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6)
재벌집 만렙 아들-26화(26/416)
< 원하는 대로 >
차 회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광건설 뇌물 장부를 쓰다듬었다.
방금 전까지 불같이 노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번엔 눈빛부터 입꼬리까지 훈풍이 불어왔다.
“우리 금쪽같은 손자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애를 먹었을 일이었지. 일본 놈들은 어디 웬만한 돈으로는 꿈쩍이나 하던가?”
“이 정도 약점이면 목줄까지 단단히 채울 수 있습니다. 지금 일본 본토는 록히드 게이트로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용서치 않는 분위기입니다.”
“좋아! 그 얄미운 놈들도 이번만큼은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수 없겠군!”
무려 1,800억짜리 공사를 일곱 살짜리 손주 덕에 따오게 생겼다.
“이번 지하철 2호선 공사만 따내면 내 이 공은 두둑이 돌려줄 생각이야.”
“회장님, 그래서 말입니다만.”
김 비서는 이때다 하고 입을 열었다.
“도련님 앞으로 태성의 주식 1억 원어치 정도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뭐?”
차 회장은 두 눈을 꿈뻑거렸다.
* * *
서울시 고위 공직자들은 아침부터 섬뜩한 일을 겪게 되었다.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진 결재 서류.
거기에 슬쩍 끼워진 종이 한 장 때문이었다.
<우광건설이 당신에게 건넨 뇌물 내역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경 어디에서 뇌물을 받았는지, 얼마나 받았는지, 어떻게 받았는지.
그 내역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지하철 2호선 공사 입찰에서 태성에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 각하께서 이 종이를 받으시길 원치 않는다면 말입니다.>
와락!
백이면 백.
종이를 읽자마자 단번에 구겨버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정부는 고위 공직자의 부정 척결을 기치로 삼고 있다.
뒤에서 몰래 받는 것은 쉬쉬할 수 있지만, 뇌물 목록이 정확히 기록된 종이가 각하 앞으로 전달된다면 절대로 그 칼을 피해갈 수 없다.
“빌어먹을! 대체 누구야! 누가 내 집무실에 숨어들어 와서······!”
백이면 백.
뒷말을 삼키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떤 놈이 이 종이를 배달했는지가 아니다.
이 종이를 배달시킨 놈이 하는 협박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다.
“크흐흠!”
백이면 백.
주변을 살피면서 종이를 재빨리 잘게 찢어 양철 휴지통에서 소각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행여 이게 다른 놈에게 발견되면 이것을 빌미로 협박하는 놈이 늘어날 테니까.
“우광, 이 개새끼들!”
뇌물 장부를 따로 만들어뒀다 이거지?
그걸 또 남들 손에 빼앗겼다 이거고?
덕분에 내가 아주 곤란하게 되었어.
“두고 봐라. 이 빚은 내가 아주 톡톡히 갚아주마!”
건설부, 재무부, 내무부, 상공부 등등.
고위 공직자들이 우광을 향해 분노를 곱씹었다.
* * *
한편 이와 비슷한 일은 국회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도 출근길에 종이를 발견했다.
다만 그들의 경우엔 고위 공직자들과 좀 달랐다.
결재 서류에 끼워 넣어 배달되는 대신,
“으헉!”
한 의원은 국회의사당 복도 벽에 붙은 종이를 부욱 뜯어냈다.
제 이름으로 작성된 우광건설의 뇌물 내역이었다.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남들 다 보는 곳에 이런 걸 전시하듯······!”
의원들이 제일 중요시하는 건 남들의 이목이었다.
선거로 권력을 유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고위 공직자가 받은 종이와 뒷말도 조금 달랐다.
<지하철 2호선 공사 입찰에서 태성에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 신문과 방송으로 이 종이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말입니다.>
의원은 재빨리 주변을 살펴봤다.
아침 일찍부터 청소부가 열심히 복도와 계단을 쓸고 닦을 뿐이다.
의원은 종이를 와락 구겨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당장 치부를 인멸해야 했다.
“빌어먹을!”
어떤 의원은 국회의사당 복도에서, 어떤 의원은 의원실 문짝에서, 어떤 의원은 정문 계단에서.
보란 듯이 전시해 놓은 종이를 발견한 의원들은 달려들어서 박박 찢어 없애기 바빴다.
자연스럽게 의원들도 고위 공직자들과 똑같은 욕설을 터뜨렸다.
뇌물 장부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우광으로 향했다.
* * *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긴 마찬가지였다.
한 기자는 급똥을 싸고 있는 와중에 종이를 받았다.
화장실 칸 밑으로 슬쩍 밀어 넣어진 종이를 보고 기자는 눈을 부릅떴다.
“누구야!”
하지만 뒤도 닦지 않고 뛰쳐나갈 수는 없는 노릇!
바지를 내리고 있는 상태로 화장실 문을 열어 범인을 확인할 수도 없고!
“우광, 이 새끼들이 진짜!”
당연히 언론인들에게 보낸 종이의 뒷말도 조금 달랐다.
<지하철 2호선 공사 입찰은 태성이 따낼 겁니다. 호의적인 기사와 뉴스로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 언론 탄압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물론 이를 무시할 시 광고가 끊기는 건 덤입니다.>
기자는 이를 박박 갈았다.
종이를 박박 찢어서 화장실 변기 물에 흘려보내면서 말이다.
* * *
똑똑.
아침부터 태성호텔 스위트룸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 교통국 소속 고위 관료인 요시모토는 소파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룸서비스를 시킨 적이 없는데?”
“실례하겠습니다. 태성그룹 비서실장 김영걸입니다.”
김 비서는 문 앞에서 차갑게 웃고 있었다.
요시모토는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무례하군요. 난 당신과 대화할 마음이 없어.”
“이왕 무례한 김에 한 가지 무례를 더 범해야 할 것 같군요.”
김 비서는 종이 한 장을 요시모토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우광건설에서 건넨 뇌물이 꼼꼼하게 적힌 종이였다.
요시모토는 김 비서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챘다.
“의도가 몹시 불순하여 심히 불쾌합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겁니까? 흥, 앞으로 태성이란 이름으로는 절대 날 만날 수 없을 것······!”
“이게 일본 총리 앞으로 배달된다면, 예, 아마도 당신은 앞으로 태성을 만날 일이 없겠군요. 숙청당할 테니까요.”
“······!”
“예, 그러니 협박이 맞습니다.”
요시모토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요즘 일본 정부는 록히드 게이트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죠?”
록히드 게이트.
일본 사상 최대의 정치 자금 스캔들이다.
록히드가 비행기를 팔기 위해 여러 나라 고위 공직자들에게 전방위로 뇌물을 뿌렸다.
결국 일본,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 각 나라의 정부 수장 및 고위 공직자가 일거에 숙청되고 단번에 정권이 교체되었다.
“일본 현직 수상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고요?”
“으음.”
“물론 관련된 고위 공직자들도 여럿이 숙청되었고, 자민당은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해 굴욕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봐, 갑자기 왜 록히드 사건을······.”
“당신도 받아먹었잖습니까. 록히드 로비스트에게. 아닙니까?”
“······.”
요시모토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손안에서 종이가 더욱 와락 구겨질 뿐이었다.
“뇌물을 받아먹은 고위 공직자를 전원 처벌했다간 일본 정부의 기능이 완전 마비 상태에 빠질 지경이라죠? 덕분에 간신히 당신 목이 붙어 있는 겁니다.”
“······.”
“잔뜩 몸을 사리면서 눈치껏 숨만 쉬다가 한일기술협정이란 핑계를 대면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
“여기에 당신이 한국에서 받아먹은 뇌물 수수 혐의까지 얹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왜요? 태성은 작은 기업이라서 일본 언론에 힘을 못 쓸 것 같습니까? 아쉽게도 일본 방송국과 신문사는 좋다고 당신을 물어뜯을 것 같습니다만.”
김 비서는 차갑게 웃었다.
“언론에게 미운털이 잔뜩 박혔더군요. 어떻습니까? 아직도 대화할 마음이 안 듭니까?”
“이, 일단 안으로······!”
“그럼 실례.”
김 비서는 요시모토를 지나쳐 스위트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요시모토는 낚아챈 종이가 덩달아 파르르 떨릴 만큼 입술을 꽉 깨물었다.
털썩.
김 비서는 요시모토가 앉았던 응접실 소파 상석에 앉았다.
손을 뻗어 요시모토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협박을 실행하는 건 협상이 어그러진 후에 해도 늦지 않거든요.”
“원하는 게 뭐요?”
“일본의 지하시설 토목공법 기술 공유.”
김 비서는 몸을 기울여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은테 안경 너머로 섬뜩하게 차가운 눈빛이 번뜩였다.
“어렵습니까?”
요시모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한일기술협정에 따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일본 대표로 한국에 온 건데요.”
요시모토는 손을 내밀었다.
“우리 일본 교통국은 우광이 아니라 태성과 함께 일을 하고 싶습니다만, 태성의 뜻은 어떠합니까?”
“기꺼이. 귀국(貴國)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김 비서는 요시모토의 손을 잡았다.
* * *
침대는 푹신했고, 이불은 포근했다.
기름보일러를 팡팡 틀고 잔 덕분에 방 안은 따끈따끈한 온기로 가득했다.
나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하아암.”
“우리 아들, 잘 잤니?”
“네. 엄마는요?”
“엄마도 기분 좋게 잘 잤지. 거실에 가보면 깜짝 놀랄 일이 있을걸?”
“얼른 가요!”
어머니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와, 크리스마스트리다!”
“꼬맹아, 일어났냐?”
철구 아저씨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정리하고,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나무 궤짝을 옮기고 있었다.
트리 장식이 잔뜩 들어있는 궤짝이었다.
“지하실에 마침 저런 게 있더라. 우리도 이참에 크리스마스 기분이나 좀 내보려고.”
부잣집 지하실에는 이것저것 많이도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설마하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정혁아, 아저씨들이랑 같이 트리 꾸미고 있을래?”
“네! 엄마는요?”
“엄마는 주방에 들어가서 아침 준비하는 것 좀 도우려고.”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우리 어머니는 요리에 소질이 없다.
이대로 뒀다간 끔찍한 혼종 음식이 탄생하고 말리란 불길한 예감이 밀려들었다.
게다가 그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야.
나는 사명감에 불타올라 어머니의 치마를 흔들었다.
“엄마도 같이 만들어요. 나 이런 거 한 번도 안 만들어 봤단 말이에요.”
물론 이건 거짓말이다.
어린 강우를 위해 해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주곤 했으니까.
“아, 그러네. 그렇구나. 엄마가 거기까진 신경을 못 썼네.”
아차.
우리처럼 가난한 살림에 크리스마스트리는 사치였다.
판잣집 쪽방에 제대로 된 가구조차 들여놓을 형편이 안 됐거든.
“에이, 지금이라도 같이 만들면 되죠. 난 어릴 때 기억이 안 나니까 그런 말은 해도 모르는걸요.”
나는 어머니의 손에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커다란 금구슬을 올려 주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난 큼지막한 금덩이가 취향이라서.
호탕한 대답은 부엌에서 들려왔다.
“그래, 정혁이 엄마. 아침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애기 섭섭하게 만들지 말고 얼른 도와줘.”
집주인 할머니였다.
“정혁이 엄마 덕분에 우리 철구가 무사히 돌아왔잖아. 난 그게 너무 고마워서 밥 한 끼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싶어. 내 맘 알지?”
집주인 할머니는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어머니는 쪼그려 앉아서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럼 엄마랑 같이 트리 만들까?”
“네!”
행복했다.
이게 뭐라고.
45년 만에야 누릴 수 있게 된 달콤한 시간이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어? 눈이다!”
“함박눈이군요.”
신이 났다.
“엄마, 밖에 눈 온대요! 얼른 나가봐요! 얼른요!”
“그래그래. 알았어. 잠깐만. 외투랑 목도리부터 두르고.”
“빨리요! 첫눈 맞으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요!”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 운동화부터 구겨 신었다.
어느새 태성그룹 아저씨들이 어머니의 외투와 내 것을 가져왔다.
태성백화점 종이가방에 들어있는 새 옷이었다.
“우리 아빠가 돌아와서 다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자고 빌 거예요!”
차 회장이 직접 약속한 이상, 아버지를 납치해서라도 꼭 데려올 테니까.
나는 강아지처럼 쪼르르 밖으로 뛰쳐나갔다.
“엄마도 소원 빌었죠?”
은근슬쩍 물었다.
이게 내가 부산을 떤 진짜 목적이거든.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맞춤형 서비스가 최고니까.
“응. 엄마도 정혁이랑 똑같은 소원을······.”
그때 보초를 서던 태성그룹 경호원이 대문을 철컹 열어주었다.
초인종도 울리지 않았고, 신분증 검사나 신원 확인도 없이.
저벅저벅.
훤칠한 키에 긴 다리, 검은색 롱코트와 회색 목도리를 걸치고 있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훨씬 잘생긴 남자였다.
찬 바람을 타고 묵직하고 세련되게 고급스러운 남자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것 같았다.
그가 우리를 보고 걸음을 우뚝 멈췄다.
“수진아.”
“아······!”
어머니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성준 선배······!”
아버지였다.
< 원하는 대로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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