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83)
재벌집 만렙 아들-283화(283/416)
< 외가 가는 날 >
기분 좋은 햇살과 참새가 짹짹이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한결 개운해진 기분과 밝아진 내 방을 보면서 직감했다.
‘늦잠이군.’
그렇다.
나는 아주 많은 일이 예정된 일요일 아침을 망치고 만 것이다.
침대를 박차고 다다다다 달렸다.
벌컥!
“엄마! 아빠!”
“오,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콩나물 대가리를 따고, 멸치 똥을 따던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반갑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배고프시죠? 오늘 콩나물국이 끝내줍니다.”
“얼갈이김치가 딱 알맞게 익어서 아삭아삭하더라고요. 거기에 오징어 도라지 초무침은 또 얼마나 새콤달콤하게요?”
“계란후라이에 간장 한 술 넣고 참기름 슥슥 둘러서 비비면, 크으!”
“후식으로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 한 사발 딱 마셔주고 끝!”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아침 메뉴를 줄줄이 읊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개를 홱홱 돌려서 바쁘게 찾았다.
“우리 엄마, 아빠는요? 설마 나만 남겨두고 먼저 외가에 가신 건 아니죠?”
“어, 음······.”
그렇게 말 흐리면서 곤란한 표정 짓지 말아주실래요?
단체로 대놓고 눈동자를 굴리면 속아주려 해도 속아줄 수가 없잖아요.
“내 이럴 줄 알았지.”
어째 어제 평소와 달리 늦은 밤까지 고스톱을 치자고 붙잡으시더라니!
-저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정혁아, 엄마랑 이거 딱 한 판만 더 치자!
-내일 아침 일찍 외가에 가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엄마랑 한 판만 더!
어머니는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너무 긴장되는 나머지 엄마가 잠이 안 와서 그래. 한 판 더는······ 안 되겠니?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자러 가냐고.
나는 마지못해 도로 주저앉았다.
-그럼 딱 한 판만 더 하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 모자의 맞고판이 열렸다.
한 판이 두 판이 되고, 두 판이 세 판이 되고.
-아니, 넌 어떻게 한 판을 안 지니?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분명 적당히 져드린다고 최선을 다해 져드렸는데요.
어머니가 상식적으로 너무 못하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만.
-엄마, 똥쌍피를 들고 있고, 바닥에 똥광이 깔렸는데, 왜 단풍을 먹어서 이 사달을 만드시는 거죠?
또 쌌잖아요.
이게 대체 몇 번째 싸시는 거예요?
제가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럽니다.
어머니 피박 면하시라고 똥광까지 일부러 깔아드렸는데요.
-그게··· 사슴이 귀엽게 웃고 있잖니.
-······.
그렇게 어머니는 또 광박에 피박 쓰고 말았다.
어떻게든 점수를 안 내보려고 난 이렇게나 용을 쓰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또 싹쓸이하고 마는 것이다.
‘휴우, 한번 져주는 게 뭐 이리 어렵냐.’
나는 길게 탄식했다.
‘고스톱으로 효도 좀 해보겠다는데, 패는 왜 이리 짝짝 붙냔 말이지.’
[어쩌겠느냐. 넌 하늘이 내린 유사 이래 최고의 행운아인데.]젠장, 전생에 나라는 괜히 구했나?
저승사자는 어머니 뒤에서 열심히 패를 읽었다.
[손에 고도리패 들고 계시는데, 써먹지를 못하시네.]‘고도리?’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과거 신림동 개미지옥이라 불렸던 시절로 돌아간 듯.
머릿속으로 바쁘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으음!
나는 실수인 척 매화를 내놓았다.
고도리를 가지고 있다면 먹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인 홍단으로.
-어머!
어머니는 몹시 기뻐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예, 어머니! 바로 그렇게 하시는······ 맙소사.
-왜 홍단이 나왔는데, 난초를 드시려다 또 싸세요?
-응? 그야 어떻게든 피박은 면해보려고.
으으윽!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럴 수가.
내 계산이 틀리다니!
또 이기고 말았다.
‘일부러 비광을 내쳤는데, 또 뒤에서 붙어서 싹쓸이를 해버리고 말았어.’
[그야 넌 하늘이 내린 행운아, 전생에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니까.]나는 달랑 피 한 장만 남은 어머니의 휑한 점수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피박에 광박 확정이로군요.
효도······ 망했는데?
-엄마, 이번 판도 묻고 더블로 가요.
딱 한 판의 역전승으로 어머니가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다는 희망!
-인생 한 방이에요! 가시죠!
이것이 신림동 개미지옥으로서 내놓은 가장 빠르고 확실한 어머니의 승리 루트였다.
딱 한 판이면 돼!
-어쨌거나 한 판 더 하는 거지?
-물론이죠!
-그래, 그럼 그러자.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좋아, 그럼 한 판 더!’ 하고 자신만만하게 응하셨다.
그렇게 고스톱판이 이어졌다.
결국 나는 또다시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분명 눈 감고 쳤는데, 어떻게 눈 뜨고 친 판보다 점수가 더 나버린 거죠?
어머니는 어떻게 된 게 꼴랑 한 판을 못 이기십니까!
뒤에서 지켜보던 저승사자도 황당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머니는 떨리는 표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셨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정혁이가 고도리, 초단, 홍단, 청단, 흔들고, 오광에······.
-아아아아!
나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어머니는 빠르게 암산하셨다.
-지난 판에서 묻고 더블로 가기로 했으니까 그것까지 다 더하면 총 245만 7,680원.
분명 점당 10원짜리 고스톱판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왕창 따버리게 된 걸까?
-정혁아, 역시 이번에도 묻고 더블로······.
-에잇!
나는 화투판이 벌어졌던 군용담요 위에 냅다 드러누웠다.
신림동 개미지옥으로서 내가 결론 내린 어머니의 유일한 승리 루트.
오직 이 방법뿐이었다.
-몰라요! 이거 다 무효야!
파바바박!
나는 팔다리를 힘껏 바동대면서 외쳤다.
그럴 때마다 사방으로 화투패가 튕겨 나갔다.
바로 땡깡 부리기!
-몰라요! 저 졸리단 말이에요! 나 잘래, 잘 거야! 고스톱 그마아아안!
일단 우기고 보기!
이 역시 어린애의 특권이었다.
어머니는 몹시 당황하여 재빨리 화투패를 줍기 시작했다.
-그래, 정혁아. 그러고 보니까 시간이 많이 늦었네. 우리 그만 잘까?
-탁월하신 판단입니다.
벌떡.
나는 언제 땡깡을 부렸냐는 듯.
공손하게 두 손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후다다다닥!
그렇게 나는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어제 어머니가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었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어.’
알기에 모른 척 응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날 외가에 데려가기 싫었단 거겠지.’
씁쓸한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미 예린이가 이에 대한 해결 방법까지 알려줬는데도.’
예린이는 ‘정혁 오빠의 애첩이 될 거예요!’를 선언했을 때.
뇌물로 가족들의 점까지 봐준 적이 있었다.
-아버님께서 꽤 두들겨 맞으시겠네요. 그래도 눈 딱 감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주세요. 그래야 꼬인 인연을 풀 수 있거든요.
-완전히 돌아섰던 인연을 다시 풀어내는 일이에요. 쉽지 않을 거예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오빠를 앞세워서 굽히고 들어가면 돼요. 잘난 아들 뒀다가 뭐에 쓰겠어요. 이럴 때 덕 보세요.
물론 아버지는 딱 잘라 거절했었다.
-그럴 수야 없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울 생각 없다.
부창부수,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니.
어머니도 아버지의 의견에 동조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니 평소와 달리 간절한 얼굴로 고스톱을 치자며 날 붙잡고 매달렸을 터.
그 표정을 봤고, 그 마음을 아는데, 어떻게 내가 모른 척 넘어가드리지 않을 수 있겠어.
‘이왕 눈감아주는 일, 어머니 기분이라도 좋아지시라고 시원하게 져드리려고 했건만.’
그것만은 내 뜻대로 안 되더라고.
‘천벌 받았을 때는 내가 아무리 공들여도 번번이 하늘이 훼방을 놓더니. 이번 생엔 하늘이 매번 너무 과하게 도와주는데?’
이거 재수가 너무 좋다고 하늘을 탓할 수도 없고.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련님, 아침 식사 준비되었는데요.”
“생각 없어요.”
“어허헉! 그래서 굶으시려고요?”
“밥 한 끼 굶는다고 사람 안 죽어요.”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기함했다.
다듬고 있던 콩나물과 멸치까지 내팽개치며 벌떡 일어났다.
“안 됩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아침은 굶으면 안 되는 겁니다. 당 떨어져요!”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거예요. 딱 한 술만 드셔보세요, 네?”
“밥 안 먹으면 키 안 자라요! 평생 이 키로 살 거예요?”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누구는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들었고.
누구는 간장 계란밥을 비벼 왔고.
또 누구는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대접에 담아왔다.
하지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지금 즉시 분당으로 출발하죠.”
“예, 도련님!”
태성그룹 경호원들도 마지못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래, 역시 일할 땐 확실하게 하는 자세!
이거 아주 마음에 들······ 읍!
“자, 우리 도련님 냠냠 해야죠. 아이고, 맛있다!”
“콩나물밥이 숙숙 들어갑니다. 아, 하세요~!”
“이거 한 입만 먹고 갈까요? 옳지, 그렇지! 꼭꼭 씹으신다, 잘한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먹을 것을 내 입에 자꾸 찔러넣었다.
“외가에 처음으로 가시는데, 눈곱도 안 떼고 갈 수는 없잖아요?”
어떤 이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훔쳐주고.
“자, 아이고, 예쁘다! 우리 도련님 머리 요기만 좀 더 빗질해볼까요?”
어떤 이는 머리빗을 들고 내 머리를 매만져주었다.
“으음, 지금 입고 계신 옷은 진짜 아닙니다. 요거! 귀여운 곰돌이 티는 어떠세요?”
“강아지 티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만.”
“예린 아가씨랑 같이 입으신다고 맞추신 병아리 티가 제일 귀엽지 않아요?”
경호원들은 미리 챙겨두었던 여행용 캐리어를 열고 옷을 꺼내어 내 몸에 대어본다.
“크, 역시 우리 도련님! 뭘 대도 잘 어울리십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우리 도련님 보시면 귀여워서 껌뻑 넘어가시겠어요.”
날 둘러싼 태성그룹 경호원들의 눈빛은 반쯤 녹아내린 초콜렛과 같았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따뜻했다.
“도련님,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으십니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야 하거든요.”
“아마 도련님께서 분당 외할아버지 댁에 도착하셨을 땐 일이 다 끝나 있을 겁니다.”
“우리 느긋하게 가서 맛있는 거나 실컷 얻어먹고 올까요?”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시간을 끄는 이유이자,
우르르 달라붙어서 날 곱게 단장시키는 까닭이었다.
나도 그만 피식 웃어주었다.
“그럼요. 다 잘될 거예요. 그러니 그리 걱정스러운 표정 지을 것 없어요.”
준비를 이렇게 철저하게 하고 가는데, 일이 성사 안 될 리가 있나.
뭐 좀 잘 안 풀리면 어때.
안 될 일도 되게 만드는 게 내 주특기거든!
‘이 결혼, 내가 성사시킨다니까.’
내가 이래 봬도 하늘이 내린 행운아, 전생에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랬거든.
고스톱 한 판마저 지는 꼴을 못 보고 팍팍 밀어주는 하늘인데.
‘하늘이 무심하게도 내게 외가를 빼앗아갈 리가 없지 않나. 믿어보려고.’
[아무렴.]저승사자가 엄지를 들어 올렸다.
[염라대왕께서도 미리 귀띔해주신 일이다. 이번엔 외가도 한번 찾아가 보라고.]그래, 그랬었지.
나도 솔직히 궁금하거든.
염라대왕께서 외가를 찾아가보라고 귀띔까지 남겨주셨을 정도면 상당히 좋은 것일 텐데.
심지어 예린이도 단언한 바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땅보다 숨겨둔 땅이 더 많아요. 부산을 비롯한 남쪽에 잔뜩. 일본엔 더 많군요.
-금싸라기 땅으로만 골라서 어마어마하게 많이도 가지고 계시네요.
-오빠에게 큰 힘이 될 기반이니까 잊으면 안 돼요.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마시고요.
내게 큰 힘이 될 기반이라니.
그래서 더 솔깃했다.
‘이번에 직접 만나서 슬쩍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서두르자고.
점심시간에 맞춰서 동네잔치에 참석하려면 시간 빠듯하다.
* * *
자동차가 달릴 때마다 여름의 향기가 쏟아지듯 들어왔다.
햇빛은 뜨거웠고, 흙먼지는 피어올랐고, 나무는 울창했고, 바람은 눅눅했다.
도심에서는 일렁거리는 아스팔트 아지랑이에서 뜨거워진 온도를 깨닫게 되지만.
이렇게 근교 외곽으로만 빠져도 흙두렁길과 산천초목에서 계절을 실감하게 된다.
“플래카드 잘 나왔네요.”
마을 어귀에 커다랗게 걸린 현수막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장님 댁에 경사 났네! 첫째 사위가 태성그룹 부회장이래요!>
<태성그룹에서 동네잔치를 엽니다! 많이들 놀러와서 축하해주십시오!>
<분당이 낳은 한국 최고의 미녀, 이수진이 태성그룹 막내며느리가 되었습니다!>
현수막엔 동네잔치가 열리는 곳 주소와 약도까지 걸려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열지 않고, 일반 집을 빌렸나 봐요?”
“이장님께서 마을회관 이용을 허락해주지 않으셔서요. 어쩔 수 없이 부회장님이 전에 사두셨던 자택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문득 부모님이 재회했을 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 부모님 옆집을 샀어. 사람까지 고용해 가며. 네가 부모님 댁에 들르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 게 벌써 칠 년째야.
그때 말했던 그 집인가 보군.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잘됐네요. 대선이나 총선도 아닌데, 마을회관을 사적으로 빌리면 이장 권력 남용이란 뒷말이 나올 수도 있어요.”
“마을회관을 빌려 쓰는 대가로 10만 원을 마을 발전 기금으로 쾌척하기로 했었습니다만.”
“그럼 이장이 권력을 남용한다는 뒷말이 나올 수도 있겠는데요?”
이 시절 장관 월급이 25만 원이고, 국무총리 월급이 35만 원이다.
마을 발전 기금이라 쓰고 꽁돈이라 읽는 돈이, 무려 10만 원이나 이장의 독선으로 날아가게 생겼단 소리!
안 되겠네.
“오늘 동네잔치에서 확실하게 못 박아야겠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결혼 허락을 받은 김에 기분 좋게 마을 발전 기금으로 30만 원을 쾌척하기로 한다고요.”
어쨌거나 결혼 덕분에 꽁돈이 생기면 그 공은 전부 이장이신 우리 외할아버지 몫이 될 테니까.
그럼 뒷말 대신 이장 만세 소리가 절로 흘러나오게 될걸?
“돈으로 마을 인심을 살 수 있다면 사야죠.”
난 우리 부모님이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셨으면 하거든.
부르릉. 끼익.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내 외가로구나!
예로부터 크게 떵떵거리던 양반집이자 이 지역 유지라더니.
어마어마한 기와집이 날 반겼다.
< 외가 가는 날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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