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13)
재벌집 만렙 아들-213화(213/416)
< 훌륭한 자세 >
심 사장은 멈칫했다.
“도련님, 여기 이 예쁜 꼬마 숙녀분은 누구시기에 사무실까지 데려오셨습니까?”
고재영은 고양이처럼 또렷한 눈매로 심 사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심 사장은 허리를 굽혀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도련님께선 말보단 문서를 더 믿으실지 몰라도, 전 문서보다 사람의 이기심과 욕망을 더 신뢰하는 편입니다.”
이 양반, 또 걱정부터 한가득 장전하신 모양이다.
“도련님께서 왜 바지사장을 세우셨습니까? 그렇다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주셔야지요.”
“사무실에 여덟 살짜리 꼬마애가 찾아오는 게 그렇게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었어요?”
“크흠! 사람의 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여덟 살짜리 입은 입도 아니랍니까?”
심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뒤를 힐끔 돌아봤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도련님은 태성의 미래, 태성의······.”
“동업자예요.”
“······예?”
“그러니 기업의 기밀이 새어나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얘한테 JH의 일을 맡길 것도 아닌데요, 뭐.”
심 사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애초에 무슨 동업을 이렇게 어린 꼬마 숙녀분이랑 하신다고······.”
“왜요? 여덟 살짜리 애들은 동업도 못 해요?”
“······.”
나는 엄지로 꼬마 동업자를 가리켰다.
“최고반도체, 반도체 기술연구소, 영실금속, 운도기계의 지분. 나랑 이 애랑 반반씩 나눠 갖기로 했어요.”
“예?”
“아, 정확하게는 최고반도체와 반도체 기술연구소는 지분 50%씩, 영실금속과 운도기계는 3년 후 투자금 반환 인수를 조건으로 선물 받았죠.”
“서, 선물이요?”
심 사장은 눈을 부릅떴다.
“아니, 도련님, 잠깐, 이게 대체, ······예? 누가 미쳤다고 그 많은 걸 선물로 준답니까?”
“얘요.”
나는 엄지로 고재영을 가리켰다.
고재영은 야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 사장은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며 혼란을 갈무리했다.
“여덟 살짜리 어린애가 무슨 돈이 있어서요?”
“왜요? 여덟 살짜리 어린애는 돈 있으면 안 돼요?”
돈 많은 여덟 살짜리 어린애, 여기에도 있다. 바로 나.
“도련님이야 태성그룹의 막냇손자분이시고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쪽은······!”
“밀매왕의 하나뿐인 손녀인데요.”
“······!”
“돈 많더라고요. 참고로 반도체 회사는 얘가 직접 골랐대요.”
“······!”
심 사장은 뜨억한 표정으로 고재영을 돌아봤다.
“그걸 밀매왕이 그냥 두고 봤답니까? 철딱서니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당장 혼구녕을······!”
“밀매왕이 직접 인수해서 제 손에 쥐여줬는데요?”
“그, 그럴 리가······?”
하지만 고재영은 이번에도 야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눈치 빠른 유종태가 <최고반도체 인수에 관한 보고> 서류철과 지분이 들어있는 서류 봉투를 건넸다.
나는 그걸 심 사장의 눈앞에서 흔들어줬다.
“밀매왕이 저더러 손녀의 후견인이 되어달라 부탁하셨어요.”
“후, 후견인이요? 아니, 그런 걸 왜 도련님께 맡겨요? 밀매왕에겐 믿을 만한 측근도 없답니까?”
“밀매왕의 세력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아시잖아요.”
“······아.”
“사분오열된 조직에 의리와 충성을 바랄 수 있겠어요?”
조직이 무너지면 개인만 남는다.
다들 제 안위와 제 욕심을 챙기기 바쁠 터였다.
“손녀의 안전과 재산 일체를 책임지기로 하고 받은 뇌물이에요.”
“······아.”
심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관계엔 역시 동업이 제일 끈끈한 법이죠. 밀매왕 이 사람은 아직도 대마불사 그물 엮기에 공들이는군요?”
제 버릇 개 못 준다니까.
심 사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횡재하셨습니다.”
글쎄.
내겐 횡재란 기쁨보단 사명감이란 책임이 더 크게 와닿아서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요. 이에 관해 심 사장님께 부탁을 좀 드릴까 해요.”
“부탁이요?”
“이 친구를 제대로 키워보고 싶거든요.”
복수에 온몸을 내던지다 허무하게 죽기엔 너무 아까운 목숨이다.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해 겨울 진눈깨비가 섞인 폭우가 쏟아지던 밤, 쓰레기 매립지에서 찾아냈던 이 여자의 죽음을.
내 악몽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나도 이번엔 음지가 아닌 양지의 인생을 살아보기로 결심했으니까, 고재영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하는 부탁이었다.
“한 번도 이쪽 일은 해본 적 없다는데 어떡하겠어요. 경영 과외라도 해줘야죠.”
“과외를? 설마 도련님께서 직접?”
“눈높이 교육이 필요한 나이잖아요.”
나는 고재영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고재영이 작게 움찔했다.
“얘도 동업자인 이상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할 권리는 있으니까요.”
그게 바로 투자자의 권리!
“내 돈 들어가는 일인데, 나 몰라라 하면 안 되지. 고재영, 안 그래?”
“응. 맞아.”
고재영은 야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설마 그 경영 과외라는 거······.”
심 사장은 다크서클이 내려온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아시다시피 제가 맡은 일이 워낙 많아서 일대일로 봐줄 여력은······.”
“그것까진 안 바랄게요. 그냥 사무실 제일 구석에 어린이용 책걸상 하나 넣어주고, 어린이용 사원증만 발급해주시면 돼요.”
“······예?”
심 사장과 고재영이 동시에 눈을 느리게 껌뻑거렸다.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에요? 과외 처음 들어봐요?”
바로 저기서 과외 선생들이 일하고 있고,
바로 여기서 심 사장이 일하고 있고,
나 또한 X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뭘 또 새삼스럽게.
“고재영, 별거 없어. 어차피 말단사원이 사고 쳐봐야 크게도 못 쳐. 그러니까 열심히만 해.”
“······.”
“알았으면 책가방 내려놓고 복사부터 하자. 회의 자료 만들어야지.”
“······.”
“아, 검산은 주판 말고 계산기로 해. 시험 보는 거 아니니까.”
“······.”
“뭐 해? 회의 자료 복사하고,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돌리고, 업계 용어 외우고, 거래처 명단 받아서 외우고, 전화 응대 예절 익혀야지.”
“······.”
고재영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자, 잠깐! 나 한글이나 숫자는 그렇다 쳐도, 영어가······.”
“왜? 영어 몰라?”
“······한자도 많은데.”
“한자는 여섯 살짜리 예린이도 읽고 쓰던데. 왜? 넌 못 해?”
“······.”
“설마 신문도 못 읽을 정도야? 흐음, 그건 갈 길이 너무 먼데.”
“아, 아니야!”
고재영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하, 할 수 있어!”
“그래. 국민학교 1학년이라면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해줘야지.”
“그, 그럼! 당연하지!”
곧 죽어도 못 한다는 소리, 약한 소리는 안 하는 여자다웠다.
“할아버지가 눈 딱 감고 네가 하라는 대로만 따르면 된다고 신신당부하셨어. 뭐든 시켜만 줘! 나 잘할 수 있어!”
배짱 좋은 자세, 훌륭하다!
나는 근성 있는 사람이 좋더라!
하지만 앓는 소리는 심 사장에게서 나왔다.
“이젠 하다 하다 여덟 살짜리 동업자를 부려먹으시려고요?”
“왜요? 여덟 살짜리 어린애는 일도 못 해요?”
“······.”
나도 여기서 일하고 있다니까?
하지만 심 사장은 난색을 표했다.
“도련님, 아무리 동업자라고 해도 JH의 기밀을 외부인에게 유출할 수는······.”
“내가 언제 고재영한테 JH 일을 시킨댔어요?”
난 처음부터 딱 잘라 말했다.
얘한테 JH의 일을 맡길 생각 없으니, 기업의 기밀이 새어나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 지분 들어간 회사 일 보기에도 시간 빠듯할 텐데, JH 일까지 보는 건 무리죠.”
“······저기, 도련님? 그럼 왜 우리 사무실에 어린이용 책걸상을 준비해 놓으라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나는 동전 지갑에서 곱게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때 했던 내기, 제가 이겼죠?”
우리는 내기했었다.
-내기할까요? 밀매왕이 밀수로 구해오는 게 더 빠른지, 심 사장님이 해외출장 가서 직접 공수해오는 게 더 빠른지. 어때요?
-좋습니다. 제가 이기면 유급휴가 10일! 어떻습니까?
-콜. 대신 제가 이기면 해운회사까지 심 사장님이 커버해주시는 거예요?
-콜! 어차피 그 일도 지금 제가 도맡아 하고 있잖습니까. 전 손해 볼 것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문서에 서명날인을 박았다.
바로 이 종이에!
“예.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심 사장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깨끗한 승복이었다.
“어차피 그 해운회사라면 지금도 제가 도맡아 일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딱히 달라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밑져야 본전!
어차피 과로!
결과는 같다!
심 사장이 쉽게 패배를 승복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내 심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도련님? 앞으로도 딱히 달라질 일 없는 것··· 맞죠?”
“과연 그럴까요?”
“그냥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딱 잘라 말해주면 안 됩니까?”
못 할 것도 없지!
“심 사장님께서 지금처럼 해운회사 일을 도맡아 하신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다만······.”
“다만?”
“그냥 일이 조금 더 많아졌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거예요.”
딸랑!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들이닥쳤다.
돌돌돌돌.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줄지어서 손수레를 날랐다.
“어이구, 미안합니다. 길 좀 비켜주실까요?”
“아이고, 이거 어쩌나. 오늘은 왠지 자리가 부족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우리가 서류 박스 한두 번 날라봅니까? 요령껏 높이 쌓읍시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장면에 JH사무실 식구들도 심 사장과 비슷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혹시······?”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인수한 회사들, 해운회사 밑으로 달아두기로 했어요.”
“······!”
“말했잖아요. 밀매왕이 물주를 자처해서 지분을 반반씩. 그걸 JH 밑으로 둘 수는 없으니까요.”
JH는 아직 상장도 하지 않은, 100% 완전한 내 소유 회사거든.
“허어어어······!”
심 사장은 입을 떡 벌렸다.
행동력 좋은 조 상무가 바람처럼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러고는 삽시간에 창백해진 채 되돌아왔다.
“바, 밖에······! 서류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허어······!”
심 사장과 사무실 식구들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그들에겐 익숙해진 일!
JH식구들은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까짓것 서류 박스 처리하는 거야 이제는 일상 아닙니까?”
“맞습니다! 모여서 일하고 또 일하면 못 끝낼 일 없죠!”
“어디 한번 해봅시다! 아무렴 우리 도련님이 끝나고 한우정에서 회식 한번 안 시켜주실까!”
“맞습니다! 오늘도 다 함께 조기퇴근에 MVP 유급 휴가나 노려보자고요!”
의욕 넘치는 자세, 훌륭하다!
나는 열정 넘치는 사람이 좋더라!
하지만 심 사장과 조 상무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둘은 말끝을 흐리며 길게 탄식했다.
“아니야······. 그거 아닐 거야······.”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조 상무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덤프트럭이 하나가 아니야. 줄줄이 들어오고 있더라니까.”
“줄줄이?”
사무실 식구들이 말을 맺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심 사장은 관자놀이를 꾹 짚으며 말했다.
“아까 최 소장 말 못 들었습니까? 이번에 정혁 도련님께서 인수해온 회사가 몇이라고 했지요?”
“금속 공장.”
“기계 공장.”
“반도체 회사에.”
“최고반도체 기술연구소······.”
홀린 듯이 손가락을 꼽던 JH사무실 식구들.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에 정혁 도련님께서 데려온 기술자들은 몇이나 된다고 했지요?”
“불법 무기 제조 전문가와 동네 전파사 수리공들······.”
“소련에서 로켓이랑 전차 만들던 위인들······.”
“그쪽 출신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에, 모스크바 대학교수도······.”
“일본 마쓰모토 전자산업부 기술개발팀장과 휘하 연구원들······.”
“최고반도체 기술연구소랑 JH연구소를 합치기로 했다니, 어쩌면 최고반도체 기술연구원들도······.”
“어쩌면 반도체 회사, 금속 공장, 기계 공장에 딸린 직원들까지 전부······.”
JH사무실 식구들은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태성그룹 경호원들을 바라봤다.
돌돌돌돌.
언제나처럼 손수레 위에는 서류 상자가 가득 쌓아져 있었다.
딱히 새삼스러울 일도 없는 광경이건만.
“······.”
심 사장이 할 말이 많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우광 계열사 인수할 때 이미 한번 겪어본 일이잖아요. 한번 해본 일, 두 번은 더 쉽겠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동업자로서 우리 쪽이 경영권과 인사권을 행사하게 돼서요.”
“그러니까 지분 50%짜리 회사 경영은 물론 인사 및 관리까지 전부······.”
“그게 아니라면 이 서류가 전부 이쪽으로 날아올 일은 없었겠죠?”
“허어어억······!”
심 사장은 뒷목을 잡았다.
눈치 빠른 유종태가 재빨리 심 사장을 붙들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액상용 청심환입니다. 빨대 물고 쭉 들이켜십시오.”
쪽쪽쪽.
심 사장은 허겁지겁 보약을 받아마셨다.
그렇게 연거푸 보약을 세 팩이나 빨고 나서야.
심 사장은 길게 한숨을 토하며 잡았던 뒷목을 풀었다.
“버거울까요? 이거 도로 가져가라고 거절해요?”
“미쳤다고 그걸 마다합니까? 선물이라면서요? 거저 받은 지분이라면서요?”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뇌물이었다.
심 사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지회장, 머지않았다고 믿습니다아아!”
긍정적인 자세, 훌륭하다!
난 야망 있는 사람이 좋더라!
* * *
국산 전차 성능 시험 참관일.
전남 장성군 남면에 위치한 야전부대 사격 훈련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량과 사람으로 북적북적했다.
< 훌륭한 자세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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