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31)
재벌집 만렙 아들-231화(231/416)
< 아주 유능한 수완가 >
막내아들이 품에서 종이를 꺼내놓았는데도 차 회장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온 신경이 유공이란 단어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공이 얼마짜리 기업인 줄이나 알아?”
차 회장은 다다다 쏟아냈다.
“미국 걸프사 지분 50%만 시가로 주고 가져와도 2~3억 달러짜리 기업이야!”
미국 걸프사는 세계를 주름잡는 메이저 정유회사였다.
“인수하려면 걸프사가 호가로 두세 배는 높여 부르며 강짜를 부릴 게 분명해!”
아쉬운 건 미국 걸프사가 아니라 유공에 침 흘리는 태성이다.
그러니 미국 걸프사는 지분 양도를 두고 시가가 아닌 한정가로 높여 부를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거기에 정부에서 틀어쥐고 있는 지분 50%는 또 어떻고?”
차 회장은 콧김까지 씩씩 뿜어냈다.
“이때다 하고 돈독이 잔뜩 오른 정관계 고위인사들이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을 게다!”
관례처럼 굳어진 일이었다.
제집 곳간처럼 공금을 넉넉히 뜯어먹다가 돌연 민간 기업에 곳간 열쇠를 빼앗기게 생겼는데.
그걸 곱게 보아 넘길 리 없다.
“정치자금이랍시고 두세 배는 족히 뜯어갈 거야!”
“예.”
차성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용인하신 일입니다.”
“속내를 떠보는 시험이야! 진짜로 그런 일이 생길 리 없······!”
“정부가 보유한 지분 50%, 거저 가져가라셨습니다.”
“······뭐?”
차 회장은 말문이 턱 막힌 채 두 눈만 느리게 꿈뻑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다.
“자금 세탁이 목적이라시더냐?”
워낙 믿기지 않는 소리라 그렇다.
“그러니까 일단 태성에게 지분을 넘기는 척한 다음에, 태성이란 이름하에 다시 유공의 지분을 회수해서 측근들의 주머니를 채워줄······.”
“일단 이것부터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차성준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를 차 회장 앞으로 스윽 밀었다.
성의 없이 대충 접어넣은 듯 묘하게 구겨진 종이 한 장.
차 회장은 그 종이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대체 대통령 각하께서는 무슨 일을 어떻게 도모하실 생각으로······.’
차성준은 귀찮게 입씨름을 벌이며 실랑이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종이를 차 회장 앞으로 밀어넣은 후 조용히 꿀물을 마셨다.
호로록.
결국 차 회장은 끙 소리를 내며 종이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허억!”
첫 문장부터 충격적이었다.
<태성의 차기 총수로 밀어주지.>
차 회장은 눈을 크게 부릅떴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태성의 지분들, 자네 뜻대로 움직여주마.>
대통령은 시중 은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통령 한마디에 은행의 업무 방향이 변하는 건 기본이었으니까.
다들 그렇듯 태성 또한 은행에서 신용 대출을 받아 회사를 키웠다.
물론 대출을 조건으로 은행은 태성의 지분을 가져갔지만.
<경쟁자들을 압박하길 원한다면 은행 대출을 막는 것뿐만이 아니라 원금 회수까지 진행시킬 수도 있다.>
그 대목에서 차 회장은 헛숨을 들이켰다.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압박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출금 회수? 은행 대출을 막아?”
투자금을 일시에 회수하겠다고 은행이 통보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룹 전체가 자금 경색에 빠지게 돼!”
어떻게든 은행에 지급할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어음이라도 헐값에 팔아치워야 한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부동산이고, 동산이고, 주식이고를 가리지 않고 뭐든 헐값에 팔아치워야 한다.
계열사를 쥐어짜서 현금을 긁어와야 한다.
<사채 시장도 막아버리지. 이참에 음지의 지하금융을 정리하고, 금융 제도화를 이룩한다는 업적을 이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있는 차 회장의 손이 덜덜덜 떨렸다.
“사채 시장까지 막아? 우리가 왜 연리 67.8%라는 비싼 이자를 처먹이면서도 사채를 써야 하는지 뻔히 알면서!”
연리 67.8%는 솔직히 횡포에 가까운 무지막지한 이율이었다.
돈을 빌려쓰는 대가가 너무나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은 사채를 빌려 썼는가.
“그 돈을 빌려서라도 사업을 키우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었어!”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고속성장기에 들어서 있었다.
빠른 속도로 산업이 발전하고, 수출이 활성화되었고, 그에 따라 기업들의 덩치가 커져갔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족족 팔렸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두 번이나 사채 시장을 건들 수 있을 리가······.”
이미 대통령은 몇 년 전에 8.3 사채동결조치를 체결한 바 있었다.
불시에 사채거래를 금지하고, 하루아침에 차용증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졸지에 사채업자들은 곡소리를 내며 파산했으나, 사채를 되갚을 필요가 없어진 기업들은 부실한 재무에서 탈출해 훨훨 날았다.
그건 기업 친화적인 정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일이었다.
“허······!”
차 회장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미친 짓을 한 번 했던 놈이 두 번 못 하리란 법은 없지. 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세무조사나 검찰의 압수수색도 지원해줄 용의가 있다.>
“허억!”
대통령의 화살이 정조준하는 곳이 태성이라니······ 그건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대통령이 작심하면 하루아침에 태성이 풍비박산 나는 것도 일은 아니지.’
차 회장은 우광이 어떻게 무너졌고, 어떻게 간신히 간판을 건질 수 있었는지 똑똑히 봤다.
이 일로 대통령에게 따로 불려갔었기 때문이다.
우광의 김대식은 항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눈앞에서 계열사 일곱 개를 뜯겼다.
대통령은 우광의 일곱 계열사는 태성의 입에 물려주었고.
우광은 재계 서열 9위에 달하는 재벌기업이었건만.
대통령의 몇 마디로 5분 만에 정리가 끝났다.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너를 차기 총수로······.”
차 회장은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는 눈으로 막내아들을 바라보았다.
격앙된 나머지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에 반해 차성준은 고요히 꿀물만 홀짝일 따름이었다.
‘야망이 없는 게 큰 흠이라고 여겼는데.’
야망이 없던 게 아니라,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던가.
“너 대체 어떻게 대통령 각하의 지지를 받아낸 거냐?”
무슨 수작을 어떻게 부렸기에 그 양반이 이렇게 홀라당 넘어왔냐?
이 까다로운 양반을 어떻게 구워삶았어?
재주도 참 용하지.
“뒤를 마저 읽어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마저? 뒤를?”
차 회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문장을 억지로 읽어내렸다.
“허억!”
경악할 일이 아직도 더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따름이었다.
“핵잠수함?”
이런 미친!
“전략원자아아암?”
원자력 잠수함에 탄도미사일까지 탑재해야 하는데?
“순항미사일원잠에······. 허!”
순항미사일원잠이 어디 뉘 집 개 이름이야?
대함 유도탄은 또 어떻게 만들어 달 거야?
“핵무기 개바아아아알?”
대통령이 야심 차게 자주국방을 부르짖으며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건 미국 등 선진국의 압박에 굴복해 공식적으로 폐기하는 것으로 결론짓지 않았던가.
“이를 위해 폐기했던 핵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매해 국방비의 1%를 지원해······ 허, 허허, 허허허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반쯤 넋이 나가 있던 차 회장이 급기야 소파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철푸덕!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차 회장은 허공을 바라보며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포항철강과 국방부에서 뒤를 커버할 것이고, 중정 또한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요청에 따라··· 허, 허허, 허허허허!”
대통령의 친서에 적힌 마지막 문구들까지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보안상의 극비로서 철저한 정보 통제가 요구되는바, 태성의 브레인 외에 다른 이의 개입을 불허한다.>
“허, 허허, 허허허!”
<차성준의 진두지휘 아래 거사를 준비해야 함을 명심하여, 태성의 전폭적 협조를 바란다.>
“허, 허허, 허허허, 허허허허!”
환장하겠다.
<이에 따라 태성에게 광양제철소 사업권, 간척 및 항만 공사 지원, 유공의 지분 50% 양도를 약속한다.>
어째서 유공이 툭 튀어나왔나 했더니.
<이만하면 내 뜻을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차태성.>
대통령이 친서를 써서 차성준의 손에 쥐여준 이유였다.
이 친서는 차태성, 즉 차 회장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태성의 브레인이라는 걸물이 나온 이상, 태성의 후계자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보는데.>
대통령의 경고였다.
<이대로 계속 두 아들의 헛짓거리를 두고볼 생각이라면 그만둬. 중임을 맡아줘야 할 태성이 허투루 전력을 갉아먹는 꼴을 내가 곱게 보아넘길 것 같나?>
협박이자, 통보였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이 나라와 태성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리시게.>
대통령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내 손으로 자네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이왕이면 모양새 좋게 가자고.>
차 회장은 벌떡 일어나 바지를 탁탁 털었다.
안성댁이 매일 깨끗하게 쓸고 닦은 거실이라 먼지가 묻어날 리 없을 텐데도.
차 회장은 습관처럼 바지를 털고 도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후우.”
차 회장은 소파 등받이에 축 처진 어깨를 걸어 올렸다.
“이것 참 대단한 수완이구나.”
“······죄송합니다.”
“이거야 원. 작정하고 10년의 기한을 두고 내건 차기 총수 경쟁이···, 이렇게 싱겁게 막이 내릴 줄은 몰랐는데.”
“그 또한 죄송하게 됐습니다.”
차성준은 허리를 푹 접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였다.
“각하께서 써주신 친서를 아버지께 올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으랴. 대통령께서 이미 뜻을 굳힌 일인데.”
“본디 제 뜻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네 뜻으로 받아들였단 소리겠지. 이걸 내 앞에 들이밀었다는 게 뭘 뜻하는지 나도 안다.”
차 회장도 꿀물을 호로록 마셨다.
정신없이 휘몰아친 막내아들의 행보 덕에 김이 모락모락 나던 뜨거운 꿀물은 먹기 딱 좋은 온도로 식어 있었다.
“흐음, 나쁘지 않아.”
꿀물도, 지금 이 상황도.
“태성의 미래를 생각해 봐도.”
대통령의 뒷배를 받아내는 수완도, 대통령에게서 잔뜩 뜯어낸 배짱도.
역시 나쁘지 않다.
“내가 왜 차기 총수 경쟁 기한을 넉넉하게 10년으로 잡았는지 짐작하느냐?”
“자리다툼의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겠죠.”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의 세력이 확실해질 테고, 승패 또한 명확해질 것이다.
촉박한 기한에 조급함을 느끼며 무리수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 바로 보았다.”
호로록.
차 회장은 눈을 반쯤 내리감고 꿀물을 음미했다.
혀끝에 맴도는 달짝지근함과 은은한 풍미.
지금 차 회장의 심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라고 자식들의 싸움을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겠느냐.”
씁쓸한 말이었다.
“태성은 한 가족, 따로 또 같이! 이 말을 실행하기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부쩍 느끼던 최근 몇 달이었다.”
자식들에게 계열사를 맡겨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큰일이 있을 때는 본사로 불러들여 한 목표를 향해 한 몸처럼 나아가던 태성이었는데.
“물밑에서 패가 갈려 알력 다툼이 제법 치열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자칫 태성이 크게 쪼개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성건설을 맡았던 동생 윤성이 때문이었다.
그놈이 아기 때부터 업고 키운 세월이 55년이었는데.
제 몫을 챙긴답시고 형의 뒤통수를 치질 않나,
‘태성건설을 분리 독립시킨다면서 우광과 손을 잡고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질 않나.’
차윤성 그놈은 태성의 부동산을 팔아치워 몰래 태성건설 주식을 매수하고 있었다.
또한 무능한 최측근들을 불러 윗선에 뇌물을 먹인답시고 돈을 펑펑 써댔다.
어디 그뿐인가?
열심히 일하던 태성건설의 임원들을 어떻게 취급했는데?
유능했던 놈들은 떠나고, 나머지 놈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며 나태해졌다.
국내에서 손꼽히던 이름값이 무색하게.
일은 내팽개쳤고, 돈은 줄줄 샜고, 주식은 폭락했다.
그렇게 윤성이 놈은 태성그룹에서의 분리 독립을 꿈꿨다.
‘그 바보 같은 놈은 협력의 대가로 20억은 물론, 태성화학과 지하철 공사를 우광에게 넘길 생각까지 했었고.’
태성그룹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벌인 짓이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짓을 내 자식들이 하고 있더라니까?’
차 회장이 공식적으로 차기 총수 경합을 선언하게 된 까닭이었다.
태성 가족끼리 칼을 들이밀지 말라는 경고를 내걸면서.
‘어쩌면······ 차라리 이게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지지라는 확실한 명분이 생겼다.
자리싸움이 팽팽해지면 형제들끼리 무리수를 두게 될 텐데, 이미 한쪽으로 크게 기우는 저울이 되었다.
‘승자의 배에 동승하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 임원들의 눈치 싸움도 조기 종결될 것이고, 오랜 편 가르기에 앙금이 잔뜩 쌓일 일도 없을 테지.’
오랜 싸움은 필연적으로 미움과 앙금을 남기게 된다.
십 년 동안 목숨을 걸고 싸우다 보면 승자와 패자 모두 만신창이가 될 터.
귀한 태성의 인재들이 서로 반목하고 등을 돌리고 칼을 휘두르는 꼴을 봐야 했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씁쓸한 입맛을 감출 길이 없었다.
‘성준이가 차기 태성의 총수가 된다면······ 인재들을 귀히 여겨 아껴쓸 놈이니.’
다시 생각해 봤는데, 역시 나쁘지 않다.
“아직 차기 총수 자리에 앉기엔 좀 어린 게 흠이니 10년 뒤라면······ 흐음. 딱 좋을 것 같군.”
“예. 바로 보셨습니다.”
차 회장의 입가에 슬쩍 흐뭇한 미소가 감돌 때였다.
“보셨으니 아실 겁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차기 총수로 지목한 사람 말입니다.”
“그래.”
성준이 바로 너.
대통령과 직접 담판 지어서 총수 자리를 제 손으로 확정 지은 아주 유능한 수완가.
그렇기에 차 회장은 뿌듯한 표정으로 달큰한 꿀물을 마실 수 있었다.
“우리 정혁입니다.”
“푸흡!”
차 회장이 꿀물을 뿜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 이렇게 적으셨잖습니까.”
차성준은 대통령의 친서를 손끝으로 콕 짚었다.
<태성의 브레인이라는 걸물이 나온 이상, 태성의 후계자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보는데.>
< 아주 유능한 수완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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