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28)
재벌집 만렙 아들-228화(228/416)
< 아버지의 각오 >
차성준의 표정이 낮게 가라앉았다.
대통령이 써준 친서.
‘대통령 각하께서 뒷배를 자청하실 줄은······.’
직접 건네받고도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대통령 각하께 뭘 받아내신 겁니까?”
심 사장은 무해한 얼굴로 피식 웃어 보였다.
“대통령 각하 외에 성준 도련님의 뒷배를 자처한 사람들이 또 있다는 사실만 알고 계십시오.”
“또······?”
“일단은 저 포함 정혁 도련님도 성준 도련님의 뒤에 서 있거든요.”
“정혁이도······ 말입니까?”
“예.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 하셨습니다.”
심 사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면 성준 도련님께 오늘의 실적과 전리품을 전부 내어드려도 상관없다셨죠.”
“전부?”
“예.”
우뚝.
차성준의 걸음이 멈췄다.
뻣뻣해진 고개를 돌려 심 사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에 반해 심 사장은 여유롭고 느긋했다.
“성준 도련님께서 정혁 도련님과 사모님 때문에 손해 보는 일 없게 만들겠다고 각오를 아주 단단히 다잡으시더군요.”
차성준이 참지 못하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어린애가······.”
“정혁 도련님께서 왜 태성화학을 되찾아오시겠다 하신 줄 아십니까?”
분명 아까 신이 나서 들었을 땐 가벼이 넘겼던 말이었다.
-태성화학 인수 계약서도 정혁 도련님 솜씨라니까요?
-우광의 계열사를 누가 뜯어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머님의 혼수라더군요. 어머님 때문에 태성화학을 날렸다며 시집살이 당할까 걱정하셨던 모양입니다.”
“······!”
“같은 이유로 지난 송년의 밤에 태성건설의 후원자를 불러들이신 것도 정혁 도련님이셨습니다.”
“······!”
“거기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금난에 빠진 태성건설을 돕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파혼의 책임과 함께 수진이에게 쏠릴 비난과 악의적인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
“예, 맞습니다.”
“어째 지하금융계의 거물들이 앞다투어 150억을 쾌척한다 했더니······.”
눈앞에서 거물들의 후원이 쏟아지자, 돈 많은 정재계 고위관료들도 앞다투어 투자를 약속했다.
그렇게 태성건설은 구멍 난 건설자금을 채워넣을 수 있었다.
“단순히 운이 좋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었군요.”
차성준은 다시 한번 거칠게 마른세수했다.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끌어다 써야 하나 하고 고심하던 일이었습니다.”
“사채, 좋죠. 연이율이 워낙 무시무시해서 그렇지.”
연이율이 무려 67.8%!
“태성화학 인수를 진두지휘하신 분도, 파격적인 조건으로 우광의 계열사를 줄줄이 엮은 것도.”
“설마······!”
“그 설마, 맞습니다. 우광화학의 노조를 이끌고 우광그룹 본사에 쳐들어간 것도, 우광의 김대식 회장을 협박해서 우광재단으로부터 보상금을 뜯어낸 것도.”
“······!”
“차일피일 미루던 우광의 계열사 인수를 단번에 해치우신 것도, 우광의 해외 유통망을 뚫으신 것도, 전부 도련님 솜씨이십니다.”
“······!”
차성준은 망부석처럼 우뚝 서서 몇 번이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혁이가 우광의 계열사를 뜯어냈다는 말은 그래서였군요.”
“차 회장님과 담판을 지어 제 몫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렇게 JH가 독립하게 된 겁니다.”
심 사장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언제 정혁 도련님께 각서 한번 구경시켜 달라고 졸라보시죠.”
“각서?”
“대통령에게 종이 마패를 뜯어낸 거 모르십니까?”
안다.
차성준도 그 자리에 있었다.
“비슷한 놈으로 저에게는 물론 차 회장님께도 몇 장이나 뜯어내셨거든요.”
어느새 차성준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지하철 2호선 말입니다. 완성된 노선도를 제게 보낸 것도 정혁이었습니다.”
“예에?”
이것만큼은 심 사장도 몰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들 태성건설이 제출해 구 시장의 극찬을 받았다는 지하철 노선도는 차성준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대통령과 최측근들마저도.
“강남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확장 및 상가 공사를 언급하며 힌트를 준 쪽지도.”
“허······!”
“이란의 불온한 정세와 함께 제2차 석유파동의 기미를 언질해준 것 또한 정혁이의 솜씨였군요.”
“허어어······!”
심 사장은 크게 감탄했다.
“하여간에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니까요!”
심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괜히 정혁 도련님을 태성의 미래, 태성의 대들보, 태성의 등대, 태성의 대계라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설마 심 사장님, 새해 첫날 떡국 먹으러 모였을 때 하셨던 그 말이······!”
당시 심 사장은 말했었다.
-지금 제안했던 자리는 잠시 보류했으면 합니다. 제게는 아직 끝내지 못한 소임 두 가지가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태성화학, 우광과 인수 절차를 밟기 전에 도로 되찾아올까 합니다. 그게 성준 도련님의 제안을 보류해야만 하는 제 첫 번째 소임입니다.
-제 두 번째 소임은······ 태성의 미래를 위한 대계의 포석을 다지는 일입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밝힐 수 없다던 심 사장의 진의를 깨닫게 되었다.
-훨씬 더 크고 장대한 계획이라, 이 나라의 금융과 산업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게 될 사안입니다. 이상입니다.
-태성의 미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분이 저를 중용하여 크게 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심 사장은 태성이 아닌 JH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JH는 아버지께서 우광의 계열사를 따로 분리해 만든 방산기업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JH의 약자가 어디에서 따왔을 것 같습니까?”
“······차정혁.”
차성준의 헛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태성의 4남매가 영입전쟁을 벌였던 심 사장을 건져갔던 게 정혁이었다니.
심 사장을 중용해서 크게 쓴다는 귀한 분이 아버지가 아니라 정혁이었다니.
“설마 이번 JH가 선보인 신형 국산 전차를 개발한 것도······.”
“예, 직접 부산에 내려가 중정부장을 불러들이고, 밀매왕을 거두신 것도, 연구진들을 독려하고, 엔지니어들을 데려온 것도 모두 정혁 도련님이셨습니다.”
“중정부장······! 맙소사. 혹시 그 부산에 출몰했다던 간첩과 무장공비 소탕작전이?”
“그 일로 중정부장께서 부산의 유력인사들의 목줄을 꽉 잡아쥐게 되었다는 소식은 못 들으셨습니까?”
심 사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목줄, 누가 쥐여주었을 것 같습니까?”
“······!”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까 대통령님 앞에서 누가 태성과 JH를 편들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
중정부장, 청와대 경호실장, 육군보안사령관.
모두 이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이며,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들이었다.
“그분들이 맨입으로 우리 편을 들어주셨을 리 없잖습니까.”
“하, 하하. 하하하!”
차성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뒷목을 주물렀다.
“이거 뒷골이 띵하군요.”
“그 정도로 충격이셨습니까?”
“반전 영화, 그 이상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가엔 팔불출처럼 웃음이 걸려 있었다.
차성준의 눈은 기쁨과 희열로 밝게 빛났다.
“우리 정혁이가······, 정말 그 정도였습니까?”
“천재란 말도 부족하다니까요. 이 또한 진심입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쁘십니까?”
“예, 무척. 기쁘단 말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좀처럼 제 속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성준이었기에.
심 사장도 빙그레 웃었다.
“좋은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든든하시겠습니다.”
“예, 하지만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는군요.”
“하하하, 아버님 어깨의 짐을 덜어드리겠노라 뒷배를 자청한 아드님이 계신데도요?”
“그렇기에 더더욱.”
차성준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멀리 앞서가는 소령의 등 뒤로, 구름처럼 모여든 취재진들이 바글바글했다.
요란한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대통령은 꽃목걸이를 건 채 손을 흔들며 웃었다.
구령대에 올라 마이크를 앞에 두고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국방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신형 국산 전차와 자주국방에 관하여.
“태성의 브레인에 관해 윗분들이 상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장 대통령과 최측근 3인방만 해도.
“태성의 브레인과 뜻을 같이하려는 사람도 있는 반면, 혹자는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밀 겁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경쟁자들.
그러니까 이를테면,
“만일 태성의 브레인이 우리 정혁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형님들은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심 사장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차성준의 표정이 그만큼 복잡하고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대답을 내놓았다.
“회장님께서는 태성은 한 가족, 가족을 해치는 놈을 총수 자리에 앉힐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니 직접 태성의 계열사를 공격하는 대신, 필히 JH를 노리겠죠.”
정혁이는 태성의 계열사가 아닌, JH를 독자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심 사장님, 우리 정혁이가 태성의 브레인이라는 사실, 철저히 숨겨주십시오.”
“······예.”
껄끄러운 대답이 마지못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일 앞에서 정혁이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매번 그 일로 노심초사한 사람이 바로 심 사장이었다.
“우리 정혁이, 이제 고작 여덟 살입니다. 위험에 노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참······ 낭중지추라서 문제지요.”
주머니 속 송곳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감춘다고 해도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그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정혁이가 평범하고 단란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누릴 수 있도록.
어른들의 이해다툼에 휘말려 험한 꼴을 보지 않도록.
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만끽할 수 있도록.
“정보를 교란시켜야겠습니다.”
“어떻게요?”
“제가 태성의 브레인인 것처럼. 오해받을 만한 뉘앙스를 은밀하게 흘려보죠.”
차성준은 웃었다.
“칼을 맞아도 제가 맞겠습니다.”
“안 될 말입니다.”
반면 심 사장은 웃지 못했다.
“정혁 도련님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겁니다. 정혁 도련님이 왜 이렇게 무리하면서 바쁘게 움직이시는지 안다면······.”
“지금부터는 제가 움직일 겁니다.”
단단한 각오였다.
“대통령과 담판을 짓는 것도, 아버지와 담판을 짓는 것도, 구 시장과 담판을 짓는 것도, 태성건설의 공사비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도, 원래는 제가 해야 했을 일이었습니다.”
차성준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늘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은 보기 드물게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우광과의 파혼도, 그 뒷수습도, 그에 관한 책임도, 수진이의 혼수도, 시집살이의 트집과 사람들의 비난도 제가 나서서 막아냈어야 했습니다.”
차성준은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깨물었다.
“부끄럽습니다.”
“도련님, 이건······!”
“처자식을 건사한답시고, 가족들과 평화롭게 지낸답시고 나름 노력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이.”
장탄식이었다.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없건만. 지금의 평화로운 행복이 아들의 노력과 수고 덕분인 줄도 모르고······.”
차성준은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 싸움, 지금부턴 제가 맡겠습니다. 제 처자식은 제가 지켜야죠.”
심 사장은 ‘어떻게?’ 하고 되묻지 않았다.
대신 빙그레 웃었다.
“형제들과 싸우기 싫다며 내내 뒤로 빼셨으면서요.”
“형제들과 얼굴 붉히는 건 지금도 싫습니다. 솔직히 태성그룹 차기 총수 자리가 그렇게 탐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아들의 미래를 빼앗는 못난 아비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차성준은 옅게 웃었다.
“형님들 중 누가 태성의 차기 총수가 되더라도 결과는 같을 겁니다. 훗날에 있을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제일 먼저 우리부터 가차 없이 숙청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총수 자리 다툼에 발을 담그지 않았었다.
태성을 욕심내지 않았었다.
순순히 물러날 각오를 끝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어머니 외엔 없었기에 딱히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혁이가 태성에 미련이 없다고 한다면, 저도 미련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부자가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심 사장은 빙그레 웃었다.
“훗날 정혁이가 다 커서 제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못난 아비 때문에 빼앗기는 꼴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부자간의 다짐도 똑같고 말이야.
“아들의 앞길을 닦아주진 못할망정, 지금처럼 얕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 비등한 세력까진 작정하고 키우겠다는 뜻이었다.
심 사장 또한 바라던 바였던지라,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아버지께서 내건 기한은 10년. 태성의 식구라면 신분, 출신, 자격을 따지지 않고, 태성을 이끌 만한 능력이 있는 자에게 넘겨주겠다 하셨죠.”
-능력껏 뜯어먹고, 재주껏 끌어들여서, 한껏 키워 봐.
-단, 가족이란 걸 잊는 놈에겐 못 준다. 제 식구한테 칼 들이미는 놈을 어떻게 믿고 태성을 맡겨? 태성은 한 식구야!
“아버지의 조건 그 어디에도 열여덟 살짜리 차기 총수는 안 된다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차성준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 그동안은 제가 싸우고 있겠습니다.”
“어른이 되셨군요.”
“아빠가 된 겁니다.”
“하하하, 정혁 도련님의 아버지라면 응당 그 정도는 되셔야지요.”
“예, 아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듯싶습니다.”
정혁이 아버지는 웃었다.
“앞으로는 태성건설의 일을 정혁이와 함께 의논해봐야겠습니다.”
“그거 좋지요. 부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함께 나아간다니. 부럽습니다.”
심 사장도 같은 표정이었다.
“정혁이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제가 보조를 맞출 겁니다.”
“태성의 미래가 기대되는데요?”
“그 미래에 심 사장님도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래 봬도 JH의 바지사장 아닙니까. 하하하.”
저만치 앞서갔던 소령이 뒤를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조금 더 서두르십시오! 다음 차례이십니다!”
“예.”
차성준과 심 사장은 정면을 응시한 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망설임 없는 빠른 걸음이었다.
가야 할 목적지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진짜 꽃목걸이를 준비하셨나 봅니다.”
“그깟 꽃목걸이, 쓰라면 쓰죠.”
“꽃다발도, 사진도, 취재도 질색팔색하시는 분이.”
“별수 있습니까? 전 정혁이를 이 자리에 세울 생각은 없습니다.”
차성준은 씩 웃었다.
“대통령님께서 호언장담하셨잖습니까. 태성의 간판스타, 화려하게 띄워보자고.”
* * *
다음 날 아침.
태성은 발칵 뒤집혔다.
신문과 방송 일면에 모조리 도배된 기사 때문이었다.
< 아버지의 각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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