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61)
재벌집 만렙 아들-261화(261/416)
< 꿰뚫어 본 자 >
휘익!
휘파람 소리는 또 다른 곳에서도 들려왔다.
태성에너지 윤 사장이 주차장과 저택을 잇는 후문을 열며 걸어 나왔다.
“이게 정녕 여덟 살 도련님의 식견이라니. 허,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요.”
“윤 사장님? 심 사장님도?”
“부회장님, 도련님, 두 분 사장님도 오셨군요.”
태성에너지 윤 사장 곁에는 심 사장도 함께였다.
심 사장은 손끝으로 담뱃재를 탁탁 떨쳐내면서 뿌듯하게 웃었다.
“그것 보십시오, 윤 사장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의기양양한 목소리였다.
“우리 정혁 도련님이라면 이번 기회에 우광건설 사냥부터 나설 것이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여기 삼만 원! 가져가시죠!”
이 양반들이 느닷없이 왜 후문에서 튀어나왔나 했더니.
둘은 즉시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구고 재빨리 구둣발로 비벼 껐다.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허리를 쭉 폈다.
“주차장에서 오갈 만한 대화가 아닌 듯합니다만, 말 나온 김에 도련님께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얼마든지요.”
“방금 정혁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의견엔 아주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대통령님이 걸린다는 말이죠?”
“······허어?”
태성에너지 윤 사장이 몹시 당황한 듯 크게 움찔했다.
심 사장은 그런 윤 사장을 바라보며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것 보십시오, 윤 사장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에라이, 여기 또 삼만 원! 됐습니까?”
이미 둘이 심도 있게 논하던 주제였군.
태성에너지 윤 사장이 미간을 구겼다.
“그러는 심 사장님도 뾰족한 수가 없긴 저랑 똑같잖습니까. 답이 없으니까 같이 내내 줄담배를 태워놓고는?”
“답이 없다니요? 세상에 답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라고 정혁 도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심 사장은 날 가리키며 뻔뻔하게 말했다.
“저는 그저 정혁 도련님이라면 어떤 답을 찾아내셨을까 궁리해 봤을 뿐입니다만?”
“······.”
“보아하니 도련님께선 이미 해결 방안을 찾으신 것 같군요.”
“그게 뭐 별거라고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참지 못하고 빠르게 말문을 열었다.
“정혁 도련님,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지난번에 청와대의 주인께서는 우광의 김대식 회장과 회장님을 따로 불러서······.”
다 아는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
“요는 이번에도 대통령님께서 직접 나서서 우광건설 인수를 막을 것이냐가 문제란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결국 쓸데없이 헛물켜다 본전도 못 찾고, 괜히 우광과 청와대에 찍힐까 우려된다는 말이고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입 다물고 물러나시려고요? 한 번 찔러볼 생각도 못 하고?”
“······.”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입을 다물었고, 심 사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것 보십시오, 윤 사장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젠장, 알았습니다! 삼만 원!”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신경질적으로 심 사장의 양복 앞주머니에 삼만 원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입을 열었다.
“도련님, 우광건설은 청와대의 주인께서 비자금 세탁처로 남겨놓길 바라신 곳입니다.”
알고 있다.
“이건 청와대의 주인께서 먼저 제안했고, 태성이 승낙했으며, 우광이 승복했던 일입니다.”
대통령이 우광의 다른 계열사들을 대신 떼어다 주면서 우광건설을 포기하라 이른 바 있다.
그렇게 얻은 게 우광조선, 자동차, 중장비, 연구소, 병원, 제약이었다.
“그 말인즉, 우광건설은 섣불리 건들기엔 조금 무모한 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칫 청와대 주인의 분노를 불러올 수 있어서 말입니다.”
“글쎄요. 그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상황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데요?”
“달라지다니요?”
“보세요. 부동산 규제로 인해 건설사 간판을 달고 있는 회사라면 전부 곡소리를 내게 생겼어요.”
나는 슬쩍 덧붙였다.
“그때는 우광건설 하나만 주저앉았다고 하면, 지금은 모두가 함께 가라앉는 배 위에 올랐단 말이죠?”
“그렇지요.”
“이는 대통령의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것을 뜻해요. 굳이 우광이 아니더라도 정치자금을 세탁해 주겠단 건설사는 많거든요.”
나는 씩 웃었다.
“그래서! 대통령님은 이번엔 우광건설을 나 몰라라 해야 해요.”
“······예?”
그렇게 동공에 지진을 낼 필요는 없는데.
다들 이해력이 좋다고 내가 너무 건너 뛰었나?
나는 적당히 되짚어주기로 했다.
“이번 부동산 규제 정책은 명분, 목표, 목적까지 아주 확실해요.”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는 명분, 이를 통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겠다는 목표, 대선과 총선 승리를 통한 장기 집권이라는 최종 목적.”
그래서 결론!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확실하게 이기려면 지도부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해요. 그걸 처음부터 정해진 결론이라고 친다면, 여기서 문제!”
사장들의 눈빛이 도로 반짝반짝해졌다.
“만일 대통령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다들 솔깃한 표정이었다.
“건설주 폭락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건설사 사장들을 불러 모아서 큰소리 좀 내볼까?”
재벌 길들이기.
“이참에 재벌그룹에 빚을 달아두면 좋고, 대선자금까지 왕창 걷으면 더 좋고.”
재벌 삥 뜯기.
거기에 하나 더.
나였다면 한술 더 떠서 이것까지 노렸을 것이다.
“어차피 부동산 규제를 발표하면 건설주 폭락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참에 숟가락을 살짝 얹어서 이 기회에 건설주로 정치자금을 살짝 긁어내 볼까?”
“주가 조작?”
다들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일일이 귀찮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이거 아주 편하구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요.”
“이러다가 62년 증권파동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
증권파동은 이번 정권의 대표적인 4대 부정부패 사건 중 하나였다.
중정이 증권계에서 이름난 투기꾼 윤응산과 결탁하여 주가조작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한 사건.
이 일로 극심한 주가 폭등이 일어났고, 이를 의심한 투자자들이 주식 매도를 시작하자, 자금 부족으로 인해 수도결제 불능 사태에 직면한다.
태성전자 민 사장은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그때 증권파동으로 인해 주식 시장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본 줄 아십니까?”
“결국 은행을 동원하고서도 피해 금액은 무려 139억 6천만 환에 달했습니다.”
21세기 시세로 따지자면 약 60조 규모였다.
이를 기획한 김재평의 발언은 다음과 같았다.
-정치적으로 돈을 쓸데가 많은데 그런 정치자금을 국고금으로 쓸 수는 없으니 그래서 증권시장에서 조달하였습니다.
-원래 증권시장은 투기꾼들이 모이는 곳 아닙니까. 재미 보는 사람도 있고 손해 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죠.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정보기관이 부족한 공작비를 보충하는 방법이었고, 우리는 그 방법을 모방했을 뿐입니다.
다들 한 마디씩 보탰다.
“증권파동으로 경제적인 해악은 말도 못 합니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투기장이며 위험도가 높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죠.”
“거의 10년 동안이나 주식시장이 정상화되지 못했습니다. 기업들의 성장세가 확 꺾인 건 당연한 결과고요.”
“결국 기업들은 자금조달을 주식시장이 아니라 은행 대출, 사채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엄청난 이자율에 자금이 경색되니, 시설 투자를 꺼리게 되고, 대외경쟁력은 뒤떨어지고.”
그래서 정부는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이후 8.3 사채 동결 조치를 발효했다.
사채를 한순간에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고, 기업들의 부채를 강제로 털어낸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묻겠어요. 제가 꼽은 세 가지 부수적인 효과를 노린다면 대통령님은 우광건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봐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렁찬 대답이 즉시 뒤따랐다.
태성전자 민 사장이 씩 웃었다.
“재벌그룹을 확실하게 단속하려면 본보기가 필요하니까요.”
그다음은 태성호텔 황 사장이 받았다.
“우광건설은 이미 국민들에게 찍힌 놈이라 정부가 마구 후드려 패도 눈치 볼 것도 없습니다.”
태성에너지 윤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는 폭락 장에 재벌그룹 건설사 지분을 끌어모았다가 넉넉한 정치자금으로 뜯어먹겠군요. 은밀하게 오가는 돈세탁이라 국민들의 비난을 감수할 필요도 없잖습니까.”
심 사장은 무릎을 탁 쳤다.
“우광의 김 회장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우광건설이라도 내놓으며 살려달라고 빌지 않으면 줄도산하게 생겼거든요.”
나는 씩 웃었다.
“태성과 쟁쟁하게 경쟁하던 국내 굴지의 건설사의 몰락과 국내 최대의 메이저 건설사의 합병!”
나는 아버지와 최측근 사장들까지 한 명씩 눈을 마주쳤다.
“어때요?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만큼 극적인 결과가 나왔으니, 대통령님도 퍽 만족하실 것 같죠?”
“예!”
대통령은 나라를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해낸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게 대통령이 우광건설을 나 몰라라 해야 하는 이유이므로.
태성이 우광건설을 거두어 가는 것을 몹시 기꺼워하며 반길 것이다.
“하하하하! 역시 우리 정혁 도련님!”
심 사장이 몹시 기꺼워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 심원철은 도련님께서 이번 기회에 우광건설을 제일 먼저 노리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입가에도 비슷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내 미소를 깨끗하게 지워내며 입을 열었다.
“늦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저택에 들어가서 하시죠.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예. 가시죠.”
다들 군말 없이 따랐다.
심 사장은 몹시 희희낙락한 걸음으로 내 곁에 바짝 다가왔다.
내 최측근을 자처하면서.
그래서 나도 심 사장에게 한껏 가까이 붙어 섰다.
“심 사장님, 잠깐만 귀 좀.”
“예, 도련님. 얼마든지요.”
심 사장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나는 심 사장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제가 이번에 우광건설을 제일 먼저 노릴 것이라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내 목소리는 어느덧 한껏 낮아진 후였다.
‘처음이군. 내가 짜놓은 판을 미리 꿰뚫어 보는 사람이 나타난 것은.’
신림동 개미지옥이란 이름이 울겠는데?
문득 어디서 마각이 드러났는지 궁금해졌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길었던 탓인가. 너무 안일했나.’
인정했다.
반성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절로 긴장이 되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하니 이번 생에도 역시나 또 내 최측근 중에 배신자가······.
“도련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도련님의 뒤끝을 믿었습니다.”
······음?
거기서 갑자기 뒤끝이란 단어는 왜 튀어나옵니까?
“도련님께서는 태성화학 인수계약서를 작성하실 때, 이미 우광건설과 우광증권을 함께 엮어서 날름 잡아먹을 계획을 짜놓으셨잖습니까?”
그랬었지.
“도련님은 한 번 눈독 들인 목표는 절대로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으신 분이고.”
물론 그것도 그렇긴 하고.
“받은 것 이상으로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받아내시는 분이시니.”
그 또한 부정할 수 없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로 흘려보내실 분이 아니지요.”
그렇게 내가 우광건설을 집어삼킬 것을, 또한 우광증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고?
심 사장의 목소리가 더욱 은근해졌다.
“그래서 우광증권은 언제 되찾아 오실 작정이십니까?”
마침내 나는 눈을 가늘게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심 사장님,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조용히 엄지를 들어 올렸다.
“역시 심 사장님!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이리 찰떡같이 알아주실 줄이야!”
“과찬이십니다. 하하하하! 이 정도는 되어야 도련님의 최측근이라 자부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주차를 마친 유종태는 자신만만하게 브이를 그리던 손을 툭 떨궜다.
서글픈 눈으로 제 손가락을 내려다본 유종태.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3개를 펼치고 있었다.
* * *
“뭐야?”
쌍화차를 마시다 말고, 할아버지가 입을 떡 벌렸다.
“이번 기회에 우광건설을 먹어 치우자고?”
세상 황당한 소리를 들었단 표정이었다.
하지만 최측근들과 말이 오갈수록 할아버지의 표정은 점점 환해지고, 진지해졌다.
마침내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할아버지는 뿌듯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 그래,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광그룹 김 회장을 인수 테이블에 앉힐 작정이냐?”
“아주 건실하고, 깔끔하고, 뒤탈 없는 방법을 쓸 생각이에요.”
나도 이젠 양지로 나왔으니까.
“이를테면?”
“협박, 날조, 선동, 압박, 후려치기, 갈라치기?”
“······.”
어라?
다들 왜 그런 표정이죠?
인수 합병의 기본도 모르는 애송이들처럼?
< 꿰뚫어 본 자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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