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59)
재벌집 만렙 아들-259화(259/416)
< 눈 호강 제대로다 >
삼청동에 들렀다가 한남동 우리 집으로 향하는 차 안.
라디오에선 흥겨운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철구 아저씨가 좋아하는 송대권의 노래였다.
나는 활짝 웃는 예린이가 담긴 액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우리 진작 함께 사진 찍을 걸 그랬다, 그치?’
녹아내릴 것처럼 달콤한 미소.
액자 속 예린이에게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아······, 정말 눈 호강 제대로다.
‘그리운 표정이네.’
애써 기억을 헤집어가며 끄집어내지 않아도.
우리가 함께했던 그 순간, 그 분위기, 그 감정, 그 달콤함까지.
사진 한 장이 담아내는 게 이토록 많을 줄이야.
‘우린 왜 그때 그 흔한 사진 한 장 남겨둘 생각을 못 했을까?’
먹고 살기가 바빠서.
하루하루가 행복해서.
평생 네가 내 옆에서 그렇게 웃을 줄 알아서.
아무리 이것저것 떠올려 봐도, 구차한 변명밖에 남지 않더라.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 한 장이 없어서. 평생토록 희미해져가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붙들려고 몸부림쳤었는데.’
그것참 죽을 때까지 사무치는 한으로 남더라.
‘생각해 보니까 우리도 함께 찍은 사진이 없더라고.’
이 또한 죽을 때까지 가슴 아린 회한과 미련으로 남았고.
나는 쓰게 웃었다.
‘가끔, 아니, 매일같이 후회했었어.’
네가 갑자기 증발해버린 이후, 난 똑같은 탄식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 없이 나 홀로 남겨진 우리의 신림동 반지하 월세방에서.
나는 매일 똑같은 후회를 곱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랑 손잡고 사진관에 갈 걸 그랬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더라.
넌 꿈에서도 나와주지 않더라.
전국 방방곡곡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데도 네 머리카락 한 올 찾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난 무려 12년이나 두고두고 후회해야 했다.
-네 사진이 한 장만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너를 찾는 일이 조금은 더 빨랐을까?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리도 뼈저린 회한으로 남았겠지.
-널 찾으려고 몽타주 전문가를 닥치는 대로 찾았었어. 그런데 하나같이 네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는 놈이 없더라고.
그렇게 한 삼백 장쯤 그렸었는데.
-보고 싶다······.
밤마다 습관처럼 되뇌던 말이었다.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을 떠나지 못하고.
나는 습관처럼 너를 찾았다.
하지만 너의 미소, 너의 손길, 너의 체취, 너의 체온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어떻게든 생생하게 떠올려 보려고 갖은 애를 썼었지만, 쉽지 않았다.
기억이란 형체가 없는 것이라서.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 네 빈자리가 날 송곳처럼 찔러대는 건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이더라.’
예를 들면 잠자리에 들려고 이불을 걷었을 때라든가.
-냉골이 따로 없네······.
신기하지?
너와 함께 살 때는 늦은 밤까지 일하고 돌아와도 언제나 이부자리가 따끈따끈했었거든.
개운하게 샤워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뉘면.
아, 딱 알맞게 데워진 솜이불이 어찌나 포근하고 따뜻하던지.
고단했던 하루의 피곤이 노곤하게 녹아내리곤 했었다.
-큰맘 먹고 마련한 목화솜 이불이 역시 비싼 값을 한다며 좋아했었는데.
네가 없는 이부자리를 손으로 쓸어내릴 때마다.
매번 손끝으로 전해지는 냉기가 퍽 낯설었다.
-네가 매일 따뜻하게 데워놓았던 것도 모르고.
어떤 날은 네 몸으로,
또 어떤 날은 끓은 물을 담은 보온 팩으로.
그렇게 네 수고로 누리던 내 안락한 행복이었더라.
‘예린아. 나 이번엔 그런 후회 따윈 하지 않으려고.’
나는 살며시 액자를 쓸어내렸다.
‘다시는 널 두고 등 돌릴 일 없을 거야.’
불타는 삼청동 전각에서 네 손을 잡고 나올 것을.
네 인생에 끼어든 이물질, 네 행복을 방해하는 더러운 얼룩이 되고 싶지 않았다.
-놔줄게. 앞으론 인왕산 쪽으로는 오줌도 안 쌀게.
그렇게 널 두고 등 돌려 떠날 게 아니었는데.
난 아직도 그때가 사진처럼 선명하게 뇌리에 박혔어.
으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날 붙잡으려고 달려오던 애기무녀를 네가 막아서던 모습도.
그런 널 두고 기어이 마지막 발걸음을 떼어 삼청동 대문을 넘던 나도.
-행복해라.
실은 그때 악당에 파렴치한 소리를 듣더라도, 내 욕심껏 널 납치해서 내 옆에 붙들어두고 싶었어.
네 남편이란 작자가 찾아와도 쥐도 새도 모르게 청계산에 파묻어버릴 자신, 있었거든.
내가 자신 없던 건 딱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붙들어둔 너의 행복.
그래서 피눈물을 흘리며 널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더 물을게. 나랑 결혼해.
12년 만에 다시 건넨 내 두 번째 청혼에 끝내 대답하지 않는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네 행복을 자신할 수 있었겠어.
‘하지만 이번엔 달라. 우리 정말 행복하게 살아보자. 난 너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어!’
너 혼자 아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이게 내 각오다.
이번 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네 웃음도, 너도, 우리 아이도. 전부 내가 지켜낼 테니까.’
어딘가에 존재한다던 그 쓰레기 같은 네 남편이 나였던 거 알았으니까.
이번엔 진짜로 네 옆에서 제대로 남편 노릇 확실하게 해보려고.
나는 사진 속 예린이의 콧방울을 톡 건드렸다.
‘각오 단단히 해. 나 이번엔 절대로 너 안 놔줘.’
지금의 난 그때와는 달라.
가진 거 하나 없는 스물두 살 애송이가 아니거든.
유종태는 트로트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음?”
갑자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유행 가요가 뚝 끊겼다.
치지직. 칙.
“이거 왜 이래?”
-긴급 속보입니다. 청와대의 발표를 들어보겠습니다.
딱딱한 남자 아나운서에 이어, 대통령의 목소리가 라디오 전파를 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뜬금없는 청와대 기습 발표였다.
-정부는 67년에 이미 부동산 투기 억제 특별조치법을 제정한 바 있습니다만, 현재 대한민국은 아파트 투기로 병들고 있습니다!
고작 3년 만에 부동산 가격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다.
평당 40만 원이던 아파트 분양가격이 1년 사이에 평당 60만 원이 되었다.
프리미엄 가격과 분양권도 급등 일변도이며, 땅값도 덩달아 뛰었다.
전국 평균지가 변동률도 26%, 34%를 거쳐, 올해만 벌써 49%가 올랐다.
서울 지역 땅값은 작년 대비 135.7%로 수직상승했다.
-부동산 투기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유종태는 다급하게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덩달아 대통령의 목소리도 더 커지고 높아졌다.
-전 국민이 은행 돈을 빌려 투기에 나섬으로써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의 의욕을 꺾고, 주택가격을 상승시켜 인플레를 유발하였으며, 기업도 비싼 토지가격 때문에 대외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정부는 도저히 이를 묵과할 수 없기에,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자 합니다!
대통령의 선언이 이어졌다.
-지금 이 시간부로 ‘부동산 투기 억제 특별조치법’에 의거,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종합 대책’을 시행할 것입니다.
8.8 부동산 규제였다.
원 역사보다 족히 두 달 이상 앞당겨진 발표였다.
끼이익.
유종태는 즉시 갓길에 차를 대었다.
“도련님!”
“듣고 있어요.”
우리는 숨죽여 라디오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 * *
고작 10분 남짓한 정부 발표.
유종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맙소사!”
유종태는 크게 분개했다.
“토지거래 전면 허가제? 내 돈 주고 내 땅을 사는 것까지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답니까? 여기가 남한이지 북한이냐고요!”
8.8 부동산 규제는 정부가 나름 야심 차게 준비한 종합부동산 대책이었다.
하지만 큰 반발을 불러온 규제책이었다.
“기준지가를 고시하고, 부동산거래용 인감증명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까지는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토지매매계약 체결을 복덕방이 아니라 변호사가 맡게 해요? 허!”
유종태는 콧김을 씩씩 뿜어댔다.
평소 유들거리던 유종태답지 않게 과한 반응이었다.
“변호사 몸값이 금값인데, 변호사를 못 구하면 땅도 못 사고, 집도 못 사고. 아니, 판잣집값보다 변호사 고용비가 더 비쌀 겁니다!”
유종태는 불만스럽게 “그럼 돈 없는 대다수의 서민들은 길바닥에 나앉아 죽어나란 소리밖에 더 됩니까?” 하고 덧붙였다.
“아파트 건설을 제한하고,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공한지세를 부과하고, 양도세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유종태는 직접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어찌나 열이 받았던지.
얼굴은 물론 목덜미까지 붉어진 채였다.
“토지개발공사도 설립하겠답니다! 그건 지금껏 민간건설 기업에게 떠맡겼던 도시개발까지 정부가 가로채서, 직접 땅 투기에 나서서 고위 공직자들 주머니를 채워야겠다는 뜻이잖아요!”
토지개발은 돈이 되는 일이었다.
황무지를 개발해 도로를 뽑고, 땅을 고르고, 구획을 정리해서 쓸만한 땅을 만들어 놓는 것.
그래서 정관계 인사들은 도시개발을 빌미로 땅 투기를 벌였다.
덕분에 땅을 잔뜩 움켜쥐고 있던 까치산 방 여사는 안기부에 끌려가 시체가 되어 나왔다.
그렇게 방 여사가 가지고 있던 엄청난 땅은 곧 택지로 바뀌었고, 은밀하게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가 대선에 쓰였다.
“거기에 은행 대출 규제까지 강화시키겠다니, 건설사더러 줄도산하란 소리밖에 더 됩니까? 이게 말이 되냐고요.”
산업에 들어가야 할 은행 돈을 투기꾼들이 빌려서 땅값을 높이는 데 쏟아부었다.
산업은 돈이 안 돌아서 망해가고, 땅값마저 폭등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게 정부가 부동산을 규제하는 명분이었다.
“대체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이렇게 건설사 숨통만 꽉꽉 틀어막는 얼간이 같은 대책을 쏟아냈답니까?”
과거 8.8 부동산 대책이 큰 반향에 직면한 이유.
너무 급진적인 부동산 규제가 많이도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정책을 통과시킨 공무원 새끼들, 아마도 빨갱이가 틀림없습니다! 약 빨고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이런 미친 정책은 안 나옵니다!”
유종태는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운전대를 퍽퍽 때렸다.
‘흐음, 역시 이상한데. 왠지 유종태가 저리 불같이 화내는 진짜 속사정은 따로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뭐, 지금 이 방송을 접한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랄 속보이긴 하다.
당연히 지금쯤 고위 공무원들 사회까지 발칵 뒤집혔을 테고.
‘최초의 토지종합대책이지만 구멍이 뻥 뚫려서 죄다 난도질을 해대지.’
재무부가 밀어붙였던 토지거래 전면 허가제는 건설부의 반대로 신고제로 바뀌게 된다.
토지매매 계약을 변호사가 체결하자는 방안도 내무부의 제동으로 공인중개사제도 도입으로 방향을 틀게 되고.
경제부처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양도세도 고위공무원들의 거센 반발로 약화된다.
오죽하면 실무를 맡았던 공무원들은 ‘투기꾼들과의 전쟁보다 내부 반대자들과의 전쟁이 더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겠는가.
“후우, 이거 진짜 날벼락, 아니, 핵폭탄이 떨어지는 겁니다! 내일 당장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태성건설 주가부터 폭락하겠는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태성은 비교적 타격을 덜 받을 거예요.”
“왜요?”
“태성건설은 아파트 사업에서 손 뗀 지 오래잖아요.”
“아······.”
무능한 차윤성 사장과 그 측근들이 계약을 맡고도 일을 안 해서 죄다 펑크 나고 말았다.
오죽하면 내가 현무건설 오 사장에게 수서동 아파트 부지를 넘겼겠는가.
원래는 태성건설이 태성아파트를 지어야 했을 땅이었다.
“반대로 이번에 태성건설은 눈도장 확실하게 찍게 될걸요?”
“예에?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기는. 된다.
“이건 개인전이 아니잖습니까. 이번 정부 규제로 건설사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체 폭락장에 들어설 텐데······.”
“개인전 맞는데요? 태성건설은 다른 건설사들과는 사정이 달라요.”
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하철 2호선과 강남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확장 공사. 이만한 스케일의 국책공사는 적어도 5년은 든든하게 재정 확보했다는 뜻으로 비춰질 거예요.”
“아!”
“게다가 태성건설엔 또 하나의 큰 호재가 있어요.”
“그게 뭡니까?”
“어마어마한 중동 건설 수주요.”
“오!”
아버지가 쥬베일 산업항 근처 도시 건설을 맡은 것만 1억 달러 규모다.
거기에 이경석 비서가 만수르의 장인을 만난 이후 무지막지한 속도로 중동의 대형 공사를 따내고 있었다.
“카타르 수리 조선소, 파키스탄 고속도로, 알제리 하천 정비, 이라크 방파제, 두바이 하수처리장, 리비아 대수로관 등. 그것만 해도 이미 해외 수주액 10억 달러 규모를 돌파한 지 오래예요.”
“아파트 분양에 사활을 걸었던 다른 건설사에 비해 태성은 자금력이 든든해 보이겠네요?”
그뿐만이 아니다.
“조만간 정부에서 은밀하게 언론을 움직여서 태성의 제철소 건설, 간척 사업, 항만 건설과 수원의 기술연구소 건립 소식을 마구 뿌리기 시작할 거예요.”
“확실히 그 정도면 부동산 규제에도 태성은 끄떡없어 보이겠군요?”
“그러니 대중들의 뇌리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건실하고 튼튼한 건설사로 제대로 이름 콱 박히게 되는 거죠.”
폭락장에도 주식 시장은 열린다.
또한 주식에 들어간 돈은 돌고 돌기 마련이고.
“도련님, 그런데 잠깐만요. 태성의 건설 호재 소식을 왜 정부에서 흘린답니까?”
“그야 정부는 건설주 파동에서 시작된 주가 폭락이 계속되길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대선이 코앞이고, 그다음이 총선이에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중요한 대목에 왜 굳이 이런 무리수 규제 폭탄을······.”
“바닥으로 처박힌 건설을 끌어올림으로써 정부와 야당의 능력을 어필하겠단 노림수예요.”
정치는 인기를 갈구한다.
실체가 없기에 이미지 포장이 더욱 치열한 판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유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원한다.
슥슥슥.
나는 동전 지갑에서 꺼낸 작은 수첩을 펼쳐 몽블랑 만년필로 대충 휘갈겼다.
건설주 파동으로 인한 폭락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보았다.
쓰는 족족 눈부신 황금빛이 번쩍거렸다.
‘이야, 이것이야말로 진짜 노다지지!’
보기만 해도 황홀할 지경이다.
눈 호강 제대로다!
< 눈 호강 제대로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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