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39)
재벌집 만렙 아들-239화(239/416)
< 연판장이 X으로 보이나 >
계열사 사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연판장에 서명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어허, 거 밀지 좀 맙시다!”
“새치기가 웬 말입니까? 제가 먼저였습니다!”
“이거 놓으십시오! 어쭈? 내 만년필을 집어 던졌어?”
우당탕탕.
국회가 따로 없었다.
태성그룹의 계열사 사장쯤 되면 권위와 체면이 생명이건만.
지금은 권위, 체면, 위엄, 진중 따위를 논할 때가 아니었다.
“으악, 옷 찢어집니다! 거 넥타이는······ 꽥!”
“치사하게 사람을 팔꿈치로······억!”
“밀지 말고! 크흡, 밟지 말······! 아오씨, 계급장 떼고 함 붙어 볼랍니까?”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태성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연판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차 회장은 혀를 찼다.
“쯧쯧쯧, 개판이군. 이놈들아, 여기 회장실이야!”
차 회장이 미간을 구기며 못마땅한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계열사 사장들은 독기와 근성으로 연판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차성준도 연판장을 잡았다.
“다들 그만 손 놓으십시오.”
아귀다툼을 벌이던 계열사 사장들이 놀라서 우뚝 멈췄다.
“부, 부회장님?”
“잠깐이면 됩니다! 금방 휘갈겨 적겠습니다!”
“전 딱 한 자만 더 적으면······!”
“내 말 안 들립니까?”
계열사 사장들은 연판장이 목숨줄이라도 되는 양 꽉 붙들었다.
눈치를 힐끔힐끔 보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연판장을 살생부로 쓴다고 했다!’
‘그 말인즉,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뜻!’
‘그러니 어떻게 포기해! 이대로 숙청 대상자로 전락할 수는 없잖아!’
가진 게 많으면 잃어야 할 것도 많다.
연봉, 권위, 권력, 사회적 위신, 체면, 지위, 부러움과 우러름까지.
태성그룹의 계열사 사장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이렇게나 많건만.
고작 연판장에 먼저 이름을 적어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허무하게 잃을 순 없었다.
“연판장 찢어지겠습니다.”
차성준은 미간을 구기며 연판장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계열사 사장들은 마지못해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는데.
찌익!
연판장이 기어이 찢어지고 말았다.
‘어?’
‘이게 왜?’
‘갑자기?’
계열사 사장들은 크게 당황했다.
아까 부회장님이 손목 스냅을 사용해서 일부러 찢어발기듯 낚아챘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계열사 사장들은 죄인처럼 힐끔힐끔 눈치를 봤다.
차성준은 은은하게 노기 어린 눈으로 계열사 사장들을 돌아봤다.
“제가 아까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요. 연판장 찢어지겠다고.”
계열사 사장들은 헛기침을 하며 눈을 피했다.
이거 충성을 바쳐야 할 부회장에게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고.
“벌써부터 저와 이렇게 힘겨루기를 하려 하십니까?”
계열사 사장들은 차성준의 경고를 떠올렸다.
-끝까지 저와 맞서겠다고 나서는 분들은······ 아무리 그동안 아버지를 도와 태성에 큰 공을 세우신 분이라고 해도 그에 걸맞은 대접 못 해드립니다.
-압수수색, 세무조사, 은행 동원, 대출 금지, 원금 회수는 물론 중정의 지하 물고문실 이용. 이곳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분, 혹시 계십니까?
계열사 사장들은 다급하게 외쳤다.
“절대 아닙니다!”
“감히 부회장님께 맞서다니요?”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저희는 그저 부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충성을 맹세하려던 것뿐이었습니다!”
계열사 사장들은 엉망인 옷매무새를 고칠 새도 없이 외쳤다.
“비록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부회장님께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부회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제야 차성준은 잔뜩 구겼던 미간을 풀었다.
‘신기하군. 이마저도 정혁이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방통했다.
-아빠, 협박이 끝나면 계열사 사장들은 뒤늦게 야단법석을 떨 거예요.
정혁이는 콕 짚어 말했다.
-바로 그때 아빠가 끼어들어서 연판장을 붙들고 힘겨루기를 하셔야 해요.
-뭐?
-연판장이 찢어지면 더 좋아요. 확실하게 문책할 근거가 되거든요.
황당했다.
그 난리통에 끼어서 계열사 사장들이랑 뭐를 해?
대놓고 힘겨루기를? 연판장을 두고?
-혼란한 틈에 잽싸게 연판장에 서명한 사람들? 휘갈긴 이름자를 못 알아보겠다며 시치미를 뚝 떼시고요.
차성준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했었다.
-굳이? 내게 충성을 다하겠노라 이름을 적어낸 사람들이라면 구태여 모른 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순진하시기는.
정혁이는 혀를 찼다.
-협박하기 전이랑 협박한 후랑 똑같아요? 내가 아까 뭐라고 했죠?
-선뜻 이 연판장에 서명하여 지지를 표한 놈과 아닌 놈 간에는 대접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고 했었지.
-바로 그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세상엔 공짜 없다니까요.
-받은 만큼 대우. 차별과 편애. 맞지?
-남아일언 중천금! 내 사람을 대놓고 챙기고, 확실하게 차별하고, 과하게 대접해줄 생각이라고 선언했으면, 노골적으로 보란 듯이 차별해줘야겠죠?
정혁이가 협박 전에 연판장에 서명할 것이라 손꼽은 사람은 달랑 셋.
태성전자 민 사장, 태성에너지 윤 사장, 태성호텔 황 사장뿐이었다.
-사람은 제 눈으로 본 것을 맹신하기 마련이니까요. 이 쇼 한 방에 앞으로 아빠를 보는 눈이 달라질 거예요.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부회장 자리를 수락했으니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
고생할 것 없이 단번에 정리가 된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다.
차성준은 턱을 쓸었고, 정혁이는 딱 잘라 말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또 있어요.
-또?
-아빠가 대놓고 과시해야 하는 것, 똑똑히 알려줘야 하는 것!
-그게 뭔데?
-서열.
정혁이는 씩 웃었다.
-그런 의미로, 연판장을 아예 뺏어버리세요.
-음?
-서명하지 못하도록.
-뭐?
이해할 수 없는 조언이었다.
그렇기에 차성준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혁이는 팔짱을 꼈다.
-괘씸하잖아요.
괘씸?
-감히 회장실에서, 그룹 회장과 부회장을 앞에 두고, 자리보전할 생각에 저희들끼리 소란을 피워요?
회사생활 하면서 그런 꼴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연판장과 대통령 친서를 가지고 그런 구도를 만들어 계열사 사장들을 몰아붙이는 게 이쪽이다 보니······ 음?
왜 우리 정혁이 눈이 세모꼴이 되었지?
-설마 그 꼴을 보고도 충성 맹세를 받아서 다행이라고 그냥 넘길 작정은 아니겠죠?
-······.
-아니라고 믿을게요.
-······.
차성준은 차마 ‘좋게 넘길 수 있으면 서로에게 좋은 거 아닌가?’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평생 온화하게 살아온 차성준에게는 무척 껄끄러운 상황이라 썩 내키진 않았지만.
자신을 올려다보는 정혁이의 얼굴을 보자, 못 하겠단 소리가 쏙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우습게 보이면 회사생활 더럽게 꼬이는 거 아시죠?
-알지.
정혁아, 아빠가 그래도 회사생활 짬빱은 꽤 되는데······.
차성준은 눈치껏 그 말도 꿀꺽 삼켰다.
어째서인지 어린 아들의 눈에는 자신이 상당히 풋내 나는 애송이로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거참 희한하다······.
-오늘 계열사 사장들의 뇌리에 인상을 콱 박아주고 오세요.
대통령 친서에 이어 연판장까지 동전 지갑에서 나올 줄이야.
정혁이는 그걸 차성준의 손에 꼭 쥐여 주었다.
아들은 꼬마 악당 같은 표정으로 씩 웃고 있었다.
-그들의 목숨줄을 꽉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란 말이에요.
-그래, 그러마.
차성준은 아들 정혁이가 건네주는 선물을 꽉 쥐었다.
이건 계열사 사장들을 상대할 비장의 무기였다.
저를 염려한 아들의 마음이었다.
-아빠가 확실하게 연판장을 가로채서 계열사 사장님들, 아니, 괘씸한 것들의 콧대를 단단히 밟아놓으마.
-그렇다고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사람을 차갑게 내치면 또 안 된다는 거, 알고 계시죠?
-······음?
어렵다!
저 작은 머리에는 대체 뭐가 들었는지.
천재의 사고 속도를 일반인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구나!
차성준은 어렵게 의도를 헤아리는 대신 간단하게 되묻기로 했다.
-그럼 아빠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
말만 해!
어려서부터 모범생으로 살아와서 배우는 건 자신 있다!
이래 봬도 아빠 한국대 출신이다?
* * *
계열사 사장들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뭘······ 어떻게 하라고요?”
“제가 방금 뭘 잘 못 들었습니다?”
차성준은 담담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다시 말해주었다.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고 싶은 분은 오늘 저녁 7시 30분, 성북동 청원각으로 찾아오시라고 했습니다.”
차성준은 찢어진 연판장을 일부러 보란 듯이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보시다시피 이 꼴이 되는 바람에.”
차성준은 연판장을 양복 안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었다.
이 바닥에서 오래도록 굴러 능구렁이가 다 된 계열사 사장들은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와, 씨, 이거 제대로 X됐구나!’
‘호의로 내밀어준 기회를 고의로 마다했으니, 제 동아줄을 잡고 싶다면 무릎걸음으로 기어오란 뜻이네?’
‘이거 풋내 나는 애송이 부회장이라고 얕봤다가 된통 당했군.’
‘우리가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한 게 얼마만이던가 싶은데.’
‘허, 과연 제 형들을 제치고 부회장이 될 만하신 분이로군.’
계열사 사장들은 속으로 치미는 온갖 말을 꿀꺽 삼켰다.
‘회장님이 불러서 보장받은 목숨이었는데, 되도 않게 간을 본다고 내 목숨을 내 손으로 홀라당 날려버렸으니, 누굴 원망하겠나.’
‘나도 최측근 3인방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판장에 서명부터 할 걸 그랬군.’
‘대놓고 편애와 차별하시겠다더니. 보란 듯이 과시하면서 서열정리를 끝내시는군.’
‘성준 도련님, 만만치 않은 분이다!’
후회와 자책, 놀람과 감탄, 인정과 수긍까지.
마음이 변할 때마다 태성그룹 계열사 사장들의 안색도 시시각각 변했다.
차성준은 쐐기를 박았다.
“명색이 연판장인데, 계열사 사장님들의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군요.”
계열사 사장들은 흠칫했다.
‘계열사 사장들의 충성 맹세만으로는 부족하다?’
‘알려진 것보다 야심이 대단하신 분이셨군.’
‘보통내기가 아니야. 단번에 상황을 휘어잡아 기어이 뜻을 관철시키는 수완이라니.’
‘젊은 나이에 대단하군. 이거 제대로 된 외통수에 걸린 것 같은데?’
계열사 사장들은 흔들리는 눈으로 차성준을 바라봤다.
반면 차성준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들을 쓸어보고 있었다.
“휘하 임원들에게도 전하십시오.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고 싶은 자들은 성북동 청원각으로 오라고.”
차성준은 응접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라고 넉넉하게 드리는 시간입니다.”
차성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장실을 떠났다.
차성준이 떠난 회장실엔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호로록.
계란 노른자 두 개를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마시는 소리였다.
이 판국에 홀로 느긋하게 쌍화차를 마시는 사람, 차 회장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회장님, 이게 아까 말씀하셨던 태성그룹 개편입니까?”
“성준 도련님을 중심으로 태성의 계열사 구조를 조금 바꿔본다는 뜻이 이거였군요?”
“뜬금없이 연판장은 왜 튀어나왔나 싶더니······.”
계열사 사장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하하, 우리 신임 부회장님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걸물이십니다.”
“왜 회장님께서 다른 두 도련님이 아닌, 이제 갓 서른이 되신 막내 도련님을 후계자로 낙점하셨나 했더니, 역시는 역시였습니다. 하하하”
“회장님만 믿고 크게 질러보길 잘했습니다. 허허허.”
“그럼요. 우리 태성그룹의 부회장님이신데, 저 정도 그릇은 되셔야죠. 후후후.”
계열사 사장들이 만족스럽게 웃는 까닭이었다.
“배짱이 끝내주십니다. 우리가 대놓고 압박하는데도 꿈쩍을 않더군요.”
“기세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당근과 채찍을 능수능란하게 휘두르며 상황을 쥐락펴락하는 거 보셨습니까?”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계열사 사장들이었다.
“회장님, 보아하니 앞으로 후계 구도에 지각변동이 생길 일은 없을 듯싶습니다.”
“아무렴요. 덕분에 한시름 크게 덜었습니다. 든든하시겠습니다.”
“태성은 한 가족! 따로 또 같이!”
“앞으로 성심성의껏 도련님을 모시겠습니다!”
다들 우렁차게 외쳤다.
언제 긴장했었냐는 듯 부드럽게 웃는 사장단이었다.
“태성의 미래가 무척 밝습니다. 마치 사전에 모든 상황을 예측하신 듯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야무지게 되받아치시는 거 보셨습니까?”
“에이, 그건 아니죠. 무당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 상황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하하.”
“우리가 이래 봬도 협상이라면 제법 잔뼈가 굵은 사장단 아닙니까. 우리가 어디 가서 농락당할 짬빱은 아니지요.”
“달리 생각하면 덕분에 부회장님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했으니, 이 정도 농락쯤이야 얼마든지 웃으며 당해드리지요. 허허허.”
그 대목에서 홀로 흐뭇하게 쌍화차만 호로록 대던 차 회장은 푸흡 뿜을 뻔했다.
‘이 정도 농락쯤이야 웃으면서 당해줘?’
네놈들 눈에는 연판장이 X으로 보이냐?
저게 우리 정혁이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 줄 알기는 하고?
스르륵.
내내 벽에 붙어서 지켜보던 투명한 검은 그림자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 연판장이 X으로 보이나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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