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10)
재벌집 만렙 아들-210화(210/416)
< 뭘 자꾸 얹어드린대 >
보는 눈이 많아서 장소를 옮겼다.
밀매왕의 응접실 벽엔 어탁과 작살이 종류별로 가득 걸려 있었다.
‘최고반도체라······.’
1968년 미국의 반도체 수출입 허가를 받아낸 후 1970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를 가공, 판매한 기업이다.
밀매왕은 계란 노른자 두 개 띄운 쌍화차를 건네며 말했다.
“보세공장 설영특허와 국내 수입 유통에 관한 판매 독점권을 각각 따낸 후, 반도체 조립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곳입니다.”
나도 익히 알고 있다.
훗날 반도체 조립 분야 세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거든.
“내친김에 반도체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코리아전자를 인수한 후, 일본 마쓰시타전기산업과 합작하여 가전제품 사업에 진출했다더군요.”
일본 마쓰시타전기산업, 즉 파나소닉.
1980년대 제네럴 일렉트릭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 중 하나로 손꼽히며, 1990년대 시가총액 기준으로 일본 최대의 가전업체로 군림하는 기업이다.
그런 기업과 합작을 성사시켰다니, 재주도 좋다.
“또한 올해 일본 니콘사와 정밀광학사업 기술 제휴를 맺었고, 반도체와 관련한 특허도 여럿 따냈습니다.”
어쩐지 황금빛이더라니!
이 정도 상황이면 누가 봐도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그려질 만했다.
그래서 의아했다.
“그럼 이제 공장에서 반도체나 가전제품을 찍어내는 대로 팔면 되는데, 왜 이 회사는 매물로 나왔죠?”
“그게 말입니다. 재수 없는 횡액을 연달아 당했다는군요.”
재수 없는 횡액?
“반도체와 가전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자, 큰맘 먹고 부천에 크게 공장을 확장하기로 했는데, 그만 거기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무슨 문제인데요? 공장에 불이라도 났나요? 아니면 중정에 간첩 혐의로 끌려갔다거나······.”
“결국 돈 문제죠, 뭐.”
“······.”
“파산 직전이랍니다.”
그래서 더 황당했다.
“설영특허에 국내 독점 판매권까지 있다면서요?”
국내 독점 판매권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미국 반도체 회사에서 들여온 반도체를 쓰려면 최고반도체를 거쳐야 한다는 소리였다.
반도체 안 들어가는 전자제품이 어디 있다고.
“미국에서 들여온 반도체 그대로만 내다 팔아도 돈방석에 앉을 텐데요?”
지금 대한민국 제조업은 한창 가파르게 성장하는 고속 성장기에 올라타 있다.
따라서 반도체 수요 또한 해마다 크게 급증하는 추세였다.
“대기업 전자회사에 독점 공급해도 돈을 쓸어담을 상황인데요?”
그러한 이때 파산이 웬 말인가!
밀매왕은 피식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러니 더럽게 재수가 없게 된 거죠.”
“도박이라도 했대요?”
“도박판에서 날려먹은 건 마누라 쪽입니다.”
아내분이 크게 사고 치셨구만!
“부천에 공장을 크게 짓겠다고 담보 잡힐 수 있는 건 전부 잡혀 은행과 사채 가리지 않고 대출을 풀로 당겨받았는데, 그걸 전부 날렸다더군요.”
“건축 사기?”
황당했다.
“공장도 다 안 지었는데, 대출금을 전부 다 쏟아부었다고요?”
“우광건설이 문제였죠. 이번에 우광화학 방화로 말아먹었잖습니까.”
“아······.”
재수가 없으셨구만!
하고 많은 건설사 중에 왜 하필 우광건설을 골라서, 쯧쯧.
우광건설 사장과 임원들은 중정으로 끌려갔고, 우광건설 주식값은 똥값이 됐다.
우광건설은 현재 정치자금 돈세탁용으로 잿더미 위에 간판만 달랑거리는 상태였다.
“게다가 그 집 아들은 집문서 땅문서를 모조리 팔아치운 후에 금고를 통째로 뜯어내서 들고 튀었답니다. 해외로.”
“아······.”
자식 농사까지 대차게 말아먹으셨구만!
재수 없는 횡액이 연달아 줄줄 터졌다니.
이 정도로 말아먹어야 최고반도체가 매물로 나오는구나.
그래도 이건 아니지!
“다른 곳에서 투자자를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을 텐데요?”
“요즘 누가 반도체 회사에 투자한답니까? 수익률 높고, 실적 좋은 중공업 회사가 널렸는데요.”
정부가 중공업 육성정책을 천명한 이래 중공업 시장은 은행과 투자자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덕분에 다른 사업들은 돈줄이 말라서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덕분에 밀매왕은 이런 알짜 회사를 헐값에 거저 얻게 되었군.’
아쉬운 마음에 절로 입맛을 다시게 되었다.
‘아직 반도체 회사는 상업적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옆 나라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뒤늦게 반도체 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적어도 5년, 10년 후에나 재벌기업들이 눈을 돌리는 사업을 밀매왕은 벌써부터 눈독들였다고?’
신기했다.
‘대단한 선구안에 과감한 투자 결정이라고 해야 하나?’
나 또한 왕년에 기업 투자 전문으로 사채왕 자리에까지 올라보지 않았던가.
그러니 밀매왕의 발 빠른 투자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작게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반도체 회사를 어떻게 알아보고 투자 결정한 거예요?”
“그건 제가 아니라 우리 재영이가 고른 겁니다.”
고재영이?
‘고재영의 사업적인 감각이나 투자 선구안이 이렇게 뛰어났던가?’
그러고 보니 밀매왕이 사라지고, 그의 재산도 흔적 없이 증발해버린 이후.
고재영은 빈털터리로 길바닥에 나앉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난 그녀가 돈에 쪼들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목격한 바 없었다.
‘복수에 눈이 멀어서 칼을 휘두르고 다닌 사람치고 주머니는 상당히 넉넉해 보였지. 그때 뭐라고 했더라?’
언젠고 한번 농담처럼 물었을 때, 그 여자는 대답했었다.
-어쩌다 한 기업 투자로 돈 좀 만졌어.
묘한 동질감이 들었던 대답이었다.
나 또한 일반인들이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사채를 굴리고 있었으니까.
-범죄와의 전쟁 때 흘린 돈부스러기를 쓸어담았던 덕분이었지.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폭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을 때, 범죄와의 전쟁으로 풍비박산 날 때 두둑하게 쓸어담았다.
그게 내 투자자금이었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찾아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은닉재산을 찾는 쪽에 특화되어서.
나도 홀연히 증발해버린 내 여자를 찾느라.
주인 잃은 뒷골목의 은닉 자산을 찾아 먹으며 성장하게 되었다.
-원수를 갚은 후에 회수한 것도 제법 됐고.
내가 서울 지역 조폭들의 뒤를 털어먹고 있었을 때, 그 여자는 부산 지역 조폭들 뒤를 털어먹었더라고.
‘생각할수록 기가 차네. 우리 어떻게 이렇게까지 비슷하게 클 수 있었지?’
그녀와 나는 한때 둘도 없는 환상의 파트너였다.
‘이번 투자로 무지막지한 수익률을 찍으시겠군.’
군침을 흘려 봐야 남의 떡!
최고반도체 인수는 내가 했나? 밀매왕이 했지.
내 몫이 아닌 것을 탐낼 필요는 없다.
“종목 잘 고르신 것 같아요. 공장 잘 지으시고, 회사 번창하길 바랍니다.”
나는 밀매왕의 투자를 응원해주기로 했다.
“개업식 날짜가 정해지면 말씀하세요. 제일 큰 화환으로 보내드릴게요.”
“음, 그래서 말입니다만. 아무래도 최고반도체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전 회사 경영이라면 문외한에 가까워서 말입니다.”
아, 깜빡했다.
저 양반 전문은 경영 쪽과는 영 거리가 멀었지?
“단적인 예로, 국천그룹에 투자했으면서도 경영권을 행사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대주주와는 행동의 궤가 달랐다.
보통은 경영권 간섭을 심하게 하거든.
“게다가 전 곧 미국에 가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직접 회사를 경영할 여건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도련님, 정말로 최고반도체에 관심 없으십니까?”
노골적인 의도가 느껴지는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콧방귀를 꼈다.
“그래 봐야 남의 회사, 맡아봐야 일만 늘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미끼를 덥석 물 생각 따윈 없었다.
“심 사장님께 바지사장을 맡아달라는 청탁을 하고 싶으셨나 본데요.”
경영의 대가라는 심 사장은 성공 신화를 몸소 써내려간 전문 경영인이었다.
밀매왕도 탐낼 만한 인재 중의 인재!
“안 그래도 심 사장님께선 일에 치여서 정신 못 차리고 계시거든요. 최고반도체까지 맡아 운영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요.”
“누가 심 사장더러 회사를 맡아달라 청탁했답니까?”
밀매왕은 내 눈앞에서 <최고반도체 인수에 관한 보고> 서류철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탐스러운 미끼였다.
“제가 이 제안을 꺼낸 상대는 심 사장이 아니라 도련님이십니다.”
흠칫했다.
내게 이런 제안을 하는 남자, 밀매왕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의심쩍었다.
“뭘 믿고 저한테 이런 큰 회사를 맡기시려고요?”
“도련님의 싹수와 수완을 믿고. 제 눈과 재영이의 안목을 믿고.”
“저 이제 고작 여덟 살이거든요?”
“그게 문제가 됩니까?”
밀매왕은 씩 웃었다.
“문제가 생기면 재주껏, 능력껏, 요령껏 주변 사람을 끌어들여 해결하실 텐데요. 그럼 됐지요.”
“거절할게요.”
나도 마주 웃었다.
“바지사장으로 구르기엔 수지가 영 안 맞네요.”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밀매왕은 서류용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최고반도체의 지분 30%입니다.”
“30%?”
0.3%도 아니고, 3%도 아니고, 30%나?
최고반도체 주식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나는 홀린듯이 서류 봉투를 열어 확인했다.
‘아, 젠장, 또 황금빛······!’
눈부신 황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혹시나 해서 물었다.
“주당 얼마나 생각하고 오셨어요?”
흥정을 원한다면 응해줘야지!
여러모로 계산기를 굴려 봐도 결론은 똑같았다.
흔치 않은 기회였다.
“회사 인수대금에 대출 승계금, 이자, 중개비, 수고비, 판공비, 취등록세 및 등기료, 부가가치세까지 더해서 총 얼마면 되는데요?”
“돈은 됐습니다.”
나는 표정을 굳혔다.
뒷머리가 쭈뼛 솟을 만큼 위기감이 엄습했다.
“이걸 공짜로 내놓겠다고요?”
“예.”
이거 왜 또 이러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돈‘은’ 됐다면 다른 걸 원한다는 뜻이겠죠? 대체 뭘 얼마나 뜯어가시려고요?”
“제가 원하는 건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씀드렸을 텐데요.”
“재산 포함 고재영의 신병 안전 일체에 관한 책임.”
“바로 그렇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두드렸다.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듯이.
청탁에 비해 뇌물이 너무 크다.
‘아니지, 그건 미래를 아는 내 입장에서의 계산이고, 밀매왕의 계산은 다를 수도 있잖아?’
밀매왕은 반도체의 향후 미래 가능성을 낮게 책정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물었다.
“흠, 투자 수익성은 얼마로 보고 계신데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있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었구만!
“재영이가 저더러 일본 회사에 연락해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흥미로웠다.
“파격적인 로열티 제안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기술 협약은 절대로 안 된다며 딱 잘라 거절하지 않겠습니까.”
“일본 회사들은 알고 있었군요. 이게 장차 큰돈이 된다는 것을.”
“예, 덕분에 직감했습니다. 이건 최소 이삼십 년간 든든히 뜯어낼 만한 돈줄이라고.”
밀매왕은 은근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도련님, 전 많은 거 안 바랍니다.”
“고재영 곁에 꼬이는 똥파리들 쳐내고, 재산 싸움에 뛰어들기를 바라시잖아요.”
“그 대가로 반도체 회사 지분 30%를 공짜로 얻을 수 있잖습니까. 사내라면 이런 기회는 일단 꽉 잡고 봐야죠.”
밀매왕이 다시 한번 내 눈앞에서 서류철을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지분이 담긴 서류 봉투를 흔드는 덤이었다.
“거기에 경영권과 인사권까지 얹어드리겠습니다.”
자꾸만 저울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반도체 회사, 솔직히 탐난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고재영의 주변을 쳐낼 수 있는 권리도 함께 주시는 건가요?”
이게 바로 문제였다.
“오랫동안 함께 부대껴온 식구라면서요. 고재영은 측근들을 믿고 있던데요.”
“그래서 도련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난 이미 고재영의 측근들에게서 배신의 낌새를 맡았다.
“견물생심이라 했어요. 막상 탐나는 먹이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면······.”
내 평생 지겹도록 겪어본 뒷골목의 더러운 탐욕이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사고가 터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충신들을 쳐내야 할지도 몰라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각오하고 있습니다.”
밀매왕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까닭에 저는 도련님께서 재영이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길 바랍니다.”
나 또한 강우를 거둔 이후 겪어내야만 했던 치열한 고민이었다.
가진 게 많을수록 잃는 것 또한 많다.
돈 앞에 의리 따윈 쉽게 내던지는 세상이었다.
왕년의 내 세상은 그랬다.
그래서 밀매왕의 고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제가 나서면 분명 안팎으로 시끄러워질 거예요.”
절로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차라리 측근들을 전부 치운 후에 새사람으로 교체하는 건 어때요?”
“새사람들로 갈아치운다 해도 결과는 비슷할 겁니다.”
견물생심.
그래서 방치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는 문제가 되었다.
“눈앞의 탐욕에 눈 돌아가지 않을 이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후견인이라는 명분으로는 부족해요.”
웬 어린놈이 후견인이랍시고 나타나 오래된 측근들을 숙청하고, 재산을 묶어버린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는 불 보듯 뻔하다.
밀매왕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래서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울 만한 확실한 지위와 명분까지 함께 얹어드릴 생각입니다.”
< 뭘 자꾸 얹어드린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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