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95)
재벌집 만렙 아들-195화(195/416)
< 기꺼운 웃음 >
뜬금없이 태성의 차기 총수 얘기는 왜 꺼냈지?
밀매왕은 말했다.
“태성의 식구라면 신분, 출신, 자격을 따지지 않을 테니, 태성을 이끌 만한 능력이 있는 자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하셨다지요? 맞습니까?”
“태성의 속사정이 부산까지 흘러들어갔을 줄은 몰랐군요.”
“제가 도련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태성의 정세에도 눈과 귀를 세워야지 않겠습니까.”
“흐음.”
“어쨌거나 능력껏 뜯어먹고, 재주껏 끌어들여서, 한껏 키워 보라 하셨다기에.”
밀매왕은 은근하게 말했다.
“저 또한 도련님을 힘껏 서포트해보면 어떨까 싶더군요.”
“서포트?”
“예. 물질적으로, 세력적으로, 실적으로. 능력껏, 재주껏, 한껏 도울까 합니다.”
밀매왕은 씩 웃었다.
“필요하다면 제 주머니를 열고, 부하들을 움직여서, 실적을 채워 힘이 되어드리겠단 소립니다.”
“아니, 왜?”
“뒤늦게 도련님의 사람으로 들어가는데, 이 정도 공은 세워야 어깨 펴고 다니지 않겠습니까?”
“허어?”
“제가 이번에 부산에서 적당히 남기고 정리해서 추려온 게 꽤 됩니다. 이곳에서 새 시작 해볼랍니다.”
“진심이십니까?”
할아버지는 의아한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소나기를 피해 태성의 그늘에 잠시 의탁하더라도, 비 그치면 떠날 작정 아니었습니까?”
“소나기라······.”
우리 같은 음지 사람들에게 공권력의 대재앙이란 피할 수 없는 소나기, 아니, 태풍과도 같은 자연재해급이다.
밀매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번에 공권력의 대재앙을 몸소 겪으면서 깨닫는 바가 좀 있었습니다.”
“깨닫는 바?”
“음지에서 굴러먹다간 공권력의 대재앙에 된통 당할 수밖에 없더라.”
쓴웃음이었다.
“나름 부산에서 탄탄한 세력을 구축해놨다 자부했었습니다만.”
밀매왕은 오랜 세월 부산을 휘어잡고 있던 패자였다.
“위아래로 촘촘하게 그물로 엮어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면 위에서도 섣부르게 건들지 못하리라 계산했었지요.”
대마불사(大馬不死).
밀매왕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다들 그렇게 만들지 못해서 부러워하는 튼튼한 방어막이었다.
“그간 뿌려놓은 뇌물마저 통하지 않는 공권력의 대재앙, 위에서 내려다보듯 정교하고 세련되게 짜놓은 수준 높은 덫, 팔다리를 무참하게 하나씩 뜯어내며 숨통을 조여오는 냉정한 칼질.”
밀매왕은 눈을 감았다.
“피할 길이 없더군요.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밀매왕의 한숨이 뒤따랐다.
“물고문실에 끌려가 고문도 취조도 당하지 않았는데, 고작 열흘 사이에 30년간 공들여 만든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손끝 하나 까딱해 보지 못하고 밑바닥까지 탈탈 털렸지요.”
회한에 잠긴 목소리였다.
“알고 보니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더군요.”
“밀매왕?”
“자만하고 있었나 봅니다. 대마가 잡히면 뒤가 없다는 것을, 잡히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밀매왕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깨끗하게 패배에 승복하고 뒤를 생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뒤?”
“제가 죽은 후, 제가 잡힌 후, 제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질 손녀가 걱정되더란 말입니다.”
손녀?
밀매왕에게 손녀가 있었나?
“칼부림이 난무하는 뒷골목 세력 싸움에 아들 내외를 잃었습니다.”
밀매왕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이번 일을 겪기 전까지는 뒤를 걱정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가진 돈이 얼마고, 내 뒤를 받쳐줄 사람이 몇이고, 그간 뿌린 뇌물이며 단단히 엮인 세력이 있는데······.”
그럴 만했다.
밀매왕이 짜놓은 대마불사의 그물은 워낙 단단하고 촘촘해서 쉽게 건드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물 몇 군데가 헤지고 뜯어져도 쉽게 끊어질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죽거나 잡히고 무너져도, 내가 만든 그물이 내 사람들을 지켜줄 거라 확신했었지요.”
“음.”
“누가 알았겠습니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하늘 위엔 하늘이 있으며, 힘보다 더 큰 힘으로 그물을 찢어발기면 대마도 속절없이 죽는 것을.”
밀매왕은 씁쓸하게 말했다.
“피붙이라고는 이제 손녀 하나 남았는데, 내가 죽으면 남겨진 재산조차 건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맞는 말이었다.
국천그룹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나고, 밀매왕이 소리소문없이 모습을 감췄을 때.
밀매왕의 그 많던 재산은 간데없었고, 밀매왕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 또한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마저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던 밀수조직 간부들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손녀의 후견인이 절실해졌습니다.”
밀매왕은 장탄식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권력의 대재앙 앞에서도 부표처럼 휩쓸리지 않고, 등대처럼 우뚝 서서 앞길을 밝혀줄 만한 단단한 인물로 골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태성의 그늘에 들어오려고 하셨던 것이로군요.”
장탄식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인 것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음지 사람들만 휩쓸리는 건 아닙니다. 우리 같은 대기업도 공권력의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입니다만······.”
정권에 밉보여서 풍비박산 난 기업이 부지기수였다.
군부 정권 시절의 재벌기업은 정권의 정치자금 공급처 및 부리기 좋은 일꾼과도 같았으니까.
“그래도 이 험난한 파도를 함께 넘고자 한다면 못 넘을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밀매왕의 적극적인 도움을 기대하겠습니다. 태성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잘못 짚으셨습니다.”
“예?”
“태성이 아니라 이쪽 도련님입니다만?”
밀매왕은 손가락으로 나를 콕 가리켜가며 정정했다.
밀매왕은 더욱 은근하게 말했다.
“차 회장님, 생각해 보십시오. 국천그룹에 투자했던 주식을 정리하고 도련님 앞으로 투자한다면?”
“오?”
“고등어 선단과 원양어선을 정리하고 해운회사에서 운용할 선박으로 돌린다면?”
“호오?”
“제가 뱃길도 잘 알고, 배도 잘 몰고, 밀수 루트도 꿰고 있고, 영업과 로비도 제법 잘합니다.”
“호오!”
“태성의 둘째 아드님이 운영하는 태성유통의 물류센터가 부산에 크게 자리 잡고 있지요? 애로사항이 제법 많다면서요? 그거라면 제가 간단히 해결해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만.”
할아버지는 옳거니! 했고, 밀매왕은 흐뭇하게 웃었다.
“제가 부산항과 부산의 노른자 땅을 꽉 잡고 있다는 것도 아실 테고요?”
“그렇지요!”
“태성을 밀어주고자 작심한다면 순풍에 돛 단 듯이 태성이 쭉쭉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할아버지의 눈에 욕심이 어린다.
부산은 국천그룹이 꽉 잡고 있는 터라 태성이 뿌리내리기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부산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해외 물류의 많은 양을 소화하는 게 부산항이었다.
태성의 울산공업단지에 들어가는 수입품과 나오는 수출품도 부산항을 통해 처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태성의 부산 진출이 아주 수월해질 것이라는 뜻이지요.”
“오!”
잠깐.
웨이러 미닛.
나는 손을 들었다.
“맨입으로요?”
먼저 건네오는 제안이 너무 달콤할 땐 꿍꿍이속이 따로 있는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밀매왕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말했잖습니까. 저는 뒤를 걱정하고 있다고요.”
“설마 손녀의 후견인으로 절 고르신 건가요?”
할아버지는 기겁했다.
“아니, 왜 하필 우리 정혁이를 손녀의 후견인으로 붙이려 하십니까?”
“안 됩니까?”
“우리 정혁이는 고작 여덟 살이란 말입니다!”
“잘됐군요. 마침 우리 애도 여덟 살이거든요.”
“허어, 여덟 살한테 여덟 살짜리 후견인을 붙이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안 될 것도 없잖습니까?”
밀매왕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고심해봐도 이쪽 도련님만큼 든든하고 전도유망한 인물이 또 없더란 말이죠?”
“허?”
“제가 오죽하면 터전인 부산을 버리고 재산 챙겨서 도련님을 따라 서울까지 왔겠습니까?”
“그게 다 우리 정혁이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전 사람을 보고 투자합니다.”
“허어······!”
할아버지는 기가 차서 말문이 턱 막힌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해 볼게요.”
“정혁아!”
나도 강우를 키워봤기에 안다.
행여 강우가 뒷골목 싸움판에 노출되지 않도록 내 얼마나 노심초사했었는데.
“할아버지, 코딱지만 한 유산도 날로 먹겠다고 똥파리가 꾀어들어 아귀다툼이 벌어져요.”
나는 밀매왕은 똑바로 응시했다.
“밀매왕처럼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죽으면요? 얼마나 많은 하이에나 떼가 혈안이 되어서 달려들 거예요. 걱정이 될 만하죠.”
“맞습니다.”
“부산에서 날고 기는 인사들이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도 않을 테고요.”
“예.”
“믿었던 간부들도 공권력 앞에서는 꼬리를 말고 제 살길 찾아 배신했으니까요.”
“창고까지 탈탈 털어서 내놓더군요.”
밀매왕이 재차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간부들도 못 믿는데, 저는 믿을 수 있고요?”
우리가 몇 번이나 봤다고.
믿음을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교류였지 않나?
“예. 믿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매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단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서.
그러니 더욱 황당할 수밖에.
“아니, 왜요?”
“제가 모든 것을 다 내놓을 테니 식구들 목숨만 살려달라고 엎드렸을 때 말입니다.”
밀매왕은 백기 투항했었다.
내 협박에.
“충분히 힘으로 강탈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굳이 물건값에 수고비, 운송비, 위험수당까지 챙겨가며 물건값을 치르신 건 도련님이 유일하셨습니다.”
밀매왕은 웃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입니다. 이래 봬도 신용거래만 취급하는 장사치라서.”
“대당 일억짜리 탱크를 천만 원으로 후려쳤는데도요?”
“그 수완에 홀딱 반했다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절 상대하면서 그 정도로 화끈하게 후려쳐서 거래할 배짱이라면 다른 건 더 볼 것도 없지요.”
“배짱 좋게 손녀분 뒤통수를 후려치면 어쩌려고요?”
“도련님께서 뒤통수를 후려치기로 작정했다면 누가 그걸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당해본 제가 제일 잘 압니다.”
밀매왕은 호탕하게 웃었다.
“따지고 보면 남겨진 우리 애를 봐달라는 조건으로 도련님께 내놓기로 작정했던 것들입니다. 목숨값이랄 수도 있겠군요.”
“사람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인데도요?”
“다른 건 몰라도 목숨값을 떼먹으면 쓰나요. 그런 상종도 못 할 인간쓰레기들과 저를 동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합니다.”
밀매왕은 허리를 숙였다.
“저는 이제 곧 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중정부장에게 제안했다.
김형원의 은닉 재산을 찾는 데 쓰려면 밀매왕을 풀어줘야 한다고.
밀매왕은 미국으로 넘어가 코라이 게이트의 뒷수습을 하는 한편 태성의 미국 유통망을 뚫고, 한국의 로비스트들을 구명하기로 약속했다.
“손녀분은 데려가지 않으시려고요?”
“제법 강단 있고 똘똘한 앱니다. 곁에 두고 잘 가르치면 제 한몫은 할 테니,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밀매왕은 허리를 폈다.
“후견인 계약서나 한 장 써주시렵니까?”
안 그래도 써주려고 했다.
역시 말보다는 문서지.
할아버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힐끔 보았다.
“밀매왕답지 않은 거래로군요. 너무 손해 보는 장사 아닙니까?”
“손해? 글쎄요. 저는 미래를 위해 화끈하게 투자하는 스타일이라서요.”
밀매왕은 야망 넘치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크게 기꺼워 껄껄 웃었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은 늦은 시각에 소파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로얄 살루트.
해외에서는 그리 비싼 술은 아니었으나,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보호무역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서 구하기 어려웠다.
쪼로록.
대통령이 직접 로얄 살루트를 술잔에 따르자, 청와대 경호실장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각하, 제가 따르겠습니다.”
“받아.”
대통령이 술을 하사할 만큼 큰 공을 세운 게 없었기에.
청와대 경호실장은 눈치를 연신 보며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재국이 녀석은 요즘 부산을 휘젓느라 정신없이 바쁜 모양이야.”
중정부장에 관해서였다.
“거슬리십니까? 제가 불러다 군기 잡습니까?”
“놔둬. 술 한잔 마시고 눈 감아.”
청와대 경호실장은 흠칫했다.
대통령이 웬일로 술을 거저 내어주나 했건만.
중정부장을 위해서였다니.
“그놈 부산에서 꿍꿍이 협잡질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대로 두실 겁니까?”
“꿍꿍이 협잡질이라니? 잘못 알고 있어.”
대통령은 웃었다.
“재국이가 이런 걸 보내왔다.”
탁.
대통령이 내어놓은 보고서 서류철.
청와대 경호실장은 급히 읽어내렸다.
“허······!”
“재국이 녀석, 재주도 좋지. 내려간 지 얼마나 됐다고 부산을 단번에 휘어잡은 모양이야?”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총선을 위해 발 벗고 충성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부산시청, 부산지검, 부산경찰서는 물론이거니와 향토 기업들까지 충성 서약을 적었다.
대통령이 크게 기꺼워서 양주를 꺼낸 이유였다.
< 기꺼운 웃음 > 끝
ⓒ 오소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