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42)
재벌집 만렙 아들-242화(242/416)
< 밀매왕도 가즈아! >
“심 사장님, 과연 대단하신 분이셨군요.”
밀매왕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오기까지.
채 네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 고동언,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심 사장과 같이 일해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 남자, 어마어마한 업무 처리능력을 보유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이 정도 솜씨라면 거사를 함께 도모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싶군.’
무려 50억 달러를 굴려야 하는 일!
밀매왕은 인정했다.
“심 사장님과 함께 일해보고 싶군요.”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덥썩.
심 사장이 쉴 새 없이 결재서류를 넘기다가 벌떡 일어나 밀매왕의 손을 잡았다.
“마침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하하하,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뜻이 통했군요. 역시 도련님의 제1 심복이십니다.”
“역시 도련님께서 손수 모셔오신 분답습니다.”
“든든한 분과 뜻을 함께하게 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밀매왕께서 함께하게 된다니, 저 역시 든든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가는 호의 속에 싹트는 신의!
밀매왕도 심 사장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어떻게 이렇게 일하고도 여태 살아계셨습니까?”
“놀랄 시간에 보약이나 한 팩 더 마시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요?”
“갑자기 웬 보약 타령을······ 큽!”
심 사장은 밀매왕의 입에 보약팩 빨대를 푹 꽂아 물려주었다.
밀매왕은 얼떨결에 받아 든 보약팩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최상급 용봉탕?”
“역시 알아봐주시는군요.”
심 사장은 순식간에 빨아먹은 제 몫의 보약팩을 어깨 뒤로 던졌다.
양철 쓰레기통에 바로 골인.
허공에 보약 한 방울 튀기지 않는, 능숙한 솜씨였다.
“보약으로 원기 충전했으니 다시 힘내서 일해봅시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일하고 바로?”
“월급 받았고, 회사 왔고, 숨 붙어 있으면 일해야죠. 회사가 놀이텁니까?”
심 사장은 밀매왕의 어깨를 짚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해운회사 서류를 처리해보실까요?”
“······.”
눈치 빠른 유종태가 해운회사 서류상자를 골라다 밀매왕의 책상 옆에 차곡차곡 쌓았다.
순식간에 5박스가 새로 생기는 마법!
“그런 눈 하실 것 없습니다. 하다 보면 점점 익숙해집니다.”
“익숙?”
“이곳에선 잠깐 손을 놀리고 있으면 서류가 눈덩이처럼 증식하거든요.”
“지금껏 해치운 서류 상자만 9박스가 넘······ 뭐야? 그게 다 어디로 갔어?”
돌돌돌.
유종태의 손수레는 이미 사장실을 떠난 후였다.
심 사장은 후후후 웃었다.
“네 시간 만에 최고반도체와 반도체기술연구소와 관련된 서류 전반을 파악하고, 확실하게 분류를 해놓을 줄이야. 솔직히 기대 이상입니다.”
짝. 짝. 짝.
심 사장은 느리게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또 우리 회사에는 부사장 자리가! 하하하, 기꺼이 밀매왕께 내어드리죠.”
이 밀매왕이 누구 밑에서, 그것도 부사장 일을 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어차피 정혁 도련님께 의탁하기로 결정한 이상, 미래는 정해진 것과 다름없잖습니까?”
심 사장의 어조는 더욱 은근해졌다.
“어차피 구르게 될 거, 빨리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방금 저와 함께 이곳에서 뼈를 묻기로 약속하셨잖습니까?”
심 사장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우리 보스가 강조했듯이! 능력에 따라, 실적에 따라, 충심에 따라 확실하게 대우해드리겠습니다. 차별과 편애로!”
“일없습니다!”
벌떡!
밀매왕은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박찼다.
* * *
벌컥!
“보스!”
사장실을 박차고 나간 밀매왕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JH사무실을 돌아보았다.
위이이잉.
달칵, 달칵.
타다다다닥.
JH사무실은 평소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밀매왕은 순간 입을 떡 벌렸다.
“엄청난 속도······!”
JH사무실 식구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업무를 해치우고 있었다.
능숙하게 업무를 분담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가다니.
이게 가능해?
밀매왕은 JH사무실 맨 뒷자리,
가장 크고 화려한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해치우는 꼬마를 발견했다.
한명호에게 연판장을 받아 온다더니, 벌써 사무실에 복귀했을 줄은 몰랐다.
“아니, 보스가 심 사장보다 손이 더 빠르다고?”
말도 안 돼!
밀매왕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잠깐, 우리 집 강아지는 왜 저기에 있냐?”
노안이 왔나?
밀매왕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하지만 다시 봐도 똑같다.
고재영은 얌전하게 앉아서 열심히 연필을 놀리고 있었다.
“재영아?”
“할아버지?”
몇 달 만에 만나게 된 두 조손.
고재영은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러더니 이내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밀매왕을 바라보았다.
밀매왕은 울컥했다.
“아이고, 우리 애기! 할애비 보러 여기까지 찾아왔쪄요?”
“아하하, 저기, 할아버지······. 근데 제가 지금 엄청 바빠서요······.”
고재영은 미안한 듯 웃었다.
“여긴 잠깐만 손을 놀리고 있어도 그새 업무가 눈덩이처럼 증식하거든요.”
“······허?”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이로구만!
“귀한 손녀딸을 부탁했더니, 이리 막 부려먹고 있······ 응?”
씩씩대며 한달음에 달려왔던 밀매왕.
고재영이 열심히 처리하던 서류를 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국민학교 저학년용 십자말풀이 41~44쪽>
<매일매일 외우는 초급 영어 단어 20개 67~70쪽>
<기초 튼튼 산수익힘책 1-2 77~82쪽>
고재영은 끙끙대며 빠른 속도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옆자리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업무를 해치우던 정혁이가 힐끔 보더니 스윽 한 장을 더 올렸다.
<어린이 기초 한자 연습과 고사성어 이야기 139~140쪽>
고재영은 책상 위에 올려진, 그새 증식된 오늘의 과제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할아버지 바보! 할아버지 때문에 오늘은 사자성어에 당첨됐잖아요! 이거 진짜 어려운데, 히잉······.”
고재영은 원망스럽게 한번 노려보다가 다시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밀매왕은 저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고재영도 계열사 지분을 50%나 가지고 있는 회사의 주인이잖아요.”
정혁이가 대신 대답했다.
“주인 된 도리로 경영과 지분에 관해 배우고 익혀야죠.”
“그러기엔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이······.”
“회사 일. 기초 업무예요.”
그런 명분으로 학습을 시키고 있었군.
“사원증 보이시죠? 이게 아무에게나 발급되는 게 아니거든요.”
보란 듯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고재영이 활짝 웃으며 다 푼 과제를 척 내밀었다.
“끝!”
“어디 볼까?”
정혁이는 빨간 색연필로 채점했다.
“백 점.”
“와아! 다 맞았다!”
“잘했어.”
정혁이가 덤덤하게 딸기 사탕을 건넸다.
30개 들이 한 봉지에 200원 하는 싸구려 사탕이었는데도.
고재영은 금패를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헤헤헤. 할아버지, 봤어요? 짜잔, 오늘 업무도 전부 백 점!”
고재영은 손에 쥔 사탕을 흔들면서 웃었다.
고양이처럼 살짝 올라간 눈매는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어쭈? 한눈팔 여유도 있고. 여기 놀이터 아니라니까.”
“헉, 그새 또 쌓였어!”
정혁이는 쉬지 않고 또 다른 과제를 내밀었다.
오늘 자 신문 기사에 빨간 색연필로 크게 동그라미를 쳐 둔 것이었다.
<압구정 현무아파트 특혜 분양!>
<한일 대륙붕 협정 발표!>
<일주일 후에 치러질 제1차 한미군사위원회에 대해 알아보자!>
고재영은 무척 익숙하게 과제를 받아 들고 연필을 굴리며 다시 집중했다.
그러더니 삐뚤삐뚤한 글씨로 신문 기사를 요약하기 시작했다.
밀매왕은 손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싸움박질이나 하던 우리 집 말괄량이가······.’
빨간 색연필로 그려진 동그라미 무더기.
100이란 숫자 밑에 그어진 두 줄.
뿌듯한 얼굴로 밝게 웃던 손녀의 미소.
‘공부라면 질색팔색을 하며 도망다니기 바빴던 우리 똥강아지가······.’
못한다, 지겹다, 싫다, 재미없다, 투정 한 번 안 부리고.
주어진 과제를 묵묵히 해치우고 있었구나.
‘과외도 싫다, 학원도 싫다, 공부는 더 싫다. 그리도 속을 썩이던 녀석이······.’
이렇게 얌전하게 앉아서.
이렇게 장하고 기특하게.
이렇게 부쩍부쩍 씩씩하게 자랐구나.
밀매왕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밀매왕은 떨리는 눈으로 은인을 찾았다.
“보스.”
“쉿.”
정혁이는 몽블랑 만년필 끝으로 고재영을 가리켰다.
“집중하고 있잖아요. 업무 중이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예, 보스.”
밀매왕은 빙그레 웃으며 얌전히 물러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많은 문장들이 뭉쳐서 나온 말.
하나하나 근거를 들기엔 구질구질한 게 영 폼이 안 나니까.
밀매왕은 손녀의 후견인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저도 마저 일 보고 있겠습니다.”
사내는 원래 말보다는 행동으로 진심을 전해야 하는 법.
밀매왕은 진심을 증명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제 발로 뛰쳐나온 사장실을 제 발로 걸어들어갔다.
* * *
벌컥!
집무실 책상에 앉아서 결재서류를 넘기던 심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밀매왕은 새로 쌓인 서류 상자를 가리켰다.
“이것만 해치우면 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괜히 돌아왔나?
진심이고 자시고, 그냥 튈 걸 그랬나?
“하지만 그건 잠시 다음으로 미뤄두지요.”
심 사장은 손깍지를 꼈다.
“그보다 좀 더 중요한 업무부터 처리해볼까 합니다.”
더 중요한 업무.
그러니까 처리해야 할 서류 상자를 더 늘리겠다는 소리구만!
······여긴 진짜 숨만 쉬어도 서류가 증식하는 곳이로군.
“최고반도체 등 밀매왕께서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계열사 네 곳의 처분에 관해서.”
심 사장은 웃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정혁 도련님께서 사전에 언질도 없이 밀매왕을 데려오실 리 없지요.”
‘인제 보니 이 능구렁이가······!’
밀매왕은 벌어지려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내가 이자의 깜냥을 시험하려 했듯, 심 사장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군.’
그래서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대뜸 서류 상자부터 떠안겼구만?
그것도 내가 지분을 들고 있는 계열사 관련 서류들로만 골라서.
밀매왕은 피식 웃었다.
“계열사 네 개를 태성의 이름하에 두고 싶으시다?”
“예.”
회사는 지분 많이 가진 사람이 주인이다.
그리고 밀매왕은 해당 계열사 지분 50%를 갖고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내가 심 사장에게 보고받는 입장이고.’
갑을은 분명했다.
그에 따라 밀매왕의 자세도 느슨해졌다.
심 사장이 말했다.
“아까 서류 보셨으니 돌아가는 상황은 파악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이거 생각보다 더 능구렁이셨구만.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 수고를 들이기에도 귀찮았다?
“정혁 도련님께 인사권 등 회사 경영 전반에 관한 일체를 보장하셨다지요.”
“회사 경영권을 가지고 있으니 태성의 계열사로 편입해 경영해도 무방하지 않느냐, 이 말입니까?”
솔직히 경영권을 떠맡긴 입장에서 이에 관해 딱히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최고반도체는 우리 재영이를 도련님께 묶어놓을 수단이자, 좋은 투자처일 뿐이니.’
어설프게 경영에 간섭하느니, 달달한 투자수익과 배당금만 받아먹는 게 낫지.
밀매왕은 재계 서열 7위란 국천그룹도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약은 약사에게, 환자는 의사에게,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투자한 만큼 투자 수익을 뽑아먹으면 그만이야.
하지만 밀매왕은 일부러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까 심 사장에게 선빵을 먹었던 게 분해서.
“아무리 경영권을 위임했기로서니. 이 정도면 월권 아닙니까?”
회사 경영하는 것과 회사를 다른 그룹에 합병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오해하셨습니다.”
“오해?”
“묻겠습니다. 이로 인해 지분 변동이 있었습니까?”
“······음?”
없다.
의아했다.
“다른 그룹 계열사로 인수 합병 되는데, 지분 구조와 비율에 변화가 없다고?”
“당연하죠. 이름만 바꾸기로 합의 봤거든요. 태성반도체로 개명. 끝.”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황당했다.
“그럼 태성의 계열사로 합병 소리 자체가 나올 건덕지가 없습니다만?”
“마침 일부러 보란 듯이 실적을 과시해야 할 상황이 생겨서 말입니다.”
왜?
“정혁 도련님의 아버님이 오늘부로 태성그룹 부회장으로 임명받으셨습니다.”
“······형제들을 제치고 막내아들이 태성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 말입니까?”
잠깐!
“그럼 정혁 도련님께서 태성의 3대 총수가 될 확률이 몹시 높아졌다는 뜻이군요?”
“음, 혹시 밀매왕께서도 연판장에 서명하셨습니까?”
“하긴 했습니다만······.”
심 사장은 씩 웃었다.
“그럼 됐습니다. 이건 극비입니다만, 정혁 도련님께서는 태성그룹 차기 총수가 되실 겁니다.”
잠깐.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대를 뛰어넘고?”
“예, 차 회장님께서도 태성전자 지분 정리를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정혁 도련님께.”
“······!”
밀매왕은 입을 떡 벌렸다.
내가 잡은 동아줄이 금 동아줄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동아줄이었네?
“그래서 말입니다만, 최고반도체와······.”
“개명합시다!”
밀매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외쳤다.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이참에 아예 태성그룹에 합병합시다! 태성반도체, 가즈아!”
들고 있던 지분 50%.
초대박 났구나!
“정혁 도련님께서 직접 경영하실 JH투자는······.”
“부사장 하면 향후 JH투자의 스톡옵션, 줍니까?”
JH투자는 현재 비상장 상태.
주식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길이 없다.
밀매왕은 조만간 50억 달러를 신나게 굴릴 정혁이의 투자회사에 제대로 숟가락을 얹고 싶단 야망이 샘솟았다.
“어쩌면?”
“부사장, 가즈아!”
밀매왕의 고용계약서에 특약사항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밀매왕도 가즈아!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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