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199)
재벌집 만렙 아들-199화(199/416)
< 내 이유는 과거에 있거든 >
[한창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저승사자가 연기처럼 스르륵 솟아올랐다.
[지금 막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단 말이다!]‘어이, 수호신. 눈치 챙겨.’
내 목소리는 이미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저승사자가 쓰레기 소각장을 스윽 둘러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너··· 여기서 뭐 하냐?]‘어떤 새끼가 문 잠갔다.’
저승사자가 고재영을 힐끔 보더니 혀를 찼다.
[여덟 살짜리 꼬맹이들을, 그것도 피를 뚝뚝 흘리는 애를 쓰레기 더미 속에 가둬? 설마 일부러?]‘아마도.’
[상종 못 할 쓰레기로군.]저승사자가 도포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떤 쓰레기 같은 놈이 이딴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내 그 쓰레기 같은 면상을 똑똑히 확인하고 오마.]내가 저승사자를 호출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면 곤란하다.
‘하나 더. 여기 안에서는 문 못 열어.’
[음?]‘쓰레기 소각장 문의 잠금장치는 밖에 달려 있거든. 그러니까······.’
[알았다.]나 아직 아무 말도 안 꺼냈는데?
저승사자는 자신만만하게 씩 웃으며 도포 소매를 걷었다.
[이 일은 나한테 맡겨라.]‘뭘 어떻게 하려고?’
[다 방법이 있지!]저승사자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나만 믿고 딱 기다리고 있어 봐.]저승사자는 연기처럼 스르륵 움직였다.
쓰레기 소각장 철문 밖으로 저승사자의 머리통이 막 빠져나갔을 때였다.
[앗, 설마 그 쓰레기가 저 새끼였나!]순간 눈앞이 흐려지면서 시야가 빙글 돌았다.
시야 공유였다.
* * *
저승사자는 쓰레기 소각장 밖을 보고 있었다.
녀석은 손을 탁탁 털면서 낄낄댔다.
“건방진 년, 어디 한번 고생 좀 해보라지?”
가슴에 초록색 명찰을 달고 있었다.
3학년이라는 뜻이다.
“내가 저년 때문에 개망신당한 걸 생각하면······! 이익, 짜증 나!”
녀석은 코를 틀어막았던 휴지를 뽑아 던졌다.
코피는 이미 멈춘 후였다.
“거기서 밤새도록 찾아봐라. 목걸이가 나오나 안 나오나.”
쓰레기 소각장 문을 향해 녀석은 침을 퉤 뱉었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녀석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나는 쓰레기 소각장 문을 걷어찼다.
쾅!
“야, 김원호!”
“······!”
제 이름이 불리자, 녀석은 크게 움찔했다.
“사, 사람 잘못 봤는데? 그거 나 아닌데?”
“초록색 명찰을 내가 다 봤는데, 시치미 떼기는.”
“뭐, 뭐야, 너?”
김원호는 고개를 홱홱 돌려서 주변을 살폈다.
“쥐새끼처럼 두리번거리지 말고 좋은 말할 때 문 열어라.”
“······!”
나는 다시 한번 문을 걷어찼다.
쾅!
“사람이 여기에 갇혔잖아. 너 때문에.”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몰라서 물어? 재수 없으면 사람 죽을 수도 있다.”
“거짓말!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쓰레기 소각한답시고 불 놓으면? 사건 심각해지는 거야.”
나는 쓰레기 소각장 철문을 발끝으로 툭툭 찼다.
“그러니까 열라고.”
내가 발끝으로 찰 때마다 철문이 텅텅 울렸다.
그럴 때마다 김원호의 안색도 희게 질려갔다.
“안 열고 개기다가 일 커지면 뒷감당할 자신은 있고?”
“······!”
“김원호.”
“나, 난 모르는 일이야!”
김원호는 오른쪽 바지 주머니를 꽉 움켜쥔 채 허겁지겁 달아났다.
바지 주머니 사이로 목걸이 줄이 반짝거렸다.
“허······!”
이것까지 이 새끼 짓이었구만?
고재영의 목걸이를 훔쳐 튀었단 말이지.
이 자식, 안 되겠네.
‘어이, 수호신.’
[왜?]‘동티 준비.’
나는 팔짱을 꼈다.
‘화장실 몇 번 들락거릴 정도로. 가능하지?’
[그걸로 되겠어?]저승사자는 씩 웃었다.
[고열에 시달리다가 하늘이 노래져서 조상님 찾아가며 삼도천 구경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는데?]사람 잡을 일 있냐?
‘일단 물건부터 회수하고.’
[그거 좋지.]저승사자는 도망간 김원호를 따라 바람처럼 사라졌다.
“으헉!”
멀리서 김원호의 비명이 들려왔다.
녀석은 부글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찾아 꿈틀댔다.
저승사자는 낮게 웃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재수도 없지.]‘왜?’
[지금 들어간 화장실 칸엔 휴지가 없는데.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로군.]‘이따 휴지 몇 장과 고재영의 목걸이를 바꾸면 되겠네?’
운이 좋군!
저럴 때 내미는 휴지는 황금보다 귀한 법이거든!
[그게 고재영의 목걸이가 아니라면?]‘그럼 쓰레기 뒤지기에 강제 합류 확정인 거지 뭐.’
나는 손을 탁탁 털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를 힐끔 바라봤다.
‘오히려 잘됐네. 이 많은 쓰레기를 우리 둘이 뒤지려면 밤을 새도 모자랐을 텐데.’
부스럭부스럭.
고재영은 바쁘게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윽······!”
“또 다쳤어?”
고재영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까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입었다.
비닐에 대충 말아서 버린 조각칼에 찔린 것이다.
“너 진짜 말 안 듣는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싸맸다.
“쓰레기 집게는 뒀다 뭐 할래?”
“그건 네가 써야 하니까.”
고재영은 고개를 까딱했다.
“쓰레기 집게는 하나뿐이고, 문은 잠겼고.”
“······.”
“보건실? 거기도 못 가니까 그동안 물건이라도 찾아봐야지. 그게 효율적이잖아.”
“효율 같은 소리 하네. 그런 단어를 쓰고 싶었다면 맨손으로 쓰레기를 뒤져선 안 됐지.”
나는 고재영의 손을 들어 보였다.
“넌 손이 걸레짝인데, 웃음이 나오냐?”
“그럼 울까?”
“아니! 울지 마.”
난 우는 여자 달래는 재주 따윈 없거든.
손수건으로 상처를 꽉 동여맸다.
“만약에 말이야. 너 여기에 가둔 놈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래?”
“어떡하긴 뭘 어떡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패야지.”
“쓰레기 그만 뒤질 거냐고.”
“어쨌거나 목걸이를 찾을 때까지 뒤져 봐야겠지?”
이 손을 하고서?
“그 목걸이, 못 찾으면 큰일 나?”
매일 밤마다 꺼내볼 정도면 꽤 사연이 깃든 물건인 것 같던데.
끝내 말을 해주질 않더라고.
“우리 엄마 아빠 유품이야.”
하지만 어린 고재영은 순순히 대답했다.
“안에 엄마 아빠 사진이 들어 있거든.”
그래서 다 망가지고 뭉개져서 형체도 안 남은 것을······.
“할아버지가 다 치워버려서 이거 하나밖에 안 남았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상처 더 벌어지지 않게 넌 저기 앉아 있어.”
“손이 문제인 거야? 하지만 나 발은 멀쩡한데.”
어떻게 된 여자애가 고분고분하게 ‘응.’ 하고 대답하는 법이 없어.
그러고 보니 고재영은 늘 그랬었다.
“발로 뒤지는 건 괜찮겠지?”
말 참 안 듣는다니까.
저 여자 하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복수.
피맺힌 한이 뭐 그리 많았던지.
복수 외에는 살아갈 의미라곤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이 악물고 부나방처럼 뛰어들던 여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너 그렇게 몸 함부로 쓰는 거 알면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속상해하실 거야.”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일 테고. 하나뿐인 피붙이, 귀한 손녀라며.”
“······.”
“반대로 생각해 봐. 할아버지가 다치고 돌아오면 너는 속상하지 않을 것 같아?”
그제야 날카롭게 올라갔던 눈꼬리가 슬쩍 내려간다.
쉬지 않고 바쁘게 놀리던 발도 멈췄다.
나는 고재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니까 피 멈출 때까지만이라도 가만히 있어. 알았어?”
“······응.”
나는 고재영을 쓰레기 소각장 철문 앞으로 데려갔다.
몸은 나를 따라오면서도 눈은 여전히 쓰레기 더미에 못 박힌 듯했다.
“그럼 눈으로 열심히 찾는 건······.”
“네 눈, 코, 입도 쓸데가 따로 있어.”
할 말이 무척 많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고재영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너한테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길 생각이야.”
“임무?”
“사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크게 외쳐. ‘여기에 사람이 갇혔어요! 문 열어주세요!’ 하고. 알았어?”
“응.”
나는 쓰레기 집게를 들고 쓰레기 더미를 뒤적였다.
고재영이 물었다.
“넌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
이게 잘해주는 거냐?
“다른 애들은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넌 안 그렇잖아.”
고재영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다짜고짜 시비를 걸지도 않고, 주먹을 날리지도, 욕하지도 않고.”
얘가 뭐라는 거야?
그럼 대뜸 욕하면서 달려들어 주먹다짐을 하는 게 정상이야?
“내 목걸이도 나한테나 중요한 거지, 너한테는 딱히 중요하지도 않을 텐데.”
“부모님 유품이라며.”
“그러니까. 넌 그걸 찾겠다고 쓰레기를 뒤지지 않아도 되거든.”
고재영이 발끝으로 쓰레기를 툭툭 찼다.
“너랑 하등 상관없는 일인데, 왜 굳이······.”
“상관없긴 왜 상관이 없어? 내가 네 후견인인데.”
후견인 모르냐?
보호자랑 동격인 단어라구.
하지만 고재영은 웃었다.
“흐음, 너 혹시 나 좋아해?”
“미쳤냐?”
나는 치를 떨었다.
표정관리를 할 생각도 없다.
“내가 널 왜 좋아해? 어림없거든?”
내게 여자라곤 예린이 하나뿐이었어.
“너야말로 날 좋아하지 마라.”
“내가? 너를? 미친 거 아냐?”
“그러니까 말이야. 난 분명히 말했다. 너 받아줄 생각 없다고.”
너랑 나는 손발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 환상의 파트너, 딱 거기까지였어.
그마저도 오해로 틀어져 버린 사이였지만.
-네가 신림동 개미지옥이었어?
-그런데?
-네가 우리 할아버지를 함정에 빠뜨려서 죽였을 줄이야.
-뭐?
-그렇게 우리 할아버지 재산이 탐났어?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때문에 나는······! 나는 창졸간에 하나뿐인 핏줄을 잃고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아야 했어!
넌 배신감에 치를 떨며 날 노려봤었다.
-네가···, 네가 내 원수인 줄도 모르고! 그것도 모르고 병신처럼 난······!
-잠깐만. 네 할아버지가 대체 누군데?
-끝까지 시치미 떼지!
고재영의 눈물은 그날 처음 봤다.
-널 만난 걸 후회해. 널 구한 것도, 널 믿은 것도, 널 마음에 담았던 것도.
다 죽어가던 때에도 흘리지 않던 눈물이었다.
-전부 다 후회해. 너와 함께했던 그 모든 순간을 증오해.
대뜸 늑골 사이를 찔러오는 칼에 하마터면 그대로 이승 하직할 뻔했다.
재빨리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위험했다.
나는 복부에 박힌 칼을 움켜쥔 채 버텼다.
-지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 네가 할 말은 그것뿐이야?
천벌 받은 탓인가.
얽히는 인연마다 어쩌면 그리 박복했던지.
배신 아니면 원수.
하나같이 악연뿐이었다.
오해를 풀 새도 없이 우리는 그날 피 튀기는 칼부림을 벌였다.
-가라.
나는 차마 널 죽일 수 없었고.
-살려주는 건 한 번뿐이다.
너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그렇게 악연에 치를 떨며 헤어진 지 일주일 후, 나는 너의 부고를 받았다.
“고재영, 이건 경고야.”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난 너랑 엮일 생각 없어.”
“뭐래?”
“잘 들어. 너도 나랑 엮이면 인생 피곤해질 거야. 개죽음을 면치 못할걸?”
네가 그렇게 죽었어.
나 때문에.
내 여자라는 누명을 쓰고.
서른도 되지 못한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했었어, 너.
고재영은 내가 묶어준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아니야.”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뭐가 됐든 그거 아니라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마.”
내 이유는 과거에 있거든.
“그냥 목걸이 하나 찾는 걸 도와주는 것뿐이야. 거기에 다른 의미 부여할 것 없잖아.”
그래서 결론.
“그러니 앞으로 우리 아는 척도 하지 말자.”
그게 좋겠다.
딱!
‘어이, 수호신. 또 드라마 보러 갔던 건 아니지?’
[아닌데? 지금 열심히 문 열 방법을 찾고 있는데?]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열 생각인데?’
[간단하다.]저승사자는 허리춤에 손을 척 얹었다.
[꿈을 꾸게 하는 거지.]‘개꿈 취급 받고 끝날 것 같다만?’
[지금 이 학교에 있는 사람이 몇 명인데, 그중에 하나는 얻어걸리겠지.]맙소사.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똑같은 꿈을, 똑같은 장소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꾼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학교가 발칵 뒤집어질 터였다.
‘아서라. 학교 괴담 만들어낼 일 있어?’
잠깐. 웨이러 미닛!
너 왜 눈알을 그렇게 굴려?
< 내 이유는 과거에 있거든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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