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41)
재벌집 만렙 아들-241화(241/416)
< 손을 덥썩 잡은 이유 >
밀매왕은 즐거운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기가 막힌 발상입니다! 그렇죠! 그럼 한명호를 쥐도 새도 모르게 쓱싹할 필요가 없습니다!”
밀매왕이 무릎을 탁 쳤다.
“애송이 주제에 야망이 큰 놈이라서 실적과 제 주머니까지 한꺼번에 틀어쥘 수 있다면 모른 척 넘어갈 겁니다.”
밀매왕이 음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벌써부터 여기저기 찔러넣느라 주머니가 텅텅 빈 것 같더라고요.”
아무렴!
한명호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정보기관 엘리트 코스로 승승장구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굴러간다는 대한민국에서 한명호만큼 배경이 한미한 자도 드물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한명호는 누구보다 라인은 잘 보고, 잘 잡아서, 떡값을 잘 돌렸다고 할 수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명호 요원님은 마지못한 척 제안을 받아들일 거예요.”
“그럴 겁니다. 도련님과 척지기 싫을 테니까요.”
물론이지.
내가 이래 봬도 재벌3세라구?
그것도 재계 순위 5위 안에 드는 태성그룹의, 총수 손자이자 부회장의 외동아들!
“그놈 도련님의 심복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습니다. 오죽하면 제일 먼저 도련님께 보고하겠노라며 저와 실랑이를 벌였겠습니까.”
내게 눈도장을 단단히 찍고 싶었을 테니까.
“이번 일로 한명호 요원님은 제가 기대했던 역할은 확실하게 수행해 능력을 증명했어요.”
나는 동전 지갑을 열었다.
예비용 연판장에 만년필로 휘갈겨 적어내려갔다.
‘눈도장을 찍었으면 지장도 찍어야지.’
물론 이건 한명호 몫이다.
나는 말보다는 문서를 믿는 사람이거든.
“이참에 한명호 요원을 확실하게 묶어버려야겠네요.”
“묶어요? 아, 이렇게?”
밀매왕이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시늉을 했다.
이 양반은 어째 물리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시나.
“중정요원을 포박해서 얻다 쓰시려고요? 공범으로 묶으셔야죠.”
“아, 공범.”
나는 연판장을 내밀었다.
물론 이건 밀매왕의 것이다.
이 일의 공범은 한명호 혼자만이 아니거든.
“한명호 요원, 돈과 권력에 관련된 음모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면서요?”
나는 씩 웃었다.
“철저하게 숨겨뒀던 김형원의 돈줄까지 잡아내는 능력자예요. 제 돈주머니를 잡으려는 놈들 냄새는 또 얼마나 잘 맡을 거예요.”
“오호, 한명호를 집 지키는 개새끼로 쓰실 겁니까?”
무려 대통령의 비자금을 몰래 운용하는 일이다.
“중정요원들의 수법에 통달하고, 내부 정보를 꿰고 있으며, 남의 뒤를 캐는 데 일가견이 있고, 음모의 냄새를 맡는 눈치까지 있으니까요.”
“키야, 그거 진짜 기가 막힌 인재 등용입니다! 그놈이 우리 뒤를 봐주면······.”
“철벽수비가 따로 없겠죠?”
“하하하! 그럼 한명호를 구워삶는 건 제가 할까요?”
과거 한명호가 해운왕의 칼잡이였던 시절, 그 막강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직접 경험한 바 있었다.
밀매왕과 나는 똑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거기에 저승사자까지 추가.
[으하하하하! 그 일이라면 내가 먼저 밑밥을 깔아주지!]아하. 한명호의 꿈에 들어가겠다?
[한명호에게 확실히 보여주마. 누구의 동아줄을 잡는 게 최선인지!]‘좋아.’
[간다.]저승사자는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나는 장담했다.
“그건 제가 맡을게요.”
연판장을 함부로 남의 손에 맡겨 내돌릴 수야 있나.
“김형원이 돈 불렸던 것 이상으로 크게 불려 볼게요.”
김형원이 묻어놓은 지분 중에 알짜기업들의 것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곧 있을 석유파동 때 크게 휘청할 회사들만 몇 개 정리해 보자고.
‘유공을 꽁돈으로 인수하게 생겼네?’
좋은데?
“어디에 투자하실 계획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일단 단기 투자와 중장기 투자로 나눌 생각인데요. 미국이니까 단기 투자로는 뭐니 뭐니 해도 목돈을 왕창 땡길 수 있는······.”
딩동댕동!
수업 종이 울렸다.
밀매왕은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아쉬운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이것 참. 정말 중요한 대목이었는데, 어쩔 수 없······.”
“어쩔 수 없네요. 조퇴할게요.”
“······예?”
“중요한 대목이라면서요.”
뭘 그런 눈으로 보시나.
그깟 조퇴가 뭐라고.
죽을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50억 달러의 투자 계획과 최고반도체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중요한 때예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가하게 한 자릿수 덧셈 뺄셈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나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일에는 경중이 있고, 중요한 일에는 타이밍이란 게 있다.
“최고반도체를 태성의 계열사와 흡수, 병합하는 건에 관해서 의논해 볼까요?”
밀매왕과 고재영은 최고반도체의 지분 50%를 소유한 대주주였다.
“잠깐만요. 책가방은 됐으니까, 담임선생님께······.”
마침 약속했던 것처럼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우르르 나왔다.
“수업 종 울렸다! 다들 교실로 들어가!”
그중 우리 반 담임, 폭군 티라노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물론 들고 있는 사랑의 매도 제일 컸다.
험악한 기세로 교실 문을 치고 간다.
쾅쾅쾅!
누가 봐도 고의, 어떻게 봐도 위협이었다.
그러니 놀란 아이들은 흐익, 숨을 집어삼키며 후다닥 교실로 달려가야 했다.
폭군 티라노는 우광사립학교 최악의 교사로 유명했다.
‘오! 마침 또 이렇게 딱 나오시나.’
번거롭게 교무실까지 찾아가거나, 교실에서 애들 눈치 보며 조퇴를 논하지 않아도 되겠네?
운이 좋군!
“빨리빨리 안 뛰어?”
“으아악!”
“이런 정신 빠진 놈들! 수업 종 울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복도에서······.”
폭군 티라노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복도에서 놀던 아이들이 썰물처럼 교실로 빠져나간 자리.
덩그러니 남겨진 밀매왕과 나를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저쪽은 교무실, 저 끝엔 교장실, 그리고······.”
“보스와 면담하러 왔습니다만.”
“······보스?”
“예상하셨다시피 이쪽 도련님 되십니다.”
밀매왕은 나를 가리켰다.
밀매왕의 손끝을 따라간 담임의 눈이 거칠게 요동쳤다.
“며, 면담?”
아주 익숙한 단어였던지라, 담임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정혁아, 나 진짜로 오늘 청계산에 또 끌려가니?”
“청계산?”
밀매왕은 고개를 작게 갸웃댔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부연설명을 보태주기로 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세요. 이미 입학 전에 청계산에서 면담 끝냈고요.”
“하하하하. 그렇게 된 거였군요. 하여간에 철두철미하시다니까.”
밀매왕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럴 때마다 입가에 쭉 찢어진 칼자국이 험상궂게 씰룩댔다.
밀매왕은 담임을 바라보며 대놓고 요구했다.
“오늘 우리 보스를 이만 조퇴시킬까 합니다만?”
“혹시 정혁이와 어떻게 되시는지······?”
“부하직원? 목숨 빚을 진 처지? 손녀의 신변 일체를 맡긴? 뭐 그쯤 됩니다.”
“······?”
담임은 놀란 눈으로 나와 밀매왕을 번갈아 보았다.
“정혁아, 너 혹시 신체포기각서를······.”
“그런 건 우리 할머니 친정 쪽에서 취급할 것 같네요.”
“히익!”
아마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쪽 계열이란 말이야.
사용하는 단어부터 주로 쓰는 연이율과 업무 스타일까지.
심지어 내거는 특약까지도 딱 내 취향이더라고.
“지난번에 선생님이 결석 처리한 건 고의가 아니었다!”
담임이 버럭 외쳤다.
“개근상, 필요하니?”
“됐어요. 그거 받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요 뭐.”
“필요했구나! 선생님께 진작 말을 하지!”
담임은 장담했다.
“세상엔 아주 다양한 해결법이 존재한단다! 선생님이 책임지고 요령껏 해결해 볼게!”
“······뭐 굳이 그래주시겠다면, 딱히 말릴 생각은 없어요.”
나는 생긋 웃었다.
“그럼 전 이만 조퇴할게요.”
“저기, 그럼 청계산 면담은··· 취소하는 거 맞지?”
애초에 잡혀 있지도 않은 면담 약속이었는데 뭐.
“물론이에요.”
“정말 고맙다, 정혁아!”
선생님은 몹시 기뻐하셨다.
밀매왕은 웃었다.
“학생이 대뜸 조퇴하겠다는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기뻐하는 선생이 다 있네?”
“······크흠!”
“화끈한 융통성과 열린 사고방식, 아주 마음에 듭니다!”
밀매왕은 티라노의 손을 덥썩 잡으며 물었다.
반박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우리 애, 그쪽 선생님 반으로 집어넣어도 됩니까?”
이래 봬도 밀매왕은 부산항과 부산시장을 장악한 뒷세계의 거물이자, 부산의 패자!
온몸으로 풍기는 기세는 매섭기 짝이 없었다.
폭군 티라노가 아무리 흉폭하다고 하더라도 비할 바 없는 위압감!
담임은 공손한 자세로 정중하게 물었다.
“정혁아, 이분 소속은 정확하게 어떻게 되시니?”
“음, 허락 없이 마약을 유통했던 조직 간부를 처단하고······.”
“거기까지만 하자.”
꿀꺽.
담임은 마른침을 삼켰다.
“언제쯤 손녀분 자리를 마련하면 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럼 전학 수속을 밟······.”
“오늘 이 시간부로 당장. 옆 반 앱니다.”
“······.”
밀매왕은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입가의 칼자국을 쭉 끌어올렸다.
“안 됩니까?”
“안 되긴요. 당연히 됩니다!”
“우리 보스 짝꿍, 안 됩니까?”
“안 되긴요. 됩니다!”
“이 학교 졸업할 때까지, 안 됩니까?”
“······안 되긴요.”
담임에겐 선택지란 없었다.
담임이 6년 전속으로 맡게 된 학생이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 * *
밀매왕과 자동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유종태가 반갑게 인사했다.
“오, 밀매왕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미국에 갔던 일은 잘되셨나 봅니다?”
“······그렇게 티가 났나?”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마치 어마어마한 꽁돈을 꿀꺽 삼킨 도둑놈의 얼굴이랄까요?”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빠른데?”
“제가 눈치 하나로 먹고삽니다. 이래 봬도 제가 우리 도련님의 충성 넘버 투 아닙니까. 으하핫!”
“충성 넘버 투라······. 그러고 보니 도련님께선 자네와 연구소장만 대동해 부산에 오셨었지.”
밀매왕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듣자 하니 도련님의 제1 심복은 JH투자의 심 사장이라던데······.”
“부산의 패자라더니, 역시 야망 있는 분이셨군요.”
유종태는 ‘이거 분발해야겠는데.’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도련님,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JH투자회사요.”
미국에 세운 본사에서 큰 건을 굴리게 생겼으니, 이 사안은 심 사장과 논해야 할 일이다.
‘무려 50억 달러를 굴리는 일이니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난 자꾸만 기업 투자 쪽으로 머리가 굴러간단 말이지.
‘기업 경영의 대가는 어떤 눈으로 기업의 미래를 그려내고,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결정할까.’
유종태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슬쩍 화제를 돌렸다.
“당시 심 사장님도 부산에 내려가셨는데, 그때 중정 물고문실에서 만난 적 없으세요?”
“기억이 안 나는군. 그땐 워낙 정신이 없어놔서.”
그럴 만하지.
조직이 와해되고, 목숨이 오락가락할 때였으니까.
“그럼 아마 오늘 심 사장님을 만나게 되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놀라? 내가?”
밀매왕 정도 되는 거물은 유명인사를 만났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유종태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우후후, 정혁 도련님께서 왜 심 사장님을 아끼시는지, 왠지 오늘 단번에 깨닫게 되실 것 같단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
“흐음, 그 정도나 되는 사내란 말이지.”
밀매왕은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부르릉!
나는 밀매왕을 돌아보았다.
“고재영도 안 만나고 이렇게 가셔도 되겠어요?”
“50억 달러의 투자 계획과 최고반도체의 미래를 결정해야 중요한 때라면서요.”
밀매왕은 야망이 번뜩이는 눈을 반쯤 내리떴다.
“심 사장이 과연 이번 일을 성사시킬 깜냥이 되는가, 그걸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려 합니다.”
깜냥?
“만일 심 사장이 그만한 일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밀매왕은 까칠한 눈빛을 번뜩였다.
“제가 직접 도련님을 보좌할 생각입니다.”
* * *
명동에 위치한 JH투자회사 사무실.
오늘도 언제나처럼 다들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물론 한쪽 벽에는 서류 상자가 가득 쌓여져 있었다.
심 사장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얼굴로 나와 밀매왕을 번갈아 보았다.
“하아, 천천히 좀 오시지······. 12개 계열사의 인수 합병에 관한 서류, 아직 못 끝냈습니다.”
푸석푸석한 피부에 핏발이 선 눈, 구겨진 와이셔츠에선 짙은 보약 냄새가 진동했다.
심 사장은 내친김에 보약팩을 하나 더 까서 쪽쪽 빨아마셨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십니까?”
“밀매왕이에요.”
“설마 최고반도체, 반도체 기술연구소, 영실금속과 운도기계?”
내가 소개하기도 전에 심 사장은 밀매왕의 손을 덥썩 잡았다.
“도련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유능하고 수완이 대단하기로 이름 높으신 분이라면서요?”
“흠흠!”
“정말 잘 오셨습니다! 격하게 환영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 사장은 하이에나처럼 눈을 빛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선 이것부터 받으시죠.”
“음?”
밀매왕은 엉겁결에 서류 상자를 받아 들었다.
심 사장은 활짝 웃었다.
“계열사 지분 있고, 회사 왔고, 숨 붙어 있으면 일해야죠.”
< 손을 덥썩 잡은 이유 > 끝
ⓒ 오소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