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94)
재벌집 만렙 아들-194화(194/416)
< 부산의 패자 >
할아버지의 눈동자는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밀매왕을 거두었다고?”
“네.”
“설마 내가 아는 그 밀매왕은 아니겠지?”
“밀매왕이란 이름이 제법 흔한가 봐요? 할아버지가 아는 밀매왕은 누군데요?”
“부산의 패자.”
할아버지는 랩을 하는 것처럼 빠르게 다다다 말했다.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을 꽉 잡고 있으며, 부산항 선적장의 반을 장악했다는 자.”
맞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고등어 선단과 원양어선을 이끌며 한국 수산물 시장의 70%를 홀로 감당한다고 하던데.”
한국 수산물의 70%라면 시장 독점 수준이다.
그건 몰랐다.
“마약 빼고 종류 불문 국적 불문 모든 물건을 취급하며, 미국, 중국, 대만, 일본, 소련, 동남아시아와 유럽 일부와 중동까지 밀수 루트를 뚫었다는 남자.”
유럽과 중동까지 밀수 루트를 뚫어?
아, 월남전과 중동전에서 총화기 들여오려면 밀수 루트 뚫어야 했었네.
생각보다도 발이 훨씬 더 넓으셨구만!
“부산 지역 한정이지만, 국천그룹의 재력과 영향력 이상이라 평가되는 부산의 거물.”
“······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국천그룹이라면 재계 서열 7위 기업 아니에요? 왕자표 고무신과 운동화로 히트 친 부산의 향토 기업.”
“그래.”
국천그룹은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이었다.
“국천그룹은 계열사만 21개, 연 매출이 8조 원대, 직원만 38,000명이 넘지 않아요?”
“그래.”
국천그룹은 무역상사부터 제화, 방직, 시멘트, 섬유, 종합기계, 철강, 물산, 제철, 건설, 토건, 개발, 리조트, 전자, 싱크대, 농기계, 증권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재계 서열 9위라는 우광과 비교하면 계열사 수는 적지만, 내실은 그보다 더 건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국천그룹보다 밀매왕을 더 윗급으로 쳐준다는 말이에요?”
“그래.”
할아버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말이 돼요?”
“말이 안 될 것도 없지.”
할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국천제화의 왕자표 고무신이 크게 히트한 게 50년대 일이다. 그때에도 이미 국제시장과 부산항을 장악한 밀매왕이 더 거물이었어.”
“하지만 국천제화는 이후 왕자표 고무신과 운동화로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해외 시장에도 수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잖아요?”
“그렇지.”
“밀매로 크기엔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밀매왕이 날고 기어도 국천그룹 총수에는 견주기 어렵지 않나요?”
재벌이 왜 재벌인가.
돈만 많다면 졸부라고 부르지, 재벌이라 부르지 않는다.
돈은 물론 한국사회에 권력과 영향력을 함께 행사할 수 있을 때에야 재벌이라 칭한다.
“모르는 소리. 국천그룹 양정문의 뒷배가 밀매왕이야.”
“······그 반대가 아니고요?”
“국천그룹 주식의 반은 밀매왕이 쥐고 있을 게다.”
“네?”
“우리나라 재벌기업 중에 남의 돈 안 빌리고 큰 기업이 몇이나 될 것 같냐? 국천그룹 부채율이 900% 정도 될 거다.”
할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따지면 은행보다 밀매왕이 훨씬 알차게 챙겨먹었지.”
“밀매왕은 사채엔 손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사채가 아니고 투자. 대주주거든.”
“······.”
“부산에서 밀매왕보다 현금 많이 가지고 있는 자가 또 있을까 싶은데.”
그러고 보니 고등어 선단이랑 원양어업으로 떼돈 번다고 들었다.
세금 한 푼 안 내는 밀수업은 또 어떻고.
다 현금 장사였다.
“국천그룹을 비롯해서 부산 지역 향토기업들의 주식을 잔뜩 가지고 있다더군.”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내가 사채시장의 거물이 되어 기업투자의 큰손으로 이름을 날릴 때에도 이에 관한 보고는 들어본 적 없는데?’
이유를 곰곰이 떠올려 봤더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아, 내가 어릴 때 국천그룹은 이미 정권에 밉보여서 공중분해된 지 오래였구나.’
밀매왕을 본 것도 이번 생이 처음이다.
내가 활약하기 이전 세대의 거물이었다.
풍문으로는 귀가 따갑게 들어봤지만, 사채시장과는 큰 인연이 없어서 스승님과 깊이 얽힐 일도 없다 보니.
“밀매왕이 참 영리한 게, 죽어도 절대로 혼자 죽지 않겠다며 정재계를 그물처럼 묶어서 대마불사판으로 만들어 놨다더라.”
아닌 게 아니라 밀매왕은 부산의 정재계 유명인사들을 꽉 잡고 있었다.
밀매왕의 뇌물 장부와 진술서를 보는데, 나조차도 순간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오랜 세월 위아래로 골고루 많이도 뿌려놨구나 싶어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계 인사치고 밀매왕의 뒷돈을 안 받아먹은 인사가 없더라.
“괜히 부산의 패자라 불리는 게 아니지. 이제껏 국제시장과 부산항을 탐내는 놈들이 오죽 많았겠냐? 그걸 다 쳐내고 여지껏 버텨낸 것만 하더라도 보통 위인이 아니야.”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할아버지, 그럼 밀매왕이 곤란해지면 국천그룹이 제일 먼저 나서겠네요?”
하지만 이번에 밀매왕이 잡혀갔을 때, 국천그룹은 딱히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거든.
부산시장,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까지 난리를 치는데도.
“흐음, 보통은 그 반대였지. 국천그룹 양정문이는 정치질엔 영 젬병이거든.”
“할아버지만큼은 아닐 것 아니에요?”
“양정문이 그놈 이쪽으로는 나보다 훨씬 더 맹탕이야.”
할아버지는 씩 웃었다.
“나야 정치머리가 영 없다는 걸 인정하고 정권에서 돈을 달라면 달란 대로 내줘서 중간이라도 가는데, 국천그룹 양정문이는 그런 꼴을 못 보거든.”
문득 국천그룹이 어떻게 해체됐는지 떠올랐다.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순직자 유자녀를 위한 장학재단 연간 운영자금으로 100억 원을 확보하기 위해, 신군부는 재벌 그룹들을 모아놓고 자발적인 모금을 강권했다.
상위 대기업들이 각각 15억, 12억 등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는데, 국천그룹 양정문 회장은 재계 서열 7위 그룹의 수장이면서도 5억 원, 그것도 전액 어음으로 퉁치려 했다.
그렇게 정권에 밉보였고, 재벌 길들이기 일환으로 국천그룹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국천그룹 주식을 반이나 가지고 있다면 갑작스럽게 그룹이 해체될 때 밀매왕이 받은 타격도 제법 컸겠는데?’
그래서였나?
과거 밀매왕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었다.
밀매왕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도 없었다.
‘그럼 밀매왕의 그 많던 재산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의문이 남았다.
“그런 밀매왕이 순순히 네 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고? 어림도 없지.”
할아버지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만한 사내가 남의 밑에서 수족 노릇을 자처할 리가 없지 않겠느냐?”
띵동.
할아버지 댁에서 일을 보는 안성댁이 급하게 달려나왔다.
“회장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 딱히 잡아놓은 약속이 없는데?”
“부산에서 올라온 고동언이라며 선물을 한가득 들고 오셨어요.”
“뭐?”
할아버지가 밥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부산의 고동언?”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밀매왕이 왜 우리 집에 선물을 들고 찾아와?”
뭐? 밀매왕의 이름이 고동언이었어?
“생물 고등어, 냉동 고등어, 자반 고등어에 참치, 전복, 랍스터, 해삼, 멍게까지. 싱싱한 놈으로 몇 박스나 들고 오셨네요.”
“얼른 들어오시라고 해라!”
* * *
“처음 뵙겠습니다. 고동언입니다.”
“차태성입니다.”
할아버지와 밀매왕이 악수를 나눴다.
“이렇게 보는 건 초면인 것 같은데. 이 사람 집엔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도련님께 아직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얘기?”
“제가 도련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농담이 아니고?”
“제가 도련님께 구명지은을 좀 입었지요.”
“······?”
할아버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이게 웬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아, 재수 없게 공권력의 대재앙을 직격으로 맞았던지라.”
“······.”
“한순간에 조직이 와해되고, 간부 전원이 끌려가고, 창고는 죄다 털린 데다, 저마저 중정 물고문실에 잡혀가지 않았겠습니까.”
“허······!”
할아버지가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밀수 조직 보안이 워낙 철저해서 창고는 소재 불명이고, 간부조차 한꺼번에 모이는 경우가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저 역시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지요.”
“간부들 신원마저 베일에 싸여서, 나조차도 당신 이름 석 자나 간신히 알고 있는 처지에······.”
“그러니까 말입니다. 재주도 좋게 절 직접 찾아와 거래부터 고용계약서 작성까지 일사천리로 끝내시더라니까요?”
밀매왕은 날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30년 동안 부산에 그물처럼 만들어놓은 세력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부산의 주요 인사들의 순식간에 장악, 부산 세력도를 열흘 만에 재편성하는 인물이 나타났는데.”
“······!”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
할아버지는 숨을 들이마셨다.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빠져나갈 길 없는 외통수였던지라. 속수무책이었습니다.”
“······!”
“그렇게 중정 물고문실에서 죽다 살아나온 참입니다. 덕분에.”
“······!”
밀매왕은 웃으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항복하는 시늉이었다.
할아버지는 절로 앓는 소리를 내었다.
“중정부장이 작심하고 부산에 내려가 칼을 빼 들었다는 소식이라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대통령 각하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부산을 요란하게 휘젓는다더니.”
할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딱히 대단한 지지기반도 없이 청와대 경호실장과 육군보안사령관과 어깨를 견주며 권력 암투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 보통내기가 아닐 거라 여겼습니다만······.”
할아버지가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그 정도로 대단한 수완을 가졌을 줄은 짐작도 못 했습니다. 단번에 밀매조직을 와해시키고, 간부들을 일망타진하고, 부산의 세력도를 열흘 만에 재편성할······.”
“잘못 짚으셨습니다.”
밀매왕은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의 안색이 변했다.
“그럴 리가요. 그게 아니라면 해운회사를······.”
“예. 부산지역 정재계 유명인사들과 제가 투자하고, 중정이 뒤를 봐주기로 얘기 끝났지요.”
“그런데 왜 우리 애를 바지사장으로 세우려 하십니까?”
“······바지사장?”
“태성의 이름값이나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면 저를 찾아오셨어야지요.”
할아버지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밀매왕께서 왜 절 찾아오셨는지 이해했습니다. 중정부장께서는 태성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신다고 하십니까?”
“······단단히 잘못 짚으셨습니다.”
밀매왕은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중정부장이 그리 대단한 사내였다면 제가 중정에 투신해서 나랏일을 돕고 있지, 이렇게 회장님께 뇌물을 싸들고 와서 인사드리고 있겠습니까?”
“······어?”
밀매왕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다시 말씀드리지요. 전 도련님께 구명지은을 입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중정부장이 아니라.”
“······!”
“당일치기로 부산에 내려와서 거래부터 고용계약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 게 누구일 것 같습니까?”
“서, 설마······!”
“중정부장께서는 그분과의 10분 면담 이후, 부산에서 열흘 동안 밤낮으로 X 빠지게 뛰어다니고 계십니다만?”
“아니, 이게 대체······!”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며 날 돌아보았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 애가 대체 무슨 수로······!”
“바꿔 말하면 차 회장님께서도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을 가능케 만드는 수완! 대단하신 분입니다.”
밀매왕은 씩 웃었다.
“대통령께 친필 교지까지 받아서 마패처럼 쓰면서, 중정부장을 수하처럼 부려먹으시던데요?”
“그, 그런······!”
“생색은 도련님이 다 냈는데, 고생은 중정부장이 다 하고 있으니. 이 고동언, 그저 감탄 또 감탄할 뿐입니다.”
나는 중정부장의 애로사항 세 가지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밀매왕을 얻었다.
그렇게 내가 제공한 것은 뇌물 장부와 치부책 일부, 회유 가능한 부산지역 주요 인사 명단.
지금 중정부장은 그 명단을 토대로 열심히 부산을 들쑤시며 제 세력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차 회장님, 듣자 하니 10년 내로 태성의 차기 총수를 결정하겠다고 공표하셨다지요?”
날 보는 밀매왕의 눈빛이 뜨거웠다.
< 부산의 패자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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