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80)
재벌집 만렙 아들-280화(280/416)
< 다시 문이 열린 까닭 >
대통령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떨리는 눈으로 테이블 위에 내던진 서류를 번갈아 봤다.
아랍에미리트 건설부 차관이 서명 날인이 박힌 계약서와 요청서.
“허?”
대통령은 황당하단 소리도 더는 내지 못했다.
흔들리는 눈빛을 숨길 수도 없었다.
대신 슬쩍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매우 좋다.”
놀랍게도.
대통령은 그것만으로도 표정을 수습해냈다.
마치 변검을 보는 것처럼 재빠른 표정 관리였다.
“태성의 브레인.”
“예.”
“그래, 인정하지. 내가 자네를 너무 몰랐던 것 같군.”
대통령은 흡족하게 웃었다.
“세상은 파격과 혁신을 실행할 줄 아는 천재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내가 잠시 깜빡했다.”
대통령은 다리를 꼬았다.
“술잔 비었다.”
“예, 각하.”
청와대 경호실장이 즉시 로얄 살루트 병을 기울였다.
아버지의 잔엔 다시 한번 맑게 찰랑이는 액체가 가득 담겼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각하.”
“천천히 마셔. 한 병 다 비울 생각이니까.”
재벌 총수들은 놀란 눈을 깜빡였다.
“한 병을 다?”
아버지를 돌아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데.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묘한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네가 올해 몇이라고?”
“듣자 하니 사우디에서 큰 공을 세워서 국빈 대접을 받는다지?”
“아랍에미리트와도 인연이 이리 깊었던가?”
다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시끄럽군.”
대통령은 새 담배를 물었다.
“자네들이랑은 더 나눌 얘기가 없을 것 같은데.”
거슬리니까 이만 꺼지라는 소리였다.
명백한 축객령.
“크흠, 저기 각하······.”
재벌 총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무려 5억이나 기부금을 내면서 이 자리에 앉은 까닭이 무엇인가.
-뇌물과 청탁은 한 세트.
이런 자리에서 이 나라의 중요한 국책 사업 혹은 중화학 신사업 지원 등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러다 빈손으로 쫓겨나게 생겼으니, 재벌 총수들은 쉬이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버럭 외쳤다.
“꺼지라는 말 안 들려? 귀먹었어?”
“그것이······.”
대통령은 파리를 내쫓듯 손을 까딱였다.
“추후에 다시.”
“예, 각하!”
그제서야 재벌 총수들은 재빨리 허리를 굽혔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불러주십시오.”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멍멍!”
우광그룹 김대식 회장도 슬쩍 끼어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아버지가 로얄 살루트를 입에 대며 물었다.
“각하, 우광건설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내 세 번째 쪽지 용건이었다.
‘어딜 튀려고? 튈 때 튀더라도 우광건설은 토해내고 튀어야지.’
태성화학 인수 계약서를 작성할 때, 난 우광건설과 우광증권까지 함께 노렸다.
그때는 대통령의 입김으로 우광건설을 지켜낼 수 있었겠지만, 이번엔 어떨까?
“우광은 남아.”
“······멍멍.”
우광그룹 김대식 회장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틈에 천마그룹 장 회장도 슬쩍 몸을 일으켰다.
‘어딜 튀려고? 튈 때 튀더라도 천마아파트 계약서는 뱉어내고 튀어야지!’
물론 아버지도 그 틈도 놓치지 않았다.
“천마아파트 판매 계약서에 서명 날인은 다 끝내고 가시는 겁니까?”
“질질 끄는군.”
대통령이 즉시 도끼눈을 떴다.
“중정.”
“예, 각하.”
중정부장이 재빨리 대통령의 부름에 응했다.
“도장 찍었습니다! 이름 적었습니다! 진짭니다!”
“계약서는?”
중정부장이 천마그룹 장 회장 품을 뒤졌다.
각각 나눠 가졌어야 했을 계약서가 전부 장 회장 양복 안주머니에서 나왔다.
“태성에게 건네지 않고 이대로 눈치껏 적당히 무마하려고 했군.”
“그, 그게 아니라······.”
“각하, 이 인간이 하는 꼴을 보건대, 왠지 이 자리만 모면하자 한 후에 태성을 상당히 귀찮게 할 것 같습니다.”
중정부장은 아버지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일은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이.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총 600억의 부채 중 태성이 225억을 최우선으로 변제한다고 쳐도, 나머지 375억이 각하의 골치가 될까 우려되는군요.”
“아닙니다! 그럴 일 없도록 제가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글쎄. 저치가 하는 짓을 보면 영 믿음이 안 가서 말입니다.”
중정부장은 싸늘한 눈으로 천마그룹 장 회장을 노려봤다.
“계약서를 두고 자꾸 말을 바꾸는 것 하며, 조건 합의 끝난 일을 음흉하게 숨기는 것 하며, 각하의 명을 어기고 은근슬쩍 도주하려던 것 하며.”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저는 그저 각하를 귀찮지 않게 하려고······.”
“각하, 천마가 부채를 나 몰라라 한다면 향후 건설업자 파업과 유치권 행사로 나라가 한동안 시끄러워질 겁니다.”
“그럴 일 없도록······!”
천마그룹 장 회장은 필사적으로 항변하려 했다.
“씌워.”
중정요원들이 즉시 장 회장의 입을 틀어막았다.
국천그룹 양 회장에게 씌웠던 것과 동일한 재갈을 물렸다.
“웁웁! 웁!”
변명의 기회마저 빼앗긴 장 회장은 중정요원들에게 끌려가며 몸부림쳤다.
중정부장은 고했다.
“각하, 이건 단지 미분양 폭탄으로 치부할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러면?”
“이러다 자칫 전국 건설업자 총파업으로 일이 번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뭐?”
대통령이 몹시 싫어하는 것이 바로 총파업과 노동 운동이었다.
그 일로 미국 행정부와 얼굴을 붉히며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던가.
“전국적으로 하청업체에 공사대금 지급이 미뤄지고, 현금 대신 어음만 돌고 있습니다. 인부들 임금까지 체불되고, 주가까지 폭락하고 있어서 건설 쪽은 지금 상당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딱. 딱. 딱. 딱.
대통령의 손끝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순간 생각이 깊어질 만큼 흥미롭다는 뜻이었다.
“각하, 이렇게 포장하지요.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어떻습니까?”
“자세히.”
“투기꾼의 말로를 보여주는 겁니다.”
중정요원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천마그룹 장 회장.
그를 보는 중정부장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빚더미로 뛰어든 투기꾼의 몰락! 그 더럽고 비참한 말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겁니다.”
중정부장은 천마그룹 장 회장을 두고 투기꾼이라고 규정짓고 있었다.
“본보기 삼아 일벌백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일확천금, 불로소득, 인생 한 방을 노리는 묻지마 투기가 곧 범죄임을 인식하고, 극도로 경계할 것이 아닙니까.”
“아주 좋군.”
대통령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중정부장은 자세를 바로 했다.
“천마그룹 압수 수색과 세무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우읍!”
천마그룹 장 회장은 필사적으로 버둥댔다.
“해외 부동산 및 은닉 자금을 추적 조사하고, 사재 압류에 들어가겠습니다.”
“으읍읍!”
“이참에 확실하게 건설부채를 정리하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세력들을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읍읍읍!”
천마그룹 장 회장은 하늘이 노래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데려가.”
중정요원들이 힘껏 끌고 가자.
천마그룹 장 회장은 국천그룹 양 회장처럼 속절없이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청와대 정책실장을 돌아보았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한국까지. 국적기를 타고 오면 몇 시간이나 걸리지?”
“경유지를 거치지 않을 테니 항공기류와 비행속도 등에 따라 대략 10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1~2시 즈음 한국 땅을 밟겠군요.”
“외무부 장관에게 연락해. 공항에서 국빈 맞이 환영 행사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예, 각하.”
“하나 더. 전차 행진도 해야겠다.”
“예?”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공은 지진이 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그 새벽에 전차 행진을요? 청와대 주변도 아니고, 김포 국제공항에서부터 말입니까?”
“안 될 것 없지 않나?”
“······.”
청와대 정책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 국산 전차를 사고 싶다고 아랍에미리트에서 전용 국적기를 타고 날아온다지 않아.”
“······.”
“국교까지 맺자고 날아오신다는 국빈인데. 보란 듯이 보여줘야지. 우리 국산 전차의 위용을!”
“······.”
이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새벽이라는 문제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된 지 오래였다.
태성의 국산 신형 전차가 나온 이래 이미 몇 차례나 청와대 근처에서 한밤의 전차 행진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각하, 이번에도 그 전차, 제가 몰겠습니다!”
“좋지.”
아주 당연한 듯이 청와대 경호실장이 자원했고, 대통령이 승인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중정부장을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중정부장은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청와대 경호실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밤의 전차 행진이 벌어질수록 둘 사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더니.’
내란 조사 및 반공 첩보 활동을 하는 중정으로선 달갑지 않은 이벤트였다.
실제로 이에 관한 간첩 문의와 신고가 끊이질 않아서 골치 아픈 문제였다.
중정부장이 몇 번이나 강하게 항의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종래엔 청와대 경호실장의 권력 과시용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 바로 한밤의 전차 행진이었다.
“취재진 불러.”
“예, 각하!”
청와대 경호실장이 우렁차게 외쳤다.
“언론이 천마아파트의 투기 의혹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도록 물어뜯을 꺼리를 던져줘.”
“예, 각하!”
“중정이 물밑에서 적극 협조하고.”
“예, 각하.”
이 자리에 재벌 총수를 긴급 소집하고, 취재진들을 잔뜩 불러모은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건설주 파동과 부동산 투기의 책임을 묻고, 분노한 국민들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제물은 없었다.
“아랍에미리트 측의 방한과 국교 수립에 관한 가능성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예, 각하.”
“아부다비 국제공항 건설과 전차 수출 요청까지 보도하라고 해.”
“예!”
대통령은 만족스러운 듯이 발끝을 까딱였다.
“정부의 외교적 성과와 중동 건설에서 해법을 찾았다는 희소식이라면 주식시장도 반등을 노려볼 수 있겠군.”
“물론이지요, 각하. 제가 취재진 앞에서 이 점을 짚어 확실하게 강조하겠습니다!”
대통령이 청와대 정책부장을 돌아봤다.
“지금 즉시 외무부와 공조 협력하여 아랍에미리트와의 수교 준비를 진행하도록.”
“예, 각하.”
“이번에 방한한 아랍에미리트 왕족과 건설부 차관은 어디에 있나?”
청와대 경호실장이 즉시 대답했다.
“그쪽으로 바로 모실까요?”
“이 나라의 통수권자로서 체면이 있지.”
극비리에 방한한 왕족과 건설부 차관 따위를 영접하기 위해 헐레벌떡 달려갈 생각 없다는 뜻이었다.
너무 없어 보이니까.
이쪽은 아쉬울 것 없으니까.
“우리가 국교를 수립하자 매달리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때는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줄 것처럼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지만.
이렇게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상, 이쪽은 적당히 맞춰주기만 해도 될 일이다.
대통령이 몹시 흡족해하며 잔뜩 여유를 부리게 된 이유였다.
“사절단이 도착하기까지 아직 시간 넉넉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정식 사절단이 방문하기까지.
“그동안 술이나 한잔하지.”
“예, 각하. 크으으~, 오늘따라 술맛이 아주 유달리 달고 맛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하사받은 로얄 살루트를 마셨다.
그러더니 아버지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금쪽같은 내 새끼 덕분에 제가 이런 호강을 다 누려보는군요.”
“태성의 미래가 아주 밝아. 이대로만 해.”
이 자리를 허락받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태성건설 이경석 사장만이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했다.
“태성의 브레인? 금쪽같은 내 새끼? 태성의 미래?”
아버지를 보는 눈이 휘둥그레했다.
“분명 중동에선 늘 태성의 수치, 속 썩이는 꼴통 새끼 소리만 들었던 것 같은데.”
이경석 사장 입장에서 보면 그도 그럴 터였다.
귀국해 보니 아버지는 형님들을 제치고 그룹 부회장이 되어 있고.
태성건설 이경석 사장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적응 안 되네.”
야근하다 강제로 회식 자리에 끌려온 말단사원처럼.
태성건설 이경석 사장의 목소리엔 피곤함이 한가득이었다.
물론 시차도 한몫했을 테지만.
“하루가 너무 길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납치되듯 끌려와서, 태성그룹 전 계열사 임원회의에 참석한 것도 잠시.
청와대의 긴급 소집에 불려와서, 어느덧 대통령과의 술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군.
“이러다가 새벽에 공항 마중까지 끌려가서 전차 행진에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태성건설 이경석 사장은 부르르 떨었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나도 이 대목에서는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곤란한데?’
이따 저녁에 할아버지가 어머니한테 한우정 소고기 사주신댔거든.
게다가 우리 아버지를 저 새벽에 공항까지 끌고 가는 것도 못마땅하고.
‘오늘 할아버지랑 저녁 먹으면서 외가랑 상견례는 언제 하실 거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단 말이지.’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어이, 수호신.’
[왜?]‘동티, 가능하냐?’
[갑자기? 목표가 누군데?]‘대통령.’
저승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안 될 것 없지.]쿵!
청와대 국빈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정확하게 3분 후.
벌컥!
청와대 국빈실 문이 다시 열렸다.
< 다시 문이 열린 까닭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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