과 납품처를 돌아다녔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오늘만큼은 소파에 기대어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광연구소는 누가 낙점됐지?”
“글쎄요. 우광연구소 최 소장이 저기서 저렇게 끙끙대는 거 보면 소장 자리가 나오려나?”
그 소리에 흰 실험 가운을 입고 있는 연구원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에잇, 진짜 도저히 못 해먹겠네!”
연구원은 흰 실험 가운을 벗어 던져 바닥에 내팽개쳤다.
“소장 자리를 호시탐탐······! 누굴 실험실 원숭이 보듯이···! 젠장!”
연구원은 억울한 눈으로 중년의 연구원을 돌아보았다.
“소장님, 우리가 왜 여기서 이런 잡무나 하고 있어야 합니까?”
“맞습니다, 소장님. 지금 연구동 실험실에서 한창 실험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이렇게 강제 차출되어 계속 잡무만 하고 있잖습니까.”
“우광연구소 10년 치 연구 자료를 정리해 분류 검토 끝내 놓으라니요. 그걸 어떻게 일주일 만에 다 합니까?”
“연구원들 전원 달라붙어도 족히 석 달은 걸릴 겁니다!”
그러고 보니 평소 JH투자회사 사무실에서 보이지 않는 흰 실험 가운의 연구원이 수두룩했다.
주머니 상단에 ‘소장’이라는 직책이 오버로크된 노란 명찰.
최 소장은 안경을 추켜올렸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어?”
“소장님, 우리가 이렇게 서류 작업이나 할 때냐고요. 이런다고 없는 기술이 뚝딱 나오는 거 아니잖아요.”
“그거야 위에서 판단할 일이고. 우리는 그동안 우광이 진행하고 있던 전차 실험 연구 자료만 전량 검토해 놓으면 그만이라잖아.”
“이거 똥군기 잡는 겁니다!”
연구원들이 볼멘소리를 흘렸다.
“이제는 딴 회사에 인수되었으니 우광연구소가 아니다, 사표 쓰고 나가라, 아닙니까?”
“그동안 실험했던 것들은 전부 쓸모없으니 대차게 까주마, 단단히 각오해라, 이런 뜻이겠죠.”
“우리 이래 봬도 전원 해외유학파 박사 학위자들입니다. 여기서 이딴 취급 받으면서 연구 못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당장 와달라는 대학이 수두룩합니다.”
최 소장은 혀를 찼다.
“떠날 사람은 떠나. 안 말려.”
“소장님!”
“어쨌거나 연구소는 다른 회사에 넘어갔고, 우리는 월급 내뱉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지. 문제 있어?”
“그럼 이런 대우를 받고도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입 다물고 구르라는 겁니까?”
“그럼 지금 당장 사표 쓰고 나가라니까? 안 말려!”
최 소장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애송이처럼 굴지 마. 여기 대학 강단 아니야. 맡은 일이나 똑바로 하고 불평을 해.”
“소장님!”
“대화부터 해 보고 결정해도 안 늦어. 말이 안 통한다, 지원도 없다, 똥군기만 잡다가 시간만 버린다, 그렇게 결론 난 후에 사표 써도 안 늦는다고.”
벌컥.
그때 사장실 문이 열렸다.
웬일로 여유롭게 웃고 있는 심 사장이었다.
오늘은 어째 차림새부터 평소와 달랐다.
깨끗하게 감은 머리는 반듯하게 정리되었고, 입고 있는 와이셔츠는 잘 다려져 주름이 살아있었다.
더구나 몸에서는 향수 냄새가, 구두에서는 불광이 번쩍였다.
그러고 보니 심 사장은 오늘 아침 출근할 때부터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를 돌돌돌 끌고 왔었다.
“자자, 연구원들도 다 함께 보약 먹고 합시다!”
심 사장은 따끈하게 데운 보약을 우광연구소 연구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면서 야심만만하게 웃었다.
“최 소장님이라고 했던가요? 이만하면 우광연구소 기술 개발 자료 검토를 다 끝냈겠죠?”
당연히 일을 다 끝냈으리라 생각하듯, 맡긴 것을 되찾아오듯.
심 사장은 손을 내밀었다.
최 소장은 난색을 표했다.
“고작 3일밖에 안 됐습니다만······.”
“음? 무려 3일이나 줬습니다만?”
“석 달이면 또 모를까, 고작 3일 만에 이걸 다 어떻게 합니까?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심 사장은 미간을 구겼다.
“전원 해외유학파 박사 학위자들이라면서요? 그 좋은 머리 가지고 일을 똥구멍으로 하시나.”
“심 사장님!”
“정말 진심으로 이해가 안 돼서 그럽니다. 고작 그 정도 잡무라면 여기 과외 선생들만 뛰어들어도 하루에 끝낼 텐데요?”
“모욕은 거기까지만 하십시오. 더는 안 참겠습니다.”
“모욕이라뇨? 전 단지 팩트만 말했을 뿐입니다만.”
심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만 봐도 조기 퇴근할 업무량밖에 안 되잖습니까.”
“뭐라고요? 우광연구소의 10년 치 기술 보고서를 요구하셨잖습니까! 서류만 무려 100상자가 넘습니다!”
“그러니까요. 달라붙은 인원만 서른 명인데? 어째서?”
심 사장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심지어 사무실 사람들도 당연한 소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서 동조했다.
그럴수록 최 소장은 부르르 치욕에 떨었다.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요! 처음부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요구를 해놓고는 뻔뻔하게······!”
“음, 말이 영 안 통하니 이거 정말 어쩔 수 없군요.”
짝짝짝!
심 사장이 손뼉을 쳐서 사무실 식구들을 집중시켰다.
“보스의 최우선 지시사항입니다. 오늘 업무는 중단, 전원 우광연구소 10년 치 기술 개발 분류 및 정리 검토 작업에 투입하겠습니다.”
“헉······!”
“그럼 우리 업무는······!”
사무실 식구들은 업무가 밀리는 것을 극도로 질색했다.
야근과 철야 및 주말근무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게 사내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잔업으로 남겨서 야근과 철야를······?”
사무실 식구들이 못마땅한 눈으로 우광연구소 연구원들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도 불만이 가득했던 우광연구소 연구원들도 지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 사장은 다시 한번 손뼉을 짝짝짝 쳤다.
“두 달 뒤에 우리 도련님이 국산 전차 성능 시험에 참관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니 다들 협조 부탁합니다.”
“도련님이······?”
“대통령 각하의 특별 초대라는군요.”
“네······?”
“우리가 이번에 새로 방산 사업을 맡았고, 우광연구소를 인수한 만큼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의 무게가 달라졌다.
다들 잔뜩 긴장했다.
심 사장은 손가락 두 개로 브이를 그리며 말했다.
“물론 특별 상여금도 지시하셨습니다. 평소 성과금의 두 배!”
“오!”
“조기 퇴근 및 한우정 회식 추가.”
“회식에 조기 퇴근을?”
“보스는 실적만큼 보너스를 두둑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알죠?”
“알죠!”
“오늘은 특별히 MVP를 뽑겠다고 하셨습니다. 유급 휴가 3일! 주말까지 껴서 총 5일 통으로 쉬는 겁니다.”
“우와!”
사무실 식구들이 흥분해서 콧김을 뿜었다.
정혁이가 통 크게 성과금을 뿌린다는 건 이미 온몸으로 체험한 후였다.
그들의 눈에는 심 사장의 손가락이 그리는 브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본이 두 배!
“오늘은 저도 돕겠습니다.”
심 사장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의욕이 대단했다.
‘보스가 원하는 건 우광연구소의 전차 장비 생산 기술, 그중에서도 전차 조준경이라셨지?’
심 사장의 목표는 딱 하나뿐이었다.
주말을 낀 유급휴가 총 5일!
아침부터 곱게 단장한 채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출근한 까닭이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 심 사장의 야망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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