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07)
재벌집 만렙 아들-207화(207/416)
< 사나이의 로망 >
JH연구원들의 회식 자리는 떠들썩했다.
“우와! 이게 바로 JH사무실 사람들이 그토록 극찬하던 도련님의 폭탄주 제조쇼!”
“술잔만 10층 탑! 샴페인을 발사해 양주잔을 맞췄다고!”
“양주잔이 도미노로 퐁당퐁당!”
“술탑 맨 위에서 터뜨린 위스키 불꽃쑈는 또 어떻고?”
“불타는 술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더라니까?”
JH연구원들은 잔뜩 흥분하고 말았다.
“난 여태 회오리주라는 게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누군 아니래? 나도 마찬가지거든?”
“황금비율로 제조한 폭탄주를 티슈로 뚜껑 덮어 손목 스냅만으로 착~ 마는데.”
“그 티슈를 냅다 집어 던져! 벽에 딱 붙여! 크으, 마무리까지 완벽했다······.”
“맞지! 난 삶은 스파게티 면을 벽에 던져 붙이는 건 봤어도 회오리주 말았던 티슈를 벽에 붙이는 건 또 처음 본다니까?”
콧김을 내뿜으면서.
그들은 바쁘게 입을 놀렸다.
“술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건······ 중력 가속도를 고려해야겠지?”
“잠깐. 그건 표준기압을 상정한 질문인가?”
“알코올과 물의 혼합 비율 및 밀도차를 간과하면 안 되지.”
일반적인 술자리, 그러니까 JH사무실 식구들과 회식을 했을 때엔 볼 수 없던 상황이었다.
“회오리주의 풍속은······ 역시 삼각함수랑 미적분을 이용해서 계산해야겠군.”
“그럼 회오리주를 말 때 티슈가 이탈하지 않도록 가해야 하는 하중의 최소 압력은?”
“베르누이 방정식에서 가압과 정압을 제외하는 식으로 바람을 맞는 직각단면적의 힘을 파스칼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흐음, 그렇다면 면적이 같을 때 직각면이 받는 힘은 수평면의 받는 힘의 두 배 정도 되겠고, 회오리의 속도가 지배인자가 되겠는데?”
이게 회오리주를 구경한 후에 나올 수 있는 소감이냐고.
아니, 누가 술자리에서 베르누이 방정식을 연산하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 소장이 내 눈치를 힐끔 보더니 연구원들에게 큰소리쳤다.
“이놈들아,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한우정 소고기를 먹었고, 그토록 보고 싶다던 도련님의 폭탄주 제조쇼도 봤는데, 왜 아까부터 이렇게 재미없는 얘기들만 나불대고 있어?”
내 말이!
원래 회식에서는 머리 아픈 일들은 뒤로 던져넣고, 옆에 앉은 동료들과······.
“이왕이면 한우정 소고기를 이용한 개발 상품에 대해 토론해야 할 것 아냐? 그래야 술자리지!”
아니거든요?
누가 술자리에서까지 신제품 연구 때문에 머리 싸맨답니까?
황당한 표정의 나와 달리, 심 사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들었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역시 우리는 JH!”
“옳소!”
“저 심원철은 오늘 다시 한번 도련님의 말씀이 다 옳았구나 깨달았습니다.”
“도련님 말씀이요?”
심 사장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날 돌아보았다.
“도련님께서는 회사는 물건 잘 팔아먹는 게 최고고, 연구소는 기술 개발 잘하는 게 최고라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도련님께선 최 소장님과 여러분께 높은 점수를 주셨지요.”
“오!”
심 사장은 주먹으로 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여러분들은 개발 연구에 몰두하십시오. 서포트는 우리 JH사무실에서 맡겠습니다!”
“우와아아!”
“도련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르시길, 조기퇴근과 성과금, 소고기 풀코스 회식으로 포상한 이유는 뭐라 하셨습니까?”
“오늘만큼은 실컷 먹고 놀고 느긋하게 쉬라 하셨습니다!”
“옳습니다. 그러니 도련님의 말씀처럼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시길.”
눈치껏 일어섰다.
“그럼 저희는 먼저 일어날게요.”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심 사장도 미소와 함께 뒤따라 일어났다.
“집까지 바래다드리겠습니다. 가실까요?”
“음? 어라? 아니, 나는 왜······?”
최 소장은 심 사장에게 끌려가며 호소했다.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면서요? 왜 도련님이 아니라 나를······!”
“에헤이, 최 소장님, 눈치 챙기십시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눈치를······.”
“모름지기 이런 자리에선 아랫사람이 눈치 보지 않고 편히 놀 수 있게 윗사람은 적당히 먼저 빠져주는 게 예의입니다.”
최 소장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깜빡거렸다.
“우리나라에 그런 예의가 있었습니까?”
“사회생활의 기본입니다.”
최 소장은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해외에 나가 있던 터라 뭘 잘 모릅니다.”
“몰랐다면 지금부터라도 배우면 그만입니다.”
“하하핫, 좋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배우는 거라면 자신 있습니다.”
“자, 그럼 메모!”
“메모······. 회식 자리에서 먼저 빠져주기······ 사회생활의 기본······.”
최 소장은 군말 없이 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휘갈겨 적었다.
심 사장은 최 소장의 곁에 딱 달라붙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꼼꼼하게 가르쳐주었다.
“계산은 현금이나 외상장부로. JH 이름으로 영수증 받기.”
“외상장부······ 영수증 받기······ 메모······.”
“영수증 누락되면 총무팀에서 엄청 갈굴 겁니다. 다음 해 연구소 예산이 삭감될 수도 있습니다.”
“헉, 영수증 누락··· 예산 삭감 재앙······ 메모······.”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침 받는 사람도 열의가 대단하군. 역시 두 분, 잘 맞는다니까.’
문득 오랫동안 까먹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심 사장님, 분명 할아버지가 내 경영수업 과외 선생님으로 붙여주셨던 것 같은데?’
왜 가르쳐야 할 나는 안 가르치고, 엄한 최 소장을 붙들어 족집게 과외를 하고 계시나 몰라.
* * *
한우정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최 소장은 말했다.
“그럼 전 이만 연구소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아니, 왜요?”
심 사장이 놀라 물었다.
“오늘 하루 정도는 댁으로 일찍 귀가하셔야 바가지를 덜 긁히지 않겠습니까?”
“아, 그 문제에 관해선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해심 많은 좋은 아내분을 두셨군요.”
“하하핫, 이혼당한 지 오래거든요.”
“아······.”
심 사장이 짠한 눈으로 최 소장을 돌아보았다.
“그럼 오랜만에 잠이라도 푹 자기 위해 댁으로 귀가······.”
“연구소장 전용 수면실이 워낙 기똥차게 뽑혔습니다. 별 다섯 개짜리 침대, 최고급 침구 세트, 뜨끈한 보일러에 커튼까지. 크, 완벽합니다.”
“아······.”
심 사장의 눈에선 한층 더 진한 짠기가 배어나왔다.
그러던 그때 화려한 원피스 차림의 중년 여인, 주방이모가 손을 들고 달려왔다.
“혹시 연구소 가세요?”
“혹시 주방이모님도?”
“네. 가는 길이라면 같이 가요.”
“아니, 이 시간에 연구소에는 무슨 용건으로······?”
“까먹기 전에 한우정 맛을 재현해 보려고요.”
대단한 열의였다.
주방 이모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입술을 짓씹었다.
“소고기 요리가 하나같이 어쩜 그렇게 너무 맛있나 몰라. 너무 분하잖아요.”
그때 또 다른 연구소행 희망자가 합류했다.
“혹시 연구소로 가십니까?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주호영 수석연구원은 또 왜요?”
“한우정 육개장을 먹었더니 컵라면에 관한 영감이 떠올라서요.”
주호영은 허리를 굽히며 슬쩍 귀띔해주었다.
“우리가 개발하던 게 육개장맛 컵라면이잖아요. 2% 부족한 맛을 보완할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의아했다.
그래서 물었다.
“주 수석연구원님에겐 남들 다 연구소에서 구를 때 집에서 굴러다니며 놀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다면서요?”
“맞습니다.”
“지금 남들 다 노는데, 혼자 연구소에서 구르려면 억울하고 분하고 서럽지 않겠어요?”
“다들 숙취로 해롱해롱할 때 나 혼자 쌩쌩하게 연구 진척 있으면 동료 연구원들이 자괴감 들고 괴롭지 않겠습니까?”
주호영 연구원은 코를 쓱 닦았다.
“종일 놀려먹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죠.”
분명 유능한데.
육개장 사발면을 만들어 놓은 것만 봐도 싹수부터가 남다른데.
······왜 대가리가 이따구로 굴러가는 거지?
‘음, 역시 진짜 천재는 다르다는 건가?’
주호영은 훗날 농산의 김기태와 함께 대한민국 식품업계의 쌍두마차, 천재 개발자로 불렸다.
나는 슬쩍 물었다.
“농산의 김기태 연구원이라고 아세요?”
“도련님께서 기태를 어떻게 아십니까?”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를 정도면 두 분 많이 친하신가 봐요?”
“친하기는요. 웬수가 따로 없는데요.”
주호영이 다시 한번 코를 쓱 훔쳤다.
“어찌나 짜증 나게 굴던지. 사표 던질 때 똥침 놓고 튀었습니다.”
“······.”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여덟 살짜리 우리 반 남자애들이나 하는 짓을.
“김기태 연구원이라는 분, 라면 연구 쪽으로 퍽 대단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대답은 주호영 대신 최 소장이 대신했다.
“김기태 그 친구, 진짜 라면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만듭니다. 불세출의 천재라 할 수 있습니다.”
“천재는 무슨. 잔머리나 좀 굴리는 거죠.”
주호영이 콧방귀를 뀌거나 말거나.
최 소장은 침을 튀겨가며 칭찬을 늘어놨다.
“양념스프 배합하는 솜씨가 아주 기가 막히다 합니다.”
“그놈 그냥 되는 대로 섞어보는 거예요.”
“라면 면발 연구에 관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더군요.”
“대충 발로 만들던데요.”
“일본 라면의 명가라는 닛신식품 아시죠? 오죽하면 거기에서 스카웃 제안이 왔겠습니까?”
“닛신 망할 뻔했다니까요.”
나는 최 소장을 보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김기태 연구원을 우리 연구소로 데려오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흐음.”
최 소장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 친구 돈에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벌써 몇 군데 대기업 식품개발부에서 수표를 던졌는데도 요지부동이라더군요.”
“그놈 철딱서니가 없어서 세상 물정을 잘 모릅니다.”
“명예욕도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커리어만 봐도 그렇습니다.”
“커리어는 무슨. 그놈 성격에 안 잘린 게 용한 겁니다.”
돈도, 명예도 아니라면······.
“절친한 동료를 함께 영입하겠다고 제안해본다거나, 가족을 공략해보는 건 어때요?”
“그놈 고아에 친구도 없습니다. 저랑 이십 년 넘게 같이 다녔으니 말 다 한 거죠.”
“······.”
최 소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련님, 김기태 연구원은 삼황식품과 금조식품에서는 스톡옵션을 제시하면서 임원 자리까지 슬쩍 흘렸다는데도 꿈쩍을 안 하더랍니다. ”
“그놈 야망이 소박해서 그래요.”
삼황식품과 금조식품의 스톡옵션을 거절해?
이건 황금을 싸들고 갔는데도 제 발로 걷어찼다는 뜻이었다.
스톡옵션이란 게 뭔가.
기업이 임직원에게 일정 수량의 회사 주식을 일정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거다.
‘지금 식품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 삼황식품 혹은 금조식품 주식이라면 조만간 몇 배씩 뛰어오를 텐데, 그걸 마다하다니.’
그럼 이 사내를 뭐로 꼬시지?
문득 걸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소박한 야망?”
“아, 그놈 장차 대한민국 최고의 라면왕이 되고 싶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딜 봐서 그게 소박한 꿈인데요?”
“한 우물만 파겠다는 것 자체가 소박한 건데요.”
“······.”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고작 라면왕으로 만족할 생각 없거든요.”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사내가 되어서 식품업계 개발에 뛰어들었으면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제과, 제빵, 냉동, 냉장, 육가공 등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전설을 써내려가야죠!”
야망이 줄줄 흘러내리는 눈빛이었다.
“그런 게 바로 사나이의 로망! 식품개발자의 야망!”
주호영은 엄지로 제 자신을 가리켰다.
“저 정도는 되어야 꿈이 크다고 할 만하지요.”
“훌륭합니다.”
짝, 짝, 짝, 짝.
누가 이렇게 느리게 박수를 치나 봤더니.
심 사장이 몹시 탄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사내가 되어서 그 정도 야망은 가지고 살아야지요.”
“알아주시는군요.”
“그럼요. 저 역시 젊은 시절 큰 포부를 가슴에 품고 이 바닥에 뛰어든 사내인 것을요.”
심 사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련님을 따르면서 기필코 과로사하지 않고 자연사하겠다는 꿈!”
“크, 역시 사장님은 그릇이 크군요.”
“언젠가 반드시 바지회장이 되어서 차 회장님께 ‘어이, 차 회장!’ 하고 어깨동무를 해보겠단 열망!”
“바지회장······! 정말 원대한 포부로군요.”
“물론입니다.”
심 사장과 주호영은 서로를 뜨거운 눈으로 마주보았다.
오가는 야망 속에 피어나는 동지애!
쓸데없는 단결력이었다.
“김기태 연구원 스카웃은 최 소장님이 맡아주셨으면 해요.”
“좋습니다.”
“라면왕을 꿈꾸는 분이라니까 이번에 만든 컵라면을 가져가 보면 어떨까요?”
“헉,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제품을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출시 전 제품은 회사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보안을 지켜내는 극비사항이었다.
“견물생심,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어요. 눈앞에서 미끼를 살살 흔들어야 달려들지 않겠어요?”
돈으로도, 명예로도, 인간관계로도, 야망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자라면.
꿈과 로망으로 흔들어 보는 수밖에.
< 사나이의 로망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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