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26)
재벌집 만렙 아들-226화(226/416)
< 따듯한 도시 남자 >
아버지가 급히 대통령에게 달려간 이후.
털썩.
심 사장은 뒤뜰 벤치에 앉아 한참이나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걱정이 많은 눈빛으로.
“왜 그렇게 보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건 또 뭐예요.”
나는 피식 웃으며 심 사장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번엔 또 뭐가 걱정인데요?”
하여간에 이 양반,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그 걱정의 대부분은 내가 아까 해결해준 것 같은데.
뭐가 또 문제냐고.
“아버님께는 언제까지고 착한 아들로 보여지길 바라셨잖습니까.”
아, 그 문제.
“너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일로 행여 아버님께서 도련님이 태성의 브레인이라는 것을 눈치챈다면······.”
“그럼 어떡해요. 시간은 촉박하고, 대답은 정해져 있고, 아빠는 결심을 굳히셨는데요.”
나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면 이게 현시점에서의 최선이긴 했어요.”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태성에게 닥쳐올 후폭풍을 걱정해야 했다.
판을 아예 뒤집어엎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현재로선 이게 최선이 맞다.
“그렇다고 순순히 독박 쓸 생각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실 것 없어요.”
내가 태성의 브레인이라고 밝혀져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단지 평소에 과묵한 아버지가 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보듯 다정하게 잔소리하는 일이 없어지는 건······ 조금 아쉽네.
“회장님과 담판 지었던 것처럼 아버님과도 협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빠에게는······ 굳이 그래야 할까 싶어요.”
“이번엔 뜯어낸 게 워낙 많잖습니까.”
그까짓 것.
그게 뭐 별거라고.
“우광의 계열사를 두고 할아버지와 담판 짓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어요. JH의 독립과 내 공에 따른 내 몫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시 생각해 봐도 내 마음속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난 아빠에게 내 몫을 주장할 생각 없거든요.”
“도련님······.”
“아빠는 우리 때문에 여태 어려운 싸움을 하셨잖아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는다고 전역 후 전국을 떠돌았고, 급기야 중동까지 날아가셨다.
그렇게 맡았던 게 구멍이 뻥 뚫린 태성건설이었고, 그렇게 포기한 게 300억짜리 태성화학이었다.
“아들인 제가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심 사장님이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자란 자식새끼를 보는 것처럼 애틋하기까지 한 따스함이었다.
“필요하다면 아버지께 오늘의 실적과 전리품을 내어드려도 상관없어요.”
“설마 전부 다······?”
“왜요? 그러면 안 돼요?”
난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아버지와 처음 만나던 날, 난 아버지의 각오와 결심을 확인한 바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했었다.
-내 아이 맞지?
-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럼 나랑 결혼해. 아직도 네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난 다 버릴 수 있어. 진심이야.
같은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셨다.
-차성준, 7년이야! 네 엄마가 그동안 널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이만 집으로 들어가!
-이곳에도 절 7년이나 기다린 사람이 둘이나 있습니다. 제 아들은 평생 절 기다렸습니다. 그런 아이를 두고 이대로 돌아가라 하십니까?
-우광과의 혼사는 어쩌고? 300억짜리 사업이 걸린 일이야!
-우광과의 혼사도 아버지께서 결정하셨고, 300억짜리 사업도 아버지께서 추진하신 일입니다. 본인이 벌인 일은 본인이 책임지셔야죠.
-이노무 자식이!
-제가 벌인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제 처자식은 제가 챙길 겁니다. 이 여자와 결혼하겠습니다.
-차성준!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제 결심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끝까지 허락 못 한다 하시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나갈 생각입니다.
나는 그날의 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포기하려고 했던 게 얼마나 큰 것인지 내가 왜 모를까.’
아버지는 철부지 재벌2세가 아니었다.
전국에 리조트를 세우고, 중동에서 대공사 수주를 여럿 따냈으며, 젊은 나이에 태성건설 사장직에 올라 무리 없이 회사를 키우고 계신다.
그런 아버지가 태성그룹을 포기하고 나간다고 작심했을 때엔 아주 큰 각오가 필요했을 터였다.
“두고 보세요. 아빠가 우리 때문에 손해 보는 일 없게 할 거예요.”
난 욕심 때문에 돈과 권력을 탐해 본 적 없다.
과거에도 그랬다.
‘난 가족을 찾으려고 돈을 벌었고, 가족을 지키려고 힘을 키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때문에 혼담이 깨져 태성화학이 날아갔다고 행여 시집살이를 당하지나 않을까 우려해서 태성화학을 되찾아오기로 결심했었다.
그렇게 난 태성화학을 되찾아왔다.
“심 사장님이 보시기엔 어때요?”
“뭐가 말입니까?”
“우리 아빠 말이에요. 태성의 차기 총수 자리에 관심 있어 보여요?”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부탁드릴게요.”
나는 우리를 만나기 전 아버지가 어땠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보는 아버지는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가정에 충실하다는 것뿐.
어린 내겐 한 번도 야망을 드러내신 적이 없다.
“야망이 없으신 분은 아닙니다. 다만 가족과 싸우고 상처 내고 갈라서면서까지 태성의 총수 자리를 쟁취하실 생각이 없으실 뿐이죠.”
‘야망이 없는 건 아니다.’란 말이 귀에 콕 박혔다.
“제가 왜 대준 도련님이나 기준 도련님이 아닌 성준 도련님을 보필하겠노라 결심했는지 아십니까?”
음?
“할아버지가 믿을 만한 최측근을 한 명씩 따로 붙여주신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뜻밖이었다.
강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아버지 라인을 골랐다고?
“사내 정치를 영 못하셨나 봐요?”
“그랬다면 제가 이 자리까지 어찌 올라왔겠습니까. 성준 도련님의 세가 다른 두 분 도련님만 못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습니다.”
그럼 왜?
“저는 성준 도련님에게서 태성의 미래를 봤습니다.”
잠깐, 웨이러 미닛!
지금 그 말,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아까 대통령이 그러지 않았었나?
-난 JH에게서 한국 국방력의 미래를 엿봤다.
대통령이 음험하게 웃은 것과 달리, 심 사장은 인자하게 빙그레 웃었다.
“성준 도련님은 능력 있으신 분입니다. 책임감도 있고, 리더십도 있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도 제법 크게 트이셨죠.”
“그럼요. 우리 아빤 행동력도 좋고, 추진력도 좋고, 기획력이나 판단력까지 나무랄 데 없어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그뿐인 줄 알아요? 우리 아빤 사람 중한 것도 아시고, 내 사람 아낄 줄도 아시고, 끈기와 열정도 넘치시고, 과묵하셔서 그렇지 언변도 제법 뛰어나세요.”
“맞습니다. 그런 부분은 도련님께서 아버님을 아주 꼭 빼닮으셨지요.”
“헤헤헤.”
이런. 나도 모르게 어린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린애 몸뚱이란!
“하지만 정혁 도련님과 달리 성준 도련님께는 아주 큰 결점이 있습니다.”
큰 결점?
우리 아버지에게?
“냉혹하게, 지독하게, 비정하게 구는 것을 무척 꺼려 하십니다. 그게 실은 성준 도련님의 외가가······.”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말에서 묘한 친근감을 느낀 적이 꽤 많았다.
-우리 친정집 룰에 따라 연리 평균 67.8%, 30년 복리로 한번 계산기 때려보자니까?
-아무렴 가족인데, 내가 설마 애들을 지하실이나 야산으로 끌고 가겠어요?
-우리 친정 룰대로라면 손도끼랑 오함마, 청테이프와 삽부터 준비해요. 내가 설마 애들 손모가지부터 자르고 말 트겠어요?
-이빨이나 손톱, 머리털 정도는 뽑아도 괜찮죠? 무릎 꿇리고 재갈 물려서 지하실에 감금하는 건? 애들 친정집에 쳐들어가서 멱살부터 잡을까요?
아주 익숙한 도구에, 익숙한 대화법이었지.
“태성의 차기 총수감으로 성준 도련님만 한 분은 없을 겁니다. 아마 훌륭하게 그룹을 이끄실 테죠.”
심 사장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하지만 차기 총수가 되려면 피할 수 없는 싸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룹 총수 자리는 오직 하나다.
심 사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제들은 반목하고, 의가 크게 상하는 것은 물론 태성도 쪼개져서 삐걱댈 겁니다.”
걱정이 많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심 사장의 걱정을 괜한 걱정이라며 타박하지 않기로 했다.
나 또한 염려해야 할 태성의 미래이므로.
“우광의 형제 싸움 보셨습니까? 아마도 태성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겠지요.”
형을 밀어내고 우광그룹 총수 자리에 앉겠다며 우광건설 사장은 우광화학에 불을 질렀다.
막대한 재산과 인명 피해는 물론 그룹 이미지가 크게 하락할 것을 감수하고서.
“두 분 도련님께선 어떻게든 서로 총수 자리에 오르겠다고 지금 물불을 안 가리고 계십니다.”
큰아버지와 둘째 큰아버지는 지금 세력 확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후계 구도가 본격화되면서 한 몸처럼 움직이던 태성의 임원들도 쪼개졌습니다.”
과거엔 태성화학 화재와 제2차 석유파동 이후 본격적으로 두 패로 갈라져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전 성준 도련님과 함께 더불어 사는 태성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심 사장은 피식 웃었다.
“태성은 한 가족 아닙니까. 따로 또 같이!”
늘 외치던 구호였다.
“아무리 돈이 좋고 권력이 좋아도, 가족에게 칼을 들이밀며 악다구니를 쓰는 꼴은 영 보기가 싫어서 말입니다.”
그랬구나.
그게 아버지가 살아온 세상이고, 심 사장이 바라는 태성의 미래였구나.
“만일 이번 일이 잘못되면······ 차 회장님이라면 몰라도 두 분 도련님들은 옳다구나, 좋은 기회로구나, 하면서 달려들어 신나게 물어뜯을 겁니다. 막강한 경쟁자를 떨궈내려고.”
“난 그런 꼴 못 봐요.”
나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 아빠를 물어뜯도록 내가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요?”
호의는 호의로, 악의는 악의로!
난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내다.
“그리고 형제들끼리 그렇게 피 튀기며 싸우지 않고도 그룹 총수 자리에 앉을 방법이라면······, 있을 것 같은데요?”
“예? 아니, 어떻게요?”
“그건······.”
나는 씩 웃었다.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한번 믿고 맡겨 봐요.”
“오!”
심 사장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 첫 단계로 이번 일, 전부 아빠의 업적으로 만들어 볼까요?”
“······좋습니다.”
“우리 아빠 얼굴에 금칠해주기로 약속했던 거, 잊지 않으셨겠죠?”
“물론입니다.”
심 사장은 씩 웃었다.
“이게 어디 금칠도 보통 금칠을 할 일입니까? 도련님께서 대통령 각하께 얼마나 많이 뜯어내셨는데요.”
아무렴!
“이 공을 전부 성준 도련님 몫으로 돌린다면 회장님은 물론 다른 도련님들도 입이 떡 벌어지실 겁니다.”
당연하지!
“어디 그뿐입니까? 태성의 임원들은 또 어떻고요? 대통령 각하의 눈에 들었다는 게 알려진다면 성준 도련님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겁니다.”
물론이지!
“마침 다음 주가 태성의 창립 기념일 아닙니까. 태성호텔에서 크게 열릴 겁니다. 정재계 유명인사는 물론 태성의 전 계열사 임원진도 참석할 테고요.”
그러니까!
“미리 동네방네 사방팔방 소문을 잔뜩 내자고요. 누구도 감히 우리 아빠를 우습게 보는 일 없도록.”
“예, 안 그래도 아까 김 비서에게 연락 넣었습니다.”
이거 아주 든든하구만!
나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니 심 사장님도 이번 일은 너무 아까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잔뜩 뜯어내 손해를 충당해볼게요!”
“손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심 사장이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설사 손해 좀 보면 어떻습니까? 도련님이 괜찮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심 사장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저야 월급쟁이 바지사장 아닙니까.”
심 사장답지 않은 익살스러운 표정이었다.
덕분에 나도 그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심 사장님께서 바지사장을 맡아주셔서 그것참 든든하네요.”
“그럼요. 저 심원철, 이래 봬도 한 든든합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회사 굴리는 능력도, 협상하는 수완도 꽤 알아준단 말이죠.”
심 사장이 웃으며 미스터 코리아나 할 법한 근육질 포즈를 취해 보였다.
그래 봤자 호리호리한 몸에 다크서클이 짙은 얼굴이 달라질 것도 없는데.
왠지 오늘따라 심 사장님의 온몸에 힘이 불끈 들어가 보였다.
“미국과의 협상이라면 제게 맡겨주십시오.”
심 사장이 온몸으로 힘을 과시한 까닭이었다.
“좋아요.”
“도련님이 좋으시면 저도 좋습니다.”
심 사장도 웃고 나도 웃었다.
“정혁아. 심 사장님.”
아버지가 대통령의 서명날인을 받아낸 종이를 흔들면서 다가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아버지 손에 들려보낸 건 한 장인데, 받아온 건 세 장이네?’
이상한 건 또 있었다.
‘허······, 황금색!’
이건 뭔데 왜 황금색이냐?
< 따듯한 도시 남자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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