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82)
재벌집 만렙 아들-182화(182/416)
< 밀매왕 (2) >
유종태는 유유히 고등어 수산 창고를 지나쳐 차를 몰았다.
조금 더 으슥하고 후미진 곳에 주차하기 위해서였다.
유종태가 차를 모는 속도만큼 목소리를 낮췄다.
“흠, 꽤 늦은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군요. 이상하죠?”
늦은 밤인데도 백열등 전구 아래 고등어 수산 창고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최 소장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암만 봐도 평범한데?”
얼음과 고등어를 가득 채운 나무 궤짝을 손수레로 실어 나르는 사람,
넓적한 고무 대야에 물을 틀어두고 고등어를 씻어내는 사람,
두툼한 칼로 고등어 대가리를 내리치며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
청소 담당은 물을 끼얹어가며 배에서나 쓰는 스크러버 솔, 플로어 솔, 홀더 솔, 선박외부용 솔 등으로 바닥을 박박박 밀고 있었다.
“내일 장사를 위해 밤늦게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잖아.”
“저게 다 보여주기용 똥꼬쇼입니다.”
“이게 보여주기용 똥꼬쇼라면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은 노출증 환자겠는데?”
“······.”
이쯤 되니까 유종태와 나는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최 소장, 눈치가 더럽게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대체 누구한테 보여주겠다고 이 밤에 저렇게 땀 뻘뻘 흘려가면서 고생을 자처하겠어?”
“바로 그 점이 이상한 겁니다.”
“······?”
“손님도 없는데, 온몸에 생선 비린내를 묻혀가면서. 역시 수상하죠?”
“······??”
유종태는 혀를 찼다.
“쯧, 이래서 연구소 속 화초 같은 샌님들이란.”
“샌님이라니! 실험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연구소에서 화초 따위를 키울 것 같아?”
“정정하겠습니다. 화초 샌님 대신 동태 눈깔로.”
“뭐야?”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하기엔 연구소에서 화초를 안 키우신다니까. 봐드린 겁니다.”
하여간에 유종태.
수틀리면 일단 들이박고 본다니까.
이거 아주 상습범이다.
벌써 들이박은 사람만 몇 명인지 몰라.
우리 고모, 현무건설 사장, 전(前) 태성건설 오 전무 등등.
“눈깔이 있어도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동태 눈깔이 딱인 것 같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밀매왕을 만나러 간다니까 별게 다 의심스러운 건 아니고?”
“머리가 좋아지면 본능이 퇴화한다더니. 역시 해외유학파 박사 학위자들의 대가리다우십니다. 눈치 안 챙기고 들어갔다가 멱 따여도 전 모릅니다.”
“유 팀장!”
유종태는 나를 돌아보았다.
“도련님, 아무래도 최 소장님은 버리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럴 순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중고차를 사도 전문가를 데려가잖아요. 대당 수천만 원짜리 탱크예요.”
“낌새가 너무 위험합니다. 날을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만.”
“확실히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긴 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를 표했다.
뒷골목 냄새가 숨 막힐 정도로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도련님, 저 새끼들 눈깔 좀 보세요. 여차하면 고등어 토막 내던 칼로 이쪽을 토막 낼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저 안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죠?”
“이 야밤에 고등어를 손질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보나 마나죠.”
최 소장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고등어 가게 창고에서 고등어 손질하는 게 뭐가 어때서요?”
······그냥 여기에 버리고 갈까.
봐준다.
여기 오는 내내 밀수용 전차 팜플랫을 보면서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가며 수첩에 메모하는 열의를 보였거든.
“고등어는 신선도가 생명이에요.”
“고등어는 신선한 게 최고죠. 그게 왜요?”
“생물 고등어는 손님에게 주문받는 즉시 손질하는 게 기본이니까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심각해진 겁니까?”
고작이라니.
이건 생선 파는 업자들 입장에선 생계가 달린 영업 노하우라구요?
“고등어는 살이 물러서 손을 대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부패가 진행돼요. 비린내가 심하니까 벌레가 몰려들고, 살이 짓물러져서 비주얼상 판매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그래서 옛날엔 고등어를 짚으로 만든 노끈으로 묶어 벽이나 전문 걸이에 걸어놓고 팔아야 했다.
고등어를 셀 때 ‘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던 게 여기서 유래했다.
“아, 원래 붉은 살 생선이란 게 그렇죠! 이제야 이해가 좀 가는군요.”
최 소장은 그제야 얼굴이 확 폈다.
드디어 이 수상한 상황을 이해했구나!
“근육색소와 혈색소를 다량 함유하여 적색육을 갖기 때문에 붉은 살 생선이라고 불리는 거거든요. 다랑어, 가다랑어, 고등어 등이 대표적인데······.”
······아니었구만!
최 소장은 전문 분야가 나오자, 입에 모터가 달린 듯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고등어는 지방산과 오메가 쓰리 함유량이 높고, 근육 중에 헤모글로빈이나 미오글로빈 등 색소단백질을 많이 함유하여······.”
“그만. 지금 누가 고등어 지식백과가 궁금하대요?”
“크흠, 죄송합니다.”
“요는 지금 저 사람들이 당장 팔지도 않은 고등어를 왜 꺼내어 손질하고 있느냐, 아니에요?”
“그렇죠?”
나는 혀를 찼다.
“바닥에 흥건하게 넘쳐나는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서잖아요.”
최 소장은 두 눈을 꿈뻑거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이.
“짙은 피 냄새를 고등어 비린내로 덮어씌우려는 거예요.”
“······?”
“설마하니 그 피 냄새가 고등어 피 냄새일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
“모르긴 몰라도 야밤에 고등어를 궤짝째로 들이부어 토막 치고, 온갖 청소용 솔을 꺼내서 바닥을 박박 닦아낼 정도면······.”
나는 손가락을 슬쩍 꼽았다.
“최소 십여 명, 골로 갔겠네요.”
“······!”
최 소장의 안색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차마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눈알만 굴려서 고등어 수산을 바라본다.
탁탁탁.
새파랗게 날이 선 칼로 고등어를 토막 치고.
촤악! 촤아악!
이쪽을 힐끔대면서 고무 대야 가득 받은 물을 바닥에 끼얹고.
슥슥슥.
강력한 세척력을 자랑하는, 딱딱한 섬유로 만들어진 선박 청소용 솔로 바닥을 닦아낸다.
꿀꺽.
최 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 오늘 날을 잘못 잡았다고 하셨죠?”
밀수용 전차 팜플랫을 쥐고 있는 손이 달달달 떨렸다.
“우, 우리 날 밝을 때 다시 오면 어떨까요? 경찰을 불러서······.”
“경찰 불러서 밀수하는 얼간이 봤어요?”
“······.”
나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를 유종태가 따랐다.
최 소장은 우리와 자동차를 번갈아 보면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유 팀장 말처럼 저는 여기에 남아서······.”
“이 밤에 혼자 어슬렁대다간 부산 앞바다에 처박히기 십상일 겁니다.”
“······?”
“혹시 목격자일 수도 있으니까?”
“······!”
최 소장은 숨을 들이마셨다.
안 그래도 얼음과 고등어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던 사내가 손짓하고 있었다.
방수용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챙겨 입은 남자 둘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허리춤에 달랑거리는 건 손도끼였다.
“가, 같이 갑시다!”
“눈치껏 입 닥치고 있겠다고 약속하면?”
“약속하겠습니다!”
내가 돌아보자 유종태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또 이상한 단어에 꽂혀서 백과사전처럼 나불대면 짜증 날까 봐서요.”
나는 말없이 엄지를 들어주었다.
* * *
“누구쇼?”
탁!
고등어 대가리를 내리치던 남자가 칼을 나무 도마에 탁 꽂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입가까지 쭉 찢어진 칼자국 흉터가 꽤 인상적인 남자였다.
‘빙고.’
제대로 찾아왔다.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손을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냈다.
“냉동 고등어, 생물 고등어, 아니면 자반 고등어? 차라리 날 밝을 때 국제시장으로 오시든가. 내 싸게 해드릴게.”
“국산은 됐어요.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고 싶거든요.”
밀수품을 구하고 싶다는 암호였다.
바닥을 박박 닦아내던 남자들이 솔질을 멈추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이쪽을 주시한다.
“약속은?”
“말죽거리 말대가리 이름으로 잡아놨을 거예요.”
“하, 그 짜증 나는 새끼!”
남자는 말대가리 소리에 짜증을 버럭 냈다.
“그 새끼는 밥 먹고 도박만 했나.”
아마도?
괜히 하우스 도박판의 거물이겠어.
“내가 지금껏 삼세판을 내리 진 건 그놈 하나뿐이라니까?”
응, 내가 그러라고 보냈다.
말대가리가 하우스 일곱 개를 되찾는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기에.
밀매왕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밀수 예약을 걸어놓으면 이자를 까주겠다고 제안했거든.
“그 새끼, 요즘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부산 바닥을 헤집고 다닌단 말이지.”
응, 내가 그러라고 보냈다니까.
부산 일대를 화끈하게 털면 이자에 원금까지 까줄 용의가 있댔더니, 말대가리가 당장 짐을 싸서 내려갔다더라고.
“명패는 가져왔고?”
“물론이죠.”
나는 동전 지갑을 열어 고등어 그림이 그려진 명패를 꺼냈다.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도박으로 따낸 전리품이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잠깐.”
남자는 팔을 들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차가운 눈이었다.
“아무래도 그건 조금 곤란할 것 같은데.”
“안에서 아직 면담이 다 안 끝났나 봐요?”
“면담이 아니라 청소.”
남자는 씩 웃었다.
관자놀이까지 찢어진 칼자국 흉터가 기괴한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귀한 도련님께 보여드릴 만한 광경은 아니거든.”
“그게 뭐 별거라고요.”
내가 이런 꼴 한두 번 보나.
“회 치느라 바쁜 거예요, 시멘트 섞느라 바쁜 거예요?”
“하하하하. 물론 둘 다지.”
남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거 정말 재밌는 꼬마 손님이 오셨네.”
“아마 내 용건은 그보다 더 재밌을 거예요.”
내가 오늘 이것 때문에 무단가출, 무단결석, 무단외박을 불사하고 아주 먼 길을 달려왔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 다 된 것 같은데요?”
“음, 용건은 많이 복잡하신가?”
“복잡할 거 있나요? 보내주신 팜플랫을 보고 구매 결정 끝낸 지 오래예요.”
내가 손짓하자, 최 소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밀수용 전차 팜플랫을 내밀었다.
남자는 눈을 빛냈다.
“와우. 인제 보니 통 크신 고객님이셨군.”
“손은 더 클걸요?”
눈치 빠른 경호원이자 내 수족과 비서를 자처하는 유종태가 양손 무겁게 들고 있는 여행 가방을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놨다.
찌이익.
가방 지퍼를 열자, 만 원권 지폐 다발이 가득했다.
“계약금이에요. 잔금은 인천항에서 물건 받고 치르는 것으로 하죠.”
남자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고사리 같은 손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닌데?”
“수입해 오는 건 국산보다 비싸잖아요.”
“기름값과 수고비가 훨씬 더 드는데,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고객님?”
“첫 거래이니만큼 일단 세 대만 살까 해요.”
최 소장은 심사숙고 끝에 전차 세 대를 골랐다.
“소련제, 독일제, 미제. 전부 최신형으로.”
“허······!”
남자는 휘파람을 불었다.
입술 모양이 달라질 때마다 칼자국이 요망하게 씰룩거렸다.
“통 크고 손 크신 꼬맹이 고객님께선 간뎅이까지 크신 모양이구만.”
남자는 눈매를 좁히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담배가 당기는지 앞주머니를 뒤진다.
손을 모아서 느릿하게 불을 붙이는데, 라이터 불에 비친 칼자국 흉터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지금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 감이 안 오나 본데.”
남자는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훅 불었다.
담배 연기에 콜록대길 바랐던 모양인데.
왕년에 누군 뭐 담배 안 피워본 줄 아시나.
내가 이래 봬도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몸이거든?
“구식이라면 또 모를까. 최신형은 힘들어.”
“구닥다리나 사려고 큰돈 싸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거든요?”
“최신형은 국가 기밀로 취급해. 그런 걸 뒤로 빼돌려 오는 게 쉬운 일일 것 같아?”
“웃돈을 얹어달란 소리를 참 어렵게 하시네요.”
남자는 김샜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퉤 뱉었다.
물이 흥건하게 고였던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담뱃불은 칙 소리를 내면서 바로 꺼졌다.
“위아래로 매끄럽게 기름칠하겠다는데, 누가 안 준대요? 넉넉하게 얹어드릴게요.”
“기름칠이 문제가 아니야. 정말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에이, 그 정도 능력도 없었으면 밀매왕이 아니죠.”
어디서 자꾸 간을 보려고 들어?
“마약 빼고 다 구할 수 있다면서요? 그까짓 최신형 전차쯤이야 일도 아니잖아요.”
“이봐, 꼬맹이.”
“기한은 보름으로 할게요.”
“소련에서, 독일에서, 미국에서 배 타고 오는 시간만 따져도 보름으로 되겠어?”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요? 이미 최소 하나씩은 가지고 계시잖아요.”
“······.”
“월남전, 중동전에서 신형 주력 전차를 몰래 빼돌린 걸 피차 모르는 바도 아니고.”
“······!”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제주도에 숨긴 걸 꺼내 팔면 땡인데, 보름이면 차고 넘치죠.”
“너······!”
길게 찢긴 칼자국이 남자의 표정에 따라 씰룩거렸다.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살기였다.
“죽고 싶냐, 꼬맹아?”
“밀매왕이 언제부터 이렇게 통이 작아지셨대요?”
나는 피식 웃었다.
“국산 전차 성능 시험이라고 들어 보셨나 모르겠네요?”
“······!”
남자는 흠칫했다.
국산 전차 성능 시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고 좋구만!
“내가 누구 명으로 왔는지 이제 감이 좀 잡히세요?”
“설마······!”
“네, 맞아요. 대통령.”
나는 청와대 마크가 찍혀 있는 초대장을 꺼내 남자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음지에서 움직이는 인간들에게는 공권력이 대재앙이라는 거 내가 뻔히 아는데.
대통령이 주시하는 일이라면 말해 뭐 해?
< 밀매왕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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