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20)
재벌집 만렙 아들-220화(220/416)
< 공 돌리기 >
그제야 대통령의 미간이 풀어졌다.
눈매는 부드러워지고, 입꼬리는 올라갔다.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가 JH연구소의 고유한 자체 개발품이라 이거지?”
“예, 맞습니다.”
심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은 턱 끝을 까딱 움직였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소상하게 말해보라는 뜻이다.
“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말씀드리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 텐데요.”
“10분 주지.”
“기획에서부터 개발 과정까지. 간략하게 몇 가지만 추려서 읊어보겠습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여서 허락했다.
심 사장은 바짝 마른 입술을 찻물로 축였다.
“일단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 개발을 기획하게 결심하게 된 건 청와대 경호실장님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
청와대 경호실장이 두 눈을 껌뻑였다.
대통령 곁에 서서 유리 재떨이를 받치고 있던 청와대 경호실장.
아까부터 대통령의 관심과 총애가 중정부장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자, 매서운 눈으로 중정부장을 노려보던 터였다.
“내가 뭘 어쨌기에?”
“자세히.”
“예, 각하. 청와대 경호실장님께서는 포병부대의 간부로 계셨다면서요?”
“그랬지.”
“언제인가 우리 회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청와대 경호실장님께서는 한국 전쟁 얘기만 나오면 두 가지를 처절하게 부르짖으신다고.”
“두 가지?”
“우리에게 탱크만 있었어도!”
“아아······.”
그런 절규는 비단 청와대 경호실장만 외친 것이 아니었다.
병사들부터 장교는 물론 장군에 이르기까지.
서럽게 외치던 게 바로 그것이었다.
“기관총을 난사했기 망정이지, 조준 저격했으면 이미 다 뒈졌어!”
“하······!”
대통령은 피식 웃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면 청와대 경호실장이 곧잘 구시렁대는 소리였다.
“그 얘기를 연구원들에게 들려줬더니 무릎을 탁 치더랍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테이블 위에 유리 재떨이를 슬쩍 내려놓으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심기만큼이나 매섭게 구겨졌던 미간도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그래, 기관총을 조준 사격하면 대한민국의 국방력이 크게 향상되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군요.”
“그렇지!”
청와대 경호실장도 무릎을 탁 쳤다.
나도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심 사장님, 공을 이렇게 엮어서 떠먹이시네요?’
생각보다 제법 능수능란했다.
아부에는 영 소질이 없을까 솔직히 조금 걱정했었는데.
인제 보니 괜한 우려였다.
“연구원들이 기관총용 조준경을 개발해보겠다며 샘플을 구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구해줬습니다.”
“어떻게?”
“마침 육군보안사령관님께서 독일제 유물을 하나 갖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랬었지, 참.”
청와대 경호실장이 육군보안사령관을 돌아봤다.
그건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벽에 붙어 서있는 육군보안사령관의 표정이 참으로 묘했다.
발언이 허락되지 않는 자리였기에 입도 뻥긋하지 못할 뿐이었다.
-내가 뭘 어쨌기에?
아마도 청와대 경호실장과 똑같은 물음을 던졌을 터였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앞뒤를 맞추려고 제법 노력하셨네. 하지만 뻥도 정도껏 치셔야지.’
육군보안사령관은 그걸 흔쾌히 내어줬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웬걸?
육군보안사령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 나라의 국방력 향상을 위해 연구하겠다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그냥 줘버렸습니다.”
“뭐?”
대통령과 청와대 경호실장, 중정부장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심 사장은 주머니를 뒤져 작은 조준경을 꺼냈다.
얼핏 보면 저격수용 스코프처럼 보일 만큼 렌즈 직경이 작았다.
기껏해 봐야 3센티, 아니, 4센티나 되었을까.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 줄 압니다. 돌려드리겠습니다.”
진짜로 육군보안사령관에게서 기관총용 조준경을 받아왔던 거였어?
대통령이 턱 끝을 까딱이자, 청와대 경호실장이 기관총용 조준경을 받아 육군보안사령관에게 배달했다.
조준경의 앞뒤를 뒤적거리며 유심히 살펴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작게 갸웃거렸다.
“전에 봤던 것이랑 영 다른 물건인 것 같은데?”
“최근에 하나 더 장만했습니다.”
육군보안사령관은 뻔뻔하게 대답하며 기관총용 조준경을 받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넣었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공을 날름 받아챙기시네?’
뻥은 심 사장만 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염치 불고하고 뻔뻔하게 구는 이유라면 뻔했다.
대통령 앞에서 면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심 사장은 그렇게 은근슬쩍 손을 내밀었고, 육군보안사령관은 그 손을 넙죽 잡은 것이다.
입가에 맺힌 미미한 미소에서 흡족한 속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손가락을 까닥했다.
“이리 와서 앉아.”
“예, 각하. 감사합니다.”
벽에 붙어 서있던 육군보안사령관이 90도로 인사하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중정부장 옆자리가 아닌, 심 사장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심 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육군보안사령관을 돌아보았다.
“절실할 때에 큰 도움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뭘 그런 것을 가지고. 됐어.”
육군보안사령관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뿐만이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개발한 전차를 이번 성능 시험에 선보일 수 있도록 참가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칙상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전차 성능 시험일이 코앞이었고, 참가 신청은 마감된 지 오래였겠죠.”
“각하께서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니, 눈감아줬을 뿐이야.”
대통령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이 친구 이거, 이거······.”
웃으면서 삿대질하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나한테 오늘 기대해도 좋다고 귀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 다 알고 있었으면서 의뭉스럽게······.”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대적으로 발표할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취재진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쩐지. 태성이 내 기대에 부응하겠답시고 열의를 다해 완성해냈다며 기특하다 했었지?”
“어쨌거나 태성도 방산에 한 힘 보태겠노라 나선 만큼, 앞으로 한국형 전차 양산에 필요한 전차 조립 체계와 생산기술 축적이란 측면에서, 곧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만.”
“깜짝 선물이다 이거야? 하하하.”
대통령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난 또. 그런 줄도 모르고 애먼 사람을 벽 앞에 세워뒀군. 받아.”
“감사합니다, 각하.”
대통령이 손짓하자, 청와대 경호실장이 즉시 육군보안사령관에게 차를 따라 내어줬다.
육군보안사령관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찻잔을 받았다.
반쯤 눈을 감고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의 향기를 음미하며 웃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심 사장을 바라보는 육군보안사령관의 눈에는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런 육군보안사령관을 바라보는 청와대 경호실장의 눈매는 도로 사나워졌다.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을 번갈아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심기가 크게 뒤틀린 게 틀림없군.’
청와대 경호실장은 심 사장을 힐끔 보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자신만 큰 공에 끼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쉽다는 듯이.
심 사장은 그것도 다 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각하, 어떻게 이번에 출품한 저희 JH의 신형 국산 전차는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대통령은 흡족하게 웃었다.
“취재진을 불러들여 세계만방에 선전할 생각이다.”
“정보 통제를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이미 외국군 장교들을 초청해 보여주지 않았던가?”
심 사장은 청와대 경호실장을 힐끔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각하, 그렇다면 방송과 언론에 선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방송과 언론은 으레 과대포장으로 호도하기 마련이잖습니까. 국민들은 믿지 않을 겁니다.”
“그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각하의 노고와 고심을 깨달을 수 있을 테고, 자연히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 사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일 각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우리 JH는 신형 국산 전차를 수도경비사령부에 최우선적으로 공급할까 합니다.”
수도경비사령부, 속칭 수경사.
군사정변 직후 서울을 장악한 정변세력의 보호를 목적으로, 정변에 참여한 몇몇 부대들의 일부를 모아 사단급으로 창설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지키게 되었으며, 특히 청와대 포함 한강 이북 도심의 방위를 담당했다.
그제야 청와대 경호실장은 입이 찢어지게 벌어져서는 헤실헤실 웃었다.
“수경사에 전차를?”
“과거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당시 적이 대전차를 앞세워 병력으로 밀어붙이자, 속수무책으로 수도까지 잃고 밀려났던 일이 너무도 뼈아픕니다.”
오늘 국산 전차 성능 시험에서 군 장성들이 비장하게 외쳤던 포천 전투가 바로 그것이었다.
심 사장은 비장하게 말했다.
“다시 북한이 겁 없이 무력 침공을 강행하더라도 맥없이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맞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장도 옳다구나! 맞장구쳤다.
“JH가 만든 신형 국산 전차는 최우선적으로 수경사에 배치하심이 옳은 줄 압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목청을 크게 높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74년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 이후 청와대 경호실장은 수경사 예하에 대통령 경호실 지원부대를 창설했다.
물론 편제상으로만 수경사 소속이고, 지휘권은 청와대 경호실장이 가졌다.
“청와대를 지키고, 수도를 방위하며, 국민들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서!”
청와대 경호실장이 부르짖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수경사는 군사정권의 친위부대에서 출발했으니까.
“흐음. 맞는 말이지.”
청와대를 지키고, 수도를 방위하기 위해 성능 좋은 전차를 여럿 배치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한술 더 떴다.
“각하, 심 사장의 말처럼 우리의 신형 국산 전차를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
“제가 직접 전차를 몰고 나가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주겠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만 믿기 마련 아닙니까? 그러니 이참에 제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이 양반이 이번에도 또?’
과거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한밤의 전차 행진.’
수도 경비 사령부 전차 일개 중대를 출동시켜서 밤마다 청와대 근처 도로를 빙빙 돌게 했었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이런 전차 행진에 주민들은 전쟁이 난 줄 알고 불안할 정도였다.
과거 청와대 경호실장이 이런 일을 벌였던 목적은 단 하나였다.
‘권력 과시용이었지.’
자신이 이 나라의 2인자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
그의 말처럼 국민들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만 믿었으니까.
대놓고 전차 행진을 벌여서 사람들의 뇌리에 똑똑히 각인시켰다.
자신이 움켜주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보란 듯이 과시함으로써.
“각하,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중정부장이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과거에도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은 똑같은 이유로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었다.
그렇게 쌓이고 쌓였던 악감정과 갈등이 폭발한 결과.
중정부장은 술자리에서 권총을 뽑아 갈겼다.
“뭐가 말이 안 되지?”
대통령이 물었다.
“수경사에 신형 국산 전차를 배치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그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전차 행진은 안 됩니다.”
“왜?”
대통령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난 일리 있는 말인 것 같은데.”
“각하!”
“국민들도 직접 보고, 듣고, 겪어야지. 대한민국이 자체 개발한 국산 전차의 위용을.”
“그래서 수도 도로 한복판에 전차를 몰고 다니겠다고요?”
중정부장이 기함하며 표정을 굳혔다.
“우리는 휴전 국가입니다.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매우 큽니다!”
“그러니까 더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우리에게도 막강한 국산 전차가 생겼으니 안심하라고.”
“수도 한복판에 탱크를 몰고 다니면 도로가 틀어막힐 겁니다. 서울의 도로는 안 그래도 포화상태입니다. 분명 생업에 지장을 끼칠 테고, 그건 불만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한밤중에 몰고 다니면 되겠군.”
대통령은 씩 웃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선전이 어디 있겠나?”
중정부장은 입을 떡 벌렸다.
육군보안사령관은 표정을 굳혔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신이 나서 외쳤다.
“각하, 그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저 진짜 전차 잘 몰 자신 있습니다!”
< 공 돌리기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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