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25)
재벌집 만렙 아들-225화(225/416)
< 뒷배, 필요하세요? >
심 사장이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되물었다.
“각하의 협박을 전해들으셨잖습니까? 우리 태성도 우광처럼······.”
“적당히 넘어갈 만한 방법은 차고 넘쳐요. 솔직히 별거 아니잖아요.”
“예에?”
심 사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별거 아니라니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니요? 이 나라 최고통수권자의 협박입니다.”
“알아요.”
“차 회장님께서 이 자리에 오셨어도 정해진 대답 외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압박이란 말입니다.”
내가 지금 그걸 몰라서 이러나.
“도련님, 정말로 대통령 각하의 후폭풍을 회피할 방도가 있으십니까?”
“물론이죠.”
“대통령의 제안을 면전에서 거절하고도······.”
“그 전에 제일 중요한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요.”
나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내 생각? 어떤 생각?”
“뒷배, 필요하세요?”
아버지는 움찔했다.
날 내려다보는 눈에서 내 진의를 파악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통령님이 그렇게 꼬드겼다면서요. 유공의 지분으로, 대통령을 뒷배로, 태성의 차기 총수 자리를 들먹였다면서요.”
“그건······.”
“태성의 차기 총수 자리, 탐나세요?”
아버지는 퍽 당혹스러워하셨다.
심 사장 앞에서, 어린 자식 앞에서 대놓고 드러내기 곤란한 야망이었을까.
“정혁아, 그 문제는 다음에. 지금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게 제일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예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하느냐 마느냐, 후폭풍을 감당할 방법을 찾느냐 마느냐, 아예 판을 뒤엎느냐 마느냐.”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아버지의 대답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거든요.”
“······.”
아버지는 나와 심 사장을 번갈아 보았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이었다.
하지만 심 사장도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준 도련님, 그건 저도 묻고 싶군요. 정녕 태성의 차기 총수 자리에 관심이 없으십니까?”
“제 상황, 아시잖습니까?”
“엄마와 나 때문에 형제들에 비해 많이 뒤처진 거요?”
왜 아버지는 오랫동안 지방과 중동을 전전하며 떠돌아야 했던가.
이유는 오직 하나,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아버지는 차기 총수 자리에서 멀어졌고, 그룹 중추에서 활약하며 지지기반을 다질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혼맥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태성화학과 그룹 임원진의 지지까지 날려버리게 돼서요?”
결국 우광과의 혼담은 파투 났고, 외가와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러 번 찾아갔지만 번번이 문전박대 당하고 있는 처지.
덕분에 결혼식까지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는 마당이라.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처가 덕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태성건설이 지하철 2호선 공사와 제철소 사업권을 따냈는데도 격차를 좁히기 힘들 정도예요?”
“정혁아.”
“그래서 도전조차 못 해보고 뜻을 꺾으신 거예요?”
그렇다면 좀 슬플 것 같은데.
나와 어머니가 아버지의 걸림돌이 된 것 같아서.
“아빠도 사내이고, 태성그룹 총수의 아들이잖아요.”
아버지라고 차기 총수 자리가 탐나지 않았을까?
대통령의 말마따나 사내라면 가슴에 불같이 뜨거운 야망을 품고 살 만도 하다.
할아버지가 말하길, 첫째는 사람만 좋고, 둘째는 그릇이 작고, 막내는 약삭빠르지 못하다고 했던가.
바꿔 말하면, 큰아버지는 세력에 비해 무능하고, 둘째 큰아버지는 잔계산은 빠르나 큰 그림은 그리지 못하고, 아버지는 역량에 비해 야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형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등한 처지였다면, 아빠의 대답이 달라졌을까요?”
훗날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를 택한 것을 후회하는 일 없길 바란다.
포기한 기회비용을 곱씹으며 야망을 꺾게 만든 우리 모자를 원망하지 않길 바란다.
“태성의 차기 총수 자리, 아빠가 원치 않는다면 저도 신경 안 써요.”
진심이었다.
“그래서 묻는 거예요. 뒷배, 필요하세요?”
필요하다면 그 뒷배, 제가 되어드릴 용의도 있거든요.
아버지의 뜻에 힘을 실어드릴 정도는 되거든요.
이게 태성에 기대지 않고, 따로 JH를 만들어 키우게 된 이유 중 하나거든요.
아버지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각하께서 허락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선은 태성부터 지키고 보자.”
아버지가 우리에게 전하지 않은 대통령의 협박이 떠올랐다.
-처자식을 생각해야지.
-태성을 생각하고, 형제와 조카들도 생각해야지. 딸린 식구가 몇인데.
-우광의 꼴을 보고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단 말은 꺼낼 생각도 하지 말고.
두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던 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다.
아버지의 초조함은 여기에 있었다.
“대통령님의 제안을 수락할 생각이군요?”
“이미 기호지세다. 대답은 정해져 있어.”
“까딱 잘못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는데도요?”
대통령의 요구가 어디 보통이던가.
무려 전력원잠과 핵무기 개발이라지 않나.
“대통령은 여차하면 꼬리를 자르고 나 몰라라 할 거예요. 코라이 게이트 때 로비스트들을 버렸듯이요.”
“어쩔 수 없지.”
“태성도 마찬가지일지 몰라요. 총수의 결정이 아닌 아빠의 월권이었다는 명분으로, 태성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하면요?”
아버지는 쓰게 웃었다.
“태성과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
“좋긴 뭐가 좋아요?”
나는 울컥했다.
“나한테는 태성보다 아빠가 더 중요하거든요? 난 아빠 없인 못 살아요!”
“아빠도 정혁이 없인 못 살지.”
아버지는 날 애틋하게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으셨다.
어떻게든 나를 지켜주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전해져 오는 눈빛.
그게 너무 든든하고 따뜻해서 왠지 속상했다.
‘아빠가 희생당하는 꼴을 내가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요?’
나도 수단 방법 안 가립니다!
“좋아요. 아빠가 이미 마음을 굳히셨다니까 더는 따져 묻지 않겠어요.”
아버지가 심 사장을 찾아온 이유부터 해결해줘야겠지.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목적지는 같아도 가는 방법은 천차만별이에요.”
“음?”
“대통령님도 감안하겠다면서요. 우리 JH의 사정도, 시간이 꽤 걸릴 거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기술 격차를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것도.”
나는 팔짱을 꼈다.
“열심히 연구에 매진했는데도 역.량.부.족.으로 예상보다 진척이 느려지는 것까지는 우리도, 대통령도 어쩔 수 없겠죠.”
코웃음도 함께였다.
“윽박지른다고 없던 핵기술이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감안하라고 해요.”
“저기, 도련님?”
“누가 연구 개발 안 하겠대요? 하지만 언제까지, 어떻게, 얼마나, 어떤 성과를 가져오느냐는 우리도 장담 못 할 일이란 말이죠. 당연히 그것도 감안하셔야죠.”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서요? 무릇 투자라 함은 넣은 돈 이상으로 수익을 뽑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법이죠. 우린 넣는 족족 뽑아내는 자판기가 아니라고요?”
배 째!
싫으면 말든가!
아버지와 심 사장의 입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지원도 팍팍 해주신다면서요? 견본 샘플도, 시간도, 자금도, 인력도, 뒷배도.”
그까짓 것 내어주면서 생색내기는.
강제로 떠넘긴 위험부담과 견주어보면 한쪽으로 왕창 기울어지는 저울이었다.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공식적으로 폐기했다던 핵 개발 자료도 전부 내어달라고 요청하세요.”
“예?”
“이렇게 핵 개발에 불타는 양반이 복사본을 따로 빼돌려두지 않았을 리 없잖아요. 제로 베이스에서 연구하면 긴 세월 걸릴 테니 이것도 감안하든가요.”
“허······.”
“극비에 부쳤던 핵무기 비밀 연구기지도 물론 내놓으라고 하시고요.”
“예에?”
“근방의 땅문서까지 확실하게 챙겨서 제대로 넘겨달라고 하세요. 앞으로 사용도, 관리도, 개조나 보안 점검도 전부 우리 몫이잖아요?”
“어헉! 지, 진짜로 작정하고 핵 개발을······!”
심 사장은 뒷목을 잡았다.
아버지는 반쯤 얼이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려 핵을 다루는 일인데요. 서울시 한복판에 위치한 JH연구소에서 진행할 수는 없잖아요?”
“······.”
“미 정보국이 X으로 보이시나. 77년에 공식적으로 진행한 핵 폐기 조약을 대놓고 어기려 들면 암살을 면치 못한다고 못 박아버려요.”
“······.”
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고, 심 사장은 바쁘게 눈치를 살폈다.
내 귀에 바짝 붙어 작게 속삭였다.
“도련님, 아버님 앞에서 이런 과격한 언사에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이셔도 괜찮으실런지······.”
“지금 그게 문제예요?”
웬만하면 나도 아버지 앞에서는 착한 아들이고 싶었거든?
“태성의 미래가 걸린 일이고, 딸린 식구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잖아요.”
내숭 떤답시고 어리숙한 척하는 것도 때와 장소가 있는 거지.
“대통령이 우리 식구들 목숨줄을 가지고 협박하는 마당에 정신 똑바로 차려서 협상에 임해야죠. 안 그래요?”
이왕 아버지가 결정을 내린 상황이다.
대통령에게 제대로 뜯어내지도 못하고 애국하는 마음으로 구르다가 독박 뒤집어쓰고 돌아가시면?
억울하고 분통하니 화병 나서 살겠냐고.
“적으세요.”
나는 동전 지갑을 열어서 흰 종이를 꺼냈다.
몽블랑 만년필과 함께 흰 종이를 심 사장님께 건넸다.
심 사장은 눈을 꿈뻑거렸다.
“갑자기요? 뭘 말입니까?”
“난 말보다 문서를 더 믿는다고 했잖아요.”
“서, 설마, 대통령에게 각서를 받는 것은······!”
“서명 날인까지 확실하게 받아와야죠. 사람은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잖아요.”
나는 팔짱을 꼈다.
“유공의 지분 50%, 간척공사와 항만공사, 태성의 차기 총수, 대통령이 자청한 뒷배, 여천국가산업단지 땅 20만 평, 국가 차원의 지원, 봐주겠다고 약속한 JH의 사정, 핵 개발 및 전략원잠에 관한 요구사항까지. 전부 적어요.”
대통령이 지금은 저리 인심 좋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미끼를 요란하게 흔들면서 큰소리치겠지만.
막상 쌈짓돈을 내놓게 될 때에는 아까워서 이리 빼고 또 저리 뺄 테지.
“연구비 빵빵하게 지원해준댔죠? 그럼 매해 국방예산의 1%.”
“어헉!”
올해 국방예산이 1조 2천억 원이던가?
그러니까 1%면 120억.
“무려 잠수정과 핵무기를 개발하는 일인데, 푼돈 가지고는 어림도 없죠. 화끈하게 지원해달라고 졸라보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국방예산의 1%를······.”
“어차피 깎을 게 뻔하니까 시원하게 호가로 불러보는 거예요.”
이참에 왕창 뜯어내도 좋고, 수지타산 안 맞는다고 협상 파투 나면 더 좋고!
“아, 신형 국산 전차 및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 대금은 세금 면제 조건으로.”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세금처럼 우리도 분납 가능하다고 생색 좀 내주시고요.”
“대통령 각하께서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실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다는 투였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싫으면 말라고 하세요. 이참에 자주국방과 핵 개발에 대한 의지와 각오를 확인해보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틀렸다.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데에 돈만큼 확실한 방법이 또 어디 있다고.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쓰느냐를 보면 사람 속에 들어선 욕망의 크기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뭐 해요? 손이 놀고 있잖아요. 얼른 받아적어요. 대통령님이 내어주신 타임 리미트가 코앞이에요.”
“아, 예! 지금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느려요. 3분 남았네요. 초 단위로 재촉해줘요?”
“적고 있습니다! 엄청 빨리 받아 적고 있다니까요?”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어요. 똑딱똑딱!”
유종태가 했던 것처럼 혀를 굴려 똑딱 소리를 내자, 심 사장의 필기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30초 남았어요. 똑딱똑딱!”
“자요! 가져가세요!”
심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빼곡하게 협상 조건을 받아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필기한 지 3분도 안 됐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헉헉댔다.
그 모습을 아버지는 말문이 막힌 듯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혁아, 너 지금······.”
“그 문제는 다음에 얘기해요. 지금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요. 시간이 없잖아요.”
나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통령과의 협상에서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 돌아오세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고대하고 있을게요.”
* * *
아버지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든 대통령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30분 동안 심원철이랑 상의한다고 했던 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버지는 딱딱한 표정이었다.
대통령은 그런 아버지를 힐끔 보더니만 피식 웃었다.
“국방비의 1%라······.”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자잘한 셈을 하나부터 열까지 실랑이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확실히 배짱이 좋긴 좋아.”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에는 흥미와 즐거움이 언뜻 스쳤다.
“자네 아버지라면 내게 이런 종이 쪼가리를 들이밀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목숨을 건 일입니다.”
“좋다.”
대통령은 종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제시한 조건, 전부 수락하지.”
< 뒷배, 필요하세요?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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