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77)
재벌집 만렙 아들-177화(177/416)
< 오늘의 MVP >
심 사장은 야망에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걸어왔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빽빽하게 쌓아올린 서류 상자를 향해서.
“이게 우광연구소가 10년 동안 행했던 기술 개발 연구 자료란 말이지?”
심 사장은 손바닥을 비볐다.
“우광도 방산 진출을 염두에 두고 몰래 전차 기술 개발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는데. 이참에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연구가 진척되었는지 확인해 볼까요?”
우광연구소 최 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걸 본다고 제대로 알아보기나 하겠습니까?”
“용어도 생소할 테고, 실험 과정도 복잡할 테고, 결과 분석 및 고찰에 관해선 더욱 이해가 어려울 텐데요.”
전차 부품과 기술에 관한 디테일은 복잡했다.
“겉으로 보기엔 기술 개발 연구란 게 참 쉬워 보이는 모양입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과학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 자료 들고 대학교에 가보세요. 석박사 하는 애들이라고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어요.”
연구원들은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두고 보십시오. 우리 도움 없이는 보고서 한 장 제대로 해석할 수 없을 겁니다.”
“도움을 바란다면 먼저 정중하게 사과하고, 지금 이 시간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약속······.”
심 사장은 목을 좌우로 꺾었다.
“거참 말 많네!”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꽤 컸다.
목이 여간 뻣뻣하게 굳은 게 아닌 듯했다.
앉아서 종일 서류만 들여다보느라 그렇다.
“도와줄 거 아니면 입이라도 닥치시든가!”
“······.”
“입 닥치랬다고 진짜 닥칩니까?”
“······.”
“쳇, 해외유학파 박사 학위자들도 다 똑같구만!”
내친김에 어깨까지 빙빙 돌리는 심 사장도 웃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웃음이었다.
“어려운 용어, 복잡한 실험 과정, 해석하기 까다로운 결과 및 고찰?”
어깨에서도 우드득 소리가 났다.
이러다 오십견이 오는 건 아닌지 우려될 정도로.
어깨가 여간 딱딱하게 굳은 게 아닌 듯했다.
종일 책상에 앉아서 서류만 보느라 그렇다.
“그게 어디 기술 개발 연구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 같습니까? 이 바닥이 다 똑같습니다.”
뚜벅뚜벅 거침없이 걸어온 심 사장은 거대한 서류 상자를 마주했다.
얼굴엔 한 점 두려움이라곤 없었다.
“계열사별로, 부서별로, 담당 업무별로 숙지해야 할 전문 용어가 어디 한두 갭니까?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 사항이 어디 한두 권인 줄 알아요?”
해치워야 할 일거리를 마주한 자로서.
비장한 각오만이 빛났을 뿐.
언제나 이 정도 일을 처리해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우리가 언제 그딴 거 따져가면서 일한 줄 아십니까?”
심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닥치고 하는 겁니다!”
비장한 외침이었다.
“당연히 처음엔 개뿔도 모르죠. 하지만 죽어라 구르다 보면 다 알게 됩니다. 그래도 모른다? 그건 덜 굴러서 그렇습니다!”
사무실 식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알 수 없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사무실 사람들 전체가 회한에 찬 눈을 하고서 낮게 탄식했다.
“맞는 말입니다. 제대로 일하다 보면 다 알게 되는 격언과도 같달까요?”
“구르고 구르다 보면 못 구를 리 없다는 게 학계 정설이에요.”
“이렇게 구르는데도 모르면 구제할 길 없는 돌이란 소리밖에 더 됩니까?”
“아니죠. 원석도 굴리다 보면 보석 되는 법. 아직도 돌이라면 덜 굴린 게 확실합니다.”
연구원들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반응이 대체 왜 이래?”
“실험실에서 종일 지긋지긋하게 구르는 대학원생도 저런 소리는 안 합니다만?”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단체로 대가리에 이런 신념이 박히게 된 겁니까?”
심 사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신념 같은 소리 하네. 신념이 대신 일해주나?”
어째 웃음에 살기와 분노가 섞여 있다 싶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무실 식구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맞죠. 신념이 월급 주는 거 아니잖아요?”
“월급 받고, 회사 왔고, 숨 붙어 있으면 일해야죠.”
“잠깐 손을 놀리고 있으면 서류가 잠깐 사이에 눈덩이처럼 증식한다고요.”
“보약은 괜히 존재하나? 이런 거라도 안 먹으면 과로사하니까 쟁여두는 거죠.”
제일 먼저 실험 가운을 벗어 던졌던 연구원이 울컥해서 외쳤다.
“고생은 댁들만 한 줄 알아? 우리도 연구동 실험실에서 죽도록 구르면서 만든 결과를······!”
“그만.”
우광연구소 최 소장은 손을 들어 연구원들의 말을 잘라냈다.
대신 비릿하게 웃었다.
“자청해서 하겠다는데, 놔둬.”
“소장님!”
“우리 그동안 허투루 연구하지 않았어. 이건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이야!”
최 소장이 이를 가는 이유였다.
“그걸 고작 3일 만에 분류 검토 정리 작업 끝내놓으라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맞습니다, 소장님!”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고 절실하게 깨닫는 게 더 빨라.”
10년 동안 우광연구소가 쌓아올린 기술 개발 연구.
그건 이 분야 전문가라는 해외유학파 박사 학위자 연구원들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장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돕지 않으면 석 달은커녕 3년이 가도 저 일 다 못 끝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 사장은 버럭 외쳤다.
“거참 더럽게 말 많네! 여기가 회사가 일터지 놀이터야? 혓바닥 놀릴 시간에 손을 놀리라고!”
심 사장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어헉! 이러다 비행기 시간 놓치면 늬들이 책임질 거야? 한우정 안 갈 거야? 조기퇴근 안 할 거야?”
사무실 식구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잊었던 사실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한우정 회식에 조기퇴근, 특별 상여금 2배!”
“유급휴가 3일에 주말까지 총 5일! 통으로 쉬어야지!”
“오늘 작업의 MVP는 바로 접니다!”
사무실 식구들의 눈도 야망에 불타올랐다.
심 사장의 눈처럼.
사무실 식구들은 비장하게 웃으며 너 나 할 것 없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심 사장의 지시는 명확했다.
“우리의 목표는 전차. 그중에서도 조준경이 일 순위다!”
“오, 목표가 확실하군요!”
“그렇다면 얼마 안 걸리겠는데요?”
자신만만한 대답엔 기쁨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빨리 끝내고 한우정에서 회식할 생각에 손이 근질근질했다.
덕분에 우광연구소 연구 자료 상자를 개봉하는 속도는 더할 나위 없이 빨랐다.
심 사장은 지시했다.
“황금색, 은색, 똥색 라벨 상자 앞으로!”
“앞으로!”
“정보, 개발, 아이디어, 기타 라벨 상자 앞으로!”
“앞으로!”
“임원들 내 뒤로 붙어서 분류 돕고!”
“붙어!”
“선임들 중요 사항 체크하고!”
“체크!”
“실무진들 보고서 작성 준비!”
“준비!”
다들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무실 식구들이 서류 상자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포진했다.
심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빠르게 서류 상자를 개봉하고, 분류하고, 앞에서 뒤로 체크한 것을 넘겼다.
“임원들, 전차 관련된 기술, 조준경에 관련된 사항은 황금색으로.”
“전차, 조준경은 황금색으로!”
“엔진 구동에 관한 것, 조작판, 구동 프로그램에 관련된 것은 은색으로.”
“은색으로!”
“기타 프레임, 강화 철판, 부속 및 공간 구조 설계에 관한 것은 대충 똥색으로 치워.”
“똥색! 깔끔합니다.”
심 사장이 당부했다.
“자료 뒤지다가 쓸만하다 싶은 것은 따로 빼놔.”
“예!”
“자동차, 중장비, 화학, 제약, 조선에 관한 것은 정보 문건으로. 나머지는 기타 잡문서로.”
“예!”
“연구 주제와 결과 및 고찰만 봐. 실험 과정 및 자료 전부 날림으로 넘겨.”
“물론이죠!”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은 엄청난 속도로 연구 자료를 뒤져댔다.
기준이 명확했기에, 분류하는 속도도 빨랐다.
순식간에 라벨 상자에 두툼한 서류를 착착 집어넣는다.
“선임들, 정보 문건 중에서 전차 관련된 사항만 뽑아서 정리해.”
“예!”
“자동차, 중장비, 화학, 제약, 조선은 관련도가 높으니까 향후 개발 방향 설정 가능한 것도 체크.”
“체크!”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될 만한 것 별 세 개, 상업성이 부족한 것 별 두 개, 아이디어만 좋은 것 별 한 개, 그 외 폐기.”
“예!”
임원들이 분류해놓은 라벨 상자에 새파랗게 젊은 선임들이 달라붙었다.
빨간펜을 들고 크게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을 긋는다.
휙휙 서류를 넘기며 슥슥 별을 그렸다.
“실무진, 보고서 작성 시작해.”
“타자기 준비했습니다!”
“별표에 따라 정리하고.”
“예!”
“기타 문건은 서류 상자에 다시 담아서 캐비닛으로, 폐기 문건은 다시 상자에 담아 한쪽 구석에 쌓는다.”
“손수레 끌고 왔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실무진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타자기 소리,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스테플러 찍는 소리, 서류 넘기는 소리가 기계적으로 들려왔다.
착착착착.
타다다다닥.
달각달각.
파라락. 파라락.
순식간에 서류 한 상자가 뚝딱 비워졌다.
말이 안 되는 속도였다.
연구원들은 숨을 들이마셨다.
“미쳤다!”
“말도 안 돼!”
“이게 가능해?”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무슨 일을 이렇게 기계적으로······!”
“와, 일 처리 속도 진짜 장난 아니네.”
“이 사람들은 밥 먹고 일만 했나.”
기가 찼다.
“저 무식하게 큰 서류 한 상자를 비워내는 데 고작 20분밖에 안 걸렸다고?”
“아니야. 처음 상자만 20분 걸렸지, 그다음부터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대체 어떻게 일해왔기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업무를 해치우는 거지?”
“이게 사람이 낼 수 있는 업무 처리 속도인가?”
눈꼽만큼도 도와주지 않기로 작정했는데.
그들의 도움이 없이도 이런 속도로 연구소 일을 해치울 줄은 몰랐다.
심지어 결과까지 기가 막혔다.
“과학에 대해 뭣도 모르는 사무실 직원들이 이걸 제대로 분류해놨다고?”
“대학원생도 이렇겐 일 못 해. 신입 연구원들도 쉽사리 손을 못 대는 수준이었는데.”
“내 장담하는데, 이 건은 학계에 논문으로 발표해도 될 만한 연구였어.”
“일반인은 읽고 이해하는 것부터 어려웠을 텐데? 대체 어떻게?”
연구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차곡차곡 정리되는 최종 보고서를 읽고서 넋을 놓았다.
최 소장도 달려와서 함께 읽고서는 입을 떡 벌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완벽하게 압축된 최종 보고서와 깔끔하게 정리된 도표.
보면 볼수록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즉석에서 휘갈겨 적은 보고서가 이렇게 꼼꼼하고 깔끔하게 딱 떨어질 일인가?”
“일목요연할 뿐만 아니라 우선순위 및 정리 평가까지 확실해.”
“여긴 무슨 사무실 말단 사원이 연구소에서 잔뼈 굵은 연구원보다 더 신속 정확하게 보고서를 쓰지?”
최 소장은 얼이 나간 표정으로 심 사장을 돌아보았다.
심 사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만만했다.
그저 묵묵히 바쁘게 이곳저곳을 오가며 전천후로 움직였을 뿐이다.
“심 사장, 경영의 대가이자 일 처리 완벽하기로 이름이 났다더니. 과연 대단하군.”
심 사장뿐만이 아니었다.
심 사장의 부하 직원들까지 보통 인재들이 아니다.
사무실 식구들은 의욕에 가득 차서 콧김을 뿜어댔다.
“쉽네.”
“간단하네.”
“할 만하네.”
“조기퇴근과 회식이 코앞이다!”
정말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사무실 한쪽 구석에 쌓여있던 서류는 반 이상 비워진 후였다.
“허······, 이 많은 자료를 이렇게 금방······.”
“왠지 시간 축이 뒤틀린 것 같은 기분은 나만 드나요?”
“이 정도면 따로 업무처리 공식 같은 것을 정리, 증명해서 학계에 발표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연구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를 보는 최 소장도 할 말을 잃긴 마찬가지였다.
일하는 것만 봐도 견적이 나왔다.
최 소장은 낮게 탄식했다.
“우리 애들은 해외 물 먹고 박사 학위까지 땄는데. 어째 쟤들에 비하면 일을 참 더럽게 못하는 것 같지?”
* * *
100상자가 넘는 우광연구소 10년 치 연구 자료 상자가 텅 비었다.
벽시계를 본 사무실 식구들은 환호성을 울렸다.
“만세, 조기퇴근이다!”
“우와, 특별 상여금 2배다!”
“한우정 가자! 소고기 먹자!”
하지만 심 사장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있었다.
전(前) 태성건설 임원인 조 상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심 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혹시 비행기 출발 시간에 늦으신 겁니까?”
“그게 아니야.”
“예? 그럼 뭐가 문제인데요? 그냥 지금 당장 캐리어 끌고 공항으로 출발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조 상무는 뿌듯하게 웃으며 엄지를 올렸다.
“누가 뭐래도 오늘 작업의 MVP는 심 사장님이십니다. 인정!”
“맞습니다! 역시 심 사장님이십니다!”
이 정도로 일해야 사장 명패를 다는구나!
같이 일해봤더니, 심 사장님을 향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사무실 식구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유급 휴가 3일에 주말까지 총 5일!”
“잘 놀다 오십시오!”
“푹 쉬다 오십시오!”
“얼른 일어나세요. 이왕 노는 거 공항에서 놀아야죠.”
하지만 심 사장은 몹시 괴로워하며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게 아니야. 아니라고!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예?”
“아무리 뜯어봐도 전차 기술 수준이 너무 낮아! 조준경도 조악하기 짝이 없고!”
심 사장은 사무실 바닥에 엎드려 크게 좌절했다.
“이래 가지고서는 절대 보스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이런 젠장!”
심 사장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절로 비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 소장, 우광연구소의 10년 치 연구 자료가 이게 다야?”
< 오늘의 MVP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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