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82)
재벌집 만렙 아들-282화(282/416)
< 이 결혼, 내가 반드시 성사시킨다! >
나는 팔짱을 낀 채 불만스럽게 짝다리를 탁탁 떨었다.
“저는 약속 지켰어요. 주말마다 본가에 가서 할아버지랑 서재에 들어가잖아요?”
할아버지의 요구였다.
-며늘아가야, 정혁이를 주말마다 본가로 보내주었으면 하는구나.
-정혁이를요?
-그래, 내가 이것저것 가르쳐 줄 것이 많아서 그렇다. 정혁이에겐 나눠주고 싶은 것도, 함께 논하고 싶은 것도 오죽 많아야지.
-그러세요. 정혁이 주말마다 아버님 댁에 보낼게요.
-고맙다.
-에이, 아버님도 참. 가족끼리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도 자주 찾아뵐게요.
어머니는 방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혁이는 좋겠네. 할아버지가 널 아주 많이 귀여워해 주신다. 그치? 이 마음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물론이죠. 약속했다니까요.
그렇게 나는 주말마다 본가로 가게 되었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고, 어떤 날은 할머니와 딸기를 다듬고.
어떤 날은 서재에 틀어박혀 태성그룹 결재 보고서를 읽어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할머니와 함께 마당에서 잡초를 뽑았다.
“호적 정리만 하면 끝이에요? 이러다간 우리 부모님보다 제가 먼저 결혼식 올리게 생겼어요.”
“그, 그건 안 될 말이지!”
내 말이!
“이제 거의 다 됐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지금 그 말이 몇 번째인지 아세요?”
내가 반년 가까이 기다렸단 말씀!
할아버지가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 아버지가 조만간 결혼 허락을 받아올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다음이 상견례야.”
“그래서 지금껏 나 몰라라 했단 말이에요?”
“크흠흠! 순서가 그렇다, 순서가.”
내가 상견례 독촉장을 쓰게 된 이유였다.
‘우리 부모님 결혼식이 자꾸만 미뤄진다고 예린이가 인왕산에 들어가서 치성드리느라 반쪽이 됐단 말이죠?’
안 그래도 작고 마른 애가 삐쩍 골아서 뼈밖에 안 남았더만!
-앞으로 그런 거 하지 마.
-우리 부모님 결혼 문제야 내가 해결하면 돼. 그게 뭐라고 이렇게 몸을 축내가면서 해?
그러니 내가 작심하고 나설 수밖에.
“우리 엄마 혼수는 제가 제대로 챙겨드렸잖아요.”
태성화학 말이다.
그건 우리 엄마 혼수로 진즉 챙겨서 이미 할아버지와 가족들에게도 공언받은 지 오래다.
큰어머니들이 가져온 것 이상으로 혼수도 제대로 챙겨가시는데.
“엄마 손 잡고 결혼식 올리는 게, 꽃가마 태워드리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빠도 그래요. 대체 지금까지 뭘 어떻게 한 거예요?”
“주말마다 내려가서 설득을 했다.”
“무슨 설득을 어떻게 했는데요?”
“그야 진심 어린 설득을 정성을 다해 열심히 했지.”
아버지의 대답이 두루뭉술할수록 내 눈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내려가서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나느라 진도 안 나가는 건 아니고요?”
“이제는 안 그래.”
그러니까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나긴 했단 말이로군?
“진심 어린 설득을 어떻게 정성 들여 열심히 했는데요?”
“묵묵히 잘못을 빌었지.”
“말로만?”
“물론 몸으로도 열심히. 농사일을 도왔다.”
“······.”
황당했다.
“아니, 거기까지 가서 무슨 농사일을 도와요?”
“네 외가가 농사를 짓거든. 일손이 부족해서 정신없이 바쁘시더라.”
딸만 둘인 집안이라.
장정이 힘써야 할 일이 참 많더라.
아버지는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니까 주말마다 농사를 돕다 오느라 아직 결혼 허락도 못 받았다는 거네요?”
“지금은 농번기라 한창 바쁠 때니까. 우리가 이해해드려야지.”
맙소사!
이게 무슨 주말농장 노예 같은 소리야?
“그걸 아빠가 왜 이해해요? 결혼하고 큰사위가 되어 농사일을 거들어도 그만인데요.”
“······.”
아버지는 말문이 막힌 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홱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도 진심은 결국 통하는 법이지 않을까?”
얼씨구?
“대뜸 두들겨 패고 내쫓기는 건 이제 면했다지 않느냐. 그만큼 성준이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인 게지.”
할아버지는 뿌듯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다. 가족끼리 서로 돕고, 진심으로 다가가야 마음속에 맺혔던 응어리도 풀어지는 법이다.”
“예, 아버지.”
“귀한 따님이 미혼모가 되어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그 고생을 하게 됐으니, 당연히 네가 곱게 보일 리 없을 것이다.”
“예. 각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진심으로, 분발하여 마음을 풀어드려야 할 게야.”
“예, 제가 더 노력해야죠.”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아빠, 이번에 태성그룹 부회장이 된 건 말했죠?”
“······.”
이 분위기 뭐지?
“그럼 태성건설 사장이란 건요? 재벌 2세라고 어필 안 했어요?”
“아예 묻지를 않으시던데.”
“······호구조사조차 못 받으셨다고요?”
나는 그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고, 텄구만!’
딸이 남자를 데려왔을 때,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호구조사다.
호구조사도 없이 머슴처럼 농사일만 부려먹었다는 게 뭘 뜻하겠는가.
‘사업할 땐 잘만 굴러가던 머리가 왜 가족 일만 되면 돌처럼 굳으신대?’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는 가족과 분쟁을 일으킬 바엔 참고 희생하는 타입이고, 우리 할아버지는 가족 일이라면 호구처럼 구셨지!’
할아버지가 젬병인 분야는 정치질만이 아니었다.
가족 간의 교통정리를 못하고 규율과 선 긋는 일에 약해서 자식과 며느리들에게 쩔쩔매던 분이란 걸 깜빡했다.
······물론 나 역시 한때 가족 문제라면 쩔쩔매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승사자에게 제대로 비법을 전수받았거든!’
요컨대 가족 간에도 서열정리와 선 긋기면 만사형통이란 소리!
[아니라고! 그때도 말했지만 이건 아주 민감한 문제인 만큼 우리 조금 더 심도 있는 대화를······!]지금 한가하게 그러고 있을 시간 없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번 주말엔 우리 집에 있는 신문 스크랩, 그거 몽땅 싸들고 가요.”
“신문 스크랩은 왜?”
“거기에 대문짝만하게 아빠 사진이 박혀 있는 기사를 보여드리려고요. 이왕이면 사이좋게 꽃목걸이 걸고 대통령님이랑 함께 어깨동무하고 찍은 것부터.”
대놓고 노골적으로 보여줘야지.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신문 기사가 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외할아버지가 그쪽 동네에서 어때요? 힘 좀 쓰세요?”
“이장 일 하시더라.”
더할 나위 없이 좋구만!
이장이라면 대통령이 밀어붙인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추진하면서 권력자가 된 입장!
더구나 아직 농경 공동체 문화가 저변에 짙게 깔린 시절이니, 이장의 입김과 파워는 곧 정권의 권력에서 비롯될 때였다.
“그럼 할아버지는 태성호텔에 전화 한번 넣어주실래요?”
“태성호텔? 거긴 갑자기 또 왜?”
“출장 뷔페 차려야 할 거 아니에요. 마을 잔치 한번 크게 열어야죠.”
“······!”
나는 씩 웃었다.
“대통령님도 대선을 앞두고 마을에 잔칫상부터 차려주고, 설탕이랑 밀가루, 와이셔츠와 내복 세트부터 돌린다면서요?”
대통령이 마을 인심을 사로잡아 표를 얻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잘 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우리도 답례품 돌리죠.”
“······!”
“태성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공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생산하는 제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
가진 자원과 권력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우리 엄마가 시집을 잘 가서 시아버지가 태성화학 지분을 왕창 줬다고 자랑할 수 있도록. 이왕이면 태성화학 제품에다가 문구를 크게 박아넣을까 해요.”
뭐가 좋을까.
“태성그룹 부회장 차성준이 결혼선물로 태성화학을 이수진에게 바칩니다.”
“······!”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고 실장은 입을 떡 벌렸다.
“무, 무슨 결혼 선물 스케일이······!”
“왜요? 안 될 것도 없잖아요? 전 처음부터 태성화학은 우리 엄마 혼수라고 못 박았거든요?”
“그, 그건 그렇긴 하지만······.”
고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와우. 정혁 도련님 추진력은······.”
그러거나 말거나.
“태성화학에서 제일 잘 나가는 제품들로. 샴푸와 린스 세트, 비누 세트, 그리고 기초화장품 세트까지 팍팍 돌리죠.”
이름하여 <이장 집 딸이 재벌 2세한테 시집간대!> 작전이랄까.
“아무래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죠?”
“차고 넘치지 않을까요?”
고 실장의 항변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역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걸 더 믿는단 말이죠? 고작 이런 것으로는 아버지의 권력과 재력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아요.”
“예? 동네잔치를 벌이는데도요?”
고 실장의 반문 또한 묵살했다.
“외할아버지가 어디서 농사짓고 계신다고 했죠?”
“분당에 농지를 크게 갖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만.”
“분당이라. 좋은 데 땅 갖고 계시네요.”
거기에는 장차 신도시가 아주 크게 들어갈 예정이거든요.
“네 외가가 돈은 딱히 없어도 농지는 제법 가지고 있다는 것 같더구나. 농지가 꽤 크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한 6만 평쯤 있다는 것 같았습니다.”
6만 평?
잠깐, 웨이러 미닛!
‘분당 신도시가 들어가면 땅값이 미친 듯이 폭주할 텐데, 이게 다 얼마야?’
신도시 발표까지 10년도 채 안 걸린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벼락부자 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소리!
“수서동 쪽에서도 농지가 있더군요. 그쪽은 과수원이지만.”
“수서동에도? 거긴 얼마나 되는데요?”
“거기도 한 6만 평쯤 된다고 했었나.”
미쳤네!
수서동엔 지구 단위 도시개발계획이 들어선다.
도심 내 개발제한구역을 쫙 밀고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거든.
이 또한 발표까지 10년이 채 안 남았을걸?
“판교에서도 농사를 제법 크게 짓고 있다지?”
“그쪽엔 근교 농업을 하시겠답니다. 비닐하우스를 지어볼까 고민하고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니, 판교까지?
“거긴 한 7만 평 정도 된다는 것 같습니다.”
“땅부자로군.”
총 19만 평?
나는 할아버지의 경호 겸 운전을 맡고 있는 고 실장을 돌아보았다.
“고 실장님, 혹시 지도책 가지고 계신 거 있어요?”
“예? 아, 물론입니다.”
“그거 가져다주실래요?”
이 시절 차 뒷좌석에는 전국지도책이 하나씩 굴러다니는 건 국롤이었지.
네비가 없던 시절이었거든.
“정혁아, 갑자기 지도책은 왜?”
“상대를 공략하려면 공략법부터 세워야 할 것 아니에요.”
“아빠는 가족이 될 사람들을 상대로 공략법까지 써야 할 일인가 싶은데.”
“가족은 뭐 사람 아니에요? 제대로 공략해야 백년손님 대접받는 거예요.”
“······.”
아버지의 눈이 번쩍 빛났다.
“처가에서 장모님이 잡아주는 씨암탉 백숙, 얻어먹어보고 싶지 않아요?”
“아빠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
“일단 대충이라도 그려봐요. 외가 농지가 들어선 곳이요.”
나는 분당, 수서, 판교 쪽 지도를 펴서 아버지 눈앞에 들이밀었다.
아버지는 슥슥 그려냈다.
“태성건설에서 공사 일 계획하고 구상하면서 느는 건 지도 보는 법이랑 눈대중으로 위치 때려잡는 거라서. 아빠 잘 그려낼 수 있다.”
나는 또 한 번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죄다 신도시 노른자위 땅이냐?’
황금빛이 눈부시게 번쩍번쩍 빛났다.
나는 빨간 사인펜을 꼭 쥐며 의욕을 끌어올렸다.
“자요, 아빠, 잘 봐요.”
나는 외할아버지 농지가 있다는 곳에 선 두 줄을 좍좍 그었다.
“이렇게 공사가 들어가야 해요.”
“농지 분할? 그럼 농지가 축소되고, 수고는 더 들고, 영 쓸모가 없어질 텐데.”
“농지로서는 조금 그렇겠죠. 하지만 땅값은 아닐걸요?”
나는 바둑판처럼 커다란 줄을 몇 개 더 좍좍 그었다.
“아시잖아요. 부동산의 혈관이자 땅값을 결정하는 숨구멍은 무엇이다?”
“도로!”
빙고!
바로 그거거든요!
“상대가 승부수를 띄웠으면 아버지도 주특기로 공략하셨어야죠. 태성건설에서 아빠가 잘하던 게 뭐죠?”
나는 씩 웃으며 내가 그어놓은 줄을 딱 짚었다.
“도로 뽑기, 자신 있으시죠?”
아버지의 눈이 번쩍 빛났다.
“큰 농지를 덩어리째 가진 것만으로는 돈이 안 돼요.”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부국강병의 기틀로 제조업을 꼽았다.
그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농수산물값도 제한했다.
지금 시대엔 농사로는 큰돈 만지기 어렵다는 소리였다.
“설사 나중에 도시개발이 나더라도 큰 도로에 잘 붙은 땅과 맹지는 보상금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잖아요.”
잘 뽑은 도로 하나가 땅값을 적게는 수 배, 많게는 수십 배까지 차이 나도록 만든다.
그리고 아버지는, 태성건설은 도로 뽑는 데엔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슬그머니 덧붙이는 거예요. 태성이 지하철 공사를 도맡아 하고 있으니, 어떻게 힘을 써서 이쪽으로 지하철이 지나가도록 노력해보겠다. 어때요?”
“지하철까지?”
“도로가 일반 커피라면 지하철은 프리미엄 커피라고 할 수 있거든요.”
지하철역이 들어서는 곳엔 땅값이 수백, 많게는 수천 배까지 뛴다.
“땅 가진 사람들이 제일 혹할 만한 이슈로!”
원래 공략법은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법.
“외할아버지가 넘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부터 만들어 놓고 대화를 시작하죠.”
그게 내가 판을 짜서 상대를 공략하는 방식이다.
나는 슬쩍 몸을 기울였다.
“아빠는 엄마가 쓴 태교수첩을 보신 적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글을 참 절절하게 잘 써놓으셨더라고요.
그거에 우리 할아버지도 홀랑 넘어가서 눈물을 지으셨다는 거, 아버지는 아시나 모르겠네요.
“돈에 눈이 멀어서 딸을 팔아먹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가족이란 이름으로 눈물의 읍소를 한번 올려봐야죠.”
나는 자신 있게 가슴을 팍팍 두들겼다.
“그러니까 이번 주말엔 저랑 함께 저것들 바리바리 싸들고 가자고요!”
이 결혼, 내가 반드시 성사시킨다!
게다가 외할아버지를 꾀어낼 비장의 무기라면 또 있다.
< 이 결혼, 내가 반드시 성사시킨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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