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21)
재벌집 만렙 아들-221화(221/416)
< 감당하기 어려운 일 >
대통령과 청와대 경호실장이 저렇게 나오자 중정부장도 더는 막지 못했다.
“각하, 재고해주십시오. 전차 행진을 하신다고 해도 한밤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중정부장이 육군보안사령관을 힐끔 바라보았다.
입이 있으면 한마디 거들어주길 바라서였다.
호로록.
하지만 육군보안사령관 또한 아까부터 말없이 차만 홀짝일 뿐이었다.
안 그래도 이미 한 차례 대통령의 눈 밖에 나서 벽에 붙어 서있지 않았던가.
평소보다 훨씬 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불똥은 이쪽으로 튀었다.
“태성의 간판스타, 내 이참에 크게 띄워주지.”
아니, 왜 그런 말을 날 보고 하십니까?
대통령은 몹시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나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태성이 내 면을 세워줬으니, 이번엔 내가 태성의 면을 세워주겠다는 소리야.”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각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내가 왜 자네 아들을 이 자리에 불렀겠나?”
‘혹시?’ 하는 불길한 예감이 뒤통수를 때렸다.
“이따 취재진 앞에서 자네 아들과 같이 사진 몇 장 찍을 생각이다.”
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을까.
“정혁이와 함께······ 말입니까?”
“왜? 그 자리가 욕심나나 보지?”
“그런 게 아닙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왜 굳이 그런······.”
“모양새가 좋잖아.”
대통령은 다리를 바꿔 꼬며 느긋하게 웃었다.
“태성이 애국하는 마음으로 신형 국산 전차 개발에 성공했다. 대통령은 이를 크게 치하했다. 태성의 아이를 초청할 만큼.”
대통령이 저쪽 구석에 대충 내려놓은 꽃목걸이를 가리켰다.
“저 목걸이는 도로 자네 아들의 목에 걸어줘야겠군.”
사양하고 싶다.
“내가 직접 자네 아들을 안아 들고 같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고 생각해 봐. 이미지 좋잖아?”
더욱더 격렬하게 사양하고 싶다.
대통령의 속뜻은 분명했다.
‘이미지 선전용으로 날 이용하겠단 소리네? 태성의 체면과 포상을 운운하면서.’
이 양반 아주 상습적으로 이미지 포장에 3B 전략을 사용하시네.
사람들의 호감을 사로잡는 Beauty, Beast, Baby(미녀, 동물, 아이)에 왜 자꾸 날 끼워넣으려 하시나.
“왜? 부족한가?
부족하기는. 너무 과해서 탈이다.
일전에 태성병원 환우가족 지원으로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적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작정하고 선전을 퍼붓겠다면?
신문은 물론 방송에서도 몇 날 며칠 쉴 새 없이 이 일을 떠들어댈 게 분명하다.
“그럼 전차 행진에도 끼워줄까?”
이 양반이 보자 보자 하니까!
JH 말아먹을 일 있나?
나는 식겁했다.
‘오밤중의 전차 행진 때문에 서울시민들은 전쟁이 난 줄 알고 난리가 났었다고!’
차마 대통령을 향해 삿대질하진 못할 테니, 그 욕은 우리 JH가 대신 뒤집어쓸 게 아닌가.
‘JH의 첫인상에 똥물을 끼얹게 생겼군.’
첫인상에 두 번의 기회란 없다.
대중의 뇌리에 박힌 기업의 이미지는 다시 고쳐 쓰기 어렵다.
그건 곧 브랜드파워와 매출, 주가는 물론 투자와도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였다.
‘절대로 안 될 말이지!’
한밤의 전차 행진으로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이 치고받고 싸우다가 서로 뒈지든가 말든가.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우리 JH를 끼워넣는 건 곤란하지.
나는 심 사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심 사장은 즉시 입을 열었다.
“각하, 지금 그 말씀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왜?”
“저희가 수경사에 신형 국산 전차를 최우선 공급하는 것은······.”
“그래서 불만이야?”
대통령이 고개를 모로 꺾으며 발끝을 까딱였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내 호의를 무시하겠다는 건가?”
“아닙니다, 각하! 그게 아니라······. 크흠!”
심 사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뒷말을 얼버무렸다.
절대권력자인 대통령의 선심을 선뜻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명을 요하는 대통령의 눈이 이쪽으로 향했다.
“어쩌겠다는 거야? 그럼 이렇게 잘 뽑힌 전차를 꽁꽁 숨겨두고 양국 군사회담에서 아쉬운 소리를 내라고?”
아버지도 입을 열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
어린애의 특권을 쓸 수밖에.
“대통령님의 말씀이 다 맞아요.”
“음?”
“이렇게 잘 뽑힌 전차를 꽁꽁 숨겨둘 필요 있나요? 양국 군사회담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만든 회심의 역작이라는데요.”
“······그렇지.”
대통령은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예요.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 이유 말이에요.”
“음?”
“생각해보세요. 대통령님께서는 오랫동안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국방기술연구소를 키웠다면서요?”
대통령은 최근 몇 년 동안 막대한 국방 예산을 쏟아 국산 전차 개발 연구를 지원했다.
“그런데 지원했던 국방기술연구소에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방산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 JH에서 전차가 나왔다고 하면······.”
국민들에게 비웃음을 살 일이었다.
국방 예산을 허튼 데 썼다는 비난 역시 면치 못할 것이다.
뒷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표정은 이미 묘해진 후였으니까.
“심 사장님 말을 들어보니까 곤란한 점이 또 있더라고요.”
“곤란한 점?”
“외국에서 기술자들을 잔뜩 데려와서 만들었다면서요.”
소련 출신의 엔지니어들과 모스크바 대학교수, 일본 마쓰모토사의 개발팀 등등.
“자체 개발한 신형 국산 전차라고 자랑하고 싶지 않으세요?”
대통령은 이미 세계만방에 선전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신형 전차를 두고 ‘외국인이 다 만들었다!’며 한국의 국방기술력을 우습게 보면 어떡해요?”
딱. 딱. 딱. 딱.
대통령이 손끝으로 소파 팔걸이를 두드렸다.
생각에 깊게 잠길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생각이 더 깊어지기 전에 결론을 내려줘야겠군.
“그래서 이번 신형 국산 전차는 JH의 성과가 아닌, 국방부의 성과로 발표했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이 반쯤 감았던 눈을 도로 번뜩 떴다.
심 사장과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걸 국방부의 성과로 발표하자고?”
“JH의 자체 개발이 아니라, 국방연구소에서 기술과 도면을 제공하고 JH가 생산한 것으로요.”
신형 국산 전차 개발의 공을 대통령에게 넘기겠다는 소리였다.
대통령의 지시하에 움직인 국산 전차 개발 프로젝트의 성과로.
“국방부의 기술력으로 신형 국산 전차를 만들었다고 홍보하자? 흐음.”
딱. 딱. 딱. 딱.
대통령이 조금 더 빠르게 손끝을 두드렸다.
육군보안사령관이나 중정부장처럼 공을 날름 받아먹기엔 보는 눈이 많아서 체면이 영 안 선다는 뜻이렸다?
“청월과 현무도 이와 비슷하게 만들었다면서요?”
“흠.”
“우리 JH도 그랬다고 치면 되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JH에 외국인 기술자가 있든 말든 상관없어져요. 기껏해야 국방연구소에서 제공한 도면을 가지고 전차 껍데기를 만드는 데에 동원된 것뿐이니까요.”
“그럼 JH의 공은 쏙 빠지게 될 텐데?”
“상관없어요. 우리는 대통령 각하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족하거든요.”
나는 씩 웃어 보였다.
“그래야 국민들이 대통령님의 노고와 고심을 깨닫고, 자연스레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지 않겠어요?”
“하하하!”
대통령은 크게 웃었다.
자청해서 제 얼굴에 금칠을 해준다니까 마다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좋아. 그렇다면 오늘의 신형 국산 전차는 국방부의 공으로 돌리지.”
좋았어!
이 작자들이 머리가 훼까닥 돌아서 한밤에 전차 행진을 벌인다고 해도 JH가 손가락질받을 일은 없게 됐구만!
내친김에 하나 더 지르기로 했다.
“태성의 간판스타라면서 저를 띄워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감당 불가예요.”
“그건 또 왜?”
“국산 전차와 각하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어야 할 때니까요.”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슬쩍 가리켰다.
“대선이 코앞이라면서요?”
대선은 7월에 치러진다.
물론 대통령의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겠다만, 대통령이 신경 쓰는 것은 따로 있었다.
“압도적인 승리를 보여줘야죠,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통수권자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셔야죠.”
군사정변으로 거머쥔 권력.
대통령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미지 포장에 목을 매고 있었다.
성능 좋은 신형 국산 전차는 대통령의 업적이 되어줄 것이었다.
“이런, 태성이 애국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더니.”
대통령은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태성이 이렇게까지 내 체면을 챙겨줬으니, 이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대통령은 손짓했다.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 봐.”
아버지도, 심 사장도 멈칫했다.
귀까지 걸린 입꼬리에 비해 대통령의 눈매는 여전히 날카롭다.
속내를 간파하기 위해서.
태성의 진의를 의심하고, 충정을 가늠하는 눈이었다.
“없어? 이런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을 텐데.”
“제철소 말이에요.”
흔치 않은 기회를 허투루 날릴 수는 없지.
말 안 하면 이대로 뻔뻔하게 입 싹 닫겠다는 기색이었던지라.
나는 냉큼 원하는 바를 꺼내기로 했다.
“이대로 계속 모른 척하시기에요?”
“제철소 사업권도 내어줬고, 삥 뜯기지 말라고 친필 명령서도 적어줬다.”
그러니까 맨입으로?
제철소 사업권을 허가하는 데에도, 종이 마패를 써주는 데에도 돈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종합제철소를 건립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든다.
중정부장이 슬쩍 입을 열었다.
“각하, 포항철강을 설립할 땐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잖습니까? 좀 도와주시지요.”
포항철강을 건립하기 위해 대통령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했었다.
총 5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 중 농수산 지원 용도로 남겨 둔 1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육군보안사령관도 슬쩍 말을 보탰다.
“종합제철소는 국가기반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항철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 맞습니다. 현재 넘쳐나는 철강 수요를 전부 커버하지 못하고 있어서 종합제철소의 추가 건립을 고심하고 계셨잖습니까.”
“광양제철소 예정부지만 약 630만 평에 달합니다. 거기에는 필히 간척공사와 항만공사도 추가로 들어가야 할 테니······.”
“태성의 자금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못해도 5억 달러는 들여야 하는 대공사잖습니까.”
5억 달러.
대통령이 선뜻 생색 내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던가.
대통령은 불퉁하게 대답했다.
“포항철강과는 경우가 다르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땐 외국 기관에서 돈을 빌려주길 거부해 차관을 들여오지 못했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고.”
“한국은 후진국이라 종합제철소를 지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였지요.”
“하지만 각하, 이제 그때와는 다릅니다.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국에는 이미 흑자를 내고 있는 종합제철소가 있어. 그러니 그때와 달리 차관을 도입하기 훨씬 수월해지지 않았겠나?”
금조조선도 그렇게 세워졌었다.
-한국에도 조선소가 필요하지 않겠나? 자네가 맡아 봐.
-예, 각하. 그럼 울산에 짓겠습니다. 국가 예산은 어느 정도로 지원해주실 겁니까?
-나라에 돈이 어디 있어? 능력껏 외국 차관을 끌어와서 지어.
-······.
그렇게 금조그룹 회장은 외국을 떠돌며 차관을 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가 영국 바클리스 은행과 4,300만 달러 차관 도입을 협의했지만, 은행의 최종 입장은 거절이었다.
-배를 구매하겠다는 사람을 먼저 찾아오십시오.
-······지금 조선소를 지으려고 돈 빌리러 온 겁니다만?
-배 주문서를 가져오면 차관을 빌려드리죠. 그게 없으면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없습니다.
조선소도 없는데, 어떤 미친놈이 배를 구매하겠다고 나섭니까?
금조그룹 회장은 목구멍까지 치민 말을 꿀꺽 삼켰다.
대신 다시 한번 해외를 돌며 ‘어떤 미친놈’을 찾아 나섰다.
그게 바로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였다.
-값싼 배를 구하고 있다면서요?
금조그룹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리바노스를 설득했다.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어낸 나라입니다.
-우리가 지금 조선소는 없지만, 배를 계약해주면 그걸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은 뒤에 배를 만들어 드리죠.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계약금에 이자를 얹어주고, 배에 하자가 있으면 원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리바노스는 조선소도 없는 사람에게 도박을 걸었다.
그렇게 금조그룹 회장은 26만 톤짜리 선박 수주 계약을 따냈고, 영국 바클리스 은행에서 차관을 빌려와 조선소를 지을 수 있었다.
“대통령님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나는 금조그룹 회장이 아니다.
애국하는 마음은 있을지언정 대통령 밑에서 개처럼 구르면서 사업할 생각은 없다.
제철소도 공사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 급할 것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겐 당장 급한 용무가 따로 있었지.
“제철소를 지으려면 돈이 엄청 많이 필요하군요. 대통령님 말씀에 따라 외국에서 들여온 돈으로 지어야 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비장하게 외쳤다.
“국가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비싸게, 열심히, 왕창, 마구마구, 잘 팔아볼게요!”
“······5억 달러 전부를 지원하는 건 곤란하겠고.”
대통령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간척공사와 항만공사. 그건 국가기반시설인 만큼 국책사업으로 추진해도 될 듯하군.”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말 한마디에 3,000억짜리 대공사가 국책사업으로 지정되었다.
아버지와 심 사장은 입을 떡 벌렸다.
중정부장과 육군보안사령관은 소임을 끝마쳤단 듯이 흐뭇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반면 청와대 경호실장은 불쑥 입을 열었다.
“각하,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 감당하기 어려운 일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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