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63)
재벌집 만렙 아들-263화(263/416)
< 내가 점찍었던 사내 >
다들 눈을 껌뻑이면서 되물었다.
“김 비서를······ 말입니까?”
“유능하신 분이잖아요. 여러모로.”
다들 고개를 끄덕여서 내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김 비서라면 태성건설을 잘 이끌 만하지요.”
“실제로 김 비서는 그룹 총괄 비서실장이 되기 전에 태성건설과 태성시멘트의 임원이었지 않았습니까?”
태성그룹은 태성시멘트와 태성건설을 밑바탕으로 여기까지 커왔다.
김 비서는 그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최측근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 비서는 일찍이 임원으로서도 이름깨나 날렸었지요?”
“젊은 시절부터 기획과 재무 쪽으로 손꼽히던 친구 아닙니까.”
“확실히 그룹 총괄 비서 일을 수행하기엔 그 수완이 아깝다 싶은 인재이긴 합니다.”
내가 수첩에 태성건설 차기 사장 후보로 세 명의 이름을 적었을 때.
세 명의 이름이 다 황금빛으로 빛났다.
김 비서도 그 세 명 중 하나였다.
‘솔직히 내 마음속 1순위는 김 비서가 아니었지만, 건설주 파동과 맞물린 시점에서 내 원픽은 반발이 클 것이라 예상되니. 어쩔 수 없지.’
그래서 1순위인 적임자를 점찍어두고도.
눈치껏 안전하게 2순위인 김 비서를 추천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또 있다.
‘솔직히 김 비서, 몹시 탐난다. 이대로 비서로 썩기엔 능력이 너무 아깝지.’
그러니 이참에 태성건설의 사장으로서 아버지의 힘이 되어준다면 좋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들 김 비서님이 태성건설을 맡는 데 크게 반대하지 않겠다, 이 말씀이죠?”
“예.”
“솔직히 김 비서보다 태성건설을 잘 이끌 만한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회장님도 태성건설을 차윤성 사장님이 아니라 김 비서에게 맡기고자 하셨잖습니까?”
음? 그런 일이 있었나?
태성그룹 보고서에는 그런 문구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묻는 말입니다만, 그 제안은 왜 불발된 겁니까?”
다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회장님, 어쩌시렵니까?”
“김 비서는 빼.”
할아버지는 딱 잘라 거절했다.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요?”
“김 비서가 이미 거듭 사양한 일이야.”
할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콧김을 뿜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야.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떠넘길 생각 없다.”
“할아버지 사람이라서 내어주기 싫은 건 아니고요?”
“내 사람이니까 이왕이면 더 좋은 자리, 더 중한 계열사 사장 자리에 앉히고 싶었지!”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태성건설 사장도 싫다, 태성시멘트 사장도 싫다, 태성광업 사장도 싫다, 태성목재 사장도 싫다! 그러더니 비서 일이나 하겠댄다! 그 능력, 그 수완에, 내가 기가 막혀서 원!”
이상한데요?
“번번이 계열사 사장 자리를 거절한 이유가 뭐래요?”
“자세하게는 안 물어봤다.”
“왜요?”
“개인적인 고충이니 묻지 말아달래서.”
남들 다 좋다는 평양감사를 마다할 땐, 웬만한 이유가 아니란 소리다.
미치지 않고서야.
부와 명예가 예정된 영전을 거절해?
흔치 않은 경우였다.
“그럼 그 이유부터 먼저 들어봐야겠네요.”
“좋다!”
“좋습니다!”
“그럽시다!”
만장일치였다.
* * *
김 비서는 은테 안경을 추켜올렸다.
“거절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알아. 강요할 생각은 없어.”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앉아! 오늘은 꼭 그 이유를 들어봐야겠으니까!”
할아버지가 나를 가리켰다.
“태성건설 사장 자리, 정혁이가 직접 추천했어.”
“정혁 도련님께서 저를,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갈 때 가더라도 최소한의 해명은 하고 가야지. 정혁이를 실망시킬 셈이야?”
김 비서가 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저를 높이 평가해주신 점,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좋은 제안을 거절하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처럼 깍듯한 태도였다.
“깜냥이 안 됩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김 비서의 이름자가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걸 내가 다 봤는데.
“태성건설 사장으로 김 비서님을 꼽은 건 저 혼자만이 아니에요. 그럼 여기 계신 사장님들 눈도 죄다 똥눈이다, 이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럼 예전에 태성건설이나 태성시멘트에서 무슨 큰 사고라도 당하셨어요?”
“그것도 아닙니다.”
김 비서는 긴 망설임 끝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흙먼지, 돌가루, 석탄 가루가 지긋지긋해서입니다.”
상상도 못 했던 거절 사유였다.
“해당 계열사 사장 자리에 앉으면 현장에서 구르는 일이 허다하잖습니까? 종일 아무리 쓸고 닦고 씻고 털어내고 빨아봐도 끝이 없더군요.”
김 비서는 치를 떨었다.
“제 아버지는 탄광촌 광부셨습니다. 결국 결벽증이 있던 어머니는 청소하다 쓰러져 돌아가셨죠. 과로사라고 하더군요. 유언이 뭔지 아십니까?”
김 비서는 쓰게 웃었다.
“흙먼지, 돌가루, 석탄 가루가 지긋지긋하구나. 영걸아,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김 비서는 할아버지의 어깨를 툭툭 털었다.
매의 눈으로 내려앉은 먼지를 포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쩝니까? 전 어머니를 닮은 것을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김 비서를 훑어보았다.
잔머리 한 올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얼룩 하나 없이 반듯한 양복은 베일 것처럼 칼각 잡힌 주름이 돋보였다.
언제나처럼 김 비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는 결벽증에 그치지 않고 불면증과 강박증까지 있다 보니 현장을 돌 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더군요. 하지만 회장님께 입은 은혜는 갚아야겠고······.”
김 비서는 진저리를 치며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모양이었다.
“변명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김 비서는 손수건을 도로 반듯하게 선 맞추어 칼각을 잡았다.
내친김에 테이블 위에 올려진 미용티슈의 주름까지 단번에 폈다.
할아버지가 내려놓은 쌍화차 잔이 만들어놓은 흔적도 깔끔하게 훔쳐냈다.
속도, 힘 배분, 정확성, 손놀림까지.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법이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고요.”
나는 깨끗하게 물러서기로 했다.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도련님께서 이해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아, 우리 태성에 청소업체가 없는 게 천추의 한이네요. 그럼 대한민국 재계 역사에 획을 그을 업적을 달성하실 것 같은데.”
“그 또한 사양하겠습니다.”
김 비서는 은테 안경을 한 번 더 추켜올렸다.
“저는 지금 이 일이 좋아서 말입니다. 적성에 딱 맞으니 몹시 보람차거든요.”
김 비서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빗을 꺼내 할아버지의 머리를 쓱쓱 빗어 넘겼다.
순식간에 할아버지의 헤어스타일이 말끔해졌다.
김 비서는 몹시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내 수고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성취감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김 비서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맡아야 하는 더러운 일, 골치 아픈 일을 저만의 방식으로 깨끗하게 처리하여 보은할 수 있는다는 점에서도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김 비서는 재벌그룹의 더러운 일을 도맡는 사람이었다.
다른 계열사 사장들과는 전혀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재벌이란 양지와 뒷골목이란 음지의 세계를 오가며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해결해왔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 할아버지를 잘 부탁드릴게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 아버지도요.”
“안 그래도 비서 몇 명을 더 붙여야 하나 명단을 훑어보고 온 참입니다.”
김 비서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수첩을 펼쳤다.
“단지 부회장님의 경우엔 인사 선정이 상당히 까다로워져서 말입니다.”
“우리 아빠는 까탈스럽게 부하직원을 쥐 잡듯이 잡아가며 일하시는 분이 아닌데요?”
“이 외모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부회장님과 손발을 맞춰 일을 추진할 만큼 유능하며, 빈틈없이 철두철미하면서도, 신의 있는 비서가 어디 흔합니까?”
“역시. 우리 아빠가 너무 잘나서 문제였군요?”
“도련님께서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요.”
우리는 악수했고,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김 비서는 즉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으앗, 김 비서! 이 친구야, 아직 얘기 다 안 끝났······!”
탁!
역시 보통 눈치가 아니라니까.
할아버지가 아차 하는 사이에 김 비서는 이미 튀고 없었다.
또 다른 제안이 나올 새도 없이, 귀찮음을 원천 봉쇄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나도 모르게 작게 감탄했다.
‘역시 김 비서!’
심 사장님과 비교해보니 확실히 튀는구만!
이래서 원조, 원조 하는 건가?
그래도 역시 아까워 죽겠다!
후우, 세상일 참 내 맘 같지 않아.
* * *
김 비서가 태성건설 사장직을 거절하자, 다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말을 나눌수록 한 사람에게 모이는 시선이 유독 진해졌다.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심 사장은 점점 진득해지는 시선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시선의 의미는 명확했다.
“전 태성건설 못 맡습니다. 이미 JH투자를 맡고 있잖습니까?”
태성전자 민 사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중대한 시점에서 심 사장님만 한 적임자가 없으니 그렇습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모았다.
“태성건설은 향후 10년간 지하철 공사와 종합제철소 건설 등 굵직한 사업을 맡아 이끌어줘야 합니다.”
“거기에 중동건설 공사 규모도 상당하다면서요?”
“예. 중동은 어마어마한 오일머니를 국가 건설에 쏟아붓고 있으니까요.”
“현재까진 미국이 가장 많은 건설 수주를 따냈다지만, 워낙에 단가가 비싸고, 완공 기한이 늦어서 우리가 파고들 틈이 많습니다.”
80년대 한국에 불었던 중동 건설 붐.
한국은 빠른 공사 속도와 값싼 공사 비용, 그럼에도 괜찮은 건설 품질을 내세워서 건설 사업을 다수 따냈다.
한때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의 85%가량이 중동 머니일 정도였다.
“카타르 수리 조선소, 파키스탄 고속도로, 알제리 하천 정비, 이라크 방파제, 두바이 하수처리장, 리비아 대수로관까지 따냈다지요?”
“입찰금만 대충 따져 봐도······ 허, 얼추 12억 달러나 되는군요?”
“거기에 얽힌 나라가 몇이며, 까다로운 공정이 몇이나 되는지. 웬만한 짬으로는 커버 못 칩니다.”
다들 입을 열 때마다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지금 중동에 나가 있는 총괄 책임자가 오정섭이라고 들었습니다.”
“음, 오정섭 그 친구라면 행동력과 추진력은 제법 뛰어난 편인데, 성질은 뭣 같아서······.”
“수틀리면 일단 들이박고 보는지라. 중동 실세들과 멱살잡이는 안 하려나 모르겠습니다.”
“정치권, 고위 관료들과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유도리 있게 일을 진행해나가려면······ 크흠, 아무래도 오정섭을 태성건설 사장으로 올리기엔 무리가 좀 있을 듯싶습니다.”
할아버지까지 은근슬쩍 말을 보탰다.
“정혁아, JH와 태성은 결국 한 몸이다. 심 사장, 태성건설로 보내자. 괜찮지?”
아니, 나더러 지금 이 말에 동의하라고?
어림도 없지!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심 사장님은 못 내줘요.”
나도 안다.
태성건설 차기 사장으로 심 사장의 이름을 적었을 때, 수첩이 얼마나 금빛으로 밝게 빛났는지.
‘태성그룹 보고서를 읽었으니 더 잘 알지.’
태성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심원철은 태성건설 사장 차윤성이 계열 분리 후 대차게 말아먹은 태성건설을 헐값에 인수한다.
그는 회생절차를 밟던 태성건설을 10년 만에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사로 키워낸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서 태성그룹 차기 총수였던 차기준이 심원철에게 태성증권을 맡긴다.
심원철은 훗날 태성증권과 태성생명, 태성카드를 묶어 만든 금융지주회사를 발족시켜서 3대 경영권 세습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래도 안 돼!’
나는 일찌감치 심 사장의 이름을 벅벅 지워냈다.
이유라면 단 하나.
“앞으로 10년간 심 사장님은 JH투자에서 해주셔야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심 사장의 태성건설이나 태성화학보다 금융 관련 회사를 훨씬 더 크게 키워냈던 남자다.
솔직히 심 사장 덕분에 단기간에 계열사 열두 개를 꿀꺽 삼키고도 탈 나지 않았다.
웬만한 엘리트와도 비교 불가할 만큼 출중한 능력자란 소리였다.
‘절대로 안 돼! 심 사장님은 죽어도 못 잃어!’
나는 태성전자 민 사장을 돌아보았다.
“반도체 투자액만 최소 1천억 원. 그 투자금, 누가 어떻게 조달한다고 했지요?”
“정혁 도련님께서 JH투자를 통해서 조달하겠다 하셨습니다.”
태성전자 민 사장은 즉시 물러섰다.
이번엔 태성호텔 황 사장!
“태성호텔 강남 지점, 호텔부지가 필요 없으신가 봐요?”
“그럴 리가요!”
그다음은 태성에너지 윤 사장!
“대통령님이 친서까지 적어가며 유공을 약속했었죠? 그런데 어쩌죠? 걸프사에 줄 돈, 심 사장님이 없으면 못 구할 것 같은데요?”
“실언했습니다. 역시 심 사장님은 태성건설보다 JH투자에 계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심 사장님이 나가시면 바지사장도 없이 여덟 살짜리가 어떻게 움직이겠어요? 그냥 JH투자 파산 신청해서 때려치울까요?”
“됐다.”
아버지는 딱 잘라 말했다.
“내 아들의 사람을 빼올 바엔 내가 부회장 자리를 때려치우는 게 낫지.”
할아버지가 기함했다.
“그룹 부회장을 마다하고 태성건설을 맡겠다고?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제가 왜 부회장 자리를 맡았는지. 정혁이 앞길 막기 싫어섭니다.”
“끄응! 그럼 그 자리에 누굴 앉혀? 네 형들 밑에 붙어선 인사들 중에 골라서 넣어주랴?”
“싫습니다.”
“그럼 역시 혈연이 최고지. 사촌 형들을 불러들이는 건 어떠냐?”
“더 싫습니다.”
이것 참 신기하군.
‘이렇게 돌고 돌아 내가 처음부터 1순위로 꼽았던 인재를 들이밀 기회가 주어지네?’
이런 상황이라면 적당히 구워삶아 내 뜻대로 밀어붙일 수 있을 것도 같고.
나는 냉큼 손을 들었다.
“하나만 물을게요. 중동에서 이 많은 건설 수주를 따온 사람은 누구죠?”
귀가 밝은 태성호텔 황 사장이 즉시 대답했다.
“태성건설의 이경석 비서라고 들었습니다.”
태성그룹 보고서에 태성의 브레인이라 기록되었던 사내, 태성전자 이경석 사장!
그는 해외 시장을 장악하고, 태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던 남자이자, 아버지의 최측근.
그래서 내 원픽이다.
< 내가 점찍었던 사내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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