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45)
재벌집 만렙 아들-245화(245/416)
< 3분으로 갚는 호의 >
‘어라?’
이게 누구신가?
나는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안녕하세요, 큰아버지, 큰어머니.”
“정혁아, 정말 오랜만이다.”
오랜만은 무슨.
설날에 봤으면 됐지.
솔직히 조금은 의아하고, 약간은 황당했다.
‘지금 이렇게 날 반색하며 반겨줄 때가 아닐 텐데?’
현재 시각 7시 32분.
뜻을 정한 태성의 임원들은 7시 30분까지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을 터였다.
‘흐음.’
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모습을 슥 훑어봤다.
화장이 흘러내릴 정도의 눈물 자국, 신경질적으로 구겨진 넥타이, 폴폴 풍기는 술 냄새.
‘휘하 계열사 임원들이 큰아버지와 얼굴 붉히며 돌아섰구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꼭 붙잡고 있는 손과 의외로 밝은 표정, 부드럽게 풀어진 눈빛과 분위기.
서로를 웬수 보듯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날카로운 가시는 간데없고, 진한 동지애와 말랑한 가족애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단단함이 풍겨나왔다.
나는 피식 웃었다.
‘조강지처는 잘 얻으셨네요, 큰아버지.’
감정의 골이 꽤나 깊었는데. 그것도 용케 푸셨고요.
나는 호오, 소리를 삼키며 턱을 쓸었다.
‘이십 년 같이 산 정이 참 무섭네.’
다들 이렇게 산다던데······.
나로서는 짐작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내가 뭐 제대로 된 가정을 꾸려봤어야 알지.
천벌 받은 탓에 부부의 연을 끝내 못 이었거든.
‘아, 갑자기 우리 예린이 보고 싶네.’
우리 꼬맹이는 지금쯤 어디서 뭐 하고 있으려나.
아련하게 눈을 돌리고 있으려니, 묘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고재영과 눈이 딱 마주쳤다.
“왜? 뭐? 왜?”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내 눈이 뭐가 어때서?”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고재영이 고개를 팩 돌렸다.
말총머리가 고재영의 뺨을 착 때리고 지나갔다.
제 머리채에 맞은 건 뺨인데, 어째서인지 귀가 빨개져 있었다.
“몰라! 아무튼 너 눈 그렇게 뜨지 마!”
얘가 뭐라는 거냐?
“그러는 넌 입가에 침이나 닦고 말해.”
“앗!”
고재영은 이젠 얼굴만이 아니라 목덜미까지 새빨개졌다.
안 그래도 고양이 눈매 같던 눈이 확 커졌다.
“차정혁 바보! 똥개! 멍청이! 말미잘!”
나는 귀를 팠다.
어디서 고양이가 찡얼대나 하고.
큰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둘이 사귀냐?”
“아니거든요?
“아니거든요?”
고재영과 나는 동시에 외쳤다.
고재영은 나를 홱 돌아봤다.
“전 얼굴값 하는 남자, 취급 안 하거든요?”
“누군 말괄량이 취급하는 줄 알아?”
“우린 그저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거든요?”
고재영은 씩씩대면서 덧붙였다.
“얘는 옆집 애일 뿐이고요, 이제 짝궁이기도 하고, 등하교도 같이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숙제도 같이하고, 업무도 같이 보고 있고, 가끔 땡땡이도 같이 치는 내 후견인이지만!”
고재영은 날 가리키며 씩씩댔다.
“그래도 우린 그냥 친구거든요!”
“······.”
심 사장이 묘한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어, 그러니까 도련님은 고재영 양과 상당히, 에······ 그러니까 여러모로······ 크흠!”
“······그런 거 아니에요.”
밀매왕은 헤벌쭉 풀어진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아무렴요. 우리 재영이가 정혁이한테 회사도 선물하고, 지분도 나눠 주고, 옆집도 그런 이유로 샀지만, 보시다시피 아직 어린애들 아닙니까.”
“오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휘파람을 불었다.
동시에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정혁이가······ 흐음, 요즘 애들은 정말 빠르네.”
“그러게. 선물로 회사도 받고, 지분도 나눠 받고, 일부러 옆집까지 살 정도면······어머나.”
“아니라니까요.”
왜 나 벽 보고 얘기하니?
심 사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어이구, 그렇다면 우리 손녀,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역시 우리 심 사장님! 든든합니다. 하하하.”
이 양반들까지?
그렇다고 어린애를 두고 하는 어른들의 놀림에 기를 쓰고 달려들 일은 또 아닌지라.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아, 인경이 의경이랑 같이 저녁 먹으러 왔어. 저기 가족룸에.”
가족.
역시 그랬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은 쉽게 무너지면 안 되지.’
발밑이 무너지면 스스로 자멸할 타입인 큰아버지가 왜 저리 단단한 눈을 하고 있나 했더니.
솔직히 작게 감탄했다.
‘큰아버지도, 큰어머니도 의외로 강단이 있으신데?’
손바닥만 한 땅을 두고도 형제끼리 유산 다툼을 벌이는 일이 허다하다.
하물며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라는 태성그룹이 걸린 일이었다.
평생을 바랐던 일이고, 평생을 바쳤던 일이고, 평생을 싸웠던 일이었을 텐데.
이렇게 선뜻 결과에 승복하기가 어디 쉽던가?
‘언젠간 받아들이기 싫어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지만. 고작 30분도 안 돼서 저렇게 후련한 표정을 할 만한 일은 또 아니지.’
그 대단한 장남 자존심까지 버리면서.
왠지 그들이 선뜻 욕심을 버리고 현실을 택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자식들의 미래. 빈털터리로 쫓겨나면 두 자식들에게 좋은 혼처를 찾아주기도 어려울 테니까.’
문득 할아버지가 능력 없는 작은할아버지를 감싸주던 일이 떠올랐다.
자식들 좋은 데 시집 장가 보내주라고 태성건설 사장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하셨지.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처럼 지내고 싶다는 뜻이군.’
태성그룹의 차기 총수 자리는 오직 하나뿐이다.
단 한 명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게 되는 구조.
같이 동고동락하며 밑바닥에서 사업을 일으켰으나, 할아버지는 총수가 되었고 작은할아버지는 형을 도와 계열사 사장에 그쳤다.
‘끝까지 싸운다면 승패가 갈리기까지 쌓인 앙금은 독이 되어 돌아온다. 여기서 멈추기로 한 건 현명한 결정이지.’
형제가 양립할 수 없는 원수, 숙청해야 할 적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과거엔 태성도 그러했다.
태성그룹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5년에 걸친 형제 싸움의 결과는 어떻던가.
<결국 동생에게 총수 자리를 내어주게 된 차대준은 며칠 후 호숫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큰아들의 죽음을 접한 초대 총수인 차태성은 충격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고, 오랫동안 자리보전하다 숨을 거두었다.>
<태성그룹 2대 총수가 된 차기준은 형의 가족들을 내쫓고, 재산을 몰수하는 것으로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태성그룹 전쟁의 승자는 둘째 큰아버지였고, 그는 패자에게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가진 지분과 재산을 긁어모으기 위해서였다.
여차하면 누명을 씌워 옥살이시키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죽고 다치거나 파산한 사람이 여럿이었다.
‘음?’
내 상념을 깨운 것은 큰어머니였다.
아까부터 큰어머니가 팔꿈치로 큰아버지를 쿡쿡 찌르면서 온갖 눈치를 주더라고.
“잘 봐둬요. 알았어요?”
“알았어.”
큰아버지는 집중했고, 큰어머니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큰 각오와 대담한 포부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크흠, 흠! 저기 정혁아?”
“네.”
“오늘 날씨가 참 좋은 것 같지 않니?”
“······.”
쿠르릉! 번쩍!
종일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하늘엔 본격적으로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이러다 조만간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지 싶다.
“크흠, 흠! 어머, 정혁이 오늘 반팔 입었네?”
“초여름이니까요.”
“그, 그렇지. 아하하, 하하하. 그러고 보니까 정혁이 운동화가 참 예쁜걸?”
“······?”
다들 반사적으로 내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심 사장과 밀매왕은 물론 고재영과 유종태까지.
내 신발엔 애들 발자국이 덕지덕지 찍혀 있었다.
“무늬가······ 그러니까 무늬가 참······ 기하학적이네?”
“새 신발이라고 애들이 신고식 했거든요.”
“아, 그, 그랬구나. 아하하, 하하······하. 다음엔 우리 태성패션에서 만든 운동화로 선물해줘야겠는데?”
“이거 태성패션에서 만든 운동화인데요.”
“그, 그랬니? 아하하하하, 하······.”
“저도 태성그룹 사람이잖아요. 태성이 만든 물건을 애용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내가 이런 걸 만들었구나······. 내 눈썰미 어쩌면 좋니······.”
큰어머니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눈동자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보다 못한 큰아버지가 혀를 찼다.
“그렇게 장담하더니. 고작 이게 끝이야? 아무 말 대잔치?”
“크흠, 흠! 뭐 어때요? 분위기만 좋으면 됐지.”
“쯧쯧쯧, 명색이 태성패션 사장이라는 여자가 사회생활 참 자~알 한다. 이런 게 아부?”
“허? 지금 내 사회생활을 지적하는 거예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요?”
뭐지?
방금 전까지 진한 전우애와 말랑한 가족애를 풍기던 부부는 어디 갔냐.
“당신이 허구헌 날 술 접대한다며 집에 기어들어오지를 않으니까, 나라도 집구석에 붙어 있으면서 애들 케어하느라 이 모양인 것 아니에요?”
“결국 또 내 탓이냐? 그것도 조카 앞에서?”
“당신이 먼저 건드렸거든요?”
“아부한다며? 잘 보고 배우라며?”
“허? 뭐 당신만 태성그룹 장남인 줄 알아요? 나도 대한일보 장녀에 태성그룹 맏며느리다 이거에요!”
“그래, 참 대단히 귀하게 크셨다. 내가 참 대단히 귀하신 분을 모시고 산다!”
“그런 당신은 뭐 달라요?”
“그래도 나는 술자리에서 다져진 기본기란 게 있어!”
큰아버지가 위풍당당, 자신만만하게 지갑을 꺼내 들었다.
“잘 봐. 일단 지갑부터 꺼내 들고.”
어째서일까.
전형적인 호구 냄새가 솔솔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알지? 정혁아, 이번에도 맞추는 만큼이다?”
큰아버지는 만 원짜리 지폐를 잡히는 대로 꺼내 흔들었다.
“이걸로 짜장면을 몇 그릇이나······.”
“300원짜리 짜장면 보통 기준 2,227그릇에 잔돈 200원이요.”
“······!”
큰어머니가 입을 떡 벌렸다.
그건 심 사장이나 밀매왕, 고재영과 유종태도 마찬가지였다.
“예?”
“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놀라요? 척 보면 딱 견적 나오잖아요. 68만 3천 원.”
“······!”
이 정도 푼돈은 눈대중으로 때려 맞출 수 있어야지.
내가 왕년에 일수 찍으면서 수금하러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세어 보세요. 정산해야죠.”
“자, 당신이 한번 세어 봐. 보나 마나 딱 맞을 거야.”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
큰어머니는 엄지에 침을 묻히면서 홀린 듯이 지폐를 셌다.
“······왜 진짜로 68만 3천 원인 거죠?”
“하하하, 그것 보라고. 신기하지?”
“다시······.”
“성준이도 세 번이나 세더라고. 그래 봤자 부질없어.”
“좀 닥쳐봐요! 아, 또 헷갈렸어. 하나, 둘, 셋, 넷······.”
큰아버지는 입꼬리를 귀까지 끌어 올리며 웃었다.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68만 3천 원? 이게 말이 돼요?”
“거 보라니까. 확실하다니까.”
큰아버지가 큰어머니 손에서 낚아챈 지폐를 내 손에 통째로 쥐여 주었다.
꽁돈, 아니, 용돈이었다.
“기똥차다! 역시 내 조카! 나 어릴 때랑 똑같네.”
“감사합니다.”
“이걸로 친구들이랑 까까 사먹어라.”
“네.”
“가끔씩 짜장면 한 그릇씩 돌리고. 용돈 모자라면 어디로 오라고?”
“태성자동차 사장실이요.”
“우리 정혁인 기억력도 좋네. 진짜 나 어릴 때랑 판박이라니까?”
나는 먼저 건네는 호의를 마다하지 않는 사내라서.
지폐를 반으로 뚝 접어 동전 지갑에 밀어넣었다.
지갑은 순식간에 빵빵해졌다.
‘벌써 두 번째 받는 호의로군.’
한우정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지금이 두 번째.
재벌2세라는 큰아버지에게는 별거 아닌 하룻밤 술값밖에 안 되는 돈일 테지만.
우연히 만난 조카에게 선뜻 건넨 시점에서, 내겐 대가 없이 건넨 호의였다.
“정혁아, 저녁 안 먹었으면 우리랑 같이 저녁 먹을래? 큰아빠가 사주마.”
큰아버지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큰어머니는 “하여간에 속도 없는 양반이라니까.” 하며 혀를 찼지만.
이런 구김살 없는 웃음은 아무나 쉽게 짓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호의를 받았는데, 맨입으로 돌려보낼 순 없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호의는 호의로, 악의는 악의로.
나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사내인지라.
“가족끼리 오붓하게 저녁 식사하기 전에, 근심 걱정부터 깔끔하게 해결하시는 게 어때요?”
“······응?”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분이면 되거든요.”
큰아버지 부부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무슨 소리를 들었나,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휘하 계열사 임원들과 껄끄럽게 부딪치게 되잖아요.”
임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비열하고 치열한 사내 정치의 승자들이기도 했다.
‘뒤늦게 아버지 배에 승선한 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공을 세워 눈도장과 출세 기회를 얻고 싶을 테지. 과잉 충성의 칼날이 누구를 향하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고.’
떨어진 끈은 짓밟히기 마련이고, 높은 곳에서 추락한 사람에겐 더욱 모질어지는 게 세상의 이치다.
큰아버지 부부의 수난은 이미 예고된 상황.
나는 씩 웃으며 손가락을 꼽았다.
“큰아버지는 계열사를 챙기고, 우리 아버지는 확실한 세력구도를 구축하고, 형제끼리 싸울 일 없이, 할아버지께 효도하면서, 휘하 임원들과도 신경전 벌일 일 없게.”
아니, 벌써 한 손가락 다 꼽았어?
그래서 이번엔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태성그룹의 분란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자식들의 미래까지 담보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때요? 한번 들어보실래요?”
< 3분으로 갚는 호의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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