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50)
재벌집 만렙 아들-250화(250/416)
< 따로 부른 이유 >
장남 차대준은 대뜸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런 형을 바라보는 차기준의 눈초리는 가늘었다.
“여기까지 물 얻어 마시려고 오신 건 아닐 테고.”
“밥 얻어먹으러 온 것도 아니야.”
식사는 아까 가족끼리 끝냈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애들이랑 밖에서 얼굴 마주 보며 외식한 게 얼마 만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처자식이 오늘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재잘대기에 귀를 기울이며 먹다보니.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더라고.
그게 사람 사는 맛이었는데.
난 왜 이제야 그걸 깨달았나 몰라. 병신이 따로 없지.
“난 7시, 넌 8시.”
각자 휘하 계열사 임원들을 소집한 시각이었다.
야심 차게 태성그룹의 차기 총수 자리를 꿈꾸면서.
“그 결과, 지금 눈으로 확인했잖아.”
“허?”
“너도 성준이가 소집한 방에 들어가 봤잖아. 빈 방석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하더라.”
차대준은 힐끔 방을 둘러보았다.
장지문까지 활짝 열어젖힌 방, 늘어선 6인용 상이 줄줄이인데 빈 방석만 가득했다.
“난 그래도 열다섯 명이 왔었는데, 넌 어째 한 명도 안 왔냐?”
차대준은 혀를 찼다.
“하다못해 제수씨까지 안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넌 나보다 심하잖아?
태성그룹 총수 아들이란 점만 빼고 보면 너나 나나 진짜 별것 없구나.
“염장 지르러 오셨습니까?”
“충고하러 왔다.”
“충고?”
“왜? 능력 없는 형은 충고도 못 하냐?”
“능력 없는 건 문제가 안 되죠. 자존심도, 배알도 없는 게 문제지.”
차기준은 삐딱하게 웃었다.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었구나 싶으세요? 왜요? 아예 임원들 앞에서 막냇동생에게 무릎 꿇고 충성충성 외치시지?”
“이 새끼가 진짜! 넌 왜 말을 그렇게 삐딱하게 꼬아서 듣냐?”
탁.
차대준은 물잔을 내려놓았다.
“막말로, 내가 성준이한테 무릎을 꿇건 말건 네가 무슨 상관인데?”
차대준의 목소리도 덩달아 뾰족해졌다.
“난 너한테 잘못한 거 없다! 훼방을 놨냐, 임원들 못 모으게 방해를 했냐, 이간질을 했냐, 뒤에서 개수작이라도 부렸냐?”
“차라리 방해를 하고, 훼방을 놓고, 이간질을 하고, 개수작이라도 부렸어야죠!”
차기준의 목소리도 뾰족했다.
“상을 뒤집어엎어도 모자란 상황에 병신처럼 거기 가서 허허허허! 내가 다 쪽팔렸습니다!”
“야, 차기준!”
“왜요? 앞으로는 아버지 대신 성준이한테 빌붙어 기생하기로 작정하셨나 봅니다?”
“뭐? 기생?”
차대준이 상을 부여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상을 뒤집어엎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동생의 넥타이가 신경질적으로 구겨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차대준은 상을 움켜쥐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대신 제 목에 걸려 있는 넥타이를 툭툭 쳤다.
그의 넥타이는 아까 식사 끝나고 마누라가 고쳐 매준 덕분에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됐다. 지금 네 속이 속이겠냐.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건 내 잘못이 맞다.”
“허?”
“나라고 이런 꼴 안 당해본 거 아니야.”
딱 한 시간 전에.
열다섯밖에 안 모인 임원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었다.
“나도 눈 뒤집히고 열 뻗쳤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의 너처럼.”
차대준은 다시 한번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탁.
“너도 냉수나 한잔 마시고 정신 차려.”
“그래서, 그게 충고라 이거죠?”
벌컥벌컥!
차기준도 탁 소리가 나도록 물잔을 내려놓았다.
“볼일 다 보셨으면 그만 나가주셨으면 좋겠군요.”
“기준아.”
“사람 복장을 뒤집어 놓으려고 찾아오셨다면 성공하셨습니다.”
차기준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형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형님이 제가 아닌 성준이 편을 드실 줄은 몰랐거든요.”
“형제끼리 네 편이 어디 있고, 내 편이 어딨냐?”
“성준이 지분이 고작 2%예요. 우리 셋, 동복 형제자매끼리 힘을 합치고, 은행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다면 승산 있는 싸움이었어요.”
성준이를 제외한 동복남매의 지분을 합하면 8%.
거기에 은행이 소유한 지분은 18%.
반면 아버지는 16%와 성준이는 2%를 가지고 있다.
“지분싸움? 끝까지 지저분하게 물고 늘어지겠다, 이 말이냐?”
“제대로 된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차기준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언제 저한테 유리하게 돌아가는 싸움판이란 게 있었습니까?”
형님과 달리 전 늘 불리한 싸움에 임해야 했습니다.
원망과 분노, 오기와 투지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고요.
“아버지는 늘 형님만 싸고돌았죠. 장남이라고, 형님 어린 시절에 대한 부채감으로. 그 어디에 제 몫, 제 자리가 있었습니까?”
차남의 서러움이었다.
“장남이기에 지금 누리고 있는 그 자리, 형님은 쉽게 얻으셔서 쉽게 내놓으셨나 본데, 저는 아닙니다.”
“기준아,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차대준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발악해봤자 변하는 건 없어.”
“발악조차 하지 않고 항복한 형님다우신 충고로군요.”
“어리석은 싸움이다. 임원들이 하는 거 보면 모르냐? 이미 항구 떠난 배야.”
“회사의 주인은 임원들이 아니라 대주주입니다.”
차기준은 웃었다.
“그거 아십니까? 성준이의 외가가 언제까지 성준이의 편에 설 것 같습니까? 얼마 안 남았습니다.”
“뭐?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차대준은 그런 동생을 한심하다는 듯이 보았다.
“그쪽 집안이 어떤지 몰라서 그래? 팔은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함부로 건드리려 들다가는 뼈도 못 추릴 거다.”
“성준이 뒤를 봐주던 외삼촌이라는 작자, 중병이 들어서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면서요?”
차기준이 오기와 독기를 불태우며 전쟁을 각오하게 된 이유였다.
“성준이 그놈이 후계자 자리를 마다하는 바람에 다섯 명의 최측근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실 텐데?”
그쪽 집안은 여자에겐, 특히 출가외인에겐 단 한 푼도 내어주지 않는 집안이랬다.
오직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수장의 자리.
그러나 그쪽 집안 남자들은 한국전쟁 때 몰살하고 말았다.
성준이의 외삼촌이라는 그 남자만 죽으면 그 집안은 대가 끊긴다.
그 말인즉, 그 집안의 수족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쪽 집안에서 들고 있는 태성전자 지분이 최소 11%입니다. 그 지분이 제 손을 들어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오늘내일하는 양반 대신 그 밑에서 일을 맡아 처리하는 하수인들이 위임된 지분권을 행사하지 않겠습니까?”
“정씨 일가의 하수인이라면······ 명동 송골매? 종로 금이빨? 까치산 방 여사?”
“말죽거리 말대가리, 그놈이 요즘 이자 때문에 허리가 휜다기에. 제가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차기준이 믿는 구석이었다.
‘아버지가 내어준 3%는 성준이의 외가로 흘러갔을 겁니다. 성준이로 그 집안 후계를 잇겠다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그러니 그쪽이 들고 있는 태성전자 지분은 아마 14% 혹은 그 이상.
“이래도 제가 어리석은 싸움을 시작한다고 타박하실 겁니까?”
“기준이 너······.”
차대준은 아연실색해서 신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그러다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
“병마에 시달리며 오늘내일하는 그 남자가요? 반송장이 뭐 그리 무섭다고요?”
“기준아!”
“전 두려울 거 없습니다. 어차피 이 싸움, 승자 독식이에요.”
패자에게 허락된 게 뭐 있겠어요?
이대로 빈털터리로 쫓겨나나, 수작질 걸려서 죽나, 별반 다를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차기준은 차갑게 말했다.
“충고 다 끝나셨다면 그만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형님.”
차기준이 가리키고 있는 건 장지문이었다.
명백한 축객령.
“나가라면 나가야지. 하지만 내 충고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차대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분싸움? 회사의 주인은 임원이 아니고 주주라고? 하지만 기준아, 회사 혼자 굴리는 거 아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을 내려다보는 차대준.
그의 눈에 안타까움이 언뜻 스쳤다.
“너와 내가 아닌 성준이가, 왜 임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는지, 넌 그 이유부터 확실하게 알아야 해.”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친서, 알고 있었냐?”
“······예?”
“몰랐구만!”
쥐뿔도 모르는 놈이 잘난 척하기는!
태성그룹 총수 아들이란 명함만 떼면 너나 나나 진짜 별거 없다니까.
차대준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한테 정보를 물어다주던 놈들까지 죄다 저쪽에 붙어서······. 순식간에 까막눈, 까막귀가 되어버렸구나.’
나도 그랬었다.
금테 두른 연판장을 쓰고 나니까 그 자식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그제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더라.
“대통령이 성준이를 차기 총수로 점찍어서 팍팍 밀어준다더라. 감당할 수 있겠냐?”
“대통령도 눈치를 보는 곳이 있잖습니까.”
정치력은 영 젬병이라는 태성이 버틸 수 있던 또 하나의 이유.
차기준은 씩 웃었다.
“성준이의 외가가 제 편을 들어준다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난 이제 모르겠다! 넌 그 똑똑한 머리로 알아서 처신 잘하겠지.”
차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장지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가 아까 선언하셨다더라. 조만간 임시주총을 열 것이라고. 사안은 태성식품과 태성유통 사장직 경질에 관하여.”
“······!”
차기준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미는 배신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성준이를 밀어주기로 작정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시다니.’
섭섭함이 몰려왔다.
‘자를 때 자르더라도 나한테도 먼저 언질해주셨어야죠, 아버지!’
미움과 원망이 샘솟았다.
‘형님이라고 해도 그러셨을까요? 아니었겠죠. 어떻게든 형님을 설득해서 충성 맹세를 하도록 종용하신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형님이 저 장남 자존심에 스스로 찾아갔을 리 없잖습니까.
아버지의 차남 차별이라면 질릴 만큼 겪어봤다고 자부하는데도.
차기준은 가슴에 새겨진 원망과 섭섭함에 부르르 떨었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차대준은 그런 동생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내가 하려던 충고는 이것뿐이었다. 기준아, 우린 같은 아버지를 두고,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먹고 자란 형제이자 식구다.”
한숨은 덤이었다.
“동복형제만 형제 아니고, 이복형제도 형제야.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드르륵.
차대준은 장지문을 열었다.
“태성은 한 가족, 따로 또 같이! 아버지 형제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형제끼리 똘똘 뭉쳐 태성을 지금보다 더 크게 키워보자고 설득할 작정이었는데.”
탁!
차대준은 장지문을 닫았다.
“형제끼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난 진짜 모르겠다, 기준아.”
저벅, 저벅, 저벅.
복도를 가로지르는 형의 발소리가 무거웠다.
차기준의 마음도 무겁기는 매한가지였다.
* * *
할아버지가 날 데려온 곳은 청원각 후원의 별채 중 하나였다.
‘청원각에 이런 곳도 있었어?’
처음 보는 순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황궁에 온 줄 알았다.
무슨 놈의 후원에 연못을 파고, 다리를 놓고, 전각을 짓고, 연꽃과 비단잉어를 기르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곳이 청원각에서 가장 내밀한 VVIP 접객실이군.’
청원각은 요정 정치가 막을 내리면서 함께 몰락했다.
아름다웠던 이 자리는 헐리고, 밀리고, 메워져서, 거대한 쇼핑몰이 들어서게 되니까.
“정혁아, 네 아빠와 최측근들을 불러놓고 너와 관련된 은밀한 사항을 조금 털어놓을까 한다.”
“태성전자 지분 승계에 관해서요?”
그게 아니라면 할아버지가 여기까지 오는 내내 이리 복잡한 표정을 지을 리 없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제가 경영 일선에 나서는 걸 극구 반대하던 분이 일부러 절 과시하듯 데려가서 임원회의 참석을 선포하고, 최측근들만 따로 불러모으셨으니까요.”
그렇게 추측하게 된 근거라면 또 있다.
“심 사장님은 이제 태성그룹 소속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심 사장님까지 불러모은 걸 보면 그룹 차원에서 알려야 할 중대 사안이 있다는 소리고요.”
“똘똘한 녀석 같으니라고.”
할아버지가 몹시 흐뭇해하며 활짝 웃었다.
“왜 이 시점에서 그 녀석들을 부르는지는···, 혹시 짐작하려나?”
“태성그룹 개편과 맞물려, 아빠에게 충성을 맹세한 연판장을 쓴 김에, 차기 총수에 관한 비밀까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했을 테니까요.”
“아이고, 금쪽같은 내 새끼! 누구 닮아서 이리 야무지고 똑 부러지나 몰라!”
할아버지는 날 덥썩 안아 들고 뱅글뱅글 돌았다.
할아버지의 팔에 안겨 몸이 붕 뜨고,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표정에 마음까지 덩달아 붕 떴다.
“헤헤헤.”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어린애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어린애 몸뚱이란!
“귀한 내 새끼, 할애비가 아주 꽁꽁 숨길 게다. 우리 정혁이 머리카락 하나조차 못 찾게!”
“누굴 철부지 어린애로 아세요? 전 숨바꼭질 따윈 취급 안 하거든요?”
이런 곳에서 숨바꼭질하다간 실종 신고하기 딱 좋다고요?
무겁게 가라앉은 할아버지의 눈과 마주한 순간, 나는 문득 깨닫고 말았다.
“설마 제가 경영 일선에 나서는 걸 극구 반대하던 진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거예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느냐?”
어쩐지 숨바꼭질 운운하더라니.
“그래서 저도 함께 부르셨군요?”
“그래, 태성을 물려받을 사람은 바로 정혁이 너다.”
할아버지가 뱅글뱅글 돌던 것을 우뚝 멈췄다.
“네 친할머니 쪽 집안과 관련된 일이나, 태성의 미래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 따로 부른 이유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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