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57)
재벌집 만렙 아들-257화(257/416)
< 커플 아이템 >
치마 뒷주머니에서 미용 티슈처럼 빼꼼하게 나온 자연농원 입장권 두 장.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예린이가 치켜든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얼른, 얼르으은!”
이 요망한 엉덩이!
쪼끄만 게 벌써부터 꼬리를 흔들고 있어!
“너 왜 하필 여기에······.”
“헤헤헤, 선물! 깜짝 놀랐지?”
음, 선물도 맞고, 깜짝 놀란 것도 맞으니까.
“우리 예린이, 계획 성공했네.”
“오빠, 빨리이이······.”
엉덩이를 한껏 쭉 뺀 채 날 향해 뒤를 힐끔 보는 예린이의 얼굴은 조금 빨개져 있었다.
손수건을 쥐고 있던 예린이의 손가락이 연신 꼼지락거렸다.
“부끄럽단 말이야아아······.”
“그러게 누가 여기에 이걸 거 꼽고 다니래?”
“그치만, 그치만!”
예린이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러더니 억울한 듯 외쳤다.
“내가 약과만 안 먹었어도!”
“그럼 내 잘못이네? 약과 괜히 챙겨왔다.”
“아냐, 아냐! 취소, 취소! 약과는 엄청 맛있었어! 오빠 최고야!”
예린이가 끄응 소리를 내더니 우물쭈물 말했다.
“혹시 오빠는······ 싫어?”
“뭐가?”
“나랑 같이 놀이공원 가는 거.”
“싫긴.”
나는 피식 웃으며 예린이의 뒷주머니에서 자연농원 표 두 장을 쏙 뽑았다.
“영광입니다, 무녀님.”
“헤헤헤. 별말씀을요, 회장님.”
예린이는 도로 주춧돌 위에 털썩 앉았다.
가로등의 주황 불빛이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워졌다.
예린이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내 어깨에 제 머리를 살며시 기대왔다.
“오빠, 우리 언제 갈까?”
“예린이 좋을 때면 언제든 좋지.”
“그럼 내일 갈래?”
“그럴까?”
“헤헤헤. 오빠, 나 벌써 가슴이 막 이렇게 두근두근해.”
“그렇게 좋아?”
“응! 엄청 좋아! 어떡해, 어떡해. 너무 좋아······.”
예린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나 놀이공원에 가는 거 처음이야······.”
“할머니랑도 안 가본 놀이공원을 나랑 처음으로 같이 가주는 거야?”
“응!”
“이거 진짜 영광이었네.”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까.
“예린이 착해.”
“헤헤헤.”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줬더니, 순하게 방긋방긋 웃는다.
예린이가 내 어깨에 머리를 톡 기댔다.
“오빠, 나 이번엔 가슴이 막 간질간질해졌어.”
내 어깨를 타고 예린이의 긴 생머리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예린이가 비스듬히 고개를 들었다.
날 보는 예린이의 눈동자가 가로등 불빛에 섞여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 까만 눈동자엔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비쳤다.
“예린이, 손.”
“손!”
예린이는 순순히 내 손바닥 위에 제 손을 척 올렸다.
작고 예쁜 아기 손이었다.
나는 약과 때문에 끈적끈적해진 예린이의 손을 닦아주었다.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예린아, 표는 어디서 구했어? 직접 용인까지 갔다 온 건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금지라니까. 그래도 귀여우니까 이번은 봐줬다.”
예린이의 콧방울을 톡 건드리자, 꺄르르 웃음을 터져 나왔다.
“신당 언니한테 부탁했어.”
“무슨 돈으로? 치성을 핑계로 졸랐어?”
“아니야.”
“자꾸 아니야 할래?”
“히잉, 진짜 아니라서 아니라고 한 건데. 이건 내가 돈 모아서 산 거란 말이야.”
돈을 모아?
“너 용돈 안 받잖아?”
“아니야.”
“또, 또, 또 아니야래.”
“용돈 아니라 복채란 말이야, 복채!”
예린이는 당당하게 가슴을 쭉 폈다.
“나 이 근방에서 이름이 나기 시작한 용한 애기무녀가 됐어!”
[삐약삐약!]예린이 어깨에 올라가 있는 투명 주작도 날개를 퍼덕거리며 의기양양하게 울었다.
“백호신을 모시는 할머니만큼 사주를 잘 보는 건 아니지만!”
[삐약삐약!]“뭐, 또 할머니만큼 굿을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삐약삐약!]“그러니까 할머니만큼 관상을 잘 보는 것도, 치성을 잘 드리는 것도 아니지만!”
[삐약삐약!]“그래도 나 웬만한 무당들보단 훨씬 잘 본다구?”
[삐약삐약!]“우리 삐약이요, 사방신 중 하나인 주작신이거든요!”
[갸아아악!]내숭 떠느라 예린이 앞에서는 늘 귀엽게 삐약대던 주작이건만.
과하게 흥분한 나머지 걸쭉한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으, 으응?”
예린이는 흠칫해서 제 어깨에 올라앉은 주작을 돌아보았다.
놀란 눈이었다.
인제 와서 주작이 모른 척 눈알을 굴리며 애써 귀엽게 울어봤지만, 이미 늦은 모양.
예린이의 눈은 한껏 가늘어진 후였다.
[삐, 삐야아아악······.]주작의 울음소리가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아지고, 한껏 퍼덕이던 날개도 축 늘어졌을 때였다.
예린이가 주작에게 소곤소곤 속삭였다.
“삐약이, 너 솔직하게 말해 봐.”
[삐약······?]“내일 우리 데이트 실패야, 성공이야?”
[삐야아아악!]예린이는 두 주먹을 꽉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오빠, 내일은 나한테 다 맡겨!”
의욕이 넘치는 파이팅이었다.
“내가 오빠 맛있는 것도 사주고, 기념품도 사주고, 놀이기구도 태워주고, 동물 친구도 보여주고, 꽃구경도 시켜줄 거야!”
박력 있는 데이트 신청이었다.
예린이가 사르르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나 돈 엄청 많다?”
예린아, 그거 아니?
재벌 3세한테 대놓고 돈 자랑하는 여자, 네가 처음이다?
예린이가 새초롬하게 뜬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오빠는······ 싫어?”
“싫긴. 우리 예린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나는 당당하게 엄지를 들어 주었다.
저승사자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나만 엄지 못 받았어······.]* * *
다음 날, 약속대로 예린이와 함께 자연농원에 놀러 왔다.
예린이는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토했다.
“우와, 사람이 엄청 많다아아······.”
그야 주말이고, 놀이공원이니까.
“줄도 엄청나게 길어. 하지만 우리에겐 이게 있지! 헤헤헤.”
예린이가 자연농원 입장권 두 장을 척 꺼내서 의기양양하게 흔들었다.
“오빠, 얼른 들어가자. 응?”
“그래.”
나는 기꺼이 예린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주었다.
“흐흐흥~ 흐흥~♬”
예린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두 손 두 발을 높게 흔들며 척척 걷는, 몹시도 당당한 발걸음이었다.
그에 반해 유종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조선시대 내시처럼 등을 굽힌 채 후다닥 뛰어왔다.
“기, 기다려주십쇼, 도련님, 아가씨! 전 아직 입장권을 못 샀는데요?”
“아, 맞네. 입장권······.”
예린이가 미안한 얼굴로 옅게 웃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두 손 모아 꾸벅 배꼽 인사까지 건넨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오빠, 뛰어!”
“아앗, 사진 찍어드려야 하는데!”
유종태의 절규를 뒤로하고, 나는 이번에도 기꺼이 따라 뛰어주었다.
우리 예린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난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지키는 사내거든!
“이렇게 오빠랑 나랑 단둘이 됐다아아!”
예린이가 작심하고 전력질주하게 된 이유였다.
난 왠지 입가가 자꾸만 씰룩대는 것 같아서 입술을 꽉 다물었다.
“내 손 꽉 잡아.”
“응!”
물론 손은 더 꽉 잡았지.
예린이가 뛸 때마다 머리카락이 사르르 흔들렸다.
꿈과 낭만이 가득한 어린이들의 놀이터, 자연농원!
병아리색 원피스 치맛자락을 하늘거리며 예린이는 활짝 웃었다.
“오빠, 나 지금 너무 신나! 헤헤헤.”
이게 뭐라고.
“나도!”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어린애 몸뚱이란!
* * *
예린이가 자연농원에 입장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오빠, 이거 꼭 들고 다녀야 해. 안 그럼 길 잃은 아이가 되고 말아. 꼭이야, 꼭!”
요란한 반짝이 풍선을 사서 그 끈을 내 손에 들려주는 것이었다.
“······.”
난 하늘색, 예린이는 분홍색.
커플 풍선이었다.
“오빠는······ 싫어?”
“싫긴.”
우리 예린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난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지키는 사내라니까.
‘우리의 첫 커플 아이템이 풍선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예린이가 사주는 선물.’
나는 씩 웃었다.
“완전 좋아.”
이게 뭐라고.
풍선만큼이나 내 기분도 둥실거렸다.
기분 좋게 데이트, 출발!
* * *
예린이는 벌써 스무 번째 감탄사를 토했다.
“와아······!”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봤어? 분명 줄이 이이이이이렇게 길었는데, 갑자기 앞 사람들이 샤샤삭 빠져서 우리가 또 바로 탔어!”
예린이가 가자고 하는 곳마다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그야 인기 있는 유아용 놀이기구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줄 서다가 애가 너무 징하게 울어서 눈치껏 빠지고, 애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빠지고, 친구랑 싸워서 빠지고, 주스를 옷에 왕창 흘려서 빠지고 등등.
덕분에 우리가 줄을 서면 별로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바로 놀이기구를 타게 되는 것이다.
“여윽시 하늘이 내린 귀인!”
예린이가 나를 돌아보며 감탄했다.
“오빠랑 같이 오니까 고속도로처럼 앞길이 뻥뻥 뚫린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감탄씩이나.
크흠, 내가 전생에 나라 구한 덕을 좀 봤어.
“엄청 신기하다아아······. 우리 오늘 운수대통이야아아······!”
예린이가 벌써 스무 번 넘게 감탄사를 토하는 이유였다.
“오빠, 나 저것도 탈래!”
“그래.”
“오빠, 나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래.”
“오빠, 내가 솜사탕 사줄게!”
“그래.”
재밌었다.
즐거운 시간이 쌓이고 또 쌓여갔다.
그렇게 저녁노을이 질 때 즈음, 예린이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추스르며 사르르 웃었다.
“오빠, 나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것 같애······.”
노을처럼 곱게 녹아내리는, 달콤한 웃음이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반지하 월세방에서도 날 보며 곧잘 짓던 웃음.
그 그리운 표정을 다시 마주하게 될 때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달콤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크게 일렁거렸다.
찰칵!
고개를 돌려 보니, 유종태가 즉석 사진기를 들고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천천히 토해내는 선명한 컬러.
유종태는 즉석 사진의 잉크를 말리기 위해 팔랑팔랑 흔들면서 다가왔다.
나는 예린이에게 건네주라고 슬쩍 눈짓했다.
눈치 빠른 유종태는 찰떡처럼 알아들었다.
“보세요, 아가씨. 정말 예쁘게 잘 나왔죠?”
“와아아아아······!”
예린이가 또 한 번의 감탄사를 추가했다.
몹시 신기해하면서 즉석 사진을 받았다.
“사진을 찍었는데요, 바로 나왔어요오오오······?”
그래서 즉석 사진이라고 해.
귀찮게 사진관에 인화를 맡길 필요가 없거든.
대신 조금 비싸긴 하지만.
“마음에 들어?”
“응!”
“그럼 다음에 사줄까?”
“아니야!”
뭐지?
“갑자기 왜 또 아니야야? 아깐 마음에 든다며?”
“그게 아니라 이거.”
예린이는 손에 든 사진을 쭉 내밀었다.
“나 가져도 돼?”
까짓것.
그게 뭐 별거라고.
“가져.”
“꺄아아! 너무 좋아!”
예린이가 사진을 들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액자에 넣어서 이부자리 옆에 두고 매일매일 볼래!”
잔뜩 신이 나서는 다각도로 사진을 감상한다.
사진을 높이 들어서 보고, 가까이 가져와서 보고, 멀리 떨어뜨려도 보면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감탄사가 뒤따랐다.
“와아아······, 역시 오빠는 웃는 게 최고야.”
음?
“이것 봐. 오빠 진짜 엄청 멋있게 나왔지?”
예린이가 내게 바짝 다가와서 사진을 보여줬다.
“난 오빠가 매일매일 이렇게 웃었으면 좋겠어.”
사진 속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하늘색, 분홍색 커플 풍선을 쥐고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내가 이렇게 부드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내 표정이 낯설었다.
뭐지? 이건.
나답지 않게 녹아내릴 것처럼 달콤한······ 당혹스럽네.
예린이가 비장한 목소리로 신신당부했다.
“그치만 다른 애들한테는 안 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보여주면 안 돼!”
음?
“나한테만 이렇게 웃어줘야 해. 알았지?”
“그래.”
“꼭이야, 꼭!”
“어.”
“또 그렇게 웃는다! 안 되겠다, 얼른 약속해! 약속, 약속!”
예린이가 멋대로 내 새끼손가락과 제 새끼손가락을 얽어서 위아래로 흔들었다.
난 새끼손가락 약속 따윈 안 믿는 사람인데.
엄지로 찍은 지장만 취급하거든.
“도장도 꾹 해야지! 얼른, 얼른!”
예린이가 또 멋대로 내 엄지를 꾹 눌렀다.
어쨌거나 엄지로 지장까지 단단히 찍은 이상, 이거 도로 물릴 수도 없고.
“약속할게.”
“진짜지? 진짜로 약속한 거다?”
“그럼. 남아일언 중천금이야.”
난 애초에 책임지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않고,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내거든.
“오빠, 나 지금 행복한 거 같애······.”
예린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활짝 웃었다.
찰칵!
어김없이 유종태가 즉석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예린이의 웃음이 햇살처럼 선명하게 담겼다.
유종태가 팔랑팔랑 흔드는 사진을 내가 손을 뻗어 가로챘다.
“대신 이건 내가 가질게.”
나도 액자에 넣어서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으려고.
그래, 샤베트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달콤한 표정이란 건 바로 이런 거지.
······아, 젠장.
너무 예쁘잖아.
< 커플 아이템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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