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60)
재벌집 만렙 아들-260화(260/416)
< 더 큰 걸 노리셔야죠 >
차는 조금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유종태는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했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네온사인 반짝이는 서울의 밤거리가 휙휙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이번 부동산 규제로 우광건설은 바닥까지 처박히게 생겼는데?’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태성건설과 우광건설, 대한민국 메이저 건설사의 합병.>
눈부시게 환한 금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엔 딱 하나 문제가 있지.’
나는 몽블랑 만년필을 들어 수첩 밑에 덧붙였다.
<후임 태성건설 사장은 누구로?>
아버지가 그룹 부회장 자리에 앉으면서 태성건설 사장직은 공석이 되었다.
태성건설의 사이즈를 보나,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의 중대성을 따져보나.
마냥 속 편하게 비워둘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태성건설은 태성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로 성장해 줘야 한다.’
최소 10년간 굵직한 역할이 예정되어 있다.
종합제철소 건설, 간척과 항만, 지하철 3, 4호선 추가 공사, 중동 건설까지.
전부 태성건설의 몫이다.
‘제조업이나 요식업 등과 다르게 건설업은 경기를 굉장히 많이 타는 업종이지. 동시에 안전 문제와 직결된, 산업의 근간이고.’
딸린 하청업체가 몇이며,
부실 공사로 붕괴한 건물과 대형 구조물이 몇이며,
IMF나 세계 금융위기 때 줄도산의 도화선이 된 건설사가 몇이나 되던가.
‘유용한 비자금 조달처로 악용되기 십상이므로, 정치권과 더럽게 얽힐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아주 유능한 사람으로 앉혀야 한다.’
일반 중소기업 건설사라면 건설만 잘하면 다일 수도 있으나.
재벌그룹 건설사라면 다른 것도 잘해야 한다.
정치권의 똥물을 회사에까지 튀기지는 않으면서, 어떻게든 권력을 이용해 이득을 도모해야 하니까.
‘게다가 태성건설엔 태성전자 지분이 1%나 들어가 있다. 그러니 태성전자 지분을 아버지 뜻대로 행사해 줄 수 있는, 아버지의 심복으로.’
내가 거두었던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또한 아버지에게 연판장을 써냈던 임원들의 인사기록부도.
그도 부족해서 내가 눈여겨보았던 싹수 있는 인사들까지.
슥슥슥.
사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지는 오래였다.
난 거침없이 만년필을 놀려 수첩에 이름을 적었다.
역시나 눈부신 황금빛!
‘이럴 줄 알았지.’
태성건설의 차기 사장으로 이보다 더 나은 인사는 없을 듯 하다.
* * *
한남동 우리 집에 도착했다.
넥타이를 고쳐 매며 현관에서 나오던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빠, 이 시간에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본가에 가려는 참이었다.”
할아버지 댁에?
바로 알아들었다.
“할아버지가 최측근들만 불러들이셨군요.”
“그래, 당면한 사안의 타개책을 강구하기 위해선 그룹 차원의 대응 기조 정립이 우선이니까.”
아버지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유종태에게 건넸다.
덕분에 비게 된 손으로 내 손을 살며시 잡으셨다.
크고, 굵고, 제법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아빠랑 같이 갈까?”
아버지가 문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다. 괜한 소리였구나. 이만 집에 들어가 봐라.”
“됐어요. 가요.”
“새 나라의 착한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
“태성건설 문제 때문에 수뇌부 긴급회의가 소집된 거잖아요.”
“······정말 못 당하겠구나.”
아버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실은 대통령이 30분 전에 부동산 규제를 선포했다.”
“알아요. 오는 길에 라디오로 들었거든요.”
나는 아버지의 손을 살짝 잡아끌며 고개를 까딱했다.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해요. 할아버지랑 사장님들 기다리시겠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순순히 내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걷······ 으갸앗!
“우리 아들 얼마나 컸는지 확인해 볼까?”
아버지가 날 달랑 들어 안았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비슷한 눈높이에서 고정되었다.
“많이 컸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내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했다.
“데이트한다고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보이고. 우리 아들 다 컸네, 다 컸어.”
쪽! 쪽쪽쪽! 쪽쪽쪽쪽쪽쪽!
“정혁아, 넌 모든 게 너무 빨라. 아빤 조금만 더 천천히 커 줬으면 하는데.”
“전 얼른 크고 싶은데요?”
쪽쪽쪽쪽쪽쪽쪽쪽!
“으아앗! 이러다가 온 얼굴이 입술 도장으로 뒤덮이겠어요!”
“아빠의 심술이다.”
무슨 심술을 이렇게 부립니까?
“아빠한테는 같이 놀러 가잔 소리 한 번을 안 하더니, 예린이한테는 했단 말이지?”
“숙녀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는 게 신사의 매너는 아니잖아요?”
“데이트 신청을 받아? 우리 아들 멋진데?”
아버지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크게 성큼성큼 걷는 걸음은 늦추지 않으면서.
“자세한 얘기는 물론 가면서 해주겠지?”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걸 얘기할 때가 아니잖아요. 내일 당장 건설주 파동이 터질 텐데요?”
“그건 어른들의 이야기고.”
쪽!
“난 내 아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거든.”
우리 아버지도 참.
생긴 것부터 하는 행동은 물론 분위기까지 차가운 도시 남자 그 자체인데.
가끔 보면 팔불출 아들 바보처럼 굴 때가 있다니까?
“그럼 저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빠의 이야기.”
“음? 뭐가 궁금한데?”
“뭐겠어요. 등가교환의 법칙대로 러브스토리엔 러브스토리죠.”
“하하하.”
아버지는 차 뒷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날 내려 뒷좌석에 앉히면서 빙그레 웃었다.
“사랑한다, 정혁아.”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기 있어요?
“여기에 더 긴 말이 필요한가?”
과묵하신 양반답게 매번 짧고 굵게, 묵직한 돌직구로 승부를 보신단 말이지.
등가교환의 법칙이랬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돌직구를 돌려주기로 했다.
“나도 사랑해요, 아빠.”
쪽.
받은 뽀뽀에 비해 부족한 횟수였는데도.
아버지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한 표정을 지어주셨다.
예린이와는 또 다른, 부드러운 미소였다.
“저도 아빠처럼 되고 싶어서 노력 중이에요.”“노력?”
“해피엔딩을 꿈꾸거든요.”
나는 또 검지로 내 가슴팍을 콕 찔렀다.
내가 바로 두 분 사랑의 결실이다.
“여기에 더 긴 말, 필요하세요?”
“없지. 하하하.”
아버지는 드물게 유쾌하게 웃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딱 하나, 아빠를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게 있어.”
“그게 뭔데요?”
“네 엄마를 놓치고 아빠는 전국 방방곡곡을 이 잡듯이 뒤졌어. 넌 부디 그것만은 닮지 마라.”
“······.”
잠깐.
웨이러 미닛!
“네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말 한마디 없이 깨끗하게 증발해 버렸거든. 아빠 까딱하면 탈영할 뻔했다.”
맙소사.
왜 이걸 지금에서야 깨달았지?
“중동까지 뒤지고 다녔다면 말 다 했지? 네 엄마를 다시 만나기까지 7년이나 걸렸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7년이면 감지덕지죠. 전 12년이었어요, 아버지.’
그마저도 불륜 오해, 방화 이별, 베드엔딩이었단 말이죠.
그뿐인 줄 아세요?
‘아버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생긴 거 아니에요. 저는 딸이었거든요.’
그마저도 친딸한테 아버지 소리 한번 못 들어봤거든요.
하, 인생······.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 아버지 닮은 거 확실한 것 같습니다.’
에라이, 이 빌어먹을 천벌!
* * *
평창동 할아버지 댁 주차장.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자,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이 있었다.
“부회장님, 오셨습니까? 정혁 도련님도 함께 오셨군요.”
“민 사장님? 울산 공장으로 내려가신 줄 알았습니다만.”
“안 그래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 방송을 듣지 않았습니까? 기함해서 바로 차 돌려 온 참입니다.”
느릿하게 주차장으로 진입하던 고급 세단이 속도를 더욱 줄였다.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고, 태성호텔 황 사장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부회장님, 정혁 도련님, 민 사장님.”
“황 사장님께서도 라디오 듣고 오셨습니까?”
“전 회장님께 전화 받고 온 건데요?”
태성호텔 황 사장은 즉시 차에서 내렸다.
“솔직히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이렇게 전면적으로 즉각적인 부동산 규제를 때려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심각한 얼굴이었다.
“조만간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와 아파트 난립 건설에 철퇴를 내릴 거란 얘기는 쉬쉬거리며 암암리에 나돌긴 했습니다만.”
마른세수가 제법 거칠었다.
“8.3 사채동결 조치 때도 사채시장을 비롯해 전(全) 금융권이 발칵 뒤집혔잖습니까. 아마 이번엔 건설사가 그 후폭풍을······.”
태성호텔 황 사장은 말끝을 흐려야 했다.
아버지가 태성건설 전임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태성전자 민 사장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태성건설도 건설주 파동에 휘말리게 될 겁니다. 타격이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되고요.”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닐 듯싶습니다.”
“그렇기에 아버지께서 측근들을 긴급 소집하는 것이겠지요.”“음, 확실히 이런 경우는 그리 흔치 않긴 합니다만.”
태성전자 민 사장님이 이번엔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태성의 브레인께서 함께해 주신다니 이것 참 든든하군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세이경청(洗耳傾聽)하겠습니다.”
깍듯한 태도,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그걸 보고 태성호텔 황 사장은 급히 손을 휘저었다.
“에헤이, 에헤이! 민 사장님, 우리 그러지 맙시다.”
“뭘 말입니까?”
“어린 도련님 어깨에 함부로 짐 올리지 말잔 말입니다.”
태성호텔 황 사장은 짐짓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어린 몸에 자꾸 무거운 걸 들리는 버릇하면 눌려서 키 안 자랍니다.”
황 사장은 굳이 첨언을 덧붙였다.
“장차 누구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하실 분이 아닙니까. 지금은 회장님 곁에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겪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십니다.”
하회탈 눈웃음이란 게 이런 거였구만.
“도련님, 크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규제란 철퇴를 꺼내 들었어도, 태성건설은 호락호락 쉽사리 찢겨나가진 않을 겁니다.”
태성호텔 황 사장은 은근슬쩍 물었다.
“크흠, 흠! 뭐···, 듣자 하니 태성건설은 강남 지하철역 근방의 체비지를 제법 많이······.”
“이참에 태성호텔 부지를 싸게 팔아달라고요?”
“하하하하. 아직 말도 다 안 끝냈는데, 뭘 또 이렇게까지 찰떡처럼 알아들으실까. 크흠, 흠! ······역시 안 됩니까?”
능구렁이 같기는!
“됐거든요?”
태성호텔 황 사장은 물러서지 않고 바짝 붙어왔다.
“이번 규제로 미분양 아파트를 잔뜩 떠안은 대형건설사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할 겁니다.”
자연히 목소리는 더 은근해졌다.
“파산을 면하려면 눈물을 머금고 금싸라기땅이라도 내놓아야 할 테고요.”
벌써 거기까지 계산기 튕기셨구만?
“크흠, 흠! 그렇다고 태성건설이 당장 무너지기야 하겠냐마는······.”
“아무리 배고파도 장어가 장어꼬리를 잘라 먹으면 안 되죠.”
아무리 이 바닥이 돈이면 장땡, 돈 때문에 먹고 먹히는 아비규환의 전쟁터라지만.
그래도 같은 식구끼리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차라리 노리려면 남의 밥그릇을, 한술 더 떠서 이왕이면 더 큰 걸 노리셔야죠.”
“더 큰 거?”
“우광건설이요.”
“······!”
태성호텔 황 사장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태성전자 민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도련님은 우광건설이 보유한 강남의 아파트, 혹은 호텔 부지를······.”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생각보다 통이 영 작으시네요.”
“그럼 정말로 우광건설을, 통째로?”
“안 될 이유 있나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 그래도 우광건설은 우광화학 방화 사건으로 인해 타격을 크게 받았어요.”
“우광건설 사장을 비롯해 임원들은 중정과 검찰청으로 줄줄이 끌려갔고, 우광건설 주식은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지요.”
“폭풍우에 휘말렸을 땐 유능한 선장과 베테랑 선원들의 존재 여부가 배의 명운을 좌우하기 마련이에요.”
나는 물음을 던졌다.
“건설주 파동이란 폭풍우 앞에서 다른 대형 건설사와 달리 애송이 임원진밖에 없는 우광건설은 어떻게 될까요?”
태성전자 민 사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더욱 큰 낙폭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할 겁니다.”
“아무렴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들고 있던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돌변하게 생겼는데, 미쳤다고 망한 주식을 끌어안고 같이 침몰하려 하겠습니까?”
“즉시 내던져야죠.”
그래서 결론!
“그러니 바로 이럴 때, 우광건설을 헐값, 아니, 똥값에 주워가려고요.”
나는 씩 웃었다.
“당시 우광건설의 주식 폭락은 오너 리스크 때문이었지, 실질적인 경영 혹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광건설 주식이 고꾸라지는 와중에도 우광아파트는 여전히 잘 팔렸겠지요.”
“어쨌거나 우광건설의 수뇌부가 일거에 잡혀들어가면서 우광의 신규 아파트 사업은 올스톱 됐어요. 덕분에 미분양 문제까지 깨끗하게 털어버린 후란 말이죠?”
“······!”
그렇게 놀란 눈 할 것 없습니다.
민 사장과 황 사장은 번갈아 가며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결국 실질적인 미분양 리스크도 하나 없는 건설사가!”
“베테랑 수뇌부가 텅 비었다는 경영 리스크 때문에!”
“유래없는 헐값, 아니, 똥값으로 폭락한다는 거네요?”
빙고!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역시 엘리트 오브 엘리트 계열사 사장님들!
정답을 맞히겠다는 의욕적인 눈빛부터가 남다르시네.
“우광아파트를 짓기 위해 우광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주요 도심지의 금싸라기 땅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내가 살던 구로동 판자촌을 강제로 밀어버린 것도 우광건설이었다.
그동안 정경유착으로 눈 막고, 귀 막아 가면서 욕심껏 끌어모은 서울의 땅들!
지난 3년 사이 서울의 땅값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다.
태성호텔 황 사장이 대뜸 휘파람부터 불었다.
“와우!”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기 제대로 때린 눈빛이었다.
< 더 큰 걸 노리셔야죠 > 끝
ⓒ 오소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