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98)
재벌집 만렙 아들-198화(198/416)
<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볼 것 없다 >
고재영이 교실 뒷문으로 들어왔다.
창가 맨 뒤쪽이 내 자리니까 거의 일직선 코스였다.
나는 보던 결재서류를 내려놓았다.
나와 고재영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무슨 일이야?”
나는 의자를 빙글 돌려 바닥에 내려섰다.
고재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고재영과 내 시야 사이에 조그만 머리통들이 끼어들었다.
우리 반 애들이었다.
“정혁이 착한 애야!”
“우리한테 이렇게 사탕이랑 초코바랑 쿠키도 줬어!”
“가만히 있는 애를 못살게 구는 애가 나쁜 애야!”
“싸우는 거 나빠!”
달달 떨면서도 모여서 외친다.
우리 반 삐약이들이 얻어먹은 간식값을 하겠다며 막아선 건가?
뜻밖의 호의였다.
“왜 남의 반에서 행패야?”
“너희 반으로 돌아가! 선생님 부를 거야!”
“우리 반 선생님은 폭군 티라노거든? 엄청 무서워!”
고재영이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삐딱한 눈으로 애들을 바라봤다.
“비켜.”
“오, 오지 말라고 했어!”
“비키라고.”
“어헉!”
깡 좋게 막아선 것도 잠시.
고재영이 전진하면 딱 그만큼 주춤주춤 물러선다.
어느새 옆 반 애들까지 몰려와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리 반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또 싸우려나 봐.”
“1반 오야붕이 쟤야? 저기 엄청 잘생긴 애.”
“그래서 전학생이 목표 삼았나?”
“어떻게 1반은 애들이 똘똘 뭉쳐서 막아선다?”
“1반 단결력 장난 아니네. 오야붕 진짜 센가 봐!”
오야붕은 무슨.
담임의 극단적인 편애가 쏟아지니, 애들은 날 건들 엄두도 못 냈다.
“괜찮으니까 비켜 봐.”
내가 애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 고재영과 마주 섰다.
고재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날 봤다.
“재주도 좋다? 똘마니들 진짜 많네.”
“똘마니라니. 같은 반 친구들이야. 무례한 말은 삼가해.”
나는 벽시계를 힐끔 봤다.
“쉬는 시간 거의 다 끝나가는데. 용건은?”
“······.”
“날 찾았다며.”
나는 고재영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옆 반 애들이랑 싸우고 오느라 그런지 행색이 엉망이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 어깨를 들썩이며 고르는 숨, 땀 때문에 얼굴에 붙어있는 잔머리, 헝클어진 말총머리, 흐트러진 옷차림.
“지쳐 보이는데.”
“상관할 것 없잖아.”
“참고로 난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는 주의야.”
“누가 싸움 걸러 왔대?”
고재영은 인상을 팍 썼다.
“영어책 좀 빌려줘.”
“······.”
내 앞을 막아서던 우리 반 삐약이들은 물론 복도와 문가에 바글바글 몰려든 다른 반 애들까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영어책?”
“아니, 영어책을 빌린다고 이 소란을 피웠단 말이야?”
“그럼 옆 반 오야붕들이랑은 왜 싸운 건데?”
고재영은 땀에 달라붙은 잔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국민학교 1학년이 영어를 배울 줄은 몰랐네.”
그건 그렇긴 하지.
우광사립학교가 학업 쪽으로는 좀 유난스럽긴 해.
다른 교과서는 교육부 공통일 텐데, 학교 재량 수업이란 게 또 따로 있거든.
“아는 애가 너뿐이라······ 아, 짜증 나.”
이게 뭐라고 굴욕적이란 표정을 짓고 있어.
나는 피식 웃으면서 책상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영어 교과서와 영어 노트를 꺼내서 고재영에게 내밀었다.
“자.”
띵동댕동~
수업 종이 울렸다.
고재영은 홱 돌아섰다.
“신세를 지는 건 오늘만이야.”
곧 죽어도 고맙단 소리는 안 한다니까.
역시 내가 아는 그 여자가 맞는 것 같단 말이지.
-신세를 지는 건······ 이번만이야.
피투성이가 된 채 내 등에 업혀가면서도 저런 소리를 내뱉더니.
어릴 때도 저 말버릇, 똑같구만?
* * *
요 며칠 고재영 때문에 학교생활이 피곤해지고 있다.
우리 반 삐약이들의 관심이 죄다 이쪽으로 쏠렸기 때문이었다.
“정혁아, 너 그 전학생이랑 어떻게 알아?”
“둘이 친해?”
“그러니까 영어책을 빌리러 왔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책을 빌려주지 말 걸 그랬나?
“너랑 걔랑 싸우면 누가 이겨?”
글쎄. 제대로 안 붙어봐서 모르겠는데?
‘그러고 보니 그 여자, 칼 쓰는 솜씨가 특히 예술이었지.’
단검의 명중률도, 총기를 다루는 실력도 상당한 수준.
숙련된 전문 킬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그 여자에게 배웠던 삼 개월 수련 덕을 크게 봤었군.’
실전무술을 체득하기엔 삼 개월이란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래도 종일 매달리니까 무기 다루는 솜씨가 눈에 띄게 좋아지더라.
이후 나는 꾸준히 군용 살상무술을 파고들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뒷골목에서 싸움깨나 하는 놈’에 불과하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이 바닥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전학생, 우리 반만 빼고 1학년 오야붕을 전부 꺾었어!”
“전학 온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소문을 듣고 쳐들어왔던 2학년 오야붕도 벌써 다섯이나 깨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1학년이 2학년을 이겨?”
“그것도 여자애가!”
애들이 잔뜩 흥분해서 콧김을 내뿜는 이유였다.
‘하기야 이런 꼬맹이 시절엔 발육상태 1년 차이란 상당히 크니까.’
키와 몸무게에서만 차이가 나는 게 아니었다.
반사신경과 근육 조절, 균형감각과 운동능력에서 오는 차이는 더 컸다.
‘꼬맹이 시절엔 여자와 남자의 신체능력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진 않을 때긴 하지. 그래서 고재영도 제법 맞서 싸울 수 있겠지만.’
어릴 때엔 간혹 남자보다 키 크고 힘세서 발육 상태가 좋은 여자애들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남녀 간의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그래도 엄연히 성별 차이라는 게 존재할 텐데. 애들도 그걸 아니까 저렇게 열광하는 거겠지.’
애들은 고재영의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루에 한 번꼴로 뉴스가 터졌다.
어제는 누구랑 싸워서 이기고, 오늘은 또 누구랑 싸워서 이기고.
죄다 이런 소식들뿐이긴 했지만.
“걔 몸놀림이 장난 아니던데. 중국무술 같은 거 배웠나?”
“그것까진 모르겠는데, 태권도는 확실히 아니야. 그런 조르기는 안 배우거든.”
“설마 프로레슬링인가? 이렇게 쾅! 저렇게 퍽! 조인트를 예술로 까!”
“유도일지도 몰라. 멱살 잡아서 패대기치는 거 보니까 전문적이더라.”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밀매왕이 고등어 손질하던 칼을 내던져 꽂았을 때, 유종태도 알아보지 않았던가.
-용병 생활을 오래 하셨나 봅니다? 이스라엘 실전무술이군요.
이스라엘의 실전무술, 크라브 마가.
뒷골목이나 길바닥에서 벌어지는 실전 적응 스트리트 파이트를 체계화시켜서 유대인들의 방위수단으로 교육되기 시작한 무술이다.
‘생존에 중점을 둔 현대 군용무술이니까 살상력은 탁월하지.’
미국의 CIA, FBI, 델타포스를 필두로 점차 훈련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의 특수부대와 PMC 및 해외 파병부대에서도 가르친다.
“설마 이러다가 전학생이 우리 학교 오야붕들 전부 다 쓰러뜨리는 거 아니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6학년 형아들한테는 안 돼.”
“걔 손에 돌이라도 들린다고 생각해 봐. 6학년 형아들도 대가리 깨질걸?”
“야, 덩치 차이가 이만하다고! 걔가 돌 들면 6학년 형아들은 쇠 파이프 들어!”
아무리 전학생이 강해도 누구한텐 안 된다는 둥, 누가 더 세다는 둥.
매일같이 쉬는 시간마다 몰려와서 삐약댄다.
귀가 따갑다.
“전학생이 왜 우리 반만 안 건드렸을까?”
“혹시 정혁이 때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반 삐약이들이 날 돌아봤다.
반짝반짝거리는 눈빛이 심히 부담스럽다.
“설마 그 전학생, 정혁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어쩐지! 우리 반만 쏙 빼놓고 2학년 오야붕을 치러가더라.”
“정혁이 엄청 잘생겼잖아. 일리 있어.”
일리가 있긴 뭐가 있어?
너희들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거든?
저 시끄러운 주둥이를 닥치게 만들 방법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곰돌이 젤리 먹을 사람?”
“나! 나!”
“나도!”
“정혁아, 너 오늘부터 내 단짝 하자!”
삐약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눈을 반짝거리며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역시 이 방법이 제일 쉽고 빠르다니까.
* * *
고재영이 전학 온 후 시끄러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다 싶다.
‘이렇게 요란하게 싸울 필요가 있나 싶긴 하다만.’
나라면 절대로 벌이지 않을 짓이거든.
이래저래 쓸데없이 피곤해지는 건 딱 질색이라서.
‘뒷골목 싸움닭들이 다 그렇지 뭐.’
힘이 남아돌아서,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
힘으로 증명해야 하니까.
뒷골목에선 싸움 끊일 날이 없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싸워야 한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었다.
‘이제야 좀 조용하네.’
애들이 전부 집으로 돌아간 후라서 그런지 교실이 참 평화롭다.
난 당번이라서 남았다.
“칠판 지웠고, 우유곽 씻어서 말렸고.”
“걸레 빨아서 널었고, 물주전자와 물컵도 씻어서 건조대에 엎어뒀다.”
“이제 쓰레기만 쓰레기 소각장에 버리면 끝이네? 으, 싫다.”
나랑 같이 남아서 뒷정리하던 당번 여자애가 쓰레기통을 보면서 진저리를 쳤다.
“헉, 바퀴벌레!”
탁.
내가 들고 있던 빗자루로 때려잡았다.
쓸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더니, 당번 여자애는 비명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바퀴벌레를 쓰레기통에 버리면 어떡해!”
“그럼 어디에 버리라고?”
“그, 그건······! 그러니까 그······!”
“벌레 싫어해?”
“끔찍해!”
당번 여자애가 울 것처럼 말했다.
“바퀴벌레 버린 쪽이 어디야? 나 반대쪽 손잡이 잡을래.”
“됐어. 이건 내가 버릴게.”
“무겁잖아.”
“별로.”
나는 쓰레기통을 번쩍 들었다.
“오늘 고생했어. 내일 보자.”
“······진짜 너 혼자 하려고?”
“어.”
“고, 고마워······.”
당번 여자애가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그럼 내일은 내가 우유곽 전부 씻을게. 주전자랑 물컵도.”
“됐어. 이게 뭐 별거라고.”
터벅터벅.
나는 쓰레기통을 들고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했다.
당번 여자애는 책가방을 진 채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라왔다.
그냥 가도 된다고 두 번이나 말했지만, 순순히 ‘응.’ 하고 대답하면서도 기어이 따라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쓰레기 소각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부스럭부스럭.
웬 조그만 머리통이 쪼그려 앉아서 바쁘게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헤치느라 말총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줄도 모르고,
옷이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아······!”
깨진 유리 조각에 베여 손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것도 나 몰라라 하면서.
정신없이 쓰레기를 뒤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쓰레기통을 탁 내려놓았다.
“고재영,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찾는 게 있어.”
“뭘 찾는데?”
“중요한 물건.”
고재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쓰레기를 뒤졌다.
그럴 때마다 피가 후두둑 떨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얘가 큰일 나려고.”
나는 고재영의 팔목을 잡아챘다.
“상처부터 치료해.”
“그럴 시간 없어.”
“손이 엉망이야. 알아?”
깨진 유리 조각에 베인 상처만이 아니었다.
타다 남은 검댕이가 묻어서 손은 시커멓고, 자잘하게 베인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거 놔.”
고재영이 잡은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손목 스냅을 바꿔가며 꽉 부여잡았다.
고재영이 몇 번이나 더 손을 떨치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여자애치곤 힘이 상당히 셌으나 그뿐이었다.
잡힌 손을 떼어내고 반격하는 기술은 형편없었다.
“대체 뭘 찾는데 이래?”
“신경 꺼.”
고재영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같이 찾아줄 것도 아니면서.”
“같이 찾아줄 수도 있지.”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볼 것 없다.
“중요한 물건이라면서. 뭔데?”
“······.”
“한 손보다는 두 손이 낫잖아. 게다가 난 양손 모두 멀쩡해.”
“······목걸이.”
고재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로켓 달린 목걸이를 찾고 있어.”
그제야 고재영이 왜 이렇게 미친 듯이 뒤지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여자가 늘 차고 다니던 목걸이였다.
로켓 속에 집어넣었던 사진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원래 상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는데도.
여자는 밤마다 습관처럼 로켓을 열고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걸 왜 여기서 찾아?”
“쓰레기통에 버렸대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감이 왔다.
이건 고의였다.
“쓰레기 태우기 전에 찾아야 해.”
“내가 찾고 있을 테니까 넌 보건실부터 다녀와.”
“나도 같이 찾아야지. 내 물건인데.”
“상처 더 벌어지면 꿰매야 하고, 세균 감염되면 잘라내야 할 수도 있어.”
“······!”
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쓰레기 소각장에 비치해두는 기다란 집개를 잡았다.
“고집부리지 말고.”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달칵.
누군가 밖에서 쓰레기 소각장 문을 잠갔다.
이 또한 명백한 고의였다.
따악.
나는 손가락을 부딪쳤다.
‘어이, 수호신.’
<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볼 것 없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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