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08)
재벌집 만렙 아들-208화(208/416)
< 지금 잡으러 갑니다 >
최 소장이 빠르게 손짓하자, 유종태가 대뜸 차 트렁크를 열었다.
덜컹!
트렁크에는 컵라면 한 상자가 실려 있었다.
최 소장이 아까 연구소를 나설 때 가족들과 함께 먹으라며 챙겨줬던 호의였다.
“도련님, 긴히 쓸데가 있어서 그럽니다만, 요거 세 개만 가져가도 될까요?”
그게 뭐 별거라고.
“필요하다면 전부 가져가셔도 돼요.”
“에이, 됐습니다. 김기태 연구원 꼬시는 데엔 컵라면 3개면 차고 넘치죠.”
오?
“말 나온 김에 질질 끌 거 없이 바로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최 소장은 컵라면을 옆구리에 끼운 채 씩 웃었다.
“엉뚱한 놈이 김기태 연구원을 먼저 채가기 전에 잡으려면 한시바삐 서둘러야죠.”
“퇴근 시간 지난 지 한참인데요?”
사방은 어둑했고, 한우정엔 저녁식사를 위해 찾아든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하하핫, 도련님께선 괜한 걱정을 하시는군요. 개발자가 언제부터 퇴근 시간을 따져가며 살았다고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연구원들이란 말이죠. 대학원생 때부터 눈 뜨면 실험실, 눈 감을 때도 실험실, 밥 먹을 때도 실험실, 어쨌든 종일 실험실을 떠나지 못하고 구르는 실험실의 망령이라 할 수 있단 말이죠.”
나도 모르게 짠한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심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최 소장만 속 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니 그 친구라면 퇴근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발자의 근본.”
“소장님 말이 맞습니다. 그놈 다른 건 몰라도 근본은 있는 놈이거든요.”
김기태 소리만 나오면 이 악물고 딜을 넣던 주호영마저도 인정했다.
“히키코모리라고 들어보셨어요? 그놈 딱 그거거든요.”
그러면 그렇지. 난 또.
“컵라면과 함께라면 저도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주호영은 손을 들어 자원했다.
“그놈 이거 보고 눈 돌아갈 거라고 확신합니다! 참, 이거 제가 만들었다고 자랑해도 됩니까?”
“······.”
“이걸로 백만 원 성과금 받았다고 놀려먹어도 됩니까?”
“······.”
“한우정 회식, 폭탄주 제조 쇼, 유급휴가 MVP, 사내 복지 시설에 관해 나불대도 됩니까?”
당장 놀려먹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너무나 간절해 보이는 눈이라 차마 안 된다고 거절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본인이 자청해서 김기태를 스카웃해오겠다는데, 굳이 말릴 까닭도 없었다.
대신 신신당부하기로 했다.
“최 소장님, 만일 이 주둥이 때문에 김기태 연구원의 스카웃에 방해가 된다면······.”
“어허, 그런 죽을죄라면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겠습니다.”
최 소장답지 않게 싸늘한 눈빛으로 주호영 연구원을 노려보았다.
“연구실에 박아넣고 100일간 묵언연구 시킬 겁니다.”
“······!”
“물론 100일간 독방 연구실로 배정할 생각이고요.”
“······!”
“독방엔 컵라면과 군만두만 넣어줄 겁니다.”
주호영 수석연구원은 비명을 질렀다.
뭉크의 절규와 똑같은 포즈, 똑같은 표정으로.
주호영은 외쳤다.
“고작 김기태 좀 놀려먹는 대가가 100일이나 되는 영창이라고요? 그건 너무 가혹하잖습니까!”
“안 까불면 되잖나, 안 까불면.”
최 소장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닥치고 조용히 따라오면 돼.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예.”
“주접은 적당히, 자랑만 왕창 떨자고.”
“자랑은 됩니까? 그럼 됐습니다.”
주호영이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며 얌전히 최 소장의 뒤를 따랐다.
최 소장은 허리를 꾸벅 숙였다.
“하하핫, 그럼 빠른 시일 내로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목줄 채운 강아지처럼 주호영은 최 소장 뒤를 졸졸졸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본 심 사장이 나지막하게 웃었다.
“역시 도련님의 말씀은 다 옳습니다.”
갑자기?
“연구원들도 바보는 아닌데, 최 소장을 저렇게 따르는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씀 말입니다.”
심 사장이 연구소행 사람들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좋은 느낌이 듭니다. 여러모로.”
동감이다.
왠지 저 둘에겐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동고동락한 사람들만이 풍길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호영 수석연구원이 대기업 식품개발부가 아닌 이곳 연구소로 왔듯, 도련님께서 점찍은 김기태 연구원 또한 이곳 연구소로 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달까요?”
심 사장은 작게 미소 지었다.
“전원 해외 유학파 출신 박사 학위자로 사무실을 채우는 능력자. 어쩌면 최 소장의 진가는 연구원 영입력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김기태 영입 임무를 최 소장에게 맡겼다.
“저분들이 개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우리 책임지고 확실하게 서포트해요.”
“그래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따로 논해야 할 문제가 남은 것 같죠?”
최 소장이 도움을 청한 세 가지 난제 말이다.
“물론입니다.”
심 사장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돌파구라면 이미 생각해뒀다는 표정이었다.
* * *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자체 제작 금속장인, 전차 주행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한 프로그래머, 최고 사양의 반도체. 거기에 하나 더.”
나는 네 번째 손가락을 마저 꼽았다.
“제한 시간이란 문제도 고려해야 해요.”
“예, 맞습니다. 국산 전차 성능 시험 참관까지 한 달도 채 안 남았군요.”
제작 및 시연까지 최소 보름 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다.
“빠듯하겠어요.”
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심 사장은 양지에서, 양지의 방법으로. 나는 음지에서, 음지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마련해 볼까?’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
“심 사장님께선 관련 업종 회사에 전화를 넣어 협조를 구해보세요.”
이 바닥에서 경영의 대가, 비즈니스의 신화라고 불리던 태성의 대들보가 바로 심 사장이다.
어떻게든 그와 연을 대고 싶어 할 협력 업체가 줄을 설 터였다.
대기업 하청이란 안정적인 공급처를 뚫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예, 안 그래도 제법 눈여겨보던 회사가 몇 있습니다.”
심 사장 또한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금속과 프로그램 쪽이라면 문제없을 것 같고. 단지 최고 사양의 반도체란 게 걸리는데······.”
심 사장답지 않게 난색을 표했다.
“국산 제품으로는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는 회사가 없는 것 같군요. 어쩔 수 없이 외국 제품으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70년대까지 반도체 시장은 IBM, Texas instruments, 모토롤라, 인텔 등 미국 기업들이 절대적인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그 뒤를 필립스, 지멘스로 대표되는 유럽과 NEC, 도시바, 히타치 등의 일본 기업이 따랐다.
“필요하다면 해외로 출장 나가 업체와 직접 만나 샘플을 수급해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저는 다른 방향으로 알아볼게요.”
나는 유종태를 돌아보았다.
동전 지갑을 열어 흰 종이를 꺼냈다.
몽블랑 만년필로 빠르게 슥슥 적어내렸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을 풀어 이 사람들을 찾아가보세요.”
“이 사람들은 또 누굽니까?”
“저도 들어본 적 없는 인물들이로군요.”
유종태와 심 사장은 큰 흥미를 보였다.
유종태와 심 사장은 큰 흥미를 보였다.
“솜씨 좋은 전파사와 불법 무기 제조 전문가 명단이요.”
“전파사요?”
“불법 무기 제조 전문가요?”
이거 왜 그래?
전파사란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처럼?
전파사는 전자제품 수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였다.
이 시절에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던 필수 요소랄까.
“돈이 없어서, 생업에 일찍 종사하느라 전문 자격증이나 학위란 건 없을 테지만, 실전에서 오랜 세월 갈고닦은 솜씨만큼은 수준급인 분들이에요.”
연구원들과는 조금 다른 실전형 실력자들.
지금 연구원들이 고생하는 부분이 바로 도면을 구현하는 실전 영역이 아니던가.
“이 두 사람은 반드시 데려와야 해요.”
“영등포기계공단의 인간드워프?”
“세운상가의 짝퉁수리공?”
둘 다 뒷골목에서 이쪽 방면으로 최고라 손꼽히는 실력자들이다.
“반도체는 밀매왕을 통해서 구해볼까 해요.”
“한세월 걸리겠군요. 기한 절대 못 맞출 것 같습니다만?”
심 사장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렇잖습니까. 어둠의 루트를 통해서 물건을 구하는 데엔 한계가 있는 법이죠.”
이번엔 심 사장이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반도체를 빼돌리고, 구매자를 찾고, 가격을 흥정하고, 암시장에 유통하기까지. 단계가 좀 많아야 말이죠.”
이런, 뒷골목의 음지는 그리 느릿느릿하게 굴러가는 곳이 아닌데.
빠릿빠릿하게 구르지 않으면 전부 빼앗기는 험악한 동네라구요?
“내기할래요?”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밀매왕이 밀수로 구해오는 게 더 빠른지, 심 사장님이 해외출장 가서 직접 공수해오는 게 더 빠른지. 어때요?”
“좋습니다. 제가 이기면 유급휴가 10일! 어떻습니까?”
“콜. 대신 제가 이기면 해운회사까지 심 사장님이 커버해주시는 거예요?”
“콜! 어차피 그 일도 지금 제가 도맡아 하고 있잖습니까. 전 손해 볼 것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손을 맞잡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는 동전 지갑에서 다시 한번 흰 종이를 꺼내어 몽블랑 만년필로 슥슥 적어내려갔다.
“자, 서명날인해야죠.”
난 말보단 문서를 더 믿거든.
이만하면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허······!”
왜 또 그런 표정으로 치를 떠시나 몰라.
* * *
저승사자가 깜짝 놀라 감탄사를 터뜨렸다.
[맛있어······!]“맛있어!”
어머니도 컵라면 한 젓가락에 눈이 동그래지셨다.
그건 옥분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맛있네! 희한하게 만들던데, 무슨 라면을 이렇게 끓여?”
“컵라면이라서 그래요.”
“컵라면?”
“특이한 용기에 담겨 있어서 야외에서도 끓는 물만 부으면 3분 후에 먹을 수 있게 만든 라면이거든요.”
“아궁이 불로 팔팔 끓여도 3분 가지고는 라면 못 끓일 텐데. 허, 거 세상에 별 신기한 라면도 다 있네.”
옥분 할머니는 신기해했고, 아버지는 흥미로워했다.
“심양식품의 컵라면과는 상당히 다른 것 같군.”
아버지는 젓가락도 내려놓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컵라면을 살폈다.
“근데 이 컵라면, 정말 정혁이 네가 만든 것 맞니?”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이 만든 거예요.”
“우리 연구소? 아, 우광연구소.”
아버지는 못 믿겠다는 듯이 컵라면을 바라봤다.
“우광연구소가 개발한 컵라면이라면 맛없다고 혹평이 자자하다.”
음, 인정.
그건 확실히 맛이 좀 그렇긴 했다.
“심양에서 출시했다가 쫄딱 망한 프로토타입만도 못하단 평이라던데. 걸레 빤 물에 건빵 불려먹는 맛이라던가?”
음, 그것도 인정.
개도 못 먹었다니까 말 다 한 거지.
“우광연구소에서 나오는 물건들이 대개 그렇다더군. 오죽하면 돈 먹는 하마라고 불렸을까.”
최 소장님과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구르고 또 구르며 만든 컵라면이었는데.
세간의 평가는 참으로 박했다.
“하지만 이건 안 그렇군. 상당히 맛있다. 우광연구소에서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우광연구소가 아니라 JH연구소예요.”
“그래, 간판 하나 바꿔 달았을 뿐인데, 어떻게 결과가 이렇게까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야 장차 식품업계를 평정할 식품개발의 천재, 주호영 수석연구원을 데려왔기 때문이겠죠.
······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대통령께서 JH는 따로 떼어 심 사장님께 관리를 맡기셨다더니. 리더의 역할이 이렇게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나. 흥미롭군.”
이거 JH는 내 소속이라고 까발릴 수도 없고.
나는 냉수만 꿀꺽꿀꺽 들이켰다.
“이건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 확실히 괜찮아. 이 정도로 잘 만든 제품은 흔치 않거든.”
아버지는 웃었다.
“잘만 하면 초대박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선배, 정말 그 정도로 괜찮아요?”
“탁월해.”
아버지는 괴었던 턱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이건 진지하게 사업화 방안을 구상해 봐야 하나 싶다.”
“아, 그 문제라면 걱정하실 것 없어요.”
나는 사업화보다 다른 걸 먼저 할 생각이다.
“이건 군용식품으로 선보일 계획이거든요.”
“뭐?”
“이번에 대통령님께 국산전차 성능 시험 참관 초대장을 받았잖아요. 그때 보여드릴 생각이에요.”
“······!”
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 지금 잡으러 갑니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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