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03)
재벌집 만렙 아들-203화(203/416)
< 이 구역의 해결사 (1) >
밀매왕은 턱을 쓸었다.
“반도체라···, 이건 나도 빠삭하게 안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분야인데.”
“전에 기계 제어판에 쓰이는 필수 부품이라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얼추 맞긴 한데, 그게 또······ 으음.”
밀매왕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
단독으로 취급되는 품목도 아니었고, 활발하게 주문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물건도 아니었으니까.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긴 한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 난 만들어진 물건을 가져다 파는 사람이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잖느냐.”
고재영은 방긋 웃었다.
“그러니까 먼저 일본에 한번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일본에?”
“전자제품 하면 일본이잖아요.”
“확실히 일제 전자제품이 잘 팔리긴 하지. 하여간에 그놈들, 물건은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
밀매왕이 은근하게 말했다.
“그래도 기술력으로 소련과 미국에 비할 정도는 아니야.”
냉전시대의 세계 2강이 바로 그 두 나라였다.
“이왕 확실하게 알아볼 거라면 소련 쪽으로 접선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직 미국까진 손이 닿지 않는다.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서.
주변 국가를 오가며 밀수 루트를 뚫고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기술력만 따지면 소련도 좋은데, 상업성까지 생각하면 역시 일본이 나을 것 같아요.”
“상업성?”
“왠지 그 애라면 돈 되는 사업에 환장할 것 같거든요.”
고재영이 눈을 반짝였다.
“할아버지가 거래하는 곳 중에 기술력 좋은 일본 기업들도 꽤 많지요?”
“많지.”
“그럼 거기에 연락해서 반도체 기술을 이전해줄 수 있는지부터 물어보세요.”
“음?”
“로열티는 부족하지 않게, 듬뿍 얹어 주겠다고 살살 꼬드기는 거죠. 그럼 답이 나올 거예요.”
밀매왕은 손녀가 들고 있던 최고반도체 자료를 낚아챘다.
“재영아, 인수 목록에 들어갔다는 건 적자가 심하다는 뜻이다. 즉, 이 회사 물건이 영 안 팔렸다는 말이지.”
밀매왕은 얼굴을 이리 들이대고, 저리 떨어뜨리면서 서류를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노안 때문이었다.
돋보기가 절실했다.
“기술력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면 또 모를까. 일본에서 비싼 로열티를 얹어주면서까지 기술 구걸을 해야 할 회사라면······ 인수하지 말아야지.”
밀매왕은 마뜩잖다는 듯이 말했다.
“적자투성이의 골칫거리가 가진 기술력까지 형편없어? 그럼 더 볼 것도 없이 똥이다, 똥!”
“누가 이 회사의 기술력 수준이 궁금하대요?”
“그럼?”
“이 사업의 미래와 투자 가치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거든요.”
고재영은 웃었다.
“로열티 소리에 덥석 물면 박 터지는 시장이란 뜻이겠고, 기술 이전 자체를 딱 잘라 거절한다면 짭짤하단 소리겠죠?”
“······어?”
“황금알은 비싸게 팔겠다며 달려들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절대로 내어주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
역시 다른 집에 시집보내기엔 너무 아깝······, 후우.
밀매왕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애한테 빨대 꽂으려 드는 놈들이 한둘이 아닐 게야.’
생각할수록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내가 아직 이리 건재한데도 저놈들이 방문에 귀를 대어 몰래 엿듣는 판국이다. 보지 않아도 않겠어. 앞날이 눈에 선해! ······후우!’
밀매왕은 결심을 굳혔다.
‘그놈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우리 애를 맡기고 떠날 수 있겠지.’
밀매왕이 회사를 안겨주겠다고 마음을 굳힌 까닭이었다.
‘후견인 정도로는 안 된다. 결혼이 어렵다면 동업으로라도 묶어 놔야지. 그럼 저놈도 마냥 수수방관하지는 못할 터.’
남들이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떤 미친놈이 제 주머니를 털어 산 회사를 남한테 고이 바칠까.
비웃음당하기 딱 좋은 호구 짓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제 것을 남이 가로채려 드는 꼴은 절대로 두고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 믿고 간다.’
밀매왕은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미래를 보고 질러야 할 때는 화끈하게 지른다. 그것이 내 투자다.’
밀매왕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영아, 왜 하필 반도체 회사를 고른 게냐?”
“걔가 전차를 사갔다면서요.”
고재영은 최고반도체 자료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겉모양을 비슷하게 따라 만드는 것은 쉬워요. 하지만 전차를 움직이는 프로그램까지 따라 만들긴 어렵지 않겠어요?”
* * *
‘JH연구소 간판을 단 이후 첫 방문인가?’
나는 기분 좋은 햇볕을 누리며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내 옆에는 심 사장이 바짝 붙어 따라왔다.
“날씨 참 좋지요?”
심 사장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게 대체 며칠 만에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보는 건지······. 크흐, 역시 사람을 해를 보고 살아야 하나 봅니다.”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턱 끝까지 내려온 심 사장의 다크서클도 왠지 함께 웃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입니다!”
JH연구소 정문에는 최 소장이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화끈한 사내 복지 지원 결정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사하느라 많이 시끄러웠을 텐데, 연구에 방해가 되진 않았나 모르겠어요.”
“빨래방, 샤워실, 수면실이 생긴다는데, 그깟 소음이야 웃으면서 넘겨야죠.”
심 사장이 슬쩍 덧붙였다.
“당부하신 대로 빨래방에는 태성전자 최고급 사양 세탁기로, 샤워실에는 태성화학의 히트 브랜드 샤워용품 시리즈로, 수면실에는 태성호텔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침구로 맞춰 넣었습니다.”
“수면실에 보일러 깔고, 연구실마다 선풍기랑 라디에이터 넣어주는 곳은 우리 연구소밖에 없을 겁니다.”
아직 에어컨 기술 수준이 낮아서 어쩔 수 없었다.
“전차 연구 끝나고 에어컨 개발을 시작해보면 어때요?”
“오?”
“종일 돌아가는 기계도 많을 텐데, 여름 더위에 쪄죽고 싶지 않을 거 아니에요. 시원하게 에어컨 틀고 연구하시죠?”
“오!”
눈을 번뜩이며 화살처럼 튀어나가려는 최 소장을 심 사장이 붙잡았다.
“워, 워! 최 소장님, 진정하십시오. 우리 도련님 아직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셨습니다.”
“아차! 마음이 너무 급해서. 이거 실례했군요. 하하핫!”
“에어컨 연구야 전차 개발 끝내고 천천히 차근차근 진행하시죠.”
“예. 하지만 우리 도련님께선 이번에 가시면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책임지고 안내해드려야지요.”
최 소장이 웃는 낯으로 다시 정신줄을 붙들었다.
“1층 끝엔 구내식당이 생겼습니다. 대형 실험실 하나를 철거해 식당으로 개조했지요.”
최 소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연구원들 호응이 역대 최고였습니다. 구내식당 오픈 첫날에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서 두 시간 넘게 난리가 났었다면 믿으실까요?”
“밥이 잘 나왔나 봐요?”
“물론이지요. 오죽했으면 우리 애들이 구내식당 밥맛에서 집밥맛이 느껴진다며 울었겠습니까. 그렇게 질질 짜다 보니 두 시간 훌쩍이었다네요?”
이번에도 심 사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태성건설 공사장을 따라다니며 최고 매출을 올리는 함바집 주방 이모를 따따블 주고 스카웃해 왔지요.”
“덕분에 컵라면 시음 평가가 자꾸만 미뤄져서 곤란할 지경입니다. 하하하, 애들이 배부르다고 컵라면을 안 먹네요?”
“그것까진 어쩔 수 없죠. 이게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짓인데요.”
최 소장의 입꼬리는 귀에 걸린 지 오래였다.
“우리 연구소에 배치해주신 전용 안마사는 또 어떻고요?”
“일본에서 손기술을 마스터하고, 중국의 활인술까지 배워온, 국내 최고 수준의 1등급 맹인 안마사입니다.”
심 사장의 입꼬리도 똑같은 각도로 걸려 있었다.
“삼황호텔이 점찍은 실력자를 제가 가로챘지요.”
“역시! 손기술이 어찌나 화려하시던지, 애들이 안마 한번 받겠다고 번호표 받고 대기줄 타고 있더라니까요?”
두 사람은 쿵짝이 짝짝 맞았다.
“지원해주신 보약도 들여놓는 즉시 동날 지경입니다.”
“명동 최고의 한의원을 포섭해 납품받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홍삼, 녹용, 공진단이 잘 받는 체질이라는 걸 또 처음 알았습니다. 하하핫!”
“예, 커피 마실 시간에 보약 마셔야죠.”
“요즘 제 혈관엔 카페인 대신 한약 성분이 돌 걸요? 하하핫!”
로비를 지나 복도 모퉁이를 돌았다.
돌연 최 소장과 심 사장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어색한 헛기침을 터뜨리는 것은 심 사장, 눈알을 굴려가며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는 것은 최 소장이었다.
“뭐가 문제인데 그래요?”
“크흠, 저기 명패 보이십니까?”
“이왕 공사하는 김이라고 제 재량으로 탕비실과 체력단련실도 만들어버렸습니다.”
“크흠, 예산은 제가 배정했습니다. 인테리어 비용을 아껴서 남긴 예산으로, 크흠!”
선조치 후보고.
일 치른 후에 상관 앞에서 눈치를 보는 건 사장이나 소장도 이등병이나 신입사원과 다를 바 없었다.
“잘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그제야 두 사람의 얼굴이 활짝 폈다.
“태성식품 음료와 과자를 떨어지지 않게 채워뒀더니, 요즘 우리 애들 뱃살이 통통하게 올랐어요. 하하핫!”
“아, 그건 유감이군요. 뱃살이 올라서 좋은 건 참치밖에 없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도련님께서 지급해주신 태성병원 건강검진권 받고 애들이 정신 바짝 차려서 요즘 틈날 때마다 체력단련실을 기웃대고 있거든요.”
“아, 헬스하고 나면 단백질을 보충해줘야 근육이 팍팍 붙는 법인데. 그건 좀 아쉽군요.”
“오! 단백질 보충제!”
또 눈을 반짝이며 튀어나가려는 최 소장을 심 사장이 붙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쓸데없는 짓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랐으니까.
“여기가 전차 연구를 진행하는 실험실인가요?”
“예.”
어째 실험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위이잉! 치지지직!
덜그럭덜그럭 쿠당탕탕!
쿠웅! 쿠웅! 쾅쾅쾅!
나는 문을 가리키며 최 소장을 돌아보았다.
“지금 이거 정상적인 상황인가요?”
뭔가 공장에서나 날 법한 소음인데?
데시벨마저 범상치 않다.
“하하하, 이거 도련님 방문하신다고 얘들이 조신하게 구르고 있나 본데요?”
“위급 상황이나 비상사태가 터진 거 아니고요?”
“원래 전차 연구가 다 그렇습니다.”
벌컥.
최 소장은 웃으며 실험실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실험실 안은 아비규환 속 체험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
“여기 용접! 납땜 좀 빨리합시다!”
위이이잉. 치지지직!
“기운다! 온몸에 힘 빡 주고 받쳐! 으아악, 넘어간다!”
쿠당탕탕!
“망치 더 높이 들어! 더 깊이 때려박아야지!”
쾅쾅쾅!
“에잇, 부실한 새끼. 나와 봐. 오함마는 이렇게 허릿심으로 휘두르는 거야!”
쿠웅!
“여기 회전판 뻑뻑하게 돌아간다!”
“기름칠해놓으라니까 또 까먹었냐?”
“아오, 이 빡대가리가 진짜! 기름칠하는데 퐁퐁은 왜 가져왔어!”
여기가 연구소인가, 공사판 한가운데인가.
떡진 머리, 푸석한 얼굴, 기름때 낀 실험복 차림에 연장 들고 꽥꽥대며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론 전원 해외 유학파 출신 박사 학위자들로 구성됐다는 연구원들이다.
“얘들아, 도련님 오셨다!”
“오!”
연구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동시에 이쪽을 돌아보았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다들 활짝 웃으며 반겼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강아지는 무슨.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게 딱 조폭인가.
최 소장이 박수를 짝짝 쳤다.
“도련님께 보여드리자. 컵라면 시제품 앞으로.”
“앞으로!”
“고등어 통조림 앞으로.”
“앞으로!”
“전차 설계도면 앞으로.”
“앞으로!”
이번엔 군인인가.
최 소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구원들은 기름때에 찌든 실험복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컵라면 용기 보이십니까? 2중 겹구조 골판지 플라스틱 대신 스티로폼으로 바꿨습니다!”
“면이 용기 중간에 걸린 것 보이십니까? 아래는 성글게, 위는 빽빽하게!”
“면발이 전보다 훨씬 더 얇아졌죠? 전분과 밀가루의 황금비율로 딱 3분!”
“스프도 봐주십시오. 나트륨과 MSG를 팍팍팍!”
모두 내가 제안한 컵라면 개선안이었다.
난 컵라면을 자주 먹던 소비자로서 말만 꺼냈을 뿐인데.
연구원들은 두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걸 훌륭하게 재현해 냈다.
“한 젓가락 하실랍니까?”
“드셔보십시오. 옛날의 그 컵라면이 아니라니까요?”
“이번에는 합격점을 받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연구원들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웃었다.
칭찬을 기대하는 강아지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서.
없는 꼬리가 바쁘게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도련님의 조언 덕분입니다. 맛과 품질은 올리고, 제조 단가는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시판된 군용 식품과는 퀄리티 차원이 다릅니다.”
“휴대 가능하지, 유통기한 길지, 보급 쉽지, 저장 기간 길지, 취사 간편하지. 캬, 끝내주죠?”
이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안 먹어볼 수가 없구만!
연구원들에게 빙 둘러싸인 채 컵라면 시식에 들어갔다.
“오!”
심 사장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감탄사를 토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지난번에 먹은 컵라면은 이런 맛이 아니었잖아요?”
“역시! 도련님이라면 단번에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연구원들은 이때다 하고 조잘조잘 말을 쏟아냈다.
“스프를 개량하는 김에 구내식당 주방 이모 도움을 받았습니다.”
“면 반죽 비율부터 스프 재료 선정까지 고생 좀 했지요.”
“우리 연구소 수석연구원과 주방 이모가 만든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어떻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라면 맛이 너무 획기적으로 달라졌는데?
믿기지 않아서 나는 다시 한번 젓가락을 들었다.
호로록.
“와!”
다시 먹어도 놀랍다.
면발 완벽하고, 국물 끝내주고!
혀끝에 맴도는 감칠맛까지 미쳤다!
‘왕년에 질리도록 먹던 컵라면 맛이랑 어째 엄청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타사의 히트 상품, 육개장 사발면.
‘이게 말이 돼?’
그 회사는 우광식품도, 태성식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개장 사발면이 내 연구소에서 완성될 확률은 얼마나 되려나?
까마득하게 낮을 터였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정도껏이지. 이게 다 무슨······ 설마!’
짚이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이 컵라면을 개발하셨다던 수석연구원이란 분은······.”
“접니다.”
안경 낀 남자가 잔뜩 긴장한 채 손을 들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내 기억 속의 그보다 훨씬 더 앳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이 구역의 해결사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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