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77)
재벌집 만렙 아들-277화(277/416)
< 어떻게 책임지려고? >
저승사자가 문 안쪽으로 연기처럼 스르륵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쿵!
청와대 국빈실 문이 닫혔다.
국빈실 상석엔 줄담배를 피워대는 대통령이 앉았다.
담배 연기가 어찌나 자욱한지 꼭 너구리굴 같았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유리 재떨이를 받든 채, 좌우로 도열한 재벌 총수들의 면면을 훑었다.
말석에 앉은 태성건설 이경석 사장과 아버지를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흐음.”
의미심장한 눈빛과 집요한 관심.
태성건설 이경석 사장은 몹시 당황해하며 눈 둘 곳을 몰랐다.
반면 아버지는 태연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부스럭.
‘음? 이상하다. 아까 내가 쪽지는 확실하게 뒤처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청와대의 부름을 받고 놀라시기에.
난 그 자리에서 쪽지 세 장을 휘갈겼다.
-왜 말로 하지 않고?
-벽에는 귀가 있고, 기밀 유지엔 필담이 으뜸이니까요.
만수르와 무함마드 통역사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잖아요.
-옛날 생각난다. 그때 지하철 노선도 때에도, 각하의 술자리에 불려갔을 때에도, 이런 걸 받았었지.
-김 비서님이 어떻게 뒤처리하셨는지 기억하시죠? 그대로 부탁드려요.
-좋지. 아빠도 종이 잘 먹을 수 있어.
-아앗! 그냥 박박 찢어서 버리면 족하거든요?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쪽 소리가 나도록 내 볼에 뽀뽀를 해주시면서.
-이거 정말 든든한데?
아버지는 가슴을 탁탁 두드리며 자신만만하게 웃으셨다.
-우리 정혁이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네.
-우리 아빠, 파이팅!
분명 그렇게 이야기는 끝났었는데.
똑똑똑.
“뭐야?”
“각하, 외무부에서 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평소였다면 바로 물러갔을 보좌관이 우물쭈물 망설이며 입술을 자꾸만 달싹였다.
대통령은 미간을 구겼다.
“미국, 유럽, 일본, 대만. 어디야?”
“중동입니다.”
“이란 반정부 폭동?”
“그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에서······.”
“됐다.”
대통령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급한 일부터.”
“······예.”
달칵.
국빈실 문이 굳게 닫히자, 다시 무거운 침묵과 줄담배가 이어졌다.
재벌 총수들은 힐끔힐끔 대통령의 눈치를 봤다.
“실망이 아주 커.”
“죄송합니다.”
5억 이상 기부금을 낸 재벌 총수들은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대통령은 차갑게 쏘아보았다.
“건설주에서 시작된 주식시장의 연쇄 폭락이 이처럼 심각한데. 다들 이대로 손 놓고 두고 볼 거야? 대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각하, 부동산 규제를 조금 완화해주심이 어떻습니까?”
청와대 정책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행정부 내부 반발도 상당히 큽니다. 국민들의 불평불만도 끊이질 않긴 마찬가지죠. 이러다 부동산이 국가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겠습니다.”
“남 탓하지 마라. 태성건설은 건재했어.”
“······.”
청와대 정책실장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지금 건설주가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도 다 태성건설 덕분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도 건설주는 폭락장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종합제철소 이슈 띄우고, 대대적인 호남 개발도 알리고, 중동 건설 수주 실적까지 내세웠는데도 여전히 골골대는군.”
대통령이 혀를 찼다.
“태성건설만 오름세면 뭐 해? 다른 놈들이 쪽을 못 쓰는데. 이건 어떻게 할 거야?”
태성건설의 실적으로 부동산 파동을 덮는다!
그렇게 계획했던 것과 달리 주식시장엔 연일 위험 경보가 울려댔다.
“건설사 돌아가는 꼴이 그 모양이니까 답이 없지. 주주들이 괜히 손 털고 발 빼겠어?”
대통령이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
<건설주 파동 대처 방안>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경제부처에서 올라온 보고서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책 타령! 지금은 한가롭게 탁상행정을 논할 때가 아니야.”
대통령의 물음이 재벌 총수들을 향했다.
“그러니 자네들이 대답해 봐. 현장에서 뛰는 실무진으로서 의견을 내 봐.”
재벌 총수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기부금 5억이나 내면서 눈도장을 찍으러 왔건만.
이거 잘못했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 같다.
그만큼 대통령의 미간엔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삼황부터.”
“정책실장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일단 규제를 완화하여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고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이유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짓밟을 순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담뱃재를 탁탁 떨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남의 얘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죠. 로망이 왜 로망이겠습니까?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이만한 유인 동기도 없습니다.”
“일성.”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수요는 비슷한데, 과한 규제 때문에 아파트 공급만 줄어들면 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라 집값이 올라가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현무.”
“투기가 우려되는 곳에 한하여 토지 규제 구역을 지정하면 투기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모든 땅까지 규제하려 든다면 인력 낭비는 물론 원망이 들끓을 겁니다.”
대통령이 담배를 도로 물었다.
“금조.”
“이번 규제로 복덕방을 운영하고 있던 사람들이 단체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실직자들의 원망이 여당과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선에도, 총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청월.”
“땅을 중개하는데 비싼 변호사 인력을 동원하기엔 현실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태성.”
“국가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르게 하여 자격 요건을 갖춘 이들만 따로 관리하심이 어떨까 합니다.”
“우광.”
“멍멍!”
우광의 김대식 회장은 이미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선처를 호소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짚은 문제들 중에 어느 것 하나 안 걸린 것이 없나 보군.’
우광의 김대식 회장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은 싸늘했다.
“우광건설은 부도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지?”
“멍멍!”
우광의 김대식 회장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싹싹 빌었다.
제발 살려달라는 간곡한 호소였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눈치껏 화제를 돌렸다.
“양도세가 너무 과중합니다. 이 또한 완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부가가치세 때문에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내무부 장관도 슬쩍 끼어들었다.
“세금 문제는 무척 예민한 사안이잖습니까. 시일을 넉넉하게 잡고 점진적으로 추진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부동산 규제 대책의 조정에 관한 논의가 거듭될수록.
나는 조금 얼떨떨해졌다.
‘나비효과가 클까 봐 잔뜩 긴장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
부동산 규제의 개선 방향도 과거와 비슷한 논조로 흘러갔다.
‘괜히 걱정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쪽지 안 썼지!
그런데 이게 웬걸?
대통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책을 마련하랬더니, 해결책은 없고 순 비난뿐이로군.”
순간 정적이 흘렀다.
대통령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껐다.
“이미 발표한 정책을 뜯어고친다고 이제 와서 여론이 뒤집힐 것 같나?”
대통령이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무능한 정부란 소리밖에 더 되냐 이 말이야!”
가뜩이나 예민하게 곤두섰던 대통령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고 말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쩔쩔매며 입을 열었다.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쓰는 것처럼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각하의 의지를 보여줬으니, 조금 유하게 풀어가는 것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융통성을······.”
“여기에 장작을 집어넣으라고? 이란처럼 불만이 폭동으로 번지면?”
“······.”
청와대 정책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건설주 파동으로 부산과 마산 지역이 들썩거리며 불온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시선을 딴 데로 돌려야지.”
대통령이 새 담배를 물었다.
“국민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희망찬 소식!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 같다는 장밋빛 기대! 좀 더 화끈한 이슈몰이가 필요하다.”
줄담배 때문에.
공기는 점점 더 뿌옇게 가라앉았다.
“아니면 제물로 쓸 화살받이를 내세우든가.”
우광의 김대식 회장과 현무의 오 회장이 흠칫 떨었다.
이미 언론의 집중포화 때문에 국민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두 건설사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눈은 천마그룹 장 회장을 향했다.
“천마는 대치동에서 미분양 아파트 폭탄을 돌리고 있다며?”
첫 번째 쪽지의 주제가 이렇게 나오네?
아버지도 나처럼 씩 웃었다.
다들 잔뜩 긴장해서 대통령과 천마그룹 장 회장만 바라보고 있건만.
이 순간 아버지를 주목한 사람이 셋.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 그리고 태성건설 이경석 사장이었다.
“천마 주제에 5억이나 되는 기부금을 무리하게 내친 것도 다 뜻하는 바가 있어서겠지.”
광산과 건설을 기반으로 20여 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천마그룹.
현재 재계 서열 순위는 100위권 밖이었다.
그랬던 천마그룹이 과거엔 대치동 천마아파트를 20일 만에 완판시키면서 일약 5대 재벌기업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부동산 재벌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규제로 묶인 물량을 처분하고 싶어서 이 자리까지 기어들어 온 것 아니야. 내 말이 틀려?”
“각하, 도와주십시오!”
천마그룹 장 회장은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분양가 3천만 원으로 책정한 최고급 프리미엄 아파트가 4,500세대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아파트 가격 폭등을 염두에 두고.
떼돈을 벌겠다며 작심하고 욕심껏 일을 크게 벌인 탓에.
“1,350억?”
재벌 총수들은 눈을 크게 떴다.
“맙소사! 단일 아파트 분양 규모가 무슨······!”
“만일 저게 넘어가서 문제가 터지면 아주 극심한 부동산 경기침체가 시작될 겁니다!”
천마그룹 장 회장은 다급하게 외쳤다.
“이번 일에 동원된 하청업체 수만 60여 곳에 이릅니다. 딸린 건설인부들까지 다 꼽으면 7천 명이 넘습니다!”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단 소리였다.
재벌그룹 총수들은 심각한 얼굴로 대통령을 돌아보았다.
“각하, 은행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틀어막은 상황입니다. 장단기 어음을 가리지 않고 하청업체들이 어음을 남발해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천마아파트가 무너지면 그 많은 하청업체는 물론 줄줄이 딸린 건설인부들까지 전부 바닥에 나앉게 됩니다.”
“행여 하청업체가 유치권을 행사하거나 건설 노동자 총파업에 들어가 이대로 공사가 중지된다면······.”
“대충 한 채당 2천만 원 시세로 쳐도 900억. 그게 붕 떠서 줄도산으로 이어진다면. 하아······. 이거 상당히 골치 아프겠는데요.”
대통령의 눈에서 새파란 안광과 함께 불똥이 튀었다.
“이게 부동산 투기가 아니면 뭐가 부동산 투기야?”
천마그룹 장 회장을 노려보는 눈초리엔 살기와 광기까지 번뜩였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투기판에 뛰어든 건 천마인데, 왜 피해는 국가와 국민이 보게 만들어!”
“가, 각하!”
“어떻게 책임질 거야?”
쾅!
대통령이 노기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후려쳤다.
“최악의 경우 이걸 어떻게 틀어막을 작정이었냐고 물었다!”
“그것이······.”
“왜 말을 못 해? 대가리가 있으니 계획도 있을 것 아니야!”
“잘못했습니다!”
쿵!
천마그룹 장 회장은 즉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대통령은 코웃음을 쳤다.
“대가리를 박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각하, 살려주십시오!”
“얼마야? 공사비 총 얼마나 빚졌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천마아파트는 천마그룹의 사활을 걸고 추진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계속되는 부동산 활황과 강남아파트 분양붐을 타고.
절대로 실패할 리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뛰어든 일이었다.
공사단가를 대폭 낮추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고 한꺼번에 4,500세대나 올리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얼마냐고! 천마에 돈 빌려준 은행장들을 불러들여야 그 입을 열래? 아니면 중정에 끌려가야 열래?”
“대치동 자갈밭을 싸게 샀습니다. 땅값 총 82억 중에 60억을 은행 대출로 조달했습니다!”
천마그룹 장 회장이 빠르게 쏟아냈다.
“현재 완공까지 두 달의 기한을 남겨뒀을 뿐입니다. 외관 공사는 완료, 내부 공사만 남긴 상황이고, 잔금은 분양 이후에 치르면······.”
“그래서 지금까지 빚진 게 총 얼마야!”
“육백억 정도······.”
“600억?”
쾅!
대통령이 크게 노하여 두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깜짝 놀라서 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각하, 손 상하십니다!”
“비켜!”
어찌나 흥분했던지.
대통령은 제 손을 살펴보는 청와대 경호실장의 손마저 탁 쳐내며 눈을 부라렸다.
“우광건설 뇌물장부에 이름 적힌 놈들을 잡아다 누구한테 돈 받았냐고 문초했을 때, 번번이 천마그룹이 튀어나오더군!”
천마그룹 장 회장을 보는 대통령의 눈은 역적을 보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고위 공무원과 국회 인사들을 구워삶고, 은행권과 작당하여 투기에 뛰어들어 빚잔치를 벌였나?”
“잘못했습니다!”
“은행과 하청업체에게 공사비를 떠넘기고, 잔금마저 후려쳐 깎을 요량이었을 테지.”
전형적인 대기업 건설사의 횡포였다.
천마그룹은 그런 식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네놈 때문에 하청업자가 줄도산하고 미분양 폭탄이 도마 위에 오르면 그 뒷감당은 다 누구더러 하라고?”
대통령이 참지 못하고 중정부장을 돌아보았다.
“이 새끼도 끌고 가!”
“천마아파트! 전 세대 분양 계약 체결을 완료했으니 각하께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천마그룹 장 회장은 할아버지를 붙들고 늘어졌다.
“태성의 심 사장이 먼저 와서 제안했습니다. 천마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천마그룹 장 회장의 의도는 명확했다.
“태성건설은 보유한 자금이 빵빵하잖습니까! 그러니 하청업체에 잔금을 지불하는 것도, 이자와 원금 상환에도 문제없을 겁니다!”
하청 대금과 대출금까지 은근슬쩍 우리한테 몽땅 떠넘기겠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할아버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것을 보고, 대통령이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진짜야? 태성과도 합의된 사안이야?”
이때다 하고 아버지가 냉큼 끼어들었다.
“예, 대치동 천마아파트 한 채당 오백만 원.”
“······!”
“주머니 사정이 원체 급하시다기에 묶음으로 떨이 처분하자고 합의 끝냈습니다.”
“어억!”
천마그룹 장 회장은 입을 떡 벌린 채 홱 돌아보았다.
심 사장이 제안했을 땐 한 채당 천만 원이었던 천마아파트가 단번에 반값으로 뚝 떨어졌다.
아버지는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미처 계약서를 챙겨오지 못해서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쓰면 믿어주시렵니까?”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부스럭, 하고 조금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몽블랑 만년필까지 마저 꺼낸 아버지가 씩 웃었다.
“서명 날인까지 1분이면 됩니다.”
< 어떻게 책임지려고?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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