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96)
재벌집 만렙 아들-196화(196/416)
< 귀한 손님 >
청와대 경호실장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부산에서 충성 서약을 받아냈다는 건······.”
“부산의 민심을 하나로 모아 결집시키겠다는군.”
대통령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대선까지 귀찮은 잡음이 들릴 일 없게 철저히 단속하겠단다.”
“중정부장이······.”
“안 그래도 부산 경남 쪽 돌아가는 상황이 영 심상치 않았단 말이지.”
대통령은 눈살을 작게 찌푸렸다.
“내가 괜히 민란과 쿠데타 걱정을 하는 게 아니야.”
청와대 경호실장은 반박하지 못했다.
최근 대통령이 얼마나 부산과 경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곁에서 지켜본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쪽 민심이 제법 사나워.”
유신 헌법 제정 이후 부산에서도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 등이 일어났다.
제1차 오일쇼크로 인한 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하고, 중화학 공업에 대한 진흥정책을 펴면서 그에 따른 투자가 급속히 불어났다.
한정된 자본을 나눠 써야 하는 입장에서, 중화학 공업이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자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커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경공업의 중심이었던 부산과 마산 지역의 많은 중소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부산과 경남 지역 민심이 크게 악화되었다.
“부산항을 단속하는 병력만 해도 무시할 게 못 되고 말이야.”
부산항은 국내 최대 국제항으로서 해안 및 항만 관리에 힘쓴다.
3함대 소속 부산항만방어전대가 이곳 해안을 순찰하고.
제7기동전단, 해양경비대, 진해기지사령부가 연계하여 감시한다.
해병대 제1해병사단도 해안신속전개부대를 지원한다.
항구 안쪽 육상은 육군 53사단 관할이며, 선박이 입항할 때 밀입국자가 발생하는지 검문한다.
“거기에 밀반입된 무기가 대량으로 발견되었어.”
총기 8만 정, 전차 9대, 화약 및 폭탄 10톤.
“터지기 직전 화약고라 할 수 있지. 그런 부산을 이렇게 단시간에 장악해 고삐를 틀어쥔 거다.”
대통령이 로얄 살루트를 꿀꺽꿀꺽 마셨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는데도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대선을 앞두고 재국이가 아주 큰 일을 해주었어.”
부정할 수 없는 큰 공 앞에서 청와대 경호실장은 대꾸조차 못 했다.
최근 들어 대통령의 기분이 가장 좋아 보인다.
“덕분에 염려를 크게 덜게 되었군.”
“그렇다면 제가 축하주 한잔 올려야지요.”
청와대 경호실장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로얄 살루트 병을 들었다.
쪼로록.
청와대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술잔을 채웠다.
그 모습을 대통령은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대선이 코앞이야.”
차가운 목소리였다.
“애써 잠재운 민심을 쓸데없이 들쑤시지 말란 소리야.”
중정부장을 건들지 말라는 날 선 경고였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각하, 염려 놓으십시오.”
테이블 밑에 감춘 주먹이 다시 한번 꽉 쥐어졌다.
손등에 튀어나온 혈관은 터질 듯했고,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은 하얗게 질렸는데도.
청와대 경호실장은 웃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때 의미 없는 분란을 일으켜 각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면 쓰겠습니까. 충심으로 보필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대통령은 다리를 꼰 채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오늘따라 유독 향과 맛이 부드럽고 달달하다.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다는군.”
“뭐가 말입니까?”
“부산 정리 후 복귀까지.”
“······예.”
청와대 경호실장은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가 콱 막히는 듯했다.
부산은 서울과 함께 그가 특히 공들여서 들여다보던 곳이었다.
“돌아오면 같이 축하주 한잔하자고.”
“······예.”
“들지.”
대통령은 눈짓하자, 청와대 경호실장도 로얄 살루트가 든 술잔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벌컥벌컥벌컥!
청와대 경호실장은 독한 양주를 냉수 마시듯 해치웠다.
오늘따라 술이 유독 쓰고 독했다.
* * *
띵동!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대문을 벌컥 열었다.
예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나는 씩 웃었다.
“어서 와.”
“어떻게 알았어?”
“뭐가?”
“초인종 누르자마자 문 열어줬잖아.”
예린이가 내 주변을 힐끔거렸다.
마치 내가 뒤에 뭔가를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샤샤샥 살핀다.
“혹시 오빠도 차사님이 가르쳐주고 그래?”
뭐래?
그 자식은 이승 일에 관여치 않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종일 드라마나 처보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딱 열 수가 있지?”
그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너 오늘 액막이하러 오는 날이잖아.
“신기해. 헤헤헤.”
예린이는 배시시 웃으며 대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 예린이가 우뚝 멈춰 섰다.
“어?”
예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주변을 샤샤샥 살폈다.
“왜 그래?”
“귀한 손님 안 왔어?”
“손님?”
“엄청 무시무시한 사람. 그치만 오빠한테 아주아주 큰 힘이 되어줄 사람. 오늘 올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사람이 누가 있지?
“오늘 방문 약속 없는데?”
“손님 맞이하려고 미리 나와 있던 거 아니었어?”
“······용하네.”
“맞지? 역시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예린이 어깨에 앉은 투명한 붉은 주작이 삐약삐약 울어댔다.
나는 손가락으로 예린이의 이마를 꾹 눌렀다.
“그래.”
너 맞이하려고 나왔다고, 너.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냐?
예린이가 단풍잎 같은 두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아얏! 아파!”
“엄살은.”
“아니야.”
“자꾸 아니야 할래?”
“아니야!”
“너 그거 습관이다?”
“아팠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손톱으로 찍은 것도 아니고.
“손 치워 봐.”
그제야 예린이는 손을 내렸다.
새하얗고 볼록하니 예쁘장한 이마가 드러났다.
빨개진 손자국 하나 없이 매끈했다.
예린이가 힐끔힐끔 눈치를 보았다.
“호- 해주면 괜찮아질 것 같애.”
귀가 빨개진 채 눈을 다소곳하게 내리깐다.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허······!’
요 쪼끄만 게 벌써부터 사람을 홀리려 드네.
나는 무방비하게 드러난 예린이의 이마를 다시 한번 꾹 눌렀다.
“아얏!”
“왜 안 하던 짓이야?”
“씨이······.”
예린이가 단풍잎 같은 손으로 이마를 감싸쥐면서 울먹거렸다.
“오빤 바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뭘 모르는데?”
“오늘 오는 귀한 손님이랑 어떤 인연으로 얽혔는지도 모르면서······.”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무당도 아닌데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오빠랑 인연이 깊게 얽힌 사람이란 말이야······.”
“그래?”
그럼 더 볼 것도 없겠네.
악연이구만?
나랑 깊이 얽힌 인연이라면 죄다 배신 아니면 원한이거든.
천벌 받은 덕에 얽히는 인연마다 워낙 박복했어야 말이지.
“흐으응, 누군지 궁금해 죽겠네.”
예린이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고개를 홱 들어 올렸을 땐 왠지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좋아! 오늘은 액막이를 천천히, 아주 처어어언천히 할 거야!”
결론이 왜 그렇게 나?
대체 이 조그만 머리통 속에는 뭐가 들었나 몰라.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니까?
나는 예린이의 작은 머리통을 슥슥 쓰다듬었다.
“애쓴다.”
“씨이······!”
“들어가자. 참치회 다 녹겠다.”
“······응?”
“너 온다고 미리 한 상 차려놨어. 마침 싱싱한 참치랑 해산물이 들어왔거든.”
“나 회 못 먹는데?”
“그럼 해산물 먹어. 랍스터도 있고, 전복도 있고.”
“그런 것도 잘 못 먹는데?”
애기 입맛이라 이건가?
예린이가 배시시 웃는다.
“라면 먹어도 돼? 아님 짜장면!”
“허······!”
너랑 같이 반지하 셋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때 말이야.
아픈 네가 자꾸 라면만 먹겠대서 진짜 속상했었거든.
내 빤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괜한 걱정을 끼친 것 같아서.
“할머니는 절대 못 먹게 한단 말이야.”
이젠 주머니 걱정할 것 없이 내가 너 호강시켜 줄 수 있어.
맛있는 거 먹으러 비행기 타고 갈 수도 있는데.
넌 왜 라면이나 짜장면을 먹겠대.
“랍스터 전복 라면이라고 들어봤어? 삼선 쟁반짜장은 어때?”
어쩌겠어.
애기 입맛을 포기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에 맞춰 몸보신시켜주면 그만이지.
예린이가 눈을 반짝였다.
“맛있는 거야?”
“응.”
“그럼 나 그거 먹을래. 참! 이거······.”
예린이가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작은 비단 주머니를 끌렀다.
한지로 곱게 싼 무언가가 나왔다.
“오빠 주려고 열심히 모았지!”
옥춘당이었다.
돌잔칫상, 회갑연상, 전통혼례상, 제사상에 올리는 알록달록한 사탕 말이다.
쌀가루와 엿에 색소를 섞어 만든 동글납작한 사탕류 과자.
단맛이 밋밋해서 애들에게 썩 인기 있는 간식거리는 아니었다.
“이 썩는다고 하루에 하나씩만 받을 수 있는 거야. 헤헤헤.”
옥춘당이 다섯 알.
초코 좋아하고, 쿠키 좋아하고, 빵이랑 케익도 좋아하고.
군것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인데.
이걸 어떻게 참고 모았대?
“아껴 먹어야 해? 다음에 또 모아올게.”
나는 예린이가 내민 옥춘당을 잠자코 받아 들었다.
내게 내어주는 호의였으니까.
대신 나도 동전 지갑을 열었다.
가끔 아버지 손에 쥐여주곤 하는 딸기맛 사탕을 꺼냈다.
껍질을 까서 사탕만 예린이 입에 쏙 넣어주자, 예린이가 눈을 크게 떴다.
“마, 맛있어······!”
밋밋한 옥춘당만 먹고 다니던 애가 딸기맛 사탕을 만났더니.
신세계를 영접한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동전 지갑을 탈탈 털어서 딸기맛 사탕을 전부 예린이의 비단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실컷 먹어.”
“하루에 하나씩?”
“이 썩어도 되니까 아껴 먹지 말고. 어차피 빠질 유치, 좀 썩으면 어때?”
예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숨을 들이마셨다.
“다음에도 사줄 테니까.”
“우와아아······!”
그렇게 두 손 꼭 잡고 눈 반짝거리면서 볼 것 없다.
내가 동전 지갑만 털어도 동네 구멍가게 군것질거리 정도야 진열장 맨 아래서부터 위 꼭대기까지 다 살 수 있거든?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나와 같이 나란히 집으로 들어가다 말고 예린이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예린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손님 왔다······.”
“올 사람이 없다니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왔는걸. 문··· 열어줘야겠지?”
방금 전까지 딸기맛 사탕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던 녀석이.
어째서인지 똥 마려운 똥강아지 같은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물었다.
“열어주지 마?”
“아니야.”
예린이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무시무시하지만 오빠한테 엄청엄청 도움이 되는 사람인 걸······.”
“그럼 됐어. 무시해.”
나는 예린이의 손을 잡고 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하지만 예린이는 또 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모른 척하면 안 되는데······.”
“예고도 없이 찾아왔는데 문전박대 좀 할 수도 있지.”
“아니야.”
“아니야 금지랬다.”
“아니··· 흐으응. 깊이 얽힌 인연이라니까······.”
“가자.”
띵동! 띵동!
초인종 소리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었다.
하지만 예린이는 고개를 저었다.
“문 열어줘, 오빠.”
“왜? 싫다며?”
“어차피 피할 수도 없는 인연인걸······.”
예린이는 잡혀있던 손을 슬쩍 빼어 내 등을 떠밀었다.
“얼른. 내가 궁금해서 그래.”
“······대체 누군데?”
되돌아가서 대문을 벌컥 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입가까지 쭉 찢어진 칼자국 흉터가 꽤 인상적인 남자였다.
“밀매왕 아저씨?”
예린이가 말했던 엄청 무시무시한, 그렇지만 나한테 아주아주 큰 힘이 되어줄 사람이란 게 밀매왕이었어?
밀매왕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자, 깊게 패인 칼자국 흉터가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예린이가 왜 무시무시한 사람이라고 했는지 바로 납득!
“도련님께서 직접 대문을 열어주실 줄이야. 이거 영광인데요? 하하하! 받으십시오.”
밀매왕이 들고 있던 것을 대뜸 내게 떠안겼다.
“웬 떡이에요?”
“저기 옆집으로 이사 왔습니다.”
이사 떡이었다.
“거기 김 의원님 댁인데요?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퇴근하시던데요?”
“아, 그 집 사람들이라면 오늘 새벽에 내보냈습니다.”
밀매왕은 엄지로 제 가슴팍을 가리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서 우리가 도련님의 새 이웃사촌이 되었다는 말씀.”
그러니까 김 의원을 강제로 쫓아내고 옆집을 차지했다는 말이구만?
무슨 수로 김 의원을 내쫓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왜 옆집을 차지했는지가 더 중요하니까.
“무슨 꿍꿍이에요?”
“꿍꿍이라니요? 제 상황을 잘 아시잖습니까. 전 곧 미국으로 갑니다.”
그야 중정부장과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김형원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고, 태성의 미국 유통망을 뚫고, 억류된 한국의 로비스트를 구하는 임무를 받았다.
“하나뿐인 피붙이를 한국에 두고 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져야 말입니다. 이왕이면 믿음직한 후견인 가까이에 붙여둬야 안심할 수 있지요.”
밀매왕이 호탕하게 웃었다.
“재영아, 인사드려라. 네 후견인 되는 분이시다.”
밀매왕 뒤에서 말총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여자애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흰 피부에 크고 까만 눈동자.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생긴 여자애였다.
가는 눈썹에 오똑한 코와 붉은 입술, 눈 밑의 미인점이 도드라져 보였다.
이대로만 자라면 상당히 앙칼지고 차가워 보이는 미인이 될······.
‘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부산 국제시장 뒷골목에서 피범벅이 된 채로 처음 만났던 그 여자다.
우리는 서로의 목숨을 한 번씩 구해준 바 있었다.
< 귀한 손님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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