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12)
재벌집 만렙 아들-212화(212/416)
< 뭐요? 우리 도련님이? >
명동에 위치한 JH투자회사.
위이이잉.
언제나 그랬듯이 사무실에선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타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다닥.
타자기 소리마저 끊기는 법이 없었다.
자료 뒤적이는 소리도, 따각따각 스테이플러 집는 소리도, 장부 넘기는 소리도 함께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콧노래 소리는 뚝 끊겨 있었다.
“흐으으음.”
대신 신음과 비슷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렵네요.”
엘리트 실무진들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말이었다.
하루에도 몇 박스나 되는 서류를 척척 처리하는 베테랑 일꾼으로 거듭났건만.
어째서인지 다들 다크서클만큼이나 시름이 깊어 보였다.
따르릉. 따르릉.
시끄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전화를 받았다.
“예, JH투자입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해봐도 되겠습니까?”
전화를 건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묻지 않고 대뜸 꺼낸 소리가 이렇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오가는 전화 응대인지라, 애송이처럼 굴 까닭이 없을 텐데도.
JH사무실 직원들은 조바심을 비쳤다.
기대감으로 들뜬 표정과 한 톤 높은 목소리만 봐도 얼마나 애가 닳았는지 알 만했다.
그러나 통화가 이어질수록 기대감은 난감함으로 바뀌었다.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정말 급해서 그렇습니다.”
옆자리에서도 이와 비슷한 톤으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청 계약도 물론 같이 진행할 겁니다. 다만 이번 프로젝트를 최우선으로 두자는 거지요. 오 과장님, 그렇게 딱 잘라 말씀하시지 마시고······.”
그 옆자리도, 건너편도, 뒷자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장님, 다시 한번만 재고해주십시오. 손해 보는 생산 물량은 저희가 대신 채워드린다니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이면 됩니다. 임시 파견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아니, 우리가 기술진을 빼돌리겠다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저 협력······ 여보세요?”
끊겨버린 전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JH의 엘리트 실무진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어렵네······.”
과외 선생들과 임원들도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조 상무님, 다녀오셨던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똑같아. 지방 공장단지까지 쭉 돌아봤는데, 하나같이 고개를 저어.”
“백 전무님은요? 산학 협력 제안 오케이 받으셨어요?”
“안 한대. 하다 하다 제주대까지 찍고 오는 길이다. 결론은 파투.”
“그래도 마 이사님이라면······.”
“일본, 대만, 싱가포르, 독일, 프랑스, 영국. 모조리 실패.”
“그럼 우리 전부 다 허탕 치고 빈손으로 돌아온 거네요?”
“우리 전부에서 심 사장님은 빼야지.”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사장실로 눈을 돌렸다.
사장실 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일말의 희망이 비쳤다.
“심 사장님께선 이달 말에 출시할 반도체를 두고 IBM와의 미팅을 성사시키셨다면서요?”
“그래, 사흘 후에 출국 예정. 나도 같이 간다.”
“꼭 샘플 얻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그래야지. 간 김에 그쪽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와도 접선해볼 작정이다.”
“출장이 꽤 길어지시겠는데요?”
“별수 없지. 시일이 워낙 촉박해서.”
조 상무는 사무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국산 전차 성능 참관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쉽지 않네.”
벌컥.
그때 사장실 문이 열렸다.
구겨진 와이셔츠에 푸석푸석한 피부와 충혈된 눈에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심 사장은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채 외쳤다.
“백 전무, 부산대 김 교수가 보통전자 엔지니어와 미팅을 잡아놨다는데. 다녀올 수 있겠나?”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비행기 타고 갈까요?”
“가. 마 이사는 홍콩에 다녀올 수 있겠나?”
“미팅 잡혔습니까? 이번엔 어디랍니까?”
“제네럴 일렉트릭. 기술개발팀장이 동석하는 자리라는군.”
“바로 출국하겠습니다.”
심 사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힘든 거 아는데, 그래도 조금만 더 속도를 올려줘야겠어. 알다시피······.”
“예, 국산 전차 성능 시험 참관일이 코앞이지요.”
“어려울 때일수록 보약 한 팩 더 들이켜고 화이팅하자고.”
따르릉!
이번에도 협력 업체의 전화일 줄 알았더니.
전화를 받은 조 상무가 벌떡 일어났다.
“예?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최 소장님, 자세히 좀 말씀해보세요! 반도체를 구하셨다고요?”
최 소장과 반도체란 단어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헉, 그건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최고급 최신 사양 반도체 아닙니까?”
복사기 소리도, 타자기 소리도, 스테이플러 찍는 소리도 멈췄다.
“예? 그런 반도체가 몇 개요? 스물여덟 개? 회사별, 용도별, 종류별로 각각?”
사무실 사람들은 숨도 멈췄다.
“아니, 그걸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데요? 예? 정혁 도련님이요?”
“······!”
어디선가 헉,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터졌다.
다들 놀란 눈으로 조 상무만 바라봤다.
그건 심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정혁 도련님이 신형 반도체를 구해왔다고?”
아니, 대체 어떻게?
나도 못 구해서 이렇게 발 동동 구르면서 내리 철야 근무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수로?
“사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위에서 오더 떨어진 지 닷새도 안 됐는데요?”
“혹시 태성그룹 총수님이 도와주신 거 아닐까요?”
“조용!”
조 상무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젓자, 다들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조 상무는 집중했다.
“잠깐만요! 정혁 도련님이 기술자도 데려왔다는 소리는 또 뭡니까?”
기술자라면 지금껏 사무실 식구들이 바쁘게 협력 업체에 전화 돌리며 구하는 중이었다.
“뭐요? 그 양반들이 달라붙으니까 고작 하루 만에 탱크 껍데기를 만들어 씌웠다고요?”
“······!”
“연구소에서 굴러다니던 장비만으로? 그러니까 오함마랑 그라인더, 용접기, 펜치 따위로 뚝딱 만들어냈단 말입니까?”
“······!”
“아니, 그 사람들 대체 뭐 하던 작자들인데······ 뭐요? 불법 무기 제조 전문가와 동네 전파사 수리공이요?”
“······!”
조용해진 사무실엔 조 상무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부릅떴다.
“정혁 도련님이 작업 환경이 못마땅하다면서 근처 금속 공장과 기계 공장을 통째로 빌려요?”
심 사장도 입을 떡 벌리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잠깐, 빌린 게 아니라 샀다니요? 이상하군요. 우리 JH엔 아직 금속과 기계는 없는······ 뭐요? 이틀 전에 계약서에 도장 찍었다고요?”
심 사장은 참지 못하고 달려나갔다.
조 상무를 향해 보란 듯이 손바닥을 펼쳤다.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전화기 내놔!
“잠깐만요, 최 소장님! 지금 심 사장님 바꿔드리겠습니다.”
“최 소장님, 전화 바꿨습니다. 심원철입니다. 아니, 인사, 보고, 전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죠.”
심 사장은 딱 잘라 말했다.
“방금 정혁 도련님께서 인수했다는 금속 공장과 기계 공장······ 뭐요? 반도체 회사까지 인수했다고요?”
“······!”
따르릉! 따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마 이사가 대뜸 달려들어 전화선부터 뽑아버렸다.
동시에 사무실 직원들도 일사불란하게 전화선을 모조리 뽑았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회사가 놀이터냐며 영업 전화 안 받을 거냐 호통치지 않았다.
지금은 그래도 됐다. 아니, 그래야 했다.
“독일 출신 엔지니어들이 합류······? 잠깐, 그들이라면 소련에서 로켓이랑 전차 만들던 위인들이잖습니까?”
심 사장의 목소리가 점차 떨려오기 시작했다.
“엔지니어들이 39명, 프로그래머가 12명? 그러니까 소련 출신만······ 아니, 모스크바 대학교수도 들어왔다고요? 7명이나?”
임원들은 물론 과외 선생들까지 입을 떡 벌렸다.
“일본 마쓰모토 전자산업부의 누구요? 기술개발팀장이 갑자기 JH연구소로 이적했어요? 휘하 연구원 21명을 데리고?”
심 사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최고반도체 기술연구소랑 JH연구소를 합치기로 했다고요? 허······!”
심 사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아서 그럽니다. 고작 닷새 만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스케일로 일이 진행될 리가······!”
심 사장은 거칠게 마른세수했다.
“그렇죠. 말이 안 되진 않죠. 정혁 도련님이 벌인 일이라면 스케일이······ 그 정도로 커질 수도 있지요.”
심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이 어찌나 조용하던지 전화기 너머로 최 소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핫,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끈한 지원이더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
심 사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또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쌔끈한 국산 전차로 지원에 보답하겠습니다. 하하하!
“······.”
-우리는 하나! 이 맛에 JH 다니는 거 아닙니까? 아자아자, JH 화이팅!
“······.”
최 소장은 전화를 끊을 때까지 너털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심 사장은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나지막한 감탄이 뒤따랐다.
“역시 우리 도련님!”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은 덤이었다.
“설마하니 진짜로 이렇게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내실 줄은 몰랐는데.”
이게 어떻게 여덟 살짜리 어린애의 수완이란 말인가.
그를 비롯해 유능한 임원들과 일 잘하는 엘리트 실무진들이 일제히 달라붙은 일이었건만.
이 작은 꼬마 도련님이 한발 먼저 해결해 버렸다.
“꼭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로군.”
정혁 도련님을 모시게 된 이후 종종 느끼는 기분인지라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심 사장은 기분 좋게 웃어버렸다.
“아무렴. 장차 태성의 차기 총수가 되실 분이신데. 이 정도는 해주셔야지요.”
이 심원철, 벌써부터 도련님께 거는 기대가 이토록 큽니다.
심 사장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말았다.
“이거 바지회장이 될 날도 머지않았나?”
벌써 야망에 한 걸음 바짝 다가선 기분이랄까.
심 사장은 연신 너털웃음을 흘렸다.
짝짝짝.
“자, 다들 동작 그만입니다!”
안 그래도 다들 손을 멈추고 심 사장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군요.”
“예, 알고 있습니다!”
“통화 엿들었습니다!”
“역시 우리 도련님이십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뒤따랐다.
“사장님,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혁 도련님께서 대체 어떻게 최신 반도체를 그렇게나 많이 구하셨답니까?”
“우리가 해외 출장 잡는다고 들쑤시고 다녀도 번번이 허탕 쳤잖습니까.”
“기술자는 또 어떻고요?”
“하청을 약속했는데도, 당장 자기네 공장 물량부터 소화해야 한다며 차일피일 미루더라니까요?”
심 사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사무실 식구들을 돌아보았다.
“그건 저도 궁금하군요. 대체 우리 도련님께서 어떤 수로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간단히 해치워버리셨는지.”
심 사장은 손을 들어 올렸다.
“따라서 지금까지 전 직원이 달려들어 매달렸던 JH연구소 지원은 이것으로 종료하기로 하······.”
심 사장이 멈칫했다.
“종료가 아니라 잠시 보류하는 것으로 하죠.”
“······보류요?”
“정혁 도련님께서 일을 허투루 처리하실 리 없잖습니까.”
업무에 관해서는 단칼에 맺고 끊던 심 사장답지 않게 보류란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
“이 일은 도련님과 자세히 논한 후에 종료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도련님께선 말보단 문서를 더 믿으시니, 아마도 확실한 문서를······.”
딸랑.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자그마한 머리통이 자박자박 걸어왔다.
“도련님!”
“안녕하세요?”
정혁이가 방긋 웃으며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능글능글한 유종태가 손을 흔들며 뒤따랐다.
“와우, 우리를 이렇게 격하게 환영해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다들 반색했다.
“도련님, 안 그래도 마침 잘 오셨습니다!”
“물어볼 말이 아주 많습니다!”
“썰 좀 풀어주십시오! 궁금해 죽겠습니다!”
< 뭐요? 우리 도련님이?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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