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09)
재벌집 만렙 아들-209화(209/416)
< 바가지보다 무서운 공짜 >
우리 집 대문만큼이나 커다랗고 두꺼운 철문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띵동.
“잡았다, 요놈! 너 방금 딱 걸렸······!”
벌컥!
기세 좋게 대문을 열어재꼈던 고재영이 일시정지 상태로 얼어붙었다.
고재영의 손에 들린 찌그러진 쇠파이프가 상당히 흉악해 보였다.
살기를 풀풀 날리던 고재영이 멍해지는 데까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차, 차정혁?”
“어.”
“······진짜 차정혁?”
“그럼 가짜겠냐?”
“차정혁이 우리 집에 올 리가 없는데?”
응, 나도 찾아올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어쩌겠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아쉬운 사람이 찾아가는 거지.
이게 다 반도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고재영은 몰랐다.
“설마 매일 열댓 번씩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튄 게······.”
“나겠냐?”
“응, 아니겠지. 그러네. 너는 그런 귀찮은 짓을 할 이유가 없지.”
고재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넌 날 싫어하니까. 이해했고, 납득했고, 받아들였어.”
“내가 언제 너 싫어한대? 난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아는 척도 하지 말고, 선물도 필요 없다면서? 전부 돌려보냈잖아.”
“호의만 받았으면 된 거 아냐?”
“응, 그렇겠지. 호의 받았으면 용건 끝난 거지. 이해했고, 납득했고, 받아들였어.”
아, 넌 왜 또 시무룩인데?
“그러니까 이상하잖아. 네가 용건 없이 날 찾아올 리가 없······ 헉!”
고재영은 고개를 푹 숙이던 찰나, 내가 들고 있는 종이봉투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다.
“그거 돌려주려고 온 거야?”
고재영이 곤란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네가 그때 핑크색은 싫다고 해서, 여자애들 물건도 싫다고 해서, 그래서······!”
“그래서 매일 내 책상 위에 온갖 간식을 올렸냐?”
“네가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랑 간식 나눠 먹는다기에······.”
“어. 덕분에 애들이 맛있다고 엄청 좋아하더라.”
“······그래?”
“어.”
그제야 고재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것에 비해 입가에 걸리는 미소는 조금 야박했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비싸게 웃는 여자라니까.
작게 웃던 고재영이 퍼뜩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간식 돌려주러 온 게 아니라면 왜 온 건데? 혹시······.”
“할아버지 안에 계셔?”
“아, 할아버지······.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역시 그랬던 거구나.”
아니, 넌 왜 내가 무슨 말만 꺼내면 시무룩해지는데?
“이해했고, 납득했고, 받아들였어.”
“그럼 나도 좀 받아들여주지 그래?”
“······!”
고재영이 놀란 고양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왜 자꾸 내가 말을 할 때마다 놀라냐고.
“나 언제까지 대문 밖에 서 있냐?”
“아, 그랬지? 미안. 이해했고, 납득했······.”
“그냥 꺼질까?”
“아니야! 얼른 들어와! 우리 집에 온 거 환영해!”
나는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자, 선물.”
“서, 선물? 나한테?”
“어.”
또, 또, 또 놀란 눈!
“호, 혹시······.”
“컵라면이야.”
남의 집에 빈손으로 가는 게 좀 그래서 일단 몇 개 가져와 봤다.
“어제 막 연구소에서 나온, 시중에서 팔지 않는 신제품이거든.”
그러니 선물용으로는 딱이지.
쉽게 구하긴 어렵고, 내 돈 주고 사지는 않을 만한, 흥미로운 어떤 것.
“맛 좀 보라고.”
“······일부러 챙겨준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싫으면 말고.”
“내가 언제 싫댔어. 희한하게 생긴 게 마음에 들어. 잘 먹을게.”
고재영은 종이봉투를 꼭 껴안고 종종걸음으로 앞장섰다.
어쩐지 차분한 평소의 걸음걸이와는 조금 다른, 묘하게 들썩거리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
* * *
고재영은 나무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이거 어디서 팔아?”
“아직 안 판다니까.”
“내가 살게.”
아, 글쎄, 시중에 안 판다니깐 그러······ 깜빡했다.
고재영네 집안은 시중에 안 파는 물건을 구해다 유통하는 밀매업 전문이었지.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얼마나 필요한데?”
“한 100상자?”
컵라면 24개가 한 상자다.
“미쳤냐? 2,400개면 삼시세끼 컵라면만 먹어도 2년 하고도 70일을 먹어.”
“살게. 얼마야?”
“유통기한 짧아서 다 먹기도 전에 썩을 텐데?”
“할아버지 미국 가시니까. 고향 밥도 못 먹을 텐데, 가끔 이거라도 드셨으면 해서.”
“······미국행 화물선 출항할 때 한번 실어볼게.”
“흠흠, 물건값에 운송비, 수고비, 위험수당, 판공비, 보관비, 통관비에 부가가치세까지 추가해서 총 얼마면 돼?”
누가 밀매왕 손녀딸 아니랄까 봐.
이 집안 계산법도 참 특이하다니까.
“공짜.”
나는 피식 웃었다.
“난 내 식구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뜯어먹을 생각 없어. 그러니까 토끼 지갑은 도로 넣어둬.”
“하하하, 역시 배포가 크시군요.”
밀매왕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저 또한 도련님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미국도 다 사람 사는 데가 아닙니까.”
알지.
하지만 이 시절 미국에 한국식당이 그리 흔한 게 아니라서.
평생 먹던 음식가락이 있는데, 나이 들어 외국에 몇 년이나 나가 있자면 때때로 고향의 맛이 사무치게 그리울 터였다.
“여차하면 한국인 요리사를 납치해다 주방에 박아두면 됩니다.”
“······.”
“대신 미국행 화물선에 싣는 것 대신 우리 밀수선에 좀 실었으면 합니다만?”
“밀수선에 컵라면을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얼마나 필요한데요?”
“초기 물량으로 한 100만 상자쯤?”
손녀와는 주문 수량부터 클래스가 남다르구만!
“어디로 가져가려고요?”
“러시아.”
밀매왕은 턱을 쓰다듬었다.
“추울 때 끓는 물만 부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라면 제법 잘 팔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훗날 러시아에선 타사의 컵라면이 불티나게 팔렸다.
나는 작게 감탄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밀수업의 일인자를 할 수 있군요.”
“고객의 주문을 받고 움직이면 늦습니다. 한발 먼저 고객의 니즈를 읽고 움직여야 우수한 밀수꾼이죠.”
밀매왕의 영업비밀이었다.
“자, 그럼 인사치레용 영업은 여기까지 하시는 것으로 하고. 절 찾아온 용건은 뭘까요?”
깜빡이도 없이 밀매왕이 훅 들어왔다.
바라던 바였다.
“물건을 구하고 싶어서 왔어요.”
“국산전차 개발에 애로사항이라도 생기신 모양입니다?”
“귀찮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에요.”
“혹시 전차에 들어가야 할 반도체를 최고 사양으로 맞추고 싶으십니까?”
아니, 어떻게 알았지?
“그거면 됩니까? 기술자가 필요하진 않고요?”
“기술자?”
“원한다면 구해드릴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자로 선별해서.”
그냥 기술자도 아니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자를 구해오겠단다.
궁금해졌다.
“가능해요?”
“물론이죠.”
밀매왕은 호언장담했다.
“전 아무 물건이나 마구잡이로 들이지 않습니다. 전 팔릴 만한 물건, 팔 수 있는 물건, 팔아야 하는 물건만 골라 들여옵니다.”
밀매왕의 영업 비밀이 또 하나 풀렸다.
“기준에 안 맞으면 재고는 전부 우리 몫이 되고 맙니다.”
안 팔리는 재고품은 떨이로 헐값에 팔아치우거나, 창고에 처박아두는 수밖에 없다.
물론 위험수당과 보관비와 유지관리비는 추가로 붙는다.
“밀수가 불법이잖습니까. 비밀 창고를 관리하는 데 보통 인력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서요.”
밀매왕은 한쪽 눈을 찡긋했다.
“합법적인 사업은 돈이 영 안 됩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거든요.”
그야 진입장벽이 높지 않으니까.
누구든지 원한다면 뛰어들 수 있으니, 경쟁과 시장 논리로 굴러가면 자연히 마진율이 적어질 수밖에.
“반대로 말하면 불법은 돈이 됩니다. 다만 암시장을 들락거릴 수 있는 손님의 풀이 너무 좁은 게 문제지요.”
그렇다면 문제.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VIP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구매자가 거부할 수 없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귀한 알짜 물건만 선별해 몰래 들여와야죠.”
“역시 우리 도련님! 그래서 저도 미리 준비해 봤습니다, 곰치야.”
“예.”
밀매왕이 손가락을 튕겼다.
험악한 인상의, 예전에 우리를 부산 창고로 데려갔던 곰치란 남자가 검은색 브리프 케이스를 가져왔다.
달칵.
브리프 케이스 안에는 얼추 스물너댓 개의 반도체가 전시하듯이 진열되어 있었다.
“골라보십시오.”
밀매왕이 느긋하게 손을 내밀었다.
“작년 하반기에 개발된 반도체가 상단에, 올해 상반기에 개발된 것이 하단에. 국가별, 회사별, 용도별로 나열해두었습니다.”
자신만만한 웃음은 덤이었다.
“물론 모두 아직 시중에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은 것들이죠.”
“설마······.”
“예, 개발 과정에서 슬쩍 뒤로 빼돌린 물건들입니다.”
“어떻게요?”
“요령껏, 능력껏, 재주껏?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데요.”
밀매왕이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아붙이며 웃었다.
“시장에 출시된 후에 움직이면 늦습니다. 암시장에서 돈 냄새 좀 맡으려면 그들보다 훨씬 더 발 빠르게 움직여야죠.”
개발까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만큼 보안을 철저하게 하며 관리해왔을 터였다.
저걸 어떻게 뒤로 빼돌렸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이 또한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든 일임은 분명했다.
‘평생을 뒷골목에서 굴렀는데도 이 정도로 수완 좋게 움직이는 자는 또 처음 보는군.’
밀매왕의 캐치프레이즈인 ‘마약 빼고 다 구해온다!’는 소리가 괜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못 구하는 게 없고, 못 파는 게 없다더니.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기업의 시제품까지 뒤로 빼돌리는 줄은 몰랐지.
“암시장이 왜 암시장인데요. 일반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을 굳이 암시장에서 유통시킬 필요는 없잖습니까. 차라리 중고시장이라면 또 모를까.”
밀매왕은 손가락을 부딪치며 브리프 케이스를 툭툭 두드렸다.
“경쟁회사 제품을 누구보다 빠르게 손에 넣는 데엔 암시장이 최고지요. 돈만 두둑하게 얹어주면 이렇게 쉽게 기업 비밀을 얻어낼 수 있다니, 그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래서 얼마에요?”
“이거 하나가 얼마에 거래되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 텐데요.”
“얼마를 부르든 간에 내가 그 돈, 넉넉하게 얹어줄 수 있거든요.”
나는 씩 웃었다.
“내가 그 정도 능력은 돼요.”
전차 연구에 쓰일 물건이다.
아직 시중에 유통되지 않은 최신형 반도체다.
이 시절 각 나라별 최첨단 기술력의 결정체를 얻는 일인데, 만금이 아까울까.
‘값은 대통령한테 넉넉하게 뜯어내면 돼.’
국산 전차 연구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대통령이다.
자주국방을 외치고 있는 것 또한 내가 아닌 대통령이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일시불로.”
대통령이 그토록 바라고 또 바라던 국산 전차인만큼 성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길 바란다.
‘난 윈윈의 거래를 원한다.’
대통령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 회사도 좋고, 우리나라에도 좋고!
‘그러려면 내가 가진 패 또한 뒤지지 않을 만큼 좋아야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뻔뻔하게, 과감하게, 빠릿하게 왕창 뜯어낼 자신 있다!
이건 그때를 위한 투자라고 치자.
“왜요? 제가 그 정도 돈도 없을까 봐서요?”
이래 봬도 제가 재벌3세거든요.
딸린 회사가 8개!
사들인 땅만 18만 평!
그러니 작정하고 사려고 들면 못 살 것도 없다.
“먼저 불러 봐요.”
나는 웃었다.
“물건값에 운송비, 수고비, 위험수당, 판공비, 보관비, 통관비에 부가가치세까지 추가해서 총 얼마면 되는데요?”
“공짜.”
나는 표정을 굳혔다.
위기감이 엄습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섭게 왜 이러시나?
“차라리 평소처럼 바가지를 왕창 씌우세요.”
그럼 능력껏, 재주껏, 요령껏 깎아볼 텐데.
내가 또 그런 건 자신 있거든!
“바가지라니요? 그냥 가져가시면 됩니다. 이건 제 성의거든요.”
“이 정도면 성의가 아니라 뇌물이라고 해야죠.”
이렇게 대뜸 먹이는 뇌물이라니.
의심스럽다 못해 위험한 냄새가 폴폴 풍긴다.
내가 왜 밀매왕을 먼저 찾아왔는데?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아쉬운 내가 반도체 밀수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왔다.
이 말인즉, 밀매왕 또한 아쉬운 청탁을 할 작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무슨 청탁을 하려고요?”
“제가 미국에 간 동안 손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후견인이라면 이미 받아들였잖아요?”
“재산 포함 재영이의 신병 안전 일체를 부탁드릴까 합니다.”
밀매왕이 횡액이라도 당하면 그 많은 재산은 고재영 앞으로 떨어진다.
보호자 하나 없이 천애고아가 된 여덟 살짜리 여자애를 두고 피 튀기는 재산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단 소리였다.
“수지 안 맞겠는데요.”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밀매왕은 두툼한 서류를 내밀었다.
‘아, 젠장, 황금빛······!’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석유파동 때 나올 공룡 매물, 유공 인수에 관해 할아버지에게 각서를 받아들일 때나 나옴 직한 미친 황금빛이었다.
이 정도로 눈부신 황금빛은 대통령에게 종이마패를 받을 때에도 구경하지 못했다.
‘대체 밀매왕이 뭘 가져왔······ 허?’
제목이 눈에 띄었다.
<최고반도체 인수에 관한 보고>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국내 최초로 반도체 생산을 시작했다던 그 최고반도체?’
이게 왜 여기서 나와?
< 바가지보다 무서운 공짜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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