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49)
재벌집 만렙 아들-249화(249/416)
< 괜한 걱정을 했군 >
태성에너지 윤 사장이 꺼낸 말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러니까 기업사냥 할 대상이······ 유공?”
“지금의 태성으로선 그만한 사이즈를 소화시키기 버겁습니다!”
대한석유공사.
1962년 정부가 미국 걸프사와 합작해 세운 정유회사다.
1964년엔 석유배급업체인 대한석유저장회산의 자산과 시설을 흡수했고,
1971년엔 석유판매업체인 황국상사를 인수했으며,
1974년엔 산업은행 주식마저 거둬들여 대한석유지주를 세웠다.
“정유산업은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 산업입니다. 더구나 정부와 미국 걸프사가 50%나 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공사란 말이죠.”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다들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한마디씩 보탰다.
“부회장님, 정유회사는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만큼 언제나 넉넉하게 돈을 뽑아낼 수 있는 캐시 카우이기도 합니다.”
“정치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곳이란 소리이니, 정부가 쉽게 포기할 리 없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지난 석유파동 때에도 대한석유공사는 끄떡없었잖습니까.”
“설사 다시 석유파동이 터진다고 해도 시장에 매물로 나올 리 없을 겁니다.”
하지만 차성준은 씩 웃었다.
“그에 관해서라면 미리 약속을 받아두었습니다.”
차성준은 대통령의 친서를 꺼냈다.
“각하께서는 미국 걸프사의 지분 50%를 인수할 자금을 준비해온다면 태성에게 정부가 보유한 유공의 지분 50%를 양도하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예?”
태성그룹 임원들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정부가 보유한 지분 50%를 거저 준다고요?”
“다른 것도 아니고 유공이나 되는 거대 공기업을요?”
“아니, 이게 말이 되는······!”
혼란스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회장실에서 대통령의 친서를 잠시 접했던 계열사 사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얼핏 봤을 때 대통령 각하의 친서에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유공이란 문구를 보긴 봤습니다.”
“한꺼번에 모여들어 보느라 제대로 읽지 못한 고로 확신할 정도까진 못 되지만······.”
당시 중요 논점은 유공이 아니라 ‘태성의 차기 총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다들 대통령의 서명 날인에만 집중하고 넘어갔었다.
회장과 부회장 앞에서 부하직원이 제출한 회의 안건 검수하듯 꼼꼼하게 읽긴 어려웠다.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부회장님, 제가 한번 자세히 읽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허?”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정말로 ‘유공 양도’에 관한 약속이 들어 있었군요!”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대통령 친서를 든 손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잠깐, 이건······!”
태성에너지 윤 사장이 충격받은 대목은 따로 있었다.
‘은행에 영향력 행사, 원금 회수, 세무 조사, 압수 수색, 중정 동원까지?’
윤 사장이 경악한 눈으로 부회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차성준은 조용히 검지를 입에 대었다.
함부로 발설하여 혼란을 가중시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맙소사!’
차성준이 손을 내밀자,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깍듯한 자세로 대통령 친서를 돌려주었다.
그 모습을 본 태성그룹 임원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이거 놀랄 노 자로군. 태성에너지 윤 사장님까지 저렇듯 공손하게 굴다니.’
‘윤 사장님이라면 회장님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설가로 유명하신데.’
‘부회장님 눈짓 한 번에 바로 말을 삼킬 줄이야.’
태성그룹 임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눈짓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고 있었다.
태성호텔 황 사장도 뜻밖이란 얼굴로 윤 사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태성에너지 전략 계획서>를 빠르게 넘기며 다시 읽어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허······!”
태성에너지의 에너지 산업 구조 변화에 관한 대목엔 정확히 정유와 천연가스를 짚어내고 있었다.
‘뜬금없이 정유산업이 왜 튀어나왔나 했더니. 다 믿을 구석이 있어서였군.’
부회장이 다시 보였다.
‘이렇게까지 대통령 각하를 확실하게 구워삶았을 줄이야.’
그 양반을 어떻게 흔들었을까?
절대로 내놓지 않던 유공은 물론, 제철소 사업권까지 내어줄 정도라니.
거기에 3천억짜리 국책공사를 선뜻 내어줬고, 권력의 칼이라 할 수 있는 공권력 행사까지 허락했을 줄은 몰랐다.
‘더 볼 것도 없겠어. 괜한 걱정을 했군.’
그 깐깐한 양반을 상대로 호구 잡듯 뜯어냈으면 말 다 했지.
탁.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읽고 있던 전략 계획서를 덮었다.
차성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감탄이 어려 있었다.
“부회장님이야말로 우리 태성에 꼭 필요한 인재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극찬이었다.
윤 사장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태성은 사업은 기가 막히게 잘하고, 기술력도 대단한데, 정치질에서만큼은 영 젬병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지요.”
윤 사장은 씩 웃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치질 젬병이란 소리를 듣는 일 따윈 없을 것 같습니다. 태성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차성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윤성일, 충심으로 부회장님을 받들겠습니다.”
태성전자 민 사장과 태성호텔 황 사장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심 사장과 태성화학 강 사장, 태성그룹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윤 사장님이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충성 맹세를?’
‘대준 도련님께도, 기준 도련님께도 취해본 적 없던 정중한 태도로!’
태성그룹 임원들은 경악했다.
차성준도 윤 사장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윤 사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차성준은 빙그레 웃었다.
태성에너지 윤 사장도 활짝 웃었다.
심 사장은 헤벌쭉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정혁 도련님이 이 장면을 봤어야 했는데!’
심 사장은 자꾸만 입이 근질거렸다.
‘저 대통령 친서부터 지금 이 전략 계획서까지. 전부 우리 정혁 도련님이 깔아놓은 판인데, 이걸 어디 가서 자랑할 데가 없네?’
우리 정혁 도련님이야말로 태성의 미래, 태성의 기둥, 태성의 대계이자, 태성의 영광, 그 자체이신데 말이지.
그때였다.
드르륵. 탁!
장지문을 호쾌하게 열어젖히는 사람이 있었다.
“회장님!”
“정혁 도련님?”
태성그룹 임원들은 눈을 크게 떴다.
차 회장이 정혁이를 대동한 채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벌떡!
“아버지,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차성준이 즉시 일어나 상석의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차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됐어! 난 여기서 임원회의 개최할 생각 없다.”
차 회장은 좌우로 도열해 앉아 있는 태성그룹 임원들을 스윽 내려다봤다.
태성그룹 임원들은 깍듯하게 인사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차 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괜한 걱정을 한 듯싶군.”
막내아들이 청원각에서 연판장을 작성한다고 선언했을 때, 차 회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후 김 비서의 보고가 추가로 들어왔다.
-두 분 도련님도 비슷한 시각에 청원각에서 임원들을 소집하셨다고 합니다.
혹시나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형제들끼리 멱살잡이하여 흉한 꼴을 보이지는 않았을까, 임원들이 단체로 반발하지는 않았을까.
치미는 걱정과 한탄을 애써 억눌렀다.
이왕 작심한 일, 임원들 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못 박자는 생각으로, 차 회장은 정혁이를 앞세워 이 자리에 섰다.
“여기는 우리 정혁이. 성준이 아들이야. 다들 알지?”
“예!”
“안녕하세요? 차정혁이에요.”
정혁이는 두 손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새 부쩍 자라셨습니다.”
태성그룹 임원들도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의아함은 감추지 못했다.
이 자리에 어린 손자를 대동하고 나타난 차 회장의 의도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우리 정혁이도 태성그룹 임원회의 및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다. 그런 줄 알아.”
“예?”
다른 손자들에겐 해당 사항 없던 이야기였다.
태성그룹 임원들의 눈이 정혁이에게 쏠렸다.
그건 심 사장과 차성준도 마찬가지였다.
“본사에 정혁이가 쓸 책상을 넣어줄 생각이니, 오다가다 만나도 왜 왔냐고 묻지 말고.”
“책상을? 따로 사무실을 배정하겠다는 뜻입니까?”
“안 될 것 없잖나?”
파격적인 행보였다.
차 회장은 정혁이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린 채 말을 이었다.
“물론 앞으로 주주총회에도 참석시킬 예정이고.”
“주주총회에까지?”
“정혁이도 주주야.”
주주총회는 주식회사 최고의 의결기관이다.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들은 가진 주식 수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회사 조직과 경영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다.
태성그룹 주식을 단 1주라도 보유했다면 그 또한 주주라 할 수 있었다.
“조만간 임시주총을 열 생각이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차 회장이 이곳까지 찾아와 태성그룹 전(全) 계열사 임원들 앞에서 선언할 정도로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태성그룹 임원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사안은 태성식품과 태성유통 사장직 경질에 관하여.”
태성식품과 태성유통 사장은 차남 차기준이었다.
“또한 태성그룹 개편에 관하여.”
이미 부회장이 선언한 바 있는 내용이었다.
그걸 주총에서 공식적으로 의결할 예정이란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자동차와 중장비의 흡수 합병까지.”
태성자동차와 중장비는 장남 차대준이 이끌고 있었다.
“그런 줄 알고, 밥 잘 먹고, 열심히 생각해서, 똑바로 결정하시게.”
“예!”
이미 마음을 정한 후라 대답은 우렁차기 이를 데 없었다.
차 회장은 막내아들과 한 상을 쓰고 있는 최측근들을 힐끔 바라봤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태성의 개국공신들이자 믿음직한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표정만 봐도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할 만했다.
“민홍균, 황태정, 윤성일, 강준구, 심원철.”
“예!”
“자네들은 나랑 같이 밥 먹는 게 어때? 듣자 하니 성준이의 최측근을 자처했다며?”
“예!”
그러니 이 녀석들에게는 확실하게 공표해야겠지.
우리 정혁이에 관하여.
“성준이, 너도 따라오고.”
“예, 알겠습니다.”
차 회장은 몸을 돌렸다.
“정혁아, 가자!”
“네, 할아버지.”
정혁이가 임원들을 향해 두 손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앞으로 우리 아빠, 잘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드르륵. 탁!
폭풍처럼 왔다 간 조손.
방 전체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다들 수군대며 폭탄선언에 관해 말을 나누기 바빴다.
차성준은 옷매무새를 고치며 태성그룹 임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죠.”
벌떡. 벌떡. 벌떡. 벌떡. 벌떡.
그 뒤를 태성전자 민 사장, 태성호텔 황 사장, 태성에너지 윤 사장, 태성화학 강 사장, 그리고 JH투자의 심 사장이 따랐다.
드르륵. 탁!
부회장과 최측근들이 썰물처럼 빠지자, 남겨진 태성그룹 임원들은 웅성거렸다.
“차 회장님께서 작심하셨나 보군요.”
“임시주총까지 열다니요. 이대로 굳히기를 들어가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장남과 차남의 계열사를 콕 짚어 언급하셨으니, 말 다 한 거지요.”
“대준 도련님은 합병에 관해서였지만, 기준 도련님의 경우에는······.”
경질.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는 단어였다.
그 뜻은 분명했다.
‘이미 회장님과 상의가 끝난 이야기였구나.’
‘숙청과 세력 정리를 단번에 밀어붙이다니. 추진력 하나는 알아줘야겠군.’
청원각은 정재계 고위 인사들이 주로 애용하는 요정이었던 관계로, 음식 솜씨가 특히 출중했다.
하지만 태성그룹 임원들 중 누구도 젓가락을 들어 음식 맛을 음미하는 자가 없었다.
“전 이만 가봐야 할 듯싶습니다.”
“같이 가십시다. 우리 계열사 상자엔 어떤 전략 계획서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태성그룹 임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태성자동차 부사장이 한 상을 두고 마주 앉은 태성유통 부사장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8시까지 기준 도련님께 가보려면 서둘러야겠군요?”
“됐습니다!”
“본진으로 되돌아갈 마지막 기회 아닙니까?”
“차라리 똥통에 빠져 뒈지라고 악담을 하시지요.”
태성유통 부사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태성그룹 임원들은 허겁지겁 구두를 찾아 신고 청원각 마당을 가로질렀다.
주차장을 향해서였다.
-청원각 주차장으로 가면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은테 두른 연판장을 작성한 탓에 받는 차별과 편애였다.
계열사별로 작성된 전략 계획서를 받으려면 주차장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후유, 하마터면 나까지 경질될 뻔했네.’
‘그나마 대준 도련님은 숙이고 들어와서 우리까지 휘말리는 일은 면했지만.’
‘기준 도련님 쪽 라인을 잡았던 위인들은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빴다.
* * *
“허?”
차기준은 상석에 앉아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현재 시각 8시 16분.
“형님이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차기준의 방에 들어온 건 태성그룹 임원들이 아니었다.
장남 차대준이었다.
< 괜한 걱정을 했군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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