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76)
재벌집 만렙 아들-276화(276/416)
< 중동 진출의 꿈 >
저승사자가 보여주던 시야가 잠깐 끊겼다.
나는 팔짱을 꼈다.
‘살벌하네.’
군부독재 시대에는 대통령이 수틀리면 재벌 총수의 뺨을 슬리퍼로 갈겼다더니.
새삼 놀랐다.
‘재계 순위 1위 그룹 총수와 7위 그룹 총수가 눈앞에서 끌려가는데, 다들 찍소리도 못하고 벌벌 떨 줄이야.’
감히 대통령의 권위에 맞설 엄두도 못 냈다.
군사정변 이후 개헌까지 강행하면서 권력을 움켜잡은 지가 벌써 15년이니, 그럴 만도 했다.
‘10억으로 면죄부를 사게 된 삼황그룹 총수와 달리, 국천그룹 총수는 중정으로 끌려갔으니.’
나는 혀를 찼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있다면 사야지. 돈도 많으신 양반이 참······.’
이란에서 활약한 태성건설 오정섭 전무만도 못한 처신이었다.
국천그룹도 태성만큼이나 정치질을 못한다고 정평이 났다더니.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그 정도였을 줄은 몰랐는데.’
과거 국천그룹이 해체된 결정적인 이유?
그룹 총수의 눈치 없는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은 성의를, 현금도 아닌 어음으로 갈음했다고 이미 정권의 눈 밖에 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재벌 총수들을 불러들인 청와대의 소집에 늦게 응한 데다, 대뜸 야당 편을 드는 발언을 꺼내는 바람에 완전히 아웃되고 말았다.
그렇게 대통령이 작정하고 파투를 내기로 작정하자, 재계 서열 7위 그룹은 하루아침에 폭삭 망해버렸다.
‘과거에도 국천그룹이 망한 건 밀매왕이 사라지고 난 후였던가.’
밀매왕이란 부산을 주름잡는 걸물의 비호가 사라졌기 때문에.
‘다들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신나게 먹어치웠지.’
정치에는 언제나 돈이 든다.
또한 세력 싸움이기도 했다.
공을 세운 휘하 세력들의 배를 부르게 채워주려면.
국천그룹처럼 큼지막한 먹잇감이 필요했을 터였다.
‘하지만 국천의 방패였던 밀매왕은 이제 내 사람이 되었지.’
국천그룹을 단단하게 커버해줬을 밀매왕은 이미 미국으로 떠난 지 오래다.
50억 달러를 운용하기 위해 투자처를 물색한다고.
또한 김형원의 뒤를 캐다가 발견했다던 사우디 권리증의 암호를 풀기 위해서.
‘국천그룹은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하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도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라온 재벌그룹인데,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사실 이번에 가장 위험했던 건 우광건설이었다. 하지만 우광은 김대식 회장이 통 크게 내놓은 8억 덕분에 화를 면한 것 같고.’
건설주 파동 이후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며 주식시장의 해악으로 손꼽힌 우광건설이건만.
8억 기부금 앞에서 대통령의 비난은 쏙 들어갔다.
건설주 파동에 대통령 주머니만 신나게 됐다.
‘그런데 중정부장은 왜 태성에 먼저 호의를 보인 거지?’
뜻밖이었다.
기부금 명단을 작성하기 전에 할아버지를 국빈실로 데려갈 줄이야.
기부금을 뒤로 미뤄둔 이유는 짐작한다.
‘일단 돈을 내놓으면 다시 돌려받기 어려우니까.’
내 주머니에 들어올 땐 ‘사랑합니다, 웰컴!’이지만, 나갈 때는 ‘상종 못 할 개새끼!’ 소리가 나게 마련인 법.
“Hey buddy, aren’t you eating? (어이, 친구. 넌 안 먹어?)”
만수르가 컵라면 용기째 들어서 국물을 호로록 마시다 말고 날 돌아보았다.
“이 컵라면, 국물이 진짜 끝내준다.”
급기야 “크허!” 하고 걸쭉한 소리를 내더니, 몹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헥헥대며 길게 나온 혀와 팔랑이는 손부채, 벌게진 얼굴과 뻘뻘 흘리는 땀만 봐도 알겠다.
“그렇게 맵냐?”
“아니거든? 이건 그냥 식문화 차이일 뿐이거든?”
센 척하기는.
만수르는 거만한 표정으로 냅킨을 꺼내 들었다.
언제 그릇째 라면 국물 드링킹을 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냅킨으로 입가를 톡톡 찍어냈다.
“이것도 우리나라에 팔아. 수출 가능하지?”
“아직 할랄 인증 못 받았거든?”
할랄이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을 뜻한다.
그러니 할랄 식품이란 이슬람에서 허용한 식품이다.
“아, 할랄!”
이슬람에서는 과일, 곡물, 채소, 해산물의 경우엔 특별히 규제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육류만큼은 엄격하게 취급했다.
“뭘 또 그렇게 아쉬워하고 그래.”
나는 비즈니스용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비하식으로 도살한 고기는 허용된다면서?”
이슬람식 도축법을 사용해서, 허용된 짐승을 잡으면 된다는 소리다.
“너희 나라 문화와 규제에 따라 아랍에미리트에 식품 공장을 지으면 어떨까 하는데.”
“오, 완전 좋은데?”
솔깃한 모양이었다.
“너희 나라는 석유 의존도가 너무 높아. 다양한 산업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지.”
아랍에미리트는 꽤 비중이 높은 산유국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 7개 토호국 중에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석유 생산량 중 94%나 도맡았다.
“지금이야 석유가 풍부하니까 살 만한데, 언제까지 석유만 팔아서는 곤란하지 않겠어?”
이건 산유국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아랍에미리트는 물론 중동의 여타 여러 나라가 공통적으로 고심하는 국가적 난제였다.
“석유를 판 돈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중동의 미래가 달라질 테니까.”
만수르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국부 펀드를 운용해서 여기저기에 투자했었지.’
그건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도 마찬가지였다.
석유가 없을 때를 위해 국부 펀드를 운용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주력했다.
“태성의 공장을 지으면 어떻겠냐는 제안, 빈말 아니야.”
안 그래도 미국에 군수 공장 하나 지어서 납품하려고 했었어.
중동에도 공장 짓지 말란 법 없잖아?
“역시! 너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어!”
“마셔. 입가심에 딱이거든.”
나는 재빨리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서 내밀었다.
1974년에 출시된 이래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테디셀러 제품이었다.
미리 칠하는 기름칠만큼 세상사 매끄럽게 만드는 윤활유도 없지.
“이건 또 뭐야?”
“바나나 우유.”
“흠, 난 바나나의 식감을 썩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 읍!”
까탈스럽기는.
나는 불만스럽게 나불대는 주둥이에 빨대를 쿡 물려줬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 입 쪽 빨아먹은 만수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이거 진짜 뭐지?”
바나나 우유라니까.
이미 말해줬는데도 뭘 또 물어.
“완전 맛있잖아!”
만수르는 쪼옵쪽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이것도 팔아줘라. 수출 가능하지?”
“음, 우유도 할랄 인증이 필요했었던가?”
“Damn halal certification!”
만수르는 탁 소리가 나도록 바나나 우유를 내려놓았다.
“한국엔 맛있는 게 참 많네.”
만수르의 눈은 먹을 것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번뜩였다.
임원회의 때문에 약과와 사탕 몇 알로 몇 시간을 버텨야 했으니.
나는 이번에도 비즈니스용 웃음을 지었다.
“컵라면 하나 더 먹을래?”
“그래도 돼?”
이렇게 반색할 줄이야.
‘역시 영업은 뭔가 먹이면서 해야 돼.’
사람이 배가 고프면 까탈스럽게 이것저것 따지게 되거든.
내가 두 번째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 동안.
만수르는 새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똑 잘라서 손바닥으로 마구 비볐다.
반짝반짝한 눈을 한 채 어서 3분이 지나가길 발 동동 구르면서.
“1분 완성 컵라면은 왜 안 만든 거야?”
“그럼 탱글탱글 쫄깃쫄깃한 면발은 포기해야 되거든.”
“그런 깊은 뜻이!”
만수르는 JH연구소 구내식당을 돌아봤다.
만수르를 따라나선 아랍에미리트 수행인들도 땀을 훔치며 다들 싱글벙글 컵라면 삼매경이었다.
“좋다······.”
“싸구려 컵라면이 뭐 그리 좋다고? 돈도 많은 놈이.”
“배고플 땐 맛있는 거 먹는 게 최고야. 그건 부자든 아니든 똑같아.”
맞는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여기 널린 게 유명 호텔 음식이고 맛집인데, 이걸로 괜찮겠어??”
“거기선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안 팔거든.”
목적이 확실하단 소리였다.
만수르는 턱을 괴었다.
“아까 보니까 대구경 도트사이트 진짜 대단하더라. 경호원들이 완전 애처럼 신나서 방방 뛸 만했어.”
“그렇게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우리가 이걸로 중무장하면 사우디아라비아도 겁을 잔뜩 집어먹을걸?”
만수르의 눈은 야심 차게 빛났다.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서로 돕고 살자고, 친구. 나한테만 잔뜩 팔아주는 거다. 알지?”
“그건 양국 정상들의 결정에 달린 거라서.”
“좋은 소식이네! 그래도 우리 쪽은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거든!”
만수르는 어깨 너머로 엄지를 찔러 보였다.
무함마드 건설부 차관이 육개장 사발면을 먹으면서 수행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 외교적 재량권을 인정해주셨어. 외국에 머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제대로 된 협력 체계를 구축하랬거든.
나도 아까 들었다.
이란 테헤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소식과 함께 만수르의 귀국을 보류하란 전보였지.
“제대로 된 협력 체계라고 하면 역시 국교 수립 아니겠어?”
만수르는 거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이에 관해 이미 본국에 연락했고, 우리가 직접 전차와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의 성능까지 확인한 이상 크게 문제 될 일 없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비즈니스용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은근슬쩍 말을 보탰다.
“지금이야 석유가 풍부하니까 살 만한데, 언제까지 석유만 팔아서는 곤란하지 않겠냐는 말도 빈말 아니야.”
“음?”
“태성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거든.”
“진짜?”
“물론이지.”
나는 씩 웃었다.
“태성에는 건설과 식품, 방산만 있는 게 아니야. 태성은······.”
그때였다.
건설부 차관 무함마드가 종이를 손에 쥔 채 다급하게 다가왔다.
나를 힐끔 보더니 또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 같은 꼬맹이가 뭘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윗선에 고자질해 봤자 딱히 바뀔 것도 없지 않아요?”
그제야 무함마드 건설부 차관은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왕자님, 본국에서 응답이 왔습니다.”
“뭐래요?”
“국교 맺자고 하십니다.”
“역시!”
만수르는 기뻐하며 테이블을 탁 쳤다.
“그럴 줄 알았어요! 가성비 엄청난 전차와 세계 유일한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보고도 시큰둥하는 게 말이 안 되죠!”
“그럼요.”
무함마드 건설부 차관이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했다.
“국왕 폐하께서도 지대한 관심과 흥미를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로 국교를 맺을 사절 겸 협상을 주도할 책임자가 전용기를 타셨다고 합니다.”
“사절 겸 협상 책임자? 누가 오는데요?”
“아랍에미리트 부통령이신 무라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십니다.”
어라?
‘무라드 빈 라시드 알막툼? 아니, 두바이 국왕께서 직접 한국까지 날아온다고?’
나도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라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누구인가.
50년 만에 중동의 작은 어촌마을이자,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두바이를 국제적인 혁신 국가로 탈바꿈시킨 국왕이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부강했던 아부다비를 제치고, 두바이를 중동 관광과 물류의 메카로 만든 남자.’
최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
세계 1위 항공사 에미레이트,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야자수 모양인 세계 최초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
세계 5대 해양 허브로 손꼽히는 제벨 알리 항구.
거기에 국제적인 금융센터 조성까지 모두 이 남자의 업적으로 손꼽힌다.
‘이거 잘만 하면 두바이 도시 건설과 금융 산업까지 우리 태성이 노려볼 수 있겠는데?’
아랍에미리트의 총 원유 생산량 중에 고작 4%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두바이.
그래서 두바이는 관광과 물류, 금융의 도시를 꿈꿨다.
잠깐, 웨이러 미닛!
‘그러고 보니까 무라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나도 모르게 만수르를 돌아보았다.
“헙, 뜨거! 아우, 맛있어!”
만수르는 몹시 행복한 얼굴로 두 번째 컵라면을 먹느라 바빴다.
“뭐? 왜?”
아니, 그냥.
그 양반은 네 둘째 부인의 아버지, 즉 미래의 장인어른이라고.
< 중동 진출의 꿈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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