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79)
재벌집 만렙 아들-279화(279/416)
< 이게 말이 된다고? >
대통령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국교 수립 요청을?”
“예. 청와대에 가야 한다니까 주선을 부탁한다더군요.”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을 이을수록 대통령의 눈동자는 거칠게 요동쳤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되물었다.
“이거 사실이야? 확실해?”
“물론입니다.”
“각하, 축하드립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의 입꼬리가 쭈욱 늘어났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 8위의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손꼽히는 산유국이자 자원부국입니다.”
얼굴이 활짝 폈다.
“그런 나라와 수교를 맺으면 석유 수급이 한층 더 원활해질 겁니다. 민심을 얻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이슈가 어디 있겠습니까?”
흥분은 덤이었다.
“안 그래도 민심이 요동치고 있던 상황에, 태성이 마침 아주 기쁜 소식을 물어왔군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눈길은 그윽할 정도였다.
“이것이야말로 애국이자, 충정이 아닙니까!”
대선이 코앞인데 요즘 나라 안팎으로 시끄럽기만 할 뿐.
기분 좋은 이슈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 때 만천하에 자랑할 만한 뉴스거리를 가져왔으니 이게 웬 떡이냐 기쁠 수밖에.
‘청와대 경호실장이라면 최근 대통령의 심기가 영 편치 않았다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저리 과하게 기뻐하며 대통령의 기분을 띄우려는 것이겠지.
그런데 이게 웬걸?
크게 기뻐하며 흥분하는 건 비단 청와대 경호실장뿐만이 아니었다.
“각하, 아부다비 국제공항 건설을 우리나라 기업이 따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청와대 정책실장도 덩달아 콧김을 뿜어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당당히 쟁취하였으니 국위선양이요.”
작정하고 쏟아내는 말이 청산유수였다.
“그로 인해 3억 달러나 되는 외환이 유입되게 생겼으니, 국부 증가와 국력 향상에 큰 공을 세운 것이며.”
자칫하면 발언권을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다다다다.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산유국과 거래를 트고, 안면을 트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였으니, 민간 차원의 외교라 할 수 있으며.”
속사포가 따로 없었다.
“더 나아가 국가 간의 협력에 발판을 마련하여 상생의 경제를 추구할 기회를 제공하였으니, 가히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각하, 저는 지금 즉시 외무부와 실무 보좌진을 소집할까 합니다!”
“음?”
“아까 외무부에서 연락이 왔었다지 않습니까.”
그제야 다들 똑같은 대화를 떠올렸다.
-각하, 외무부에서 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 대만. 어디야?
-중동입니다.
-이란 반정부 폭동?
-그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에서······.
-됐다. 지금은 급한 일부터.
청와대 정책실장이 제 가슴을 탕탕 쳤다.
“자세한 사항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즉시 이에 관한 비상대책반을 꾸려오겠습니다.”
그게 바로 청와대 정책실장의 일이자, 권한이었다.
“각하, 후딱 다녀옵지요. 늦어도 20분을 넘기지 않겠습니다.”
“가 봐.”
청와대 정책실장은 나는 듯이 달려서 귀빈실을 빠져나갔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손바닥을 비비며 웃었다.
“각하의 큰 홍복입니다! 딱 좋을 때, 딱 좋은 화제가 될 겁니다. 안 그래?”
청와대 경호실장이 재벌 총수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눈치를 보냈다.
그러자 재벌 총수들도 재빨리 가세했다.
“예, 맞습니다. 국민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이슈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중동과 국교를 맺는 건 경제적 실리만 따져도 무조건 이득입니다.”
재벌 총수들은 희희낙락했다.
“중동 오일머니가 어디 보통 스케일입니까?”
“행여나 융통할 외국 차관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놓칠 수 없는 큰손 고객님이시죠.”
“중동에서는 도시 건설에 오일머니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더구나 국제공항이라면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사람들이 이용하는 국가중요시설이 될 텐데요.”
“우리나라가 중동 한가운데에 국제공항을 건설한다면 다들 크게 놀라지 않겠습니까?”
“이참에 한국 건설사들이 중동으로 대거 진출할 수 있다면······.”
“건설주가도 다시 크게 회복할 것이고, 건설사도 외화벌이에 한몫 단단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재벌 총수들이 쌍수를 들고 반기는 이유였다.
건설주 파동으로 바닥까지 고꾸라진 주가를 끌어올려 배를 불리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니 재벌 총수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어필하기 시작했다.
“각하, 정치는 세력 싸움입니다. 한국도 국교를 많이 맺고 동맹국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왕 국교를 맺을 거라면 최대한 빨리 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요청국의 체면을 살려주는 셈 치고 양국 간 교류의 물꼬를 트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중정부장도 입을 열어 힘을 보탰다.
“사실 아랍에미리트와 수교를 맺을 준비라면 오래전부터 이미 해오지 않았습니까.”
수교는 국가 간에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수교를 맺지 않았다고 해서 아예 민간 차원에서 인적, 물적 교류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수교를 안 맺을 필요도 없지요.”
미수교는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는 국가 간의 사이가 크게 틀어져서 일체의 교류가 단절되는 단교와는 다르다.
하지만 수교 여부는 국제 관계와 세력 측면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를테면,
“이러다가 북한이 한발 먼저 아랍에미리트와 수교를 맺으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그건 안 될 말이지.”
7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과 북한은 상당히 치열한 외교 전쟁을 벌여야 했다.
휴전 후 한반도의 분단은 고착화되었고, 각각 정통성을 주장하며 양국이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유엔 총회장에서의 정치적 공방과 세 대결로 이어지곤 했다.
“유엔에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이래, 매년 유엔에서 남북한의 문제를 정기적으로 토의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유엔 총회에 매년 제출되는 유엔한국통일부흥단 연례보고서가 자동적으로 차기 총회 의제에 포함됨에 따라 벌어진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은 서방권과 공산권의 양 진영 회원국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불꽃 튀는 외교전을 벌여야 했다.
정부가 세계 각국에 로비스트를 파견해 로비전을 벌이게 된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이기도 했다.
“매년 유엔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골자로 결의안을 밀어붙이고 있고,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하고 있지요.”
중정부장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각하, 미국 행정부와 외교적 마찰이 생겼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주한미군 철수를 누가 크게 반겼습니까?”
북한이었다.
“코라이 게이트를 터트린 배후를 이미 짐작하고 계시잖습니까?”
로비스트를 보낸 건 한국이 맞지만, 그걸 문제 삼아 터뜨린 건 김형원 혼자만의 힘으론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부와 중정은 그 배후로 북한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 반은 확신하고 있다.
단지 물증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을 뿐.
“최근 10년 내 신생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규모 가입으로 유엔 내 세력분포가 크게 변화하면서 한국의 득표 활동에 상당한 외교력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폭넓은 외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결론.
“각하, 아랍에미리트가 먼저 뻗어온 친교 제안입니다. 굳이 마다할 까닭이 없습니다. 숙고해주십시오.”
중정부장의 설득이 거듭되자, 대통령의 손끝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딱. 딱. 딱. 딱.
심사숙고할 때 보이는 버릇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의 고개가 중정부장 쪽으로 홱 돌아갔다.
눈에서 질투의 불똥이 팍팍 튀었다.
“각하, 바로 취재진을 불러올까요?”
지금 당장 방송국에 연락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 춘추관에 바글바글 모여 있습니다. 이참에 아주 그냥 크게 한 방 터뜨리지요!”
춘추관은 청와대 대변인이 각종 국정 현안을 언론에 발표하는 장소이자, 기자회견장으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미 작정하고 일부러 취재진을 불러뒀겠지.’
청와대에서 작심하고 취재진을 불러온 이유는 명백했다.
‘대통령의 재벌 때리기를 선전하여 민심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건설주 파동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많다.
그들의 분노가 청와대와 여당을 향하지 않도록 돌을 던질 제물을 던져줘야 한다.
그게 바로 재벌과 건설사였다.
“각하, 산유국과의 수교라면 국민들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초특급 뉴스입니다. 다들 눈 돌아갈 만한 특종감!”
청와대 경호실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부터는 각하께서도 두 발 뻗고 푹 주무실 수 있겠는데요? 하하하!”
부동산 가격은 혼자 뛰지 않는다.
부동산이 크게 뛰면 덩달아 다른 물가도 훌쩍 뛰기 마련.
경제 성장과 더불어 투기까지 기승을 부리자, 장바구니 물가도 가파르게 치솟았다.
물가가 너무 고공행진이라 장바구니에 담을 것이 없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정부는 언제나 물가를 안정시키고자 갖은 애를 써야 했다.
“기다려. 아직이야.”
“하지만 각하.”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읽어 봤다.”
탁.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파격적이더군. 신기할 정도로 태성에 유리한 계약이었고.”
대통령이 들고 있던 아부다비 국제공항 건설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던졌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한국의 신형전차와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원한다는데.”
아랍에미리트가 선진국을 제치고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태성에게 맡기려 하는 이유였다.
“수입하겠다는 물량과 금액이······ 대한민국 국방예산의 다섯 배쯤 됐던가?”
재벌 총수들은 물론이거니와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큰 금액의 국방예산을 배정하고 있었다.
휴전국가이기에.
“그런데 이게 좀 걸리는군.”
“뭐가 걸리십니까?”
“군수물자를 사고 싶다는 제안을 한 자도, 수교 요청을 보내온 자도 아랍에미리트 건설부 차관이라지?”
“예.”
“외무부도, 국방부 아니고, 국왕 직속 핫라인도 아니고.”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뒤따랐다.
“더구나 건설 계약서 특약사항으로 달아놓은 게 국교 수립이 조건?”
탁.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 측에서 보낸 국교 수립 요청 제안서를 마저 내려놓았다.
“그 특약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쪽에서 태성을 통해서 청와대에 회담을 주선하길 부탁한다는 게 말이 되나?”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이었다.
“아무리 봐도 어처구니가 없고, 누가 봐도 황당한 일이지 싶은데. 아닌가?”
재벌 총수는 물론이고, 청와대 실무진들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지했다.
“여기엔 한 치의 거짓도, 기만도, 위선도 없습니다.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알아. 그래서 황당한 거야.”
대통령의 긍정에, 다들 일제히 기함했다.
“예? 진짜로 이 모두가 진실이라고요?”
“아니, 각하. 하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만······.”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가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걸까요?”
대통령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아랍에미리트 왕족과 건설부 차관이 극비리에 입국하여 청와대가 아닌 태성부터 찾아갔단 보고를 받았다.”
“······!”
“그런데 보고서에 올라왔던 아랍에미리트 건설부 차관과 동일한 이름이 여기 이렇게 적혀 있긴 하군.”
대통령의 말이 계속될수록 재벌 총수와 청와대 실무진들의 입은 더욱 크게 벌어졌다.
“이 건설부 차관이라는 작자는 군수품과 도시 건설까지 전부 미국이나 서방측 기술이 아니면 절대 반대한다는 진성 꼴통 친미파라던데.”
“······!”
“대체 무슨 수로 어떻게 구워삶은 거지?”
“······!”
대통령이 손끝으로 국교 수립 요청서를 톡톡 두들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것만 믿고 국교 수립을 추진할 순 없을 것 같군.”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이 정식으로 보내온 공문도 아니지 않나. 이건 월권이자, 비공식적 제안에 불과할 뿐이야.”
수교 요청 문서를 내려다보는 대통령의 눈에는 아쉬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반대로 가정해보지. 대한민국 건설부 차관이 극비리에 방미하여 미국과 단교하겠다면서 백악관과의 회담을 주선해 달라고 미국 맥도날드 부회장에게 요청했다고 생각해 봐. 이게 어디 말이 되는 일이야?”
그때였다.
벌컥!
노크도 없이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빈실에 들이닥쳐서 외쳤다.
“가, 각하! 아랍에미리트에서 국교 수립에 관해 부통령과 외교 사절 및 실무 협상단을 긴급 파견하겠다고 외무부에 공문을 넣었다고 합니다!”
“······뭐?”
“이미 아랍에미리트에서 국적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
“공항에 국빈 맞이 환영행사라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아까부터 외무부 장관이 미쳐 날뛰고 있답니다!”
대통령은 황당한 듯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된다고?”
< 이게 말이 된다고?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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