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62)
재벌집 만렙 아들-262화(262/416)
< 적임자는 따로 있다 >
나는 혀를 찼다.
“왜요? 그게 이 바닥 인수합병의 기본 아닌가요?”
나는 일부러 손가락을 꼽았다.
협박, 날조, 선동, 압박, 후려치기, 갈라치기.
“단어가 조금 험악하게 들려서 그렇지, 실상 문제가 될 건 없잖아요.”
내가 왜 신림동 개미지옥이라고 불렸는데?
투자할 회사를 고르고,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불리고, 그걸 되팔아서 많은 차익을 남기고, 그렇게 쌓인 자금으로 다시 회사에 투자해 키워내고.
그게 내가 대한민국 지하금융계 다섯 거물 중 하나가 된 비결이었다.
“지금껏 태성이 계열사를 몇 개나 인수했었죠? 할아버지 손으로 직접 설립한 회사보다 인수 합병으로 늘린 계열사가 더 많다면서요?”
나는 할아버지와 계열사 사장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모두 태성의 계열사를 늘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 공신들이었다.
“지금까지 인수 합병할 때 언론 플레이 때문에 협상이 유불리가 갈린 경험, 없으세요?”
“많습니다.”
“언론 플레이란 게 별거예요? 날조, 선동, 압박, 갈라치기의 다른 이름이죠. 제 말이 틀려요?”
“도련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나는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대통령님과 담판 지었을 때, 우광의 본사에 쳐들어가서 인수 합병과 관련된 일을 마무리 지었을 때. 제대로 압박하고, 협박하고, 후려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크흠!”
“어쩌면 태성은 여태 손가락만 빨면서 언제 인수 절차 다 끝내나, 마냥 기다려야 했을지도 몰라요. 아니에요?”
“크흐흠!”
대통령이 결정을 내렸고, 할아버지가 승낙했고, 우광이 승복한 일인데도.
저쪽은 온갖 더럽고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아득바득 버텼다.
이득이 걸린 일이었으니까.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 싫었을 테니까.
우리가 강제력을 행사할 방법도 없으니까.
생각할수록 썩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새로 장만할 때야 웃돈 얹어가며 비싸게 들여오지, 시장에 중고 매물로 나온 순간 헐값 되기 마련이에요. 그 헐값을 어떻게 똥값으로 끌어내리느냐가 바로 당면한 과제이자, 유능과 무능을 가르는 기준 아니던가요?”
전당포나, 중고차 시장이나, M&A 시장이나.
보고 있으면 돌아가는 구조는 똑같다니까?
내가 그 바닥에서 평생을 굴러먹던 사람이거든.
“그런 마당에 정정당당? 호구 되겠다는 소리와 일맥상통인데요? 그러니 그런 말은 경영 수업이 아닌 도덕, 윤리 수업에서 배울게요.”
썩은 웃음조차 싹 지워냈다.
나는 진지했다.
“그렇다고 우광그룹 회장님을 청계산에 끌고 가서 일대일로 면담할 순 없잖아요?”
뒷골목 세계라면 그게 기본인 거고.
그나마 내가 양지에 나오니까 이 정도다!
언론 플레이, 강제력 및 영향력 행사, 돈지랄!
다들 밑밥 칠 때 이 정도는 하고 들어가잖아?
이보다 어떻게 더 건실하고, 깔끔하고, 뒤탈 없는 방법이 있을 수 있지?
“어차피 닥친 건설주 파동, 예견되는 정부의 언론 플레이, 건설주 폭락에 가장 불리해진 우광건설의 입지예요. 우리가 먹잇감이 된 우광건설을 봐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돈 때문에 먹고 먹히는 게 당연한, 이 바닥에서 통용되는 진리였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하고, 동원할 수 있는 건 전부 동원해서! 전 우광건설을 먹어 치울 생각이에요.”
나는 검지를 들었다.
“목적은 간단해요. 태성건설이 국내 최고의 건설사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내키지 않으면 마세요. 다만 정의와 시장 질서를 운운하며 호구가 되라고 가르치실 작정이라면 미리 정중하게 사양하겠어요.”
할 말은 다 했다.
나는 종종종 걸어가서 따로 마련해 놓은 어린이용 소파에 털썩 앉았다.
짝. 짝. 짝. 짝.
태성전자 민 사장이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느리게 박수 쳤다.
“역시. 훌륭합니다. 심 사장님 밑에서 제대로 배우셨군요.”
태성호텔 황 사장도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주 바람직한 경영인의 자세입니다. 이 바닥에서 도덕과 정의만 따지고 들면 손가락 빨다 굶어 죽기 딱 좋습니다.”
심 사장은 크게 웃었다.
“그것 보십시오, 윤 사장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웬만한 임원들을 찜 쪄드실 만한 분이라고 했지요?”
“에잇! 자요, 가져가세요! 삼만 원!”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신경질적으로 지갑을 열어 삼만 원을 심 사장의 양복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그러더니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피식 웃었다.
“심 사장이 답지 않게 침 튀겨 가며 하도 극찬에 극찬을 거듭하기에, 도통 믿기지가 않았거든요. 허허, 그런데 어째 지갑은 탈탈 털렸는데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태성전자 민 사장이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어떻습니까, 회장님. 이만하면 우광건설 인수 합병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도 한마디 덧붙였다.
“안 그래도 우광건설은 주식 시장에서 저평가되었습니다. 거기에 바닥까지 폭락한다면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잡아야죠. 태성건설에 다시 이만한 호기(好機)가 또 오리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침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진행시켜!”
아, 저 멘트!
언젠간 나도 한번 꼭 해보리라 다짐했던 말이었는데!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먼저 하셨어!
나는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할아버지, 하나 더요.”
“뭔데?”
“이 일을 확실하게 성사시키려면 미리 기름칠해 둘 필요가 있어요.”
미리 칠해놓는 기름칠이 효과가 제일 좋거든.
“누구에게? 설마 대통령 각하께?”
“가뜩이나 대선과 부동산 규제 반발, 건설주 파동으로 신경이 곤두섰을 분께요? 당장 정경유착으로 잡혀갈 일 있어요?”
나는 씩 웃었다.
“장수를 흔들려면 말을 쏴야죠.”
“오호라!”
할아버지가 손바닥에 주먹을 탁 쳤다.
“경제 문제를 논할 최측근이라면 청와대 비서실장이지!”
“아니거든요?”
잘못 짚었다!
적임자는 따로 있다.
“그럼 청와대 경호실장?”
연속 헛발질이라고?
“그럼 청와대 경제수석? 내무부 장관, 아니, 재무부 장관?”
“······.”
“건설과 관련된 일이니 역시 건설부 장관······, 은 왠지 아닌 것 같고. 그럼 상공부 장관인가?”
“······할아버지?”
“으음, 설마하니 여당 총재는 아니겠지? 이거 국회까지 가야 하는 사안인가?”
“잠깐만요. 웨이러 미닛!”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지금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꿔본답시고 농담하시는 건가요?”
“······.”
아니,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계열사 사장들은 다 어디 가고.
왜 다들 헛기침하며 떨리는 동공으로 허공을 응시하기 시작하냐.
심지어 아버지와 심 사장님까지 모른 척 딴청을 피웠다.
문득 새삼스럽게 깨닫는 바가 있어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태성은 기술력 좋고 사업도 잘하는 데 반해, 정치질은 더럽게 못한다더니. 여기 모인 최측근들도 예외는 아니었구만!’
에라이!
나는 톡 까놓고 말하기로 했다.
“중정부장에게 가셔야죠.”
“중정부장?”
“중정부장이요?”
“건설주 파동에 중정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고요?”
하나같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워놓고 있었다.
나는 차근차근 징검다리를 놓아주기로 했다.
“전(前) 중정부장이 경질되고 현(現) 중정부장이 부임하게 된 이유가 뭐죠?”
“그야 4대 중정부장이었던 김형원을 회유해 코라이 게이트를 닫기 위해서였지요.”
“그럼 중정부장이 그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김형원이 대통령의 비자금을 들고 튀었기 때문입니다. 무지막지한 액수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문제! 과연 중정부장은 김형원에게서 비자금을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
태성호텔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김형원이 헛소리만 하다가 허망하게 뒈지는 바람에, 들고 날랐던 비자금은 한 푼도 못 건졌다더군요.”
“그럼 김형원은 죽었고, 비자금마저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한 중정부장을, 대통령님이 지금 그 자리에 계속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
현(現) 중정부장이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권력자로 급부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애초에 중정부장이란 자리가 실권을 가진 요직 중의 요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은밀한 칼이자, 정치공작의 요람이며, 정치자금을 확보할 창구로 쓰였다.
“중정부장은 지금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대통령에게 확실하게 보여줘야 해요. 그의 쓸모를.”
태성전자 민 사장은 무릎을 탁 쳤다.
“아까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건설주 파동에 따른 정치자금 확보!”
“네. 중정부장에게는 실책을 만회하고, 대통령의 총애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거예요.”
태성에너지 윤 사장이 태성전자 민 사장의 뒤를 받았다.
“청와대 주인의 재벌 길들이기!”
“재벌들을 불러 주식시장 교란에 책임을 물을 때, 육체적인 위협과 실질적인 압력을 동시에 행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중정이죠.”
그래서 중정은 대통령의 칼이라 불렸다.
중정에 끌려가는 자들?
재벌가 높으신 분들도 예외는 아니거든.
“할아버지가 중정부장님을 만나 실책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슬쩍 찔러주시면 돼요.”
나는 씩 웃었다.
“우리는 해결 방법만 제시할 뿐, 실행 여부의 결정은 그쪽 소관이거든요. 이참에 중정부장 앞으로 빚 하나 더 달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중정부장은 현재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이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다.
“오가는 성의 속에 싹트는 신뢰! 중정부장은 태성이 그동안 보인 성의를 무시하진 못할 거예요.”
이건 윈윈의 거래거든.
“회장님.”
태성전자 민 사장이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건 태성호텔 황 사장도, 태성에너지 윤 사장도, 심 사장과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결단을 촉구하는 측근들의 은근한 재촉.
마침내 할아버지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좋다!”
호탕한 목소리였다.
“그 일은 내게 맡겨라! 오랜만에 중정부장께 근사한 저녁을 대접해야겠다!”
오케이, 통과.
“할아버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았잖아요.”
“으음.”
“태성건설 사장으로 누구를 앉힐 것인가.”
태성건설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그룹 부회장으로 발령받으면서 공석이 된 자리였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날 보는 태성전자 민 사장의 눈이 묘해졌다.
기대와 기쁨, 놀람과 감탄이 함께 빛났다.
“회장님께서 괜히 승계를 서두르는 게 아니었군요.”
태성호텔 황 사장은 껄껄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아니, 우리가 이곳에 모인 진짜 이유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태성에너지 윤 사장만 ‘맙소사!’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것 보십시오, 윤 사장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또 삼만 원이라니!”
“후후후.”
“거참 야무지게도 뜯어가시는군요. 후우!”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를 보는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묻어났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어떻게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되신 도련님께서······.”
“그것 보십시오, 윤 사장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 좀! 거 작작 좀 뜯어갑시다! 이건 따로 내기한 적 없잖습니까?”
“누가 뭐래요?”
심 사장은 몹시 거만하게 어깨를 으쓱댔다.
“전 그저 우리 정혁 도련님을 지켜보고 있으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뜻일 뿐인데요?”
“아오, 뭐 이런 진······ 우읍?”
심 사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의 입에 보약 팩을 물려주었다.
“쓸데없이 혈압 올려서 뭐 하시려고요. 그럴 시간에 보약이나 한 팩 드셔보세요.”
“허어?”
“자연사해야죠. 과로사와 돌연사는 면해야죠.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쪽쪽 빨아 드세요. 몸에 좋은 겁니다.”
“이봐요, 심 사장님.”
“이번에도 못 믿겠으면 우리 내기, 한 번 더 할까요?”
“상등품 보약인가 봅니다? 아우, 쓰다! 엄청나게 쓴 거 보니까 몸에 좋은 거 맞네요.”
태성에너지 윤 사장이 모른 척 얌전히 보약을 쪽쪽 빨아 먹기 시작했다.
태성그룹 최고 독설가라는 악명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심 사장이 재빠르게 보약 팩을 돌렸다.
심 사장은 영업맨의 얼굴을 한 채,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보약과 함께 은근슬쩍 용건을 건넸다.
“회장님, 혹시 심중에 예정해 두신 인사가 따로 있으십니까?”
“할아버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한번 추천해도 될까요?”
태성건설 사장 자리는 보통 자리가 아니다.
최소 10년간 굵직한 역할이 예정된, 태성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로 성장해 줘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정치권의 똥물을 회사에까지 튀기지는 않으면서, 어떻게든 권력을 이용해 이득을 도모할 만큼 유능하고, 충성심 넘치는 이가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적임자는 따로 있다.
“추천? 누구를?”
“김영걸 비서님이요.”
< 적임자는 따로 있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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