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34)
재벌집 만렙 아들-234화(234/416)
< 간단한데요? >
나는 거실 유리창 앞에 서서 뒷짐을 졌다.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내가 줬다면 또 모를까.
‘겁도 없이 내 것을 강탈하려는 자에겐 확실하게 경고한다.’
작게는 징계와 박탈로, 크게는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난 그렇게 살아왔다.
‘흐음······.’
머릿속이 바쁘게 굴러간다.
적당히 경고하는 것부터 확실하게 밟아서 우열을 판가름 짓는 방법까지.
수백 개의 선택지들이 떠올랐다 흩어졌다.
띵동! 띵동!
왔다.
결전의 시간이다.
* * *
“흐음.”
나는 할아버지가 가져온 대통령의 친서를 읽었다.
‘어쩐지 번쩍번쩍한 황금빛이더라니.’
써내려간 글귀마다 주옥같았다.
특히 이 대목, 아주 마음에 든다!
<이대로 계속 두 아들의 헛짓거리를 두고볼 생각이라면 그만둬. 중임을 맡아줘야 할 태성이 허투루 전력을 갉아먹는 꼴을 내가 곱게 보아넘길 것 같나?>
두 큰아버지들을 막아설 명분을 대통령이 쥐여주다니. 좋은데?
게다가 두 큰아버지들의 손발을 꽁꽁 묶을 무기까지 지원해주고.
우리 아버지가 마음껏 활개 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준 것도 모자라서.
할아버지에게 확실한 결단을 촉구하다니.
‘완벽한 몰이사냥의 정석이다.’
어째서 할아버지가 아침부터 이걸 들고 달려왔는지 이해가 간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테니까.
‘아버지가 이걸 들고 가서 할아버지와 담판을 지었을 줄은 몰랐는데······.’
대통령과의 중요한 비밀 회동을 마쳤으니, 출근 전에 그룹 총수에게 보고하러 간 줄 알았건만.
인제 보니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차기 총수 문제를 담판 지으러 간 거였네?
어째 아버지답지 않게 아침부터 신문 기사를 오려서 지갑에 넣더라니!
아버지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던 거구만.
‘설마 태성의 총수 자리를 나한테 양보하겠다고 나오실 줄이야.’
문득 대통령과 담판 짓고 나오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가 태성의 브레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무척 혼란스러워하셨던 것도 잠깐.
JH연구원들과의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내 손을 꽉 잡고 단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만 믿어. 우리 정혁이 앞길은 아빠가 닦아 놓으마.
그때 이미 아버지는 마음을 굳혔던 모양이다.
‘아버지도 참. 내가 뭐라고······.’
내 몫을 챙겨주려고 할아버지와 강경하게 맞섰다니.
차라리 양보할지언정 가족들과 얼굴 붉히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시는 분이.
‘내가 JH로 아버지의 뒷배가 되어드리고 싶었는데, 아버지도 내 등을 밀어주고 계셨네. 형제들과의 전쟁을 결심한 이유가 나일 줄은 몰랐는데.’
이게 뭐라고 자꾸만 입꼬리가 씰룩대냐.
가슴이 간질거렸다.
어린애 몸뚱이란!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너는 어리고, 성준이는 막무가내고, 다른 놈들은 속 터지고, 대통령은 밀어붙이니. 내가 그렇게 지금 딱 사면초가 신세다.”
할아버지는 땅이 꺼지는 듯한 긴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답이 없는 문제야.”
“답이 없기는요. 간단하게 해결 가능한 문제인데요?”
“······뭐?”
할아버지는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지금껏 내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느냐?”
“제대로 들었어요.”
“설마 성준이 말마따나 너를 차기 총수 자리에 올리라고? 태성그룹 주가 폭락할 일 있어?”
“저도 제 나이가 여덟 살인 거 알아요. 세간에는 나이, 관례, 상식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파격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솔직히 이건 좀 과하죠. 할아버지의 판단력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남들 손가락질받기 딱 좋다는 걸 제가 왜 모르겠어요.”
할아버지가 도로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래서 묻는 거예요. 할아버지, 10년 후 차기 총수로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누구예요?”
“······그건 왜 물어?”
“큰아버지들이라면 더는 할 말이 없고, 우리 아버지라면 얘기가 쉬워질 테니까요.”
나는 대통령의 친서를 팔랑팔랑 흔들면서 씩 웃었다.
“아니면 이걸 화끈하게 써먹은 이후에 다시 대화 자리를 마련해 볼까요?”
“태성은 한 가족이랬다! 식구에게 칼을 휘두르는 놈에겐 차기 총수 자리는 못 내준다!”
“누가 뭐래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런데 상황이 많이 특수하네요? 아빠와 내가 칼을 들이밀지 않고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잖아요.”
할아버지에겐 작정하고 휘두르는 대통령의 칼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거스르려다간 우광의 김 회장 꼴이 나게 생겼으니.
그래서 사면초가 신세인 거다.
이것이 바로 공권력의 대재앙!
“네 아비였다!”
결국 할아버지가 두 손을 들었다.
“10년 후면 성준이 나이도 마흔 대에 들어서니 딱 좋지 싶었다.”
“그럼요.”
“게다가 성준이라면 네 할머니의 지분도 크게 한몫할 테고 말이다.”
“그렇겠죠.”
나는 흐뭇한 마음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이미 계산 끝냈던 문제였거든.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할아버지를 보았다.
“성준이 말을 듣고 났더니, 자꾸만 세계로 도약하는 태성의 미래가 펼쳐져서. 도무지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성준이와 달리 나는 야망이 많아. 태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허황된 꿈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난 정혁이 네게 화끈하게 배팅하기로 결심 굳혔어!”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불길처럼 타오르는 야망을 읽을 수 있었다.
“10년 후엔 네가 열여덟 살. 그래도 미성년자다. 그러니 어떻게든 차기 총수 경합 기한을 늘려볼까 하는 욕심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빠만 믿어. 우리 정혁이 앞길은 아빠가 닦아 놓으마.
할아버지는 그때의 아빠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년 후에 성준이에게 차기 총수 자리를 넘긴 후에 그 후 네게 자리를 물려주는 방법도 생각을 해봤는데.”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사이에 총수가 연거푸 바뀌면 그룹 안팎이 혼란스러워진다. 분명 말이 나올 테고, 그럼 필연적으로 불안감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건 주가와 투자 유치에 치명적이야.”
할아버지는 내 손을 꽉 잡았다.
“오너발 리스크로 그룹이 흔들리면 그걸 회복하느라 족히 몇 년은 답보하게 된다. 안팎으로 잡음은 끊이질 않고, 그 틈을 타 적대 세력의 공격이 쏟아질 게다.”
사업가의 얼굴이었다.
“네게 차기 총수 자리를 물려주면서, 그룹 내외의 혼란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 영 뾰족한 게 없어.”
할아버지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문제는 또 있다. 대통령의 뜻이 매우 강경해. 10년 후가 아니라 당장 이달 내로 대답해야 하게 생겼다. 그렇다고 여덟 살인 너를······.”
할아버지는 도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답이 없다 한 것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방법이라면 있다니까요.”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기 시작했다.
“큰아버지들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고, 대통령에게 확실하게 차기 총수 지명이란 의지를 보여줄 수 있으며, 태성 안팎의 혼란은 최소화하면서,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도, 저를 차기 총수로 낙점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가능하다고? 아니, 어떻게?”
“이미 할아버지가 저한테 써먹었던 방법인데요. 기억 안 나세요?”
“너한테 써먹었던 방법?”
“지분과 경영.”
처음 우광의 계열사를 두고 할아버지와 담판 짓던 날.
할아버지는 내게 우광 계열사의 지분을 모조리 넘겼다.
하지만 태성그룹 전 계열사 임원 회의에서는 이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태성의 전(全)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이 지금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느냐, 그게 할아버지의 과제죠.
하지만 약속과 달리 할아버지는 전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을 설득하지 않았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할아버지는 제게 지분을 넘기기로 했지, 계열사의 경영권을 넘긴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그때도 절 경영 일선에 내세울 생각 없다고 하셨죠. 심 사장님을 제 경영 과외 선생님으로 붙여두고 대신 회사를 굴릴 생각으로.”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연달아 했다.
딱 잡아떼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럴 작정이었어.”
“그래서 저도 제 밥그릇 제가 챙긴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회사를 굴렸고, 인재들을 양성하고, 사업을 확장했어요.”
나는 씩 웃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잖아요. JH가 제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죠?”
“그야 내가 뜯어온 우광의 계열사를 모아두고 사장 자리에 심 사장을 바지사장으로 앉혀 놨으니······ 오호라!”
할아버지는 무릎을 탁 치셨다.
“바지회장 나오지 말란 법도 없고, 대주주가 경영 일선에 나와 총수 노릇 하지 말란 법도 없구나!”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으신다.
귀찮은 설명을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되니 참 편하구만!
“최측근 유능한 임원들의 보좌를 받으면서 말이죠?”
“그렇지!”
가족 문제로 고민하던 게 거짓말처럼 할아버지는 개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분 문제야 해결할 방법이 차고 넘쳐요.”
결국 회사는 지분 많이 가진 사람이 주인인 법이다.
“제가 왜 투자회사를 세웠겠어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돈세탁, 확실하잖아요?”
투자회사를 통해서 지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아직 JH투자는 상장하지 않았으니, 대주주 지분을 확인할 수도 없고, 재무재표를 분석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결론.
“JH투자회사를 통해 태성그룹의 지주회사 지분을 흡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호라, 투자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순환 출자 구조를 만들어놓겠다?”
사업 방면이라면 머리가 팽팽 잘도 돌아가신다니까?
“그래! 그거라면 증여세, 상속세 문제에서도 좋고, 회사 장악과 영향력 행사란 측면에서도 좋지!”
순환 출자란 한 사람이 적은 자본을 가지고 여러 주식회사를 거느리는 수법을 말한다.
지주회사와 함께 한국 재벌의 필수 요소로 꼽힐 만큼 재벌가 총수에게 유리한 구조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줄도산이란 문제가 드러나 2004년에 금지되었지만 말이다.
“거기에 하나 더. 좋은 점은 또 있어요.”
“뭔데?”
“분리, 독립했다는 JH 계열사를 태성의 계열사로 확실하게 흡수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요.”
“그럼 JH가 달고 있는 12개 계열사도?”
“태성의 계열사로 합병, 흡수한 것처럼 보이겠죠?”
“옳커니!”
탁!
할아버지가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JH투자회사 포함 총 13개 계열사가 태성의 휘하에 들어온다면······!”
“태성의 재계 서열도 껑충 뛰겠죠.”
“만년 5위에서 벗어나는 게로구나!”
할아버지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우광의 계열사를 7개나 잔뜩 뜯어내고도 태성의 재계 순위는 변동이 없었다.
JH투자회사 밑으로 분리, 독립시켜 흡수, 합병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순환 출자를 거쳐 태성의 계열사로 변신한다면?
“할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넘버 쓰리 안에 들게 되겠네요?”
“으하하하! 10위권 안에 들어오면 재계 순위 한 단계 올리는 게 지독하게 어려워지는데, 이렇게 껑충 뛰다니!”
할아버지는 언제 울상을 지었느냐는 듯이 활짝 웃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덕을 내가 톡톡히 보게 생겼다!”
날 보는 눈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만일 이 방법을 쓰면 나머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어요.”
“어떻게? 대통령의 독촉 문제도?”
“물론이죠.”
나는 씩 웃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태성의 브레인은 우리 아빠 아니겠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차기 회장을 낙점했다는 인식을 대놓고 보란 듯이 보여주려면 어떡해야겠어요?”
“그야······.”
“지분과 경영. 또 까먹으셨어요?”
“설마······!”
할아버지가 충격받은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나더러 총수 자리에서 사퇴한 후에 성준이더러······!”
“누가 할아버지 밥그릇을 뺏겠대요?”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순서란 게 있잖아요. 비어 있는 그룹 부회장 자리는 뒀다가 국 끓여 먹으실 거예요?”
“오호라!”
할아버지가 도로 활짝 웃었다.
“성준이를 그룹 부회장 자리에 앉혀놓는다?”
“누가 봐도 그럴듯한 후계자 포지션 아니에요?”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서른이면 조금 어리다고 할지라도 그룹 총수가 아니니 크게 책잡힐 일도 아니고,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을 일도 없고, 태성 임원진의 동요도 적어질 거예요.”
보란 듯이 그룹 부회장 자리에 우리 아버지가 앉는다면?
눈이 있는 임원들은 바로 사태를 파악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뜻하는 차기 총수가 누구인지.
누구의 배에 올라타야 할지 빠르게 계산 끝낼 터였다.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 두 큰아버지들은······.”
“그 문제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두 큰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밀지도 않고, 공권력의 대재앙을 불러일으켜 초가삼간 태우지도 않고, 주가 폭락할 일 없도록 은밀하게.”
내 밥그릇 넘본 것에 대한 경고도 똑똑히 해줄 겸.
이참에 큰아버지들이 분에 넘치게 데리고 있는 유능한 최측근들도 쓸어담아 와야지.
그룹 부회장 명패를 달게 되면 우리 아버지가 무척 바빠지실 것 같거든.
< 간단한데요?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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