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56)
재벌집 만렙 아들-256화(256/416)
< 예린이의 데이트 신청 >
‘대치동 천마아파트 한 채에 요즘 얼마나 하더라?’
즐거운 계획을 구상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배고프지는 않고?”
다들 내가 만든 태성의 전략 계획에 관해 논하느라 심각한 분위기였다.
할아버지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고 있었고.
최측근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며 메모까지 하고 있는 상황.
“지금 저한테 신경 쓰실 때가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태성의 부회장이 되었다.
태성그룹을 총괄하는 입장이니, 바쁘게 회의에 임해야 할 때였다.
“전 이만 가볼게요.”
“정혁아.”
“사탕 싫어하시죠? 이건 입에 좀 맞으실 거예요.”
나는 아버지 입에 약과를 물려주었다.
“빈속에 술 많이 마시지 마시고요. 논할 게 많아도 밤새면서 과로하지 마시고요.”
아버지는 약과를 한 입 베어물더니, 이내 빙그레 웃었다.
“그래, 명심하마. 이 집 약과 맛있네.”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 상에 올린 약과를 한 움큼 집었다.
내 손에 들려주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이거라도 먹어야지. 주방에 일러서 약과 한 상자 포장해줄까?”
“됐어요. 이거면 충분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던 할아버지와 사장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두 손 모아 꾸벅 배꼽 인사했다.
“전 이만 가볼까 해요.”
“도련님, 전략 계획서에 관해 물어볼 게 아주 많은······.”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법이에요. 잠잘 시간인데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섯 명의 계열사 사장들은 더는 날 잡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날 꽉 끌어안고 내 뺨에 뺨을 부비며 웃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밥 한 끼 못 먹여 보내게 생겼누.”
“다음에 더 맛있는 거 사주세요. 이왕이면 우리 엄마까지 챙겨주시면 더 좋고요.”
“그래, 그래야겠다. 다음에 할애비가 한우정에서 소고기 사주마. 네 엄마가 그거 아주 잘 먹더라.”
“소고기는 한우정이죠.”
나는 방긋 웃었다.
“그럼 다음에 뵈어요.”
드르륵. 탁.
밀매왕을 찾아 청원각 별채를 찾았는데.
장지문을 열기 직전, 고재영의 눈물 어린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할아버지, 미국에 안 가면 안 돼요?”
차마 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늘은 절대로 안 놔줄 거예요. 나랑 밤새 같이 있기, 약속해요.”
“그래, 오늘은 진짜로 내 똥강아지랑 밤새 논다, 약속!”
나는 동전 지갑에서 빈 종이를 꺼내 몽블랑 만년필로 휘갈겨 썼다.
후식을 내가는 종업원에게 내밀었다.
“저 방에 전해주세요.”
두 조손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 수야 없지.
나는 도로 운동화를 고쳐 신었다.
이로써 오늘의 할 일 모두 끝!
* * *
뒷좌석에 앉아서 차창 너머로 서울의 밤거리를 구경했다.
21세기처럼 크고 화려한 유흥가는 아니지만, 거리엔 네온사인이 반짝거리고 취객이 붐볐다.
“도련님,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드디어 태성의 전략 계획서 작성 업무에서 해방이로군요.”
운전하던 유종태가 능글맞게 웃었다.
“며칠간 뭐 하면서 푹 쉬실지 생각해놓으신 건 있으세요?”
없다.
“뚝섬의 경마장이라도 다녀올까요? 짜릿하게 마권으로 크게 한탕?”
됐다.
뚝섬 서울경마장에 환장하는 건 내가 아니라 말죽거리 말대가리고.
“놀이공원은 어떠세요? 용인 자연농원이 요즘 그렇게 인기라잖아요.”
용인 자연농원이라면 1976년 4월에 개장했다.
입장료는 600원.
식물원, 동물원, 사파리로 구성되었고, 어트랙션도 몇 개 구비되어 있어서 인기가 많았다.
“됐어요.”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로 바글댈 테고, 연인들이 모여서 꽁냥댈 테고.
내가 진짜 어린애도 아니고, 한가하게 그런 데나 기웃거릴 군번은 아니지.
‘그러고 보니 자연농원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던 때도 있었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날 맡아주겠단 일가친척도 하나 없어서 난 일곱 살에 길바닥에서 버려졌었다.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안 되던 내 앵벌이 시절.
나는 학교 앞 도로에 앉아서 껌을 팔면서 또래 친구들이 깔깔대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주말에 부모 손을 잡고 자연농원에 다녀왔다면 애들 모두가 우와, 하면서 그렇게 부러워하는 것이다.
책가방에서 자연농원에서 산 기념품이라도 꺼낼라치면 애들이 모여들어 신나게 구경하는 게 어찌나 부럽던지.
‘자연농원에서 좌판을 펴고 껌만 팔아도 떼돈 벌 수 있겠다 야망에 불타올랐었는데. 거긴 텃세가 너무 심해서 매번 실컷 두드려 맞고 쫓겨났었지.’
애들이 말하던 놀이기구가 뭔지, 동물원이 뭔지, 난 그런 건 하나도 몰랐다.
훗날 강우의 손을 잡고 처음 놀이공원에 갔을 때,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이런 걸 돈 주고 탄다고?
범퍼카?
돈 주고 교통사고 당하는 게 무슨 재미인데?
게다가 뒷목 잡고 일단 드러누워서 경찰 불러! 소리조차 안 해?
다람쥐 통돌이?
그냥 동네 놀이터에서 회전판을 돌려주면 세상이 뱅글뱅글 돌지 않나?
청룡열차?
탄광에 가면 레일 달고 굴러가는 저런 탄광차가 쌔고 쌨다!
이왕 위험한 거 탈 거면 돈 받고 타야지!
-여긴 주전부리부터 놀이기구까지 하나같이 바가지로구만!
바가지인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지갑을 열어 솜사탕을 사서 강우의 손에 들려주었고, 범퍼카와 청룡열차에 태워주었다.
-놀이기구 타는 시간은 코딱지인데, 기다리는 시간은 한나절이야.
돈 버려, 시간 버려, 길바닥에서 고생만 해.
남는 게 하나 없구만!
-그래도 그렇게 웃으니까 보기는 좋네.
활짝 웃는 강우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깟 고생쯤은 감수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인파가 붐비는 틈을 타 강우가 괴한에게 납치되자,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고 말았다.
난 놀이공원에 관한 좋은 기억 따윈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아, 가고 싶은 곳이 생겼어요.”
곱게 싼 손수건에선 달콤한 약과 냄새가 솔솔 풍겼다.
* * *
삼청동 한옥집은 언제나처럼 크고 으리으리했다.
나는 커다란 기와집 나무 대문을 올려다보았다.
유종태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대문을 두드리지 않고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계십니까? 도련님답지 않게.”
“막상 도착하고 보니까 너무 늦은 시간이더라고요.”
현재 시각 오후 10시 24분.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죠.”
예린이는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겠지.
“나 좋자고 자는 애를 깨울 순 없잖아요.”
나는 둥근 달을 올려다보았다.
“미리 약속하고 찾아온 것도 아니라서요. 그냥 이렇게 달구경이나 하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
“오빠아아!”
벌컥!
나무 대문이 열렸다.
빼꼼하게 내미는 작은 머리통이 반가웠다.
“예린아?”
“헤헤헤헤.”
예린이가 활짝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렸다.
나도 엉겁결에 두 팔을 벌렸더니, 와다다 달려와서 내 품에 쏙 들어와 안겼다.
작고 가녀린 몸이었다.
베이비 오일과 파우더 냄새가 섞여서 포근한 애기 냄새가 올라왔다.
“어떻게 알고 왔어? 나 따로 연락도 못 했는데.”
“내가 누구야?”
“백예린. 액막이 무녀지.”
“헤헤헤. 삐약이가 알려줬어!”
예린이 어깨에 앉아있는 병아리만 한 투명 주작이 날개를 퍼덕이며 삐약삐약 울었다.
의기양양한 울음이었다.
“기다렸어어어어. 엄청엄청!”
예린이가 방긋 웃으면서 내 가슴에 뺨을 마구 비벼댔다.
쪼꼬만 머리통이 곰살맞게 움직이자, 가슴이 마구 간질거렸다.
너도 날 기다렸다고?
“거짓말······.”
“아니야!”
“아니야 금지인데, 거짓말 아니라니까 이번만 봐줬다.”
나는 예린의 동그란 콧방울을 톡 쳤다.
예린이가 두 손으로 코를 감추면서 억울한 눈을 했다.
“거짓말 아닌데. 진짜로 나 많이 기다렸는데.”
“그럼 왜 한 달 넘게 우리 집에 안 왔어? 계속 우리 집 액막이에 신당 언니를 대신 보냈잖아.”
신딸로는 두 살 차이 난다던, 그 중년의 할머니 무당 말이야.
난 너 언제 오나 종일 기다렸는데, 넌 어떻게 매번 퇴짜를 놓냐?
“내가 걱정돼서 별관의 유치원 건물까지 찾아갔는데, 내내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
“하지만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었는걸.”
“뭐가 어쩔 수 없었는데?”
“나 그동안 인왕산에 들어가서 치성드려야 했단 말이야.”
“치성?”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내가 예전에 너 찾아서 백 일 동안 이 집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네가 댄 핑계가 바로 백일치성, 묵언수행이었어.
“바로 오늘 아침 새벽까지 묵언수행 했다구.”
예린이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오빠가 어제 찾아왔으면 나 이렇게 말도 못 했어. 그래서 난 엄청 운 좋다고 마구마구 신났는데, 거짓말이라니!”
몹시 불만스럽단 표정이었다.
“치성에 묵언수행까지 해? 네가 왜?”
“치성은 오빠네 부모님 결혼식이 자꾸만 미뤄지니까 드린 거고.”
“······.”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인왕산에 올라 치성드리는 게 보통 일은 아니라고 들었거든.
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치성을 드렸다기에 핑계인가 했더니.
“너 왜 이렇게 말랐어?”
문득 깨달았다.
“치성드릴 땐 밥도 잘 못 먹고 그래?”
“치성이나 수행이란 게 그런 거니까.”
“앞으로 그런 거 하지 마.”
나는 예린이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 부모님 결혼 문제야 내가 해결하면 돼. 그게 뭐라고 이렇게 몸을 축내가면서 해? 묵언수행은 또 뭐고?”
“묵언수행은 내가 속상해서 자청한 거야.”
“뭐가 그렇게 속상했는데?”
“전하고 싶지 않은 말을 전해야 했으니까.”
예린이의 웃음이 퍽 씁쓸해 보였다.
“그건 무당의 숙명이라고 배웠고, 내심 각오 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까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어서······.”
“네가 전하고 싶지 않았던 말이 뭐였는데?”
“······주.”
음? 잘 안 들린다.
목소리도 작은데, 자꾸만 웅얼거리니까.
“뭐라고?”
“······의주. ······오빠의······라고.”
“응? 다시 말해 봐. 안 들려.”
“황룡엔 여의주! 그 언니가 오빠의 짝이라고! 그걸 또 내 입으로 다시······! 씨이!”
예린이가 씩씩거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오빠, 미워! 나 갈거야!”
예린이가 내 가슴팍을 퍽 밀치면서 등을 돌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다급하게 예린이의 팔을 움켜잡았다.
“예린아, 화내지 마. 응?”
“몰라! 나 엄청 화났어!”
“울지 말고.”
“씨이, 오빠는 바보야! 내 마음도 몰라주고.”
왜 얘는 투정도 이렇게 귀엽냐.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짓고 말았다.
“미안해. 내가 나빴다. 그치?”
“응! 진짜로 나빴어! 난 오빠는 언제 오나 기다리느라 이불 속에서 계속 양이나 세고 있었는데!”
“······이불 속에 누워서 양 세고 있었으면 잠이 솔솔 왔겠는데?”
“난 숫자 10개 넘어가면 머리가 자꾸 꼬여. 화가 부글부글 끓는데 어떻게 잠이 와?”
“······.”
그렇지.
우리 예린이, 60갑자 사주는 척척 손꼽아도 숫자엔 많이 약했지.
제 나이도 못 세서 쩔쩔매던 애가 그동안 10 이상을 셀 수 있게 되다니.
“장하다.”
“그렇게 칭찬해도 나 하나도 안 기뻐!”
“착하다.”
“그렇게 예쁘게 말해도 나 화 안 풀렸어!”
“보고 싶었어.”
“······진짜로?”
“응. 엄청 많이.”
“헤헤헤. 나도.”
나는 예린이를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예린이 정수리에 턱을 턱 얹자, 안 그래도 포근하게 올라오던 애기 냄새가 더욱 몽글몽글하게 진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늦은 밤인데도 예린이 보러 왔잖아. 그건 주작이 안 말해줬어?”
“하루 종일 삐약댔어. 오빠에겐 오늘 하루가 엄청 피곤할 거라구.”
예린이가 몸을 뱅글 돌렸다.
“고생했어.”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예린이를 마주 껴안았다.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느라 엄청 힘들었을 텐데, 나까지 힘들게 해서 미안해. 투정 부리지 말걸.”
“어린애가 투정 부리는 게 뭐 어때서.”
나는 예린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예린이는 좀 더 응석 부려도 돼. 실컷 부려.”
“오빠 장해. 착해. 이뻐. 아주아주 멋있어.”
“말로만?”
“그럴 줄 알고 준비했지! 쨔잔~ 이거 오빠 주려고 모아뒀다?”
옥춘당이었다.
이 썩는다고 예린이에게 하루에 한 개씩만 허락된다는 사탕이 비단주머니에 가득 들어 있었다.
“이번엔 엄청 많지? 치성드리고 묵언수행 한다니까 하루에 두 개씩이나 허락받았다?”
“나 주려고 모으지 말고 너 먹으라니까.”
“괜찮아. 어차피 치성드릴 땐 사탕도 못 먹어.”
그러니까 이렇게 삐쩍 말랐잖아!
예쁘게 웃는 애를 또 혼낼 수도 없고. 에휴.
“나도 너 주려고 이거 챙겨왔어.”
“뭔데?”
나도 손수건을 펼쳤다.
예린이가 눈이 동그래졌다.
“와아, 약과잖아?”
“이게 뭔지 알아?”
“응응! 나 저번에 이거 먹어봤어! 엄청 맛있어!”
“많이 먹어. 너 다 먹어.”
나는 손수건째 예린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예린이는 약과를 두 손으로 쥐고 커다랗게 한 입 베어물었다.
“마이쪄, 마이쪄! 엄청엄청 마이쪄!”
“다 먹고 말해. 안 뺏어먹어.”
“헤헤헤. 오빠가 최고야.”
예린이가 눈을 접으며 사르르 웃었다.
우리는 삼청동 대문 앞 주춧돌 위에 나란히 앉았다.
예린이는 약과를 먹고, 나는 약과를 먹는 예린이를 보고.
얼굴 가득 약과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예린이가 방긋 웃으면서 치마 주머니를 뒤지려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손수건부터 꺼냈다.
“에비, 지지야! 끈적끈적한 손으로 옷 만지면 안 돼.”
“그게 아니라······.”
“아니야 금지. 손 이리 내. 얼굴도 이리 내밀고.”
“아우우우!”
나는 예린이의 얼굴부터 손수건으로 박박 닦아냈다.
예린이가 몹시 불만스럽단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오빠가 찾아서 가져가! 자, 여기!”
“앗!”
예린이가 엉덩이를 내 쪽으로 쭉 내미는 게 아닌가.
치마 엉덩이에 달린 작은 뒷주머니.
거기에 자연농원 입장권이 두 장 꽂혀 있었다.
“오빠, 나랑 같이 가자. 응?”
예린이의 수줍은 데이트 신청이었다.
< 예린이의 데이트 신청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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