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85)
재벌집 만렙 아들-285화(285/416)
< 큰사위 잘 들였네! >
적극적인 탐색의 시선을 던지는 건 외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었다.
“오, 그러네! 누굴 많이 닮았다 했더니.”
“수진이 어릴 적 얼굴을 쏙 빼닮았구만.”
“너 외탁했구나? 이장님 판박이야, 판박이!”
이것 참 신기하군.
내가 태성그룹 사람들에게 인사했을 때도 그랬다.
다들 나한테 입 모아서 우리 아버지 어릴 때를 쏙 빼닮았다고 하더라고.
“볼수록 잘생겼네! 고놈 크면 여자들 제법 많이 울리겠는데?”
“수진이도 어릴 때부터 유명했었지.”
“오죽하면 옆 동네 남자애들까지 보러 왔을까.”
“똘똘하게 생긴 게, 어째 초롱초롱한 눈빛부터 남다르다 싶었어.”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호들갑을 떨든 말든.
외할아버지는 금붕어처럼 입술만 뻐끔거리다가 이내 한일자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고집스러운 입매였다.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후다닥 달려와서 외할아버지 등을 떠밀었다.
“이장님. 왜 그렇게 멀뚱하게 서 있으세요?”
“어어?”
외할아버지는 어어어어, 하다가 등 떠밀려 왔다.
“외손자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뵈러 서울에서 왔다잖아요.”
“거 밀지 좀 말어!”
“착하다, 고생했다, 보고 싶었다, 뭐 이런 인사라도 좀 하시고.”
“어어어?”
“하나뿐인 외손자한테는 좀 말랑하게 구세요. 이러다 애기 울겠어요.”
외할아버지와 평상에 앉아 있는 나 사이의 거리.
고작해야 세 발자국 거리였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단 세 걸음을 남겨놓고 망부석처럼 굳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는 등 떠밀지 않고 주변으로 물러섰다.
구경꾼 모드로 돌아선 것이다.
“이장님, 어서요.”
“아이고, 애기 목 빠져라 기다리다 늙어 죽겠네!”
“동네 애들한테 잘만 해주시는 거 있잖아요.”
“덥썩 안아 들고 부비부비 우쭈쭈 하는 거, 그거 해줘요.”
외할아버지는 홀린 듯이 내게 손을 뻗었다가 도로 멈칫했다.
그러더니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버럭 외치셨다.
“거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외할아버지는 귀와 목덜미가 새빨개지신 채.
타박의 화살을 김씨 아저씨에게 날렸다.
“김씨, 봤어? 앞으로는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 엄한 사람을 괜히 사기꾼으로 몰지 말고.”
“그러니까요.”
나도 이번 일만큼은 곱게 못 넘어간다.
‘어디 내 앞에서 우리 부모님을 후려치려고 들어?’
내가 다른 건 다 넘어가도 부모님 욕만큼은 용납 못 하거든.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아빠가 명함이 없어서, 입이 없어서, 상식이 없어서, 태성그룹 막내아들이라는 유세를 안 떨었을까요?”
“설마 일부러 함구를?”
김씨 아저씨는 스스로 도출한 결론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확신에 차서 우리 아버지를 사기꾼으로 몰던 때와는 다르게.
“그럼 장인어른께 따님을 주십사 결혼 허락을 구하는데, 진심보다 명함이 더 중요해요?”
“그건 아니지.”
마을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김씨 아저씨만 대답을 못 하고, 연신 헛기침을 터뜨렸다.
“태성그룹 부회장은 결혼 허락을 받으러 올 때도 국회의원이랑 고위 관료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와야 하는 거였어요? 그게 이 마을 룰인가요?”
“그것도 아니지.”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아버지가 할 일이 없어서 주말마다 새벽같이 처가에 달려와서 농사일을 도왔을까요?”
“그도 아닌 것 같고.”
이게 다 김씨 아저씨가 큰 소리로 떠들던 말이었다.
“못하는 농사일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종류별로 농기계를 골라 장인어른께 선물한 우리 아버지의 마음, 그것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방긋 웃었다.
“우리 아빠는 외할아버지께 선물로 도로를 크게 뽑아주고 싶으시대요. 그러니 우리 아빠, 예쁘게 좀 봐주세요.”
“도, 도로를 선물로 뽑아줘?”
마을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천지개벽할 소리를 들은 사람들처럼.
“도로를 뽑으면 땅값이 크게 뛴다죠?”
“마, 많이 뛰지!”
“엄청 뛰지!”
“최소 몇 배나 훌쩍 뛰지!”
마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처가에 선물로 도로를 뽑아준다는 말은 내 생전 처음 듣는 소리네.”
“그게 어디 한두 푼 드는 공사야?”
“돈이 워낙 많이 들어서 나라에서도 한 세월 손 놓게 되는 그 큰 일을.”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라고요?”
“태성그룹 막내아들······.”
그렇죠. 우리 아버지가 재벌 2세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인제 보니 우리 이장님, 큰 사위를 아주 진국으로 잘 두셨네!”
마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보란 듯이 ‘크흠!’ 하고 크게 헛기침했다.
씩씩대며 들썩이던 가슴은 의기양양하게 쫙 펴지고, 구부정하던 어깨도 반듯하게 쭉 올라가셨다.
“아무렴! 남의 집 귀한 따님을 데려가는데 당연히 진심이 먼저여야지!”
“귀하게 크신 부잣집 도련님이 인성까지 참말로 바르구만!”
“사내새끼들 열이면 열, 있는 땅문서, 없는 집문서까지 들먹이며 여자 꼬시느라 혈안인데 말이야.”
“명함 꺼내고 집안 들먹이기 전에 무릎부터 꿇고!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묵묵히 농사일을 도왔으면 더는 따질 것도 없지!”
“아내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더니! 세상에, 도로를 선물로 뽑아준대잖아요!”
마을 사람들의 호응이 좋아질수록 외할아버지의 ‘크흠!’ 소리도 더욱 커졌다.
반면 우리 아버지를 사기꾼 취급하던 김씨 아저씨는 얼굴이 벌게졌다.
나는 김씨 아저씨를 똑바로 응시했다.
“솔직히 상상도 못 했어요. 우리 아빠의 진심이, 우리 아빠가 사기꾼이란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될 줄이야.”
“크, 크흠!”
물론 이건 외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김씨 아저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우리 아빠한테 물어는 봤어요? 태성그룹 부회장이 맞는지, 태성그룹 막내아들이 맞는지, 확인은 하셨고요?”
“크허흠!”
김씨 아저씨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외할아버지를 돌아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어서, 크흠! 죄송하게 됐습니다.”
“크흐흐흐흠!”
외할아버지는 단전에서 끌어 올린 못마땅한 기침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뒷짐을 지신 채,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셨다.
그것으로 김씨 아저씨는 정리 끝.
이번엔 은근슬쩍 우리 어머니 뒷담화를 꺼냈던 들창코 아줌마 차례였다.
“우리 엄마가 시장에서 야채 팔았던 걸 아실 정도의 정보통이면 우리 엄마가 혼수로 태성화학을 받았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뭐? 수진이가 태성화학을 혼수로 받아?”
들창코 아줌마는 화들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딱 봐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아니, 태성화학이라면 엄청 큰 대기업 아니야?”
“우리 아들도 태성화학 들어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그 큰 회사를 수진이가 혼수로 받았단 말이야?”
“어머나, 세상에! 수진이가 시집가서 엄청 이쁨받고 살았구나!”
외할아버지는 아주 크게 ‘크흠!’ 하고 헛기침했다.
씰룩이는 입꼬리와 들썩이는 어깨를 애써 감추시면서.
나도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 몫으로 태성화학을 챙겨주셨거든요. 그래서 오늘 마을 잔치 답례품으로 태성화학 제품을 돌려요.”
“오!”
“태성호텔 주방장님들이 직접 오셔서 정성을 다해 대접하실 거래요. 일식, 한식, 양식, 전부 된다니까 취향껏 골라 드시면 돼요.”
“어머!”
외할아버지의 ‘크흠!’ 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휘어지는 입꼬리와 씰룩이는 눈꼬리를 포착했다.
나는 가볍게 전단지를 슥슥 돌리면서 방긋 웃었다.
왕년에 지겹도록 전단지를 돌리던 솜씨였다.
“그러니 많이들 오셔서 축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전단지 구석 면을 콕 짚으면서.
“가실 때는 잊지 말고 답례품도 챙겨 가시고, 경품도 잔뜩 타 가세요.”
마을 잔치에 경품 추첨 행사가 빠지면 섭하지.
“태성이 만드는 텔레비전, 세탁기, 다리미, 밥솥, 곤로, 냄비 세트, 선풍기와 자전거는 물론 아이들을 위한 학용품과 책가방, 운동화도 있어요.”
“이야!”
“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결혼 허락을 받으시면 마을 발전 기금으로 30만 원을 기탁하실 예정이라고 하셨고요.”
“30만 원이나?”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얼른 결혼을 허락하라는 무언의 독촉이었다.
외할아버지가 곤란한 얼굴로 ‘크흠!’ 헛기침했다.
‘집안의 중대사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면 크게 뒤탈 나는 법.’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도 안 오시더라고요.”
일부러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우리 부모님은 이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가 봐요.”
“아이고, 우리가 지금껏 괜한 오해를 해서!”
마을 사람들은 크게 당황해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이장님 댁 큰사위 될 양반이 번번이 농사를 망친다기에. 그게 영 괘씸해서 일부러 모른 척하려 했었던 건데.”
“우리는 그저 마을의 단합력을 보여주려고······.”
“수진이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군기를 조금, 아주 쪼오오끔 잡을 생각에, 크흠.”
잔칫집이 휑한 이유가 여기 있었네!
어째 점심때인데 잔칫집 대신 평상에 모여 앉아 있다 했어!
“뭐?”
외할아버지의 입꼬리가 대번에 매섭게 올라갔다.
부리부리한 눈매도 차갑게 뾰족해졌다.
이러다간 외할아버지가 또 빗자루를 휘두르시겠는걸?
“그래서 잔칫집에 똥파리만 날렸군요. 오죽하면 제가 이렇게 전단지 들고 찾아왔겠어요.”
나는 챙겨온 전단지 뭉치를 일부러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평상에 앉아 있던 마을 사람들은 재빨리 전단지를 하나씩 챙기더니 벌떡 일어났다.
“우리 마을에서 이런 경사가 났는데, 안 내다볼 수가 없구만!”
“그럼요! 수진이가 결혼한다는데, 당연히 우리가 제일 먼저 축하해줘야죠!”
“갑시다!”
“그러자고요. 얼른 가요!”
마을의 단합력을 보여준다더니.
과연 마을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모자와 물수건을 챙겨 들었다.
“크흠! 뭐, 점심때가 되긴 했네.”
한껏 치솟았던 외할아버지의 눈꼬리와 입꼬리가 도로 순해졌다.
들고 있던 빗자루를 지팡이 삼으면서 고개를 홱 돌리셨다.
“거 듣자 하니 태성호텔 레스토랑 밥맛이 그렇게 좋다던데.”
외할아버지가 턱끝으로 우리 집 방향을 가리켰다.
“궁금하면 한번 가보든가.”
외할아버지도 참.
그냥 솔직하게 ‘많이들 오셔서 우리 딸을 위해 축하해주세요!’ 하시면 될 것을.
부르릉! 부르릉!
마침 타이밍도 딱 좋게.
최고급 검은 세단이 줄지어 마을 어귀에 진입했다.
마을 사람들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려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우리 마을에 웬 고급 자동차가 줄줄이 들어오는데?”
“잔칫집이 너무 썰렁하고 휑해서 아버지 쪽 손님들도 초대했어요.”
물론 뻥이다.
<이장 집 딸이 재벌 2세한테 시집간대!> 작전으로 마을 잔치를 기획했을 때, 난 그 자리에서 전화부터 돌렸다.
“우리 부모님이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으면 해서요.”
이왕 거하게 여는 마을 잔치, 아버지 쪽 손님들을 초대하지 말란 법도 없잖아?
“일단 태성그룹 전 계열사 임원들에게 연락을 쫙 돌렸고요.”
“태, 태성그룹 전 계열사 임원들?”
“무슨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 이런 사람들 말이지?”
에이, 임원들이라니까요.
“상무님, 전무님, 이사님, 부사장님, 사장님. 이런 분들이요.”
“아니, 태성그룹 계열사 사장님들까지?”
“일단 직급상으로 우리 아빠 부하직원이 되시니까요.”
“······!”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보실 것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 태성그룹 부회장님이라니까요.
“어머나,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어머어머!”
“우리 마을에 귀하신 양반들이 우르르 몰려오셨네!”
“태, 태성그룹은 계열사가 몇 개나 된다고 하더라?”
나는 손가락을 쫙 폈다.
“50개요.”
“따, 딸린 계열사가 50개나 된다고?”
“대기업이잖아요. 우리나라 재계 순위로는······ 한 4위쯤?”
반년 전까지만 해도 태성은 재계 순위 5위였다.
아직 해가 바뀌기 전이라 자세한 순위 집계는 없었지만.
JH 소속이었던 계열사를 흡수해 12개나 덩치를 더 늘렸으니, 최소 재계 서열 한 단계 정도는 올라가지 않았을까?
아니면 말고!
“거보라니까!”
외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버럭 외쳤다.
“우리 수진이가 태성그룹 부회장이라면 부회장인 거야!”
뽀글거리는 아줌마 파마를 한 아줌마가 황홀하다는 듯 두 손을 모았다.
“우리 아들이 태성화학, 아니, 태성그룹에 입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물론 야망의 눈동자를 번뜩이는 건 그 아줌마 혼자만이 아니었다.
“우리 아들도 태성에 들어가고 싶어 해!”
“우리 딸도 마찬가지야!”
“우리 조카도!”
“우리 사위도!”
다들 장화를 고쳐 신는 속도가 몹시 재빨랐다.
“전 밭두렁 돌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와야겠습니다!”
“일석이 엄마, 같이 가요. 개울가 빨래터에도 한번 들러야지!”
“춘구는 나랑 같이 동네 슈퍼에 다녀와야 쓰겄다!”
“방일이 이 자식은 이 중요한 순간에 어디로 튄 거여? 또 친구들이랑 읍내 당구장 간 거 아니여?”
마을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켠 채 사방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썰렁하던 잔칫집도 곧 북적거리겠군.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는 대신 전단지를 챙겨 나온 보람이 있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마을 사람들이 허겁지겁 빠져나간 팽나무 그늘 아래.
외할아버지와 나, 우리 두 사람만 남았다.
“크, 크흠!”
외할아버지가 어색한 헛기침을 터뜨리며 은근슬쩍 평상 끝자락에 엉덩이를 붙였다.
외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리.
여전히 딱 세 발자국 거리였다.
< 큰사위 잘 들였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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