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40)
재벌집 만렙 아들-240화(240/416)
< 돈세탁의 전문가 >
스르륵.
투명한 검은 그림자가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저승사자가 짝다리를 짚으며 팔짱을 꼈다.
[과연. 계획대로다!]저승사자 주제에 악당처럼 웃었다.
[우리 정혁이의 예상은 어째 빗나가질 않는가! 이것이 바로 인생 2회차의 짬빱! 으하하하!]웃음소리까지 악당의 그것이었다.
저 녀석,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넌 왜 이렇게 심드렁한 표정이야? 지금 이 상황, 나만 웃기냐?]내가 지금 여기서 웃고 있을 때냐?
‘수업 중이거든?’
하, 인생······.
‘받아쓰기 시험 보면서 웃는 놈 봤냐?’
여기저기 머리를 쥐어뜯는 놈은 여럿 보인다만.
혼자 실없이 처웃고 있으면 누가 봐도 미친놈이야!
[보나 마나 백 점 아닌가? 그럼 좀 웃을 수도 있지.]‘······아까 담임이 경기 일으켰어.’
약속대로 아버지가 연판장을 들고 튀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작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거든.
그랬더니 담임이 소스라치게 놀라 펄쩍 뛰었다.
슬금슬금 내 자리까지 오더니 은근슬쩍 ‘정혁아, 나 또 청계산으로 끌려가니?’ 하고 되묻더라고.
딩동댕동!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우리 반 삐약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혁이는 이번에도 백 점이네?”
“51회 연속 백 점?”
“이 정도면 우광국민학교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록 아니야?”
“우와, 정혁이 너 진짜 대단하다! 나랑 친하게 지내자!”
“너 과외 다녀? 아니면 학원? 우리 엄마가 꼭 물어보랬어.”
“쟨 못하는 게 뭘까? 아니, 어떻게 전부 다 1등일 수가 있지?”
이런, 또 시작인가.
삐약이들의 주둥이를 닫는 덴 이만한 특효약도 없지.
나는 책상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옜다!”
착!
“우와, 오늘은 초코파이야!”
“정혁아, 잘 먹을게!”
“정혁이, 스윗해······.”
나는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아니, 이 양반은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양반인데?
“밀매왕 아저씨!”
“오랜만입니다, 보스.”
밀매왕은 교실 앞 복도에서 입가의 칼자국이 찢어지도록 활짝 웃고 있었다.
‘안 그래도 최고반도체를 태성그룹에 합병하는 일 때문에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수시로 거처를 옮기는지라 미국의 거주지를 특정할 수 없어서 난감하겠다 싶던 터였다.
‘마침 오늘 지방 공장에서 태성전자 민 사장도 올라왔고. 태성의 임원들을 청원각에 모으기로 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타이밍!’
그러니 이렇게 반가워할 수밖에.
활짝 웃으며 쪼로로 달려 나갔다.
······음?
‘고재영이 아니라 나부터 찾아왔다고?’
손녀를 위해 반도체까지 사 바칠 정도로 손녀 사랑이 지극하신 양반이 아니던가.
어째 밀매왕 옆에 껌딱지처럼 달려 있어야 할 고재영은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인즉,
‘예정에 없던 이번 귀국,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란 소리군.’
나는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오셨어요?”
“김형원이 숨겼던 돈줄을 잡았습니다.”
밀매왕은 중정부장의 비호를 받아 김형원의 은닉자산을 파헤치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아냈다고?’
솔직히 깜짝 놀랐다.
몇 년 동안 중정 요원들이 허탕 친 일이라, 특별히 5년이란 기한을 받아냈었다.
“이렇게 빨리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보다도······.”
밀매왕이 내 귀에 바짝 붙어 작게 속삭였다.
“상상 이상으로 규모가 큽니다.”
그럴 것이라 짐작한 바다.
대통령이 작정하고 따로 찬 뒷주머니라면 보통 스케일은 아닐 테니까.
“얼마나 되는데요?”
“약 50억 달러.”
50억 달러?
그게 다 얼마야?
작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액이 384.5억 달러라고 했던가?
······허.
“김형원이 들고 튄 금액은 10억 달러 남짓이었다면서요?”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전(前) 중정부장 김형원.
대통령이 악을 쓰며 김형원을 찾아내라 명한 까닭이었다.
“중간에 돈세탁을 거치면서 손해 본 액수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요.”
돈세탁을 한번 거칠 때마다 부피는 팍팍 쪼그라든다.
불법적인 일에는 과한 수수료가 따라붙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이게 웬일?
김형원은 예상보다 너무 많은 돈을 숨겨두고 있었다.
“5억 달러가 아니고요?”
“차명과 가명을 동원해서 미국 기업에 투자했더군요.”
밀매왕은 씩 웃으며 쪽지 한 장을 건넸다.
미국 기업명과 지분 비율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꽁꽁 숨겨두려고 지분으로 묻어둔 게, 몇 년 동안 무섭게 뻥튀기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주식이 대박 났단 소리였다.
‘와, 수익률이 대체 몇 프로냐?’
김형원 이 양반, 정보기관에서 일할 게 아니라, 투자기관에서 일해야 했던 인재가 아니었을까?
“김형원 전(前) 중정부장 말입니다. 돈세탁 솜씨가 보통 깔끔한 게 아니더군요.”
“대통령님 곁에서 도맡아 처리하던 사람이잖아요.”
전문가의 솜씨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인 거다.
허구헌 날 주구장창 정치자금을 세탁했던 사람인데, 솜씨가 허술하면 전문가란 명찰을 떼야지.
“중정 요원들이 헤맬 만도 했습니다. 공식적인 루트와 비공식적인 루트를 번갈아가며 흔적을 지워냈습니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돈세탁했다는 뜻이네요?”
“영악하게 빼돌려 나누고 또 합쳐서 복잡한 경로로 움직였습니다.”
밀매왕은 쪽지를 하나 더 건넸다.
“해외에 설립한 수십 개의 페이퍼 회사를 거치고, 국적을 넘나들면서 꼬리를 자르고 또 잘랐습니다.”
흥미로운 보고였다.
자금 추적과 해외 계좌 관리가 쉬워진 21세기도 아니고.
세계 주식시장이 전면 개방화된 때도 아니었는데.
이 시절에 이만큼이나 번거로운 방법을 감수하며 자금을 관리하다니.
“덕분에 저도 처음엔 참 난감했습니다. 상당히 많이 헤매느라 진땀 뺐지요.”
“대통령이 뒤를 캐라고 보낸 중정 요원이 몇 명인데요. 잡히면 죽고, 걸리면 몰수예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쪽은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그러니 한두 번 세탁으로는 불안해서 과할 정도로 거듭 세탁했겠지.
“그런 걸 어떻게 찾아내셨어요?”
“돈세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아닙니까. 얽힌 인간들을 파다 보면 다 나옵니다.”
나도 그런 방법으로 조폭들의 은닉재산을 찾아 꿀꺽한 바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 덕분에 많이들 끌려가고 뿔뿔이 흩어졌거든.
그 와중에 주인 없이 방치된 은닉재산은 능력껏 주워먹는 놈이 임자였다.
나는 그렇게 덩치를 불렸다.
“고생하셨어요.”
“별말씀을요. 아직 다 마무리한 일도 아닌데요.”
일을 중간에 팽개치고 달려왔을 때엔 그만한 이유가 있단 뜻이다.
나는 슬쩍 복도 주변을 돌아봤다.
“한명호 요원까지 떼어내고 오셨어요?”
중정부장은 밀매왕을 미국으로 보내면서 휘하 요원들을 붙여주었다.
한명호 요원을 포함해서.
“그놈 애송이 주제에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더군요.”
한명호는 특히 돈과 권력을 둘러싼 음험한 꿍꿍이의 냄새를 잘 맡는 자였다.
“이번에도 낌새를 눈치챘기에 가볍게 손을 썼지요. 하하하.”
“손을 써요?”
“이렇게 탁!”
밀매왕은 손날로 뒷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어떻습니까. 쉽죠? 간단하죠? 깔끔하죠? 하하하.”
“······.”
가볍게 손을 썼다는 말이 물리적인 의미였구만!
“적이 되면 상당히 골치 아파지는 놈이겠더군요. 수완이 제법 좋습니다. 덕분에 이번엔 그놈 덕을 톡톡히 봤지요.”
내가 괜히 눈독 들였던 인재가 아니라니까?
한명호는 뒤를 털어내는 능력이 대단했다.
게다가 집념과 독기, 집착까지 정말로 지독했었기에.
어떤 것을 상상했든 그 이상을 가져오는 남자였다.
“그러라고 특별히 골라 붙여준 사람인 줄만 아세요.”
나는 슬쩍 귀띔했다.
“그 사람, 장차 정보기관의 거물이 될 예정이거든요.”
“하하하, 도련님께서 작정하고 키워주신다는데, 미래의 거물은 당연히 확정이겠지요.”
왕년에 한명호는 중정, 안기부, 국정원 등 엘리트 코스만 골라서 고속 승진을 거듭했던, 이 나라에 손꼽히는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니까.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중정 쪽 반응은 어때요?”
“잠잠합니다.”
그럴 리가?
“한명호 요원이 냄새를 맡았으면 잠잠할 리 없을 텐데요?”
“그놈이 괜히 처맞고 뻗었겠습니까?”
밀매왕은 한쪽 눈을 찡긋했다.
“도련님을 먼저 만나뵈어야 한다며 되도 않는 고집을 부리더라니까요?”
“······.”
“쯧쯧, 어째 중정 새끼들은 하나같이 상도덕이 없는지. 겁도 없이 내 앞에서 공을 홀라당 처먹으려 들다니.”
“······.”
인제 보니 밀매왕의 손날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중정부장의 요청하에 바로 제가! 이 밀매왕이 진두지휘하여 달성한 위업임을! 도련님께선 꼭 알아주셔야 합니다!”
이 양반도 참······.
“한명호 그놈은 정말 쬐끔, 아주아주 쬐애애애애끔 슬쩍 거들었을 뿐이라니까요?”
“아까는 수완이 제법 좋아서 이번엔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하지 않았어요?”
“커흠!”
밀매왕은 모른 척 딴청을 부렸지만, 눈빛은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입가는 장난스레 웃고 있어도,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해결되지 못한 심각한 사안이 따로 있는 모양인데.
“너스레는 이만하면 충분해요. 여기까지 날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해줬으면 하는데요.”
“역시. 눈치채셨군요.”
밀매왕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웠다.
내 귀에 더욱 바싹 붙어 작게 속삭였다.
“김형원이 감춰둔 돈을 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오호라!
뒷말은 내가 받았다.
“이 정도로 깨끗하게 세탁된 돈이라면, 이대로 꿀꺽 삼켜도 아무도 모르겠네?”
“역시 우리 도련님!”
밀매왕은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한명호 요원이 반대하던가요?”
“······허. 이것까지 맞추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래서 이 자리에 함께 오지 못한 것 아니에요? 그 되도 않는다는 고집이요.”
“허, 무당이 따로 없으십니다. 어떻게 그것까지 눈치채셨을까.”
“우리랑은 좀 다르잖아요. 그래 봬도 나랏일 하는 분이라.”
“확실히 그놈 머리 돌아가는 구조가 사알짝 다르긴 합디다.”
밀매왕은 답답하다는 듯이 제 머리통을 탁탁 쳤다.
“그놈 덕분에 김형원의 꼬리를 잡아 예상보다 빨리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금을 이대로 토해내려니까 영 내키지 않으신가 봐요?”
“그렇잖습니까. 아무리 봐도 눈먼 돈이던데요.”
밀매왕이 눈을 차갑게 번뜩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김형원 그놈, 돈세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정작 어디에 어떻게 돈을 묻어뒀는지까지 까먹었다면서요?”
그랬다.
철구 아저씨가 잡아와 중정부장이 대통령 앞에 대령했던 김형원.
그가 중정 물고문실에 끌려가고서도 여태 은닉자산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던 진짜 이유.
“그 새끼는 대가리가 돌로 만들어졌답니까?”
밀매왕은 못마땅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누가 보면 여기저기 도토리 파묻어놓다 까먹는 다람쥐 새끼인 줄 알겠습니다?”
“김형원은 돈세탁을 거칠 때마다 따로 철저하게 암호문으로 기록해두면서 만전에 만전을 기했다잖아요. 단지······.”
“여기저기 수시로 거처를 옮겨다니며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 암호문을 분실했다는 게 문제라면서요?”
그 새끼, 진짜 돌대가리 아닙니까?
밀매왕은 거듭 혀를 찼다.
“현재까지는 한명호, 그 애송이 요원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한명호 요원이 고집을 꺾지 않으면 조만간 다른 중정 요원들도 전부 알게 될 거란 얘기죠?”
“지금이야 그 애송이가 공을 독차지하겠단 욕심이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긴 합니다.”
한명호의 야망이라면 알 만하지.
“국가 중대사라며 끝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알겠다고 전해주세요.”
“······예?”
“국가 중대사도 맞고, 한명호 요원이 세운 공도 맞잖아요.”
“예에에에?”
밀매왕이 다급하게 외쳤다.
“자그마치 50억 달러나 됩니다! 저와 한명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거금이란 말입니다!”
왜 이렇게 다급하게 달려왔나 했더니.
“한명호 요원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시려고요?”
“일을 기어이 틀어야겠다면······ 어쩔 수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누가 뒷골목 세계의 사람 아니랄까 봐.
살인멸구를 택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도련님.”
“한명호 요원과 이해를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예?”
“중정부장님께서 5년이란 시간을 주셨잖아요. 달리 말하면 우리끼리 돈 잘 굴리다가 5년 후에 돌려줘도 그만이란 소리.”
“······!”
······나도 뒷골목 출신인지라. 크흠!
“한명호 요원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예요. 중정부장님과의 약속도 지키고, 실적도 챙기고, 뒷주머니도 챙기고.”
“······!”
밀매왕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나는 씩 웃었다.
“한명호 요원도 고생했는데, 이왕이면 가욋돈은 두둑하게 벌어가야죠. 공무원은 뭐 땅 파먹고 산대요?”
“허······!”
“위로 올라가려면 위아래로 뿌려야 할 돈이 얼마인데요. 그 야망에 공무원 연봉 갖고 되겠어요?”
“하하하.”
“김형원이 들고 튄 대통령의 비자금이 얼마였댔죠? 10억 달러? 오케이, 5년 후에 10억 달러 에누리 없이 반납. 어때요?”
과연 5년 후 이 돈의 주인이 생존할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난 이 정권의 생명 연장 따위엔 관심이 없어서.
“그럼 대통령도 손해를 안 봐요. 그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기적의 윈윈윈윈 거래랄까요?”
결국 밀매왕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아무도 손해를 안 보는군요. 심지어 중정부장까지 실적을 챙겨가게 생겼으니까요.”
아무렴!
“마침 제가 또 미국에 설립한 투자회사를 갖고 있거든요.”
들어는 봤나, JH투자회사?
돈세탁을 목적으로 만든 투자회사거든.
정부와 큰아버지들의 간섭과 추적을 피하려고 미국에 본사를 세웠다.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대통령의 비자금, 이참에 돈세탁 한 번 더 해볼까요?”
< 돈세탁의 전문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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