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88)
재벌집 만렙 아들-288화(288/416)
< 이렇게 쉽게? >
“방금 차 서방······이라고.”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작게 중얼거렸다.
외할아버지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이고, 내 옥수수······.”
외할아버지는 트랙터에 깔려 아작이 난 옥수수를 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분명 밭두렁 길 잡초를 베라고 해뒀는데······ 이노무 자식이!”
외할아버지는 대뜸 도끼눈을 떴다.
밭두렁 어귀에서 나뒹구는 예초기와 옥수수밭을 무지막지하게 가로지른 트랙터를 번갈아 보면서.
“트랙터가 왜 여기에······ 트랙터를 왜 여기에······!”
외할아버지의 이마 위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내 머릿속 경고등도 삐용삐용 울려댔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외할아버지, 여기 도로 뽑을 자리!”
외할아버지는 순간 멈칫했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재빨리 외쳤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폭 6미터 도로를 만들 거래요.”
“왕복 2차선?”
“그 정도는 되어야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겠어요?”
“마을버스 길? 요 앞에?”
외할아버지가 뭉개진 옥수수와 도로가 들어설 자리를 번갈아 보셨다.
나는 은근하게 속삭였다.
“마을버스가 이쪽으로는 안 다녀서 그간 엄청 불편했다면서요? 아마 여기에 버스 정류장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지 않겠어요?”
“크흠!”
“덩달아 이 마을 땅값도 많이 뛸 텐데요. 마을 사람들이 이 길을 오갈 때마다 이장님 최고 소리가 나올 것 같지 않아요?”
“크흠!”
“아빠, 여기 도로 이름을 뭐라고 붙인다고 하셨죠?”
아버지는 냉큼 대답했다.
“수진로.”
“우리 엄마 이름이네요?”
“크흠!”
치솟았던 외할아버지의 눈썹이 도로 얌전하게 내려왔다.
“뭐, 그렇게 되면 온 동네가 떠들썩하긴 하겠구먼.”
“그럼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 년 농사를 망친 건 크게 혼날 일이죠.”
나는 일부러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니까 우리 아빠는 이제 쫓겨나겠네요?”
“음?”
“우리 아빠가 쫓겨날 때, 그럼 엄마랑 저도 같이 쫓겨날 테고요.”
나는 일부러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외할아버지, 오늘 하루 너무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러 올게요.”
“됐다! 그까짓 옥수수, 몇 푼이나 된다고.”
외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나는 슬쩍 곁눈질을 했다.
“그럼 우리 아빠 용서해주시는 거예요?”
“마을 잔치에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렀다.”
외할아버지는 모른 척 고개를 홱 돌렸다.
망쳐버린 옥수수밭을 애써 외면하면서.
“거 서울에서도 차 서방 쪽 손님들이 잔뜩 내려왔다고 하지 않든? 손님들 헛걸음하게 만들 수는 없지.”
“외할아버지이이이······!”
나는 외할아버지를 꼬옥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크흠! 사내자식이 별게 다 고맙대.”
“덕분에 우리 엄마 아빠가 마을 잔치에 온 사람들에게 축하를 잔뜩 받을 수 있게 됐잖아요.”
나는 방긋 웃었다.
“너무 기뻐요.”
“크흠! 차 서방, 그만 됐으니까 얼른 이리로 나오시게.”
외할아버지는 손짓했다.
“맘 변하기 전에 후딱 나와! 셋 세랴?”
“갑니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으깨진 옥수수를 내던지며 달려왔다.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어머니 손은 꼭 잡은 채였다.
두 분 얼굴엔 ‘이렇게 쉽게 용서를 받아?’하는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외할아버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
“봤죠? 우리 아빠는 절대로 우리 엄마 손 안 놓는다니까요.”
“크흠! 거 사내가 팔불출처럼. 남사스럽게. 안 그렇게 생겨서는 말이야.”
“저런 사위는 영 싫으세요?”
“우리 수진이한테까지 목석처럼 무뚝뚝하게 굴면 내가 두들겨 패서 당장 쫓아낼 거여!”
싫지 않단 소리였다.
* * *
마을 잔치가 열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나란히 줄지어 서서 한적한 밭두렁 길을 걸어갔다.
외할아버지는 맨 앞에, 나는 맨 끝에 서게 되었다.
어쩌다 외할아버지 어깨에서 내려오게 되었는가 하면,
-왜 애를 앵무새처럼 어깨 위에 올려놓고 다니세요?
-애 떨어지겠어요. 그만 좀 내려놓으세요.
-무겁지도 않으십니까? 그러다 어깨 나가면 어쩌시려고요.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말로 기겁하는 부모님 덕분이었다.
마을 사람들 말은 귓등으로 들은 척도 안 하시던 외할아버지셨지만.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눈을 마주하자, ‘크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나를 조용히 내려놓으셨다.
“차 서방.”
“예, 장인어른.”
외할아버지 뒤를 아버지가 따랐다.
그런 아버지 뒤를 어머니가, 그 뒤를 내가 따랐다.
“양친은 모두 무고하시고?”
드디어 우리 아버지가 장인어른에게 호구조사를 받는구나!
이게 뭐라고 감격스럽냐.
어머니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글썽글썽하셨다.
아버지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두 분 모두 건강하게 무탈하십니다.”
“형제들은?”
“위로 형님 두 분과 누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막내죠.”
“음.”
적막이 흘렀다.
설마 이게 끝인가?
하지만 외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밭두렁 길을 걷기만 했다.
한참 만에 외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일손 거들러 올 것 없네.”
“예?”
뜬금없는 축객령이었다.
“여기까지 내다볼 필요 없다는 소리야.”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순간 휘청하시길래, 내가 어머니 손을 꽉 붙들었다.
아버지는 다급하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대답도 성에 차게 똑바로 못하고, 농사까지 망친 데다······.”
아버지는 마른세수했다.
“그래서 화 많이 나셨습니까? 잘못했습니다.”
“화는······ 크흠! 그걸로 자네를 타박할 생각은 없네.”
“예?”
“선무당이 사람 잡듯, 농사에 서툰 사람이 농사 망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내가 그걸 왜 모르겠는가.”
외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오해는 지금 내가 아니라 자네가 하고 있어.”
“예?”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이만하면 잘 알았으니, 앞으로 괜한 수고를 들일 것 없다는 뜻이었는데.”
“하지만 장인어른, 여긴 일손이 모자라서······.”
“자네가 비싼 농기계들을 잔뜩 보내줘서 괜찮네.”
외할아버지는 발걸음을 늦췄다.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걷기 위해서였다.
“수확철에나, 파종 때나, 특히 손이 많이 필요할 땐 품삯을 내치고 사람을 빌려쓰면 돼. 여태껏 그렇게 해왔고.”
외할아버지에겐 아들이 없다.
두 딸만 있을 뿐이다.
“자네 말마따나 여기에 도로를 뽑는다면 적잖은 농지를 정리하게 될 테니, 더욱 괜찮을 게야.”
농사엔 힘쓰는 장정의 노동력이 최고다.
그렇다고 외할아버지가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경작하는 것도 아니고.
저 많은 농지를 손수 가꾸려면 여러모로 많이 아쉬웠을 터였다.
“환자는 의사에게, 농사는 농부에게,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에 매진하면 되는 거여.”
앞으로 아버지의 손을 빌리지 않겠노라 선언하신 것이다.
······물론 저기 나뒹구는 옥수수 상태만 봐도 납득 완료.
이해 못 할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자네에게 바라는 건 농사일이 아니었네.”
“그러면 뭘 바라십니까?”
“첫째로는 내 딸을 수진이를 제 몸처럼 아껴주는 거.”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제 몸처럼, 목숨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귀하게 아끼겠습니다.”
“둘째로는 내 외손주 정혁이를 바르게 잘 키워내는 거.”
외할아버지는 나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농사 중에 으뜸은 역시 자식 농사가 아니겠는가.”
농부의 자존심이 듬뿍 묻어나는 말이었다.
“제 자식은 제가 지켜야죠. 정혁이 앞길은 제가 잘 닦아주려 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부리부리한 눈으로 어머니를 돌아봤다.
“수진이, 이번엔 네가 한번 대답해 봐라.”
“네?”
“넌 이 남자가 좋으냐?”
“네.”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없으면 안 되겄어?”
“네.”
“그러면 별수 없구만. 결혼해야지.”
“네?”
아버지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건 어머니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외할아버지만 뒷짐을 진 채 똑같은 속도로 성큼성큼 걸었다.
“어렵게 가자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막히는 게 양가의 혼사이고, 또 쉽게 가자고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성사되는 게 남녀의 일이제.”
부모님은 얼떨떨해 보였다.
얼굴에 ‘이렇게 쉽게?’,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꾸셨지?’란 물음이 동동 떠 있는 듯했다.
“이게 다 정혁이 덕분인 줄이나 알어!”
외할아버지는 크게 ‘크흠!’ 헛기침했다.
“차 서방, 내 지금껏 자네를 너무 야박하게 대했으니, 만약에 서운한 점이 있거들랑 수진이가 아니라 나한테······.”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장인어른.”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밭두렁 흙길도 마다치 않고 대뜸 무릎을 꿇었다.
“따님을 제게 허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장인어른.”
“아니, 차 서방, 이게······!”
“저희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아버지는 넙죽 큰절을 올렸다.
“장인어른이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는 일 없도록, 수진이 눈에서 눈물 나는 일 없도록, 제가 더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그럼 됐지. 그러면 된 거여.”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외할아버지의 눈가는 도로 붉어졌다.
“차 서방, 내 딸과 내 외손주를 잘 부탁하네.”
“예!”
“아······!”
어머니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곁에 선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빙그레 웃었다.
“예. 믿고 맡겨주십시오.”
“그래, 그래야지.”
외할아버지와 나는 같은 표정, 같은 속도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정혁아.”
“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도로 나를 어깨 위에 앉혔다.
어머니 아버지가 만류할 새도 없었다.
“신부가 눈물 바람으로 잔칫집에 나타나면 쓰나. 차 서방, 그럼 수진이랑 천천히 오시게.”
외할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린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너무 늦지는 말고.”
걸음을 서두르는 목적은 분명했다.
첫째는 마을 잔치에서 와준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둘째는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 이거 쓰세요.”
나는 손수건을 내밀었다.
외할아버지는 코를 훌쩍이면서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됐다. 밭에서 구르느라 얼굴이 죄 흙투성이여. 비싼 손수건만 버린다.”
“외할아버지는 우리 엄마를 아빠에게 내어주는 게 많이 아까우셨나 봐요.”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도 안 아깝다!”
“그렇죠? 저도 그래요.”
나는 희고 부드러운 가제 손수건으로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닦아냈다.
외할아버지 어깨에 앉아있기에 가능한 서비스였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크흠! 아까도 한 소리! 됐다.”
나는 외할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앞으로 엄마 손잡고 종종 놀러올게요.”
“크흠! 됐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자주 와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지은 먹거리도 잔뜩 얻어먹고 갈 거고요, 여기서 매미도 잡고, 사마귀도 잡고, 콩도 따고, 상추도 따고, 고추도 딸래요.”
“애들이 먹고 놀기엔 이만한 곳도 없지. 크흠! 뭐, 그래라.”
“친구 데려와도 돼요?”
“그럼. 물론이지.”
외할아버지는 씩 웃었다.
“외할아버지네 집에는 남는 방이 아주 많다.”
그래 보였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더라고.
“저쪽 밭엔 원두막도 크게 지어 놓았다. 여름이면 수박도 따 먹고, 참외도 따 먹고, 오이도 따 먹기 참 좋지.”
새삼 옛날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구로동 판잣집이 헐려서 오갈 데 없이 길바닥으로 쫓겨나던 때.
비바람 찬 이슬을 피할 데가 없어서.
난 매번 남의 집 창고에 몰래 숨어 들어가 잠을 청하곤 했었다.
여름에는 바람 솔솔 통하는 원두막이나 동네 어귀의 평상에 몰래 눕곤 했었는데.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어김없이 빗자루를 들고 쫓아왔다.
수박 서리꾼, 참외 도둑놈, 빌어먹을 거지새끼라면서.
나는 매번 ‘안 훔쳤어요!’, ‘정말이에요!’, ‘잠깐 누워 쉬려던 것뿐이에요!’ 하고 결백을 주장했으나,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 * *
잔칫집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떠들썩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외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이게 다 어쩐 일이야?”
담벼락에 걸어뒀던 현수막이 앞마당에 당당히 자리 잡았다.
달력 뒷면에 매직으로 그려놓은 환영 문구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태성그룹 싸장님들은 여기 오씨오!>
<이 혼사를 방해하는 자는 마을 사람들 손에 죽소!>
<다 함께 잘살아 보세! 니나노~ 조타~!>
주인공이 빠진 마을 잔치에 온 마을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일손을 돕고 있었다.
“여기 태성화학 사장님께 수육 한 접시 더 드려야겠네!”
“멸치국수에 고명이 빠졌어. 여기 유부 더 없소? 고춧가루 뿌려야겄는디?”
“우리 집에 태양초 고춧가루가 있는데, 그거라도 가져올까요?”
“스태끼가 야들야들하던데. 일단 그것부터 잡수지요?”
태성그룹 임원들도 바쁘게 오가며 음식을 날랐다.
태성그룹 사장들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를 손수 따르고 있었다.
“우리 부회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큰일 하시는 분입니다. 모쪼록 예쁘게 봐주십시오.”
태성그룹 사장들의 영업력은 확실히 남달랐다.
“경품, 어떤 거 타고 싶으십니까?”
“손자분들이 몇 살이랬더라? 운동화 사이즈는 알고 계십니까?”
“이장님께 말씀 잘 해드리면 따로 태성백화점 상품권도 증정할까 합니다만.”
이것이 바로 고객 맞춤 서비스!
외할아버지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여보, 수진이 엄마!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수진이 엄마 소리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고개를 돌렸다.
툇마루에 나란히 누워서 얼굴 가득 팩을 올리고 있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작고 통통하신 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저분이 외할머니?’
그런데 이게 웬걸?
외할머니 옆에 딱 붙어서 팩을 해주고 있던 똑단발의 아가씨는,
“고모?”
“조카 왔어? 늦었네?”
고모가 싱긋 웃으며 손을 들었다.
< 이렇게 쉽게?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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