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81)
재벌집 만렙 아들-181화(181/416)
< 밀매왕 (1) >
연구원들은 한우정 회식을 끝낸 후, JH 전용버스로 연구동 실험실에 돌아왔다.
조기 퇴근 해산하자고 해도 연구원들이 박박 우긴 탓이었다.
그들은 비싼 최고급 소고기 전문점에 갔지만, JH 사무실 식구들처럼 속 편하게 먹고 놀지도 못했다.
자괴감 때문이었다.
“JH 사람들, 유능했지······.”
“엄청난 속도로 10년 치 연구 자료를 정리하는 거 보고 기겁했잖아······.”
“심지어 먹기도 잘 먹고 놀기도 잘 놀아······.”
“꼬마 도련님이 가르쳐줬다는 폭탄주 제조쇼란 거 말이야. 그거 진짜 화려하더라······.”
“술잔 10층 탑을 쌓고 샴페인 분수쇼로 도미노로 퐁당퐁당 제조할 줄이야······.”
문화 충격이었다.
설마하니 먹고 노는 것으로 패배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여태 뭐 하고 살았냐······.”
“내내 연구실에 틀어박혔는데도 쓸만한 아이템 하나 못 건지고······.”
“왠지 밥만 축내는 식충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니까······.”
지금껏 자신들을 꽤 뛰어난 엘리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전원 해외유학파 박사 학위자들에겐 자신들의 무능함을 대놓고 확인받은 것 자체가 큰 충격이 되었다.
“좌절하지 마.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단단히 추슬러야지.”
“식충이가 되기 싫다면 이제라도 밥값을 제대로 하면 돼.”
“시작하자, 폐기된 연구 자료 뒤지기.”
“그래, 그거라도 해봐야지. 당장 두 달 뒤에 있을 전차 성능 시험까지 기한 맞추려면.”
한우정 회식이 끝나고 자발적으로 연구실에 모인 까닭이었다.
맡은 바 업무를 끝내고 조기 퇴근을 부르짖으며 떠난 JH사무실 사람들과 그들은 입장이 많이 달랐다.
“어휴우우······.”
“하아아아······.”
자료를 뒤져보면 볼수록.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연구 자료들을 뒤지고 있으려니, 그나마 먹은 소고기마저도 속에서 턱 걸리는 것 같다.
“안 되겠네.”
“못 쓰겠네.”
“큰일 났네.”
“미치겠네.”
연구원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전부 형편없다.
그래서 진즉 폐기했던 연구겠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이걸 뒤지고 있는데, 왜 계속 컵라면 생각밖에 안 날까?”
“반년 동안 붙들고 있었으니 그렇지 뭐.”
“하지만 내놓는 컵라면이라고는 더럽게 맛없을 뿐이고.”
“그렇다고 전차 연구부터 하려니, 그쪽도 이미 꽉 막힌 지 오래고.”
“와,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환장하겠다.”
그때 수석연구원 한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스탑, 스탑! 전원 작업 금지!”
연구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소장님 지시 사항이다! 컵라면 개발 방향을 잡으셨단다!”
“설마 수지타산 안 맞는다고 이대로 폐기하라는 건 아니겠죠?”
“아니야! 군용식품, 혹은 전투식량으로 우선 선보일 예정이라더라!”
“······!”
연구원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와, 이건 진짜 발상의 전환이다!”
“확실히 전투식량으로 손색이 없겠는데?”
“편의성과 휴대성, 필요 열량과 보관 기간까지 생각하면 딱이다!”
연구원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획기적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지?”
잔뜩 흥분한 수석연구원은 통화 중에 받아적은 메모를 들이밀었다.
“같이 출장 갔던 꼬마 도련님이 개선 방향을 짚어주신 덕분이랜다!”
“예?”
믿기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도련님이 알려주신 컵라면 개선 사항 다섯 가지!”
수석연구원은 전해들은 사실을 침 튀겨가며 크게 떠들었다.
연구원들은 비명처럼 외쳤다.
“미쳤다!”
“이론상으로 완벽해!”
“이거 될 것 같다!”
“왠지 완제품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지 않아?”
“당장 만들어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린다!”
수석연구원이 신이 나서 최 소장과의 통화 내용을 전달하면 할수록.
연구원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컵라면 딱 한 젓가락을 먹더니 개선 방향을 줄줄이 토해냈다고요?”
“즉석에서 간단하게 개선점을 짚을 수가 있나?”
“심지어 소장님이 언급도 하기 전에 문제의 핵심을 꿰뚫었다면서요?”
메모지를 돌려볼수록 기가 찼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확실하고 딱 떨어지게 깔끔한 개선 사항!
완벽한 목표 설정과 문제 해결 방향 제시!
나오는 건 오직 감탄뿐이었다.
“도련님 나이가 올해로 몇이라고 했지?”
“고작 여덟 살.”
“천재다! 천재가 나타났다!”
수석연구원이 콧김을 내뿜으며 외쳤다.
“놀라지 말고 들어. 꼬마 도련님께서 전차 기술 개발 방향성도 함께 짚어주셨다는 거야.”
“오!”
“그러니까 미련하게 쓸모없는 폐기 자료나 뒤지면서 궁상떨지 말고.”
“크흠!”
“이만 귀가해서 발 닦고 잠이나 푹 자. 그게 소장님 지시 사항이야.”
“······예.”
수석연구원은 씩 웃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죽었다 복창하고 날밤 까며 연구에 매진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오늘만이라도 잘 자고 잘 먹어서 체력을 든든히 비축해두자.”
“예!”
“두 달 뒤에 있을 국산 전차 성능 시험장에서 전투식량으로서 컵라면을 선보일 예정이라니까. 그렇게 알고.”
“예!”
“물론 전차 개발도 그때까지 끝내야 할 거야. 할 일이 많아.”
“각오하고 있겠습니다!”
그때 한 연구원이 손을 들고 물었다.
“질문 있습니다!”
“뭔데?”
“컵라면 개발은 그렇다 치고, 전차 연구는 어떻게 진행하실 예정이랍니까?”
다들 한마디씩 보탰다.
“전차 연구 막힌 지 오래된 거 아시잖습니까.”
“학계에 공개된 논문만으로는 한계입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샘플이라고는 반파된 국산 군용 전차 한 대뿐이잖습니까.”
“그것도 처참하게 실패한, 조악한 쓰레기 전차 말입니다.”
수석연구원은 손가락을 딱 부딪치며 웃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꼬마 도련님이 소장님을 대동하고 부산으로 출장 나가신 거지!”
“예?”
“전차를 사오시겠대.”
“네엑?”
연구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전차를 어디서 사오겠다고요?”
“국방부 포방부대도 아니고, 미군부대도 아니고, 부산에서?”
“전차가 애들 장난감인 줄 아십니까?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차라리 정부의 지원으로 폐기 전차를 받아온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우리 연구소는 국방부 산하의 연구소도 아니라,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석연구원은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윗대가리가 자체 지원해준다잖아. 대당 수천만 원짜리라더라.”
“······!”
수석연구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파쿠리하기로 했다.”
“······.”
헛웃음이 흐르는 정적이었다.
“독일제랑 소련제 탱크를 사오실 예정이라는데?”
“······!”
“미랑 영국제는 고민 중이라고 하시고.”
“······!”
“도련님이 기종별로 전부 구매하겠냐고 제안하셔서 소장님 기겁하셨댄다.”
“······!”
“매의 눈으로 꼼꼼히 따져서 신중히 골라올 테니까 연구실에서 딱 기다리고 있으랜다.”
“······!”
이번엔 달랐다.
조금 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정적이 흘렀다.
경악성이 터진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아니, 지금 소련제 탱크를······! 부산에서 사오겠다고요?”
“지금 냉전 시대예요!”
“사회주의를 채택한 소련제 장갑차를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수석연구원은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했다.
“밀수하시겠댄다.”
“······!”
“전차 기술 개발 연구를 위해서.”
“······!”
“위험은 윗대가리들이 감수할 테니까, 우리는 연구에만 매진하라더라.”
“······!”
“이번 연구만 성공하면 오늘 JH사무실 사람들이 받은 특별 상여금을 아득하게 웃도는 수준의 성과금이 지급될 예정이라니까 참고하고.”
“······!”
“이상 전달 끝.”
연구원들이 입을 열게 된 건 한참 후였다.
비장한 목소리였다.
“나 이 회사에 뼈를 묻을란다.”
“파쿠리? 지금까지는 샘플을 구하기 어려워서 못 한 거지, 샘플만 있으면 못 할 것도 없지.”
“지금껏 이런 지원은 없었다.”
“지금껏 이런 윗대가리도 없었고.”
결연한 각오가 뒤따랐다.
“두 달 후, 대통령 앞에 선보일 국산 전차, 우리 손으로 멋지게 만들어 선보이자!”
“파쿠리 제대로 해서 기깔나게 뽑아보자!”
“JH표 국산 전차 위뚜껑에 앉아서 컵라면 먹으면 죽여줄 것 같지 않냐?”
“크, 그것이 바로 JH정신이자, 애국 그 자체지! 가즈아!”
“가즈아!”
열의가 불타올랐다.
수석연구원은 분명 강제 해산을 명했건만.
연구동 실험실에는 오늘 밤에도 불이 꺼질 줄 몰랐다.
* * *
으드득.
구멍가게 앞에 잠깐 차를 세우고, 우리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어이구, 삭신이야.”
“죽겠네요.”
연세가 지긋한 최 소장은 앓는 소리를 내었고, 운전대를 잡았던 유종태는 스트레칭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10시간 걸리던 길이 5시간 반으로 단축되었다.
지금 이 시절에는 예산부족으로 인해 왕복 4차선밖에 안 되지만, 몇 년 후에는 6차선으로 확장될 예정.
우리는 역사의 현장을 달리고 또 달려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산행 완행열차를 탈 걸 그랬나?”
“6시간만 달려도 죽을 것 같은데, 12시간을 어떻게 버티라고요? 전 사양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완행열차를 타면 운전대는 안 잡아도 되니까.”
“우리 도련님 무단외박이 걸린 일인데요. 저 유종태,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충성 넘버 투!”
나는 지도책을 펼쳐서 경로를 확인했다.
“거의 다 왔네요.”
“도련님, 목적지가 어디라고 했죠? 은갈치? 건옥돔?”
그건 제주도에 여행 간 심 사장님께 부탁한 것이고.
“고등어 수산이에요.”
“아, 맞다. 고등어.”
유종태는 피식 웃었다.
“왠지 국제시장이 아니라 자갈치 시장에나 있을 법한 이름인데요?”
“자갈치 시장에도 있을걸요? 2호점.”
“······진짜로 고등어 파는 곳은 아니겠죠?”
“진짜로 고등어 파는 곳 맞는데요?”
“······.”
“부산항에서 가장 유명한 고등어 선단이기도 하거든요.”
“······.”
유종태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우리 밀매왕을 만나러 가는 길 아니었습니까?”
“밀매를 뭐로 할 것 같아요?”
선박.
컨테이너.
어마어마한 규모의 창고 시설.
하역장을 오가며 물건을 싣고 내리는 잡부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
“음지에서 움직이는 자들에게도 눈 가리고 아웅 할 합법적인 간판은 필요한 법이거든요.”
그런 이유로 나는 왕년에 투자회사를, 스승님은 전당포를 운영했다.
종로 금이빨은 금은방을, 까치산 방여사는 복덕방을, 남산 찰거머리는 룸살롱과 클럽을,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에라이, 불법 도박 하우스는 빼자.
흠흠, 뭐 어쨌든!
“고등어를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구요?”
통계도 못 봤어요?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즐겨 먹는 생선 1위 고등어, 2위 갈치, 3위 오징어!
고등어만 제대로 팔아도 떼돈 번다구요?
* * *
부산항에 들어서자, 짙은 비린내가 훅 끼쳤다.
21세기 기준 국내 최대 규모의 대규모 무역항이며, 세계 6위 규모의 메이저 환적항.
부산항은 예로부터 무역의 요충지였다.
“이야, 큰 선박이 참 많네요. 컨테이너는 더 많고.”
운전대를 잡은 유종태가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했다.
“괜히 대한민국의 해상관문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죠.”
21세기 기준 해상 수출입 화물의 57%, 컨테이너 화물의 75%, 전국 수산물 유통량의 34%를 이곳 부산항에서 처리한다.
동시에 201척을 접안시킬 수 있는 항구 시설에, 13만 톤을 보관할 수 있는 물류 창고, 129만 톤을 야적할 수 있는 야적장을 보유했으며, 컨테이너 52만 TEU를 보관할 수 있다.
“밀수하기 딱 좋죠?”
밀매왕이 괜히 이곳에 터를 잡은 게 아니다.
‘밀매왕.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빠져나간 도떼기시장을 장악하고, 6.25 전쟁물자를 중간에서 빼돌려서 팔아먹으며 전국구 거물로 성장했다지?’
6.25 때 부산이 임시수도로 지정되면서 전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 되었다.
전국에서 피난민이 몰려들었고, 미군 구호물자가 이곳으로 유입되었다.
그에 따라 밀수품이 판을 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
‘밀매왕은 몰래 빼돌린 미군 구호품을 국제시장에서 팔아치우며 뭐든지 구하고, 뭐든지 파는 밀수계의 최고봉으로 성장했다.’
여기서도 보이는 거대한 컨테이너들을.
6.25 전쟁 휴전 후 미군의 물류체계 시스템이 CUA, 즉 컨테이너 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미군 구호물자를 빼돌리기 쉽지 않아지고, 미군의 원조까지 줄어들기 시작하자, 밀매왕은 직접 선단을 움직여서 밀매 루트를 뚫기 시작했다.
소련과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과 대만, 동남아까지.
그는 ‘마약 빼고 다 구해온다!’는 소문이 돌 만큼 뛰어난 음지의 거물이었다.
‘사실 밀매왕은 내가 활동하기 이전에 활약했던 세대. 즉, 스승님과 동시대를 풍미한 전(前)시대의 거물이었지.’
난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밀수는 하지만 마약은 안 한다!
-암시장은 열어도 사채 시장은 안 연다!
희한한 슬로건을 걸고 활동하던 사내였다.
그런 이유로 사채 시장의 4대 거물이었던 스승님과는 딱히 교류가 없었다.
그래도 밀매왕에 관한 소문이라면 귀 따갑게 들으며 자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도살자라던데.’
부산에 터를 잡은 전국구 조폭들마저 한 수 접는다는 말이 돌 정도면 말 다 했지.
“도착했습니다. 고등어 수산입니다.”
비린내 나는 부둣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
<고등어 수산 창고>
국제시장에 위치한 생선가게가 아니다.
부산항 하역장 근처에 위치한 수산물 보관 창고였다.
암시장의 밤은 국제시장의 낮보다 화려하니까.
< 밀매왕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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